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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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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꽃보다 할배 : 대만편>은 대만에 대한 여행 로망을 불 지피게 만들었다. 특히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인 수도 타이베이는 큰 관심을 받았다. 더구나 한국과 대만은 역사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는 한편으로 완연히 다른 지점도 갖고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한 분단, 성공적인 경제 개발의 역사 등을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한편 한국과 대만 사람들의 삶은 분명히 다른 속도와 형태를 지니고 있다.

 

“소박하지만 밝은 타이베이 사람들의 삶은 여유가 넘친다. 서울에서의 삶이 ‘프레스토(Presto)’라면, 타이베이에서는 ‘라르고(Largo)’다. 무엇을 하든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이런 더운 지방 특유의 느릿함과 중화권 특유의 ‘만만디(慢慢的)’ 문화의 선율이 연주하는 변주곡의 템포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다. 다만 서울에서의 삶의 템포가 세계 평균보다 상당히 빠르고, 타이베이의 그것이 조금 느리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못 견딜 수준은 아니다.”(35쪽)

 

지난 7월 13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는 『타이베이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출간기념으로 최창근 저자와 독자들이 만나는 시간이 마련됐다.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즐기는... 책으로 떠나는 타이베이 인문 답사’라는 주제로 저자가 살면서 경험한 대만과 타이베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그는 대만 유학생으로 2009~2012년에 타이베이에 머물렀고, 『대만,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대만,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등의 대만 관련 책을 냈었고, 이번에 세 번째 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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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여유로운 타이베이

 

대만은 국민소득이 한국과 비슷하다. 저자가 본 대만 사람들은 가족을 중시하고 일을 많이 하기 보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시한다. 저자가 공부하면서 머문 타이베이의 야경은 굉장히 화려하다. 그런데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낡은 집이 많다고 한다. 첨단 빌딩과 오래된 집이 공존하고,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곳이 타이베이다. 그래서 너무 빨리 바뀌는 서울과는 그 외관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서울이 옛날 것이 없고 빨리 바뀌고 영혼이 없는 도시 같다면 타이베이는 다르다. 도시 한복판이나 도심에서도 오래된 집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타이베이의 가장 번화한 ‘신천지’라는 곳이 있는데 오래된 집과 공존한다. 타이베이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옛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타이베이 거리를 거닐다 보면 실망을 많이 한다. 미적으로는 별로 아름답지 않다. 건물이나 빌딩이 오래된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가 옛것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 대만 사람들은 낡았다고 부수고 새로운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민간 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데 집을 부수거나 새로 지으면 수호신이나 토지신이 노해서 화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셋째, 기후 탓이다. 아열대 기후로서 비가 자주 오다보니 대만 사람들은 건물 외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만 사람들 성향을 보면 우리나라가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 멋부리는 스타일)’라고 한다면 겉보다는 내실에 더 신경을 쓴다. 밖은 허름해도 안에 들어가면 잘 꾸며져 있는 경우도 많다. 낭비나 사치를 하지 않는다. 서울에는 피맛골을 없애고 그밖에도 다른 정겨운 골목을 없애고 고층 빌딩을 올린다. 옛 추억이나 정서가 사라져서 아쉽다. 그러나 타이베이 뒷골목은 피맛골 느낌이 난다. 우리는 역세권이나 지하철이 지나가면 부동산값 올라간다고 좋아하나 대만 사람들은 다르다. 전철이 통과하는 것을 반대하고 투쟁한다.”

 

타이베이는 그런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밝기보다는 칙칙한 느낌을 준다. 타이베이를 수채화로 그리면 회색빛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 특히 11월부터 1월까지 우기로서 자주 비가 온다. 이런 대만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라면 저자는 서점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서점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가진 작은 서점이 동네 곳곳에서 동네의 문화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또 24시간 영업을 하는 대형서점도 있는데, 타임지가 뽑은 최고의 서점인 청핀서점(청핀슈띠엔, 誠品書店)이 그 주인공이다. 이 서점의 회장이 문화에 관심이 많은 덕분에 금전상 손해를 보는데도 대만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24시간 잠들지 않은 서점으로 영업하고 있다. 이곳은 대만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타이베이에는 무엇보다 서울에선 이제 볼 수 없는 서점 거리가 있다. 중앙역 근처에 대만을 대표하는 30여개의 크고 작은 서점이 줄을 서서 종합서적뿐 아니라 무술전문서점 등 전문화된 서점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단다. 동네서점들이 고사 직전인 서울의 풍경과는 다르다.

 

“처음에 대만에 살면서 한발 물러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라. 서울에서 삶의 속도에 지친 사람은 타이베이에 가면 편안하고 느긋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타이베이의 삶이 여유롭다고 말하지만 대만에 처음 가서는 매일 같이 화가 났었다(웃음).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할 때 시간이 엄청 걸리더라. 대만 사람들은 느리고 꼼꼼하게 본다. 만만디를 한국에선 나쁘게 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어로 ‘slowly but surely(느리지만 확실하게)’라고 표현할 수 있다. 타이베이에서 아침을 먹는 것도 좋다. 허름한 가게들이 곳곳에 있는데, 이곳에서 아침을 먹어보라. 우리는 의식주라고 표현하나 중국이나 대만 사람들은 ‘식의주’라고 표현하는데, 타이베이가 어떤 도시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열쇠말이다. 그만큼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오늘날 타이베이도 천국, 그중에서도 ‘미식(美食) 천국’이다. 타이베이에서는 대만 고유의 미식뿐만 아니라, 중국 각지,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두루 맛볼 수 있다.”(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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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역사를 맛보고 싶다면

 

저자는 타이베이에 간다면 5000년 중국역사가 살아 숨 쉬는 ‘국립고궁박물원’을 가볼 것을 권했다. 이 박물원은 세 가지 상징성을 갖고 있다. 즉 중국 근대화, 중화 전통 계승, 양안 분단 등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근대의 상징으로 각종 유물을 모아 국력을 과시하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도 그런 역할을 했다면 대만은 1925년 고궁박물원을 만들어 5000년 중화 문명을 과시했다. 그런데 중국의 베이징도 아닌 왜 대만의 타이베이였을까.

 

“1912년 청나라가 망하고 1945년 일본 패망 후 장제스와 마오쩌뚱이 새로운 중국이 어떻게 갈 것인가를 놓고 협상을 했으나 그것이 잘 안 되고 국ㆍ공내전이 벌어진다. 1949년 대만으로 갈라지고 타이베이에 국립고궁박물원이 지어졌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물로 금으로 만든 배추가 있고 황제의 장난감 컬렉션도 있다. 백자로 만든 베게도 있다.”

 

“국립고궁박물원은 1949년 이후 분단된 양안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본래 베이징 고궁(자금성)의 유물 중 약 1/4은 대만으로 건너왔지만, 나머지 3/4은 본토에 남아 이산가족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는 작품 자체가 쪼개어져 한쪽은 중국에 다른 한쪽은 대만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46쪽) 

 

이어 저자는 <송가황조>(1997)라는 영화를 꺼냈다. 중국 현대사를 풍미한 중요한 인물인 송씨 세 자매를 다룬 영화로 양자경(쑹아이링ㆍ송애령), 장만옥(쑹칭링ㆍ송경령), 오군매(쑹메이링ㆍ송미령)가 세 자매로 분했었다. 이 자매의 아버지(송가수)는 부유한 사업가로 세 딸은 각기 돈, 중국, 권력를 상징했다. 첫째는 대은행가와 결혼했고, 둘째는 쑨원(손문)과 결혼해서 최초의 퍼스트레이디가 됐으며, 셋째는 장제스(장개석)와 결혼해서 권력을 쥐었다.

 

“첫째는 평은 좋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친구와 결혼한 둘째는 삼민주의를 주창한 새로운 중국의 이정표를 제시한 쑨원과 결혼했다. 타이베이에 가면 ‘국부기념관’이 있고 쑨원은 중국과 대만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쑨원의 후계자가 장제스였는데, 셋째 쑹메이링은 그와 결혼했다. 쑹메이링은 1975년 장제스가 세상을 떠난 뒤 5년 후 타이베이 시내에 장제스 기념상을 만들었다.”

 

저자는 대만과 관련한 영화를 언급했다. 우선 <시디그 발레>. 대만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시대극으로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해 게릴라전을 펼쳤던 대만 원주민 시디그 족의 슬픈 역사와 실화를 다뤘다. 대만을 구성하고 있는 원주민, 민남인, 객가인, 외성인 가운데 대만에 원래 살던 주민이자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슬픈 역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살렸다. 

 

“개척 혹은 개발이라는 역사의 이면에는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나야만 하는 ‘원주민’의 슬픈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이는 대만 섬에서도 마찬가지도 청대 대만 섬이 중국에 복속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족의 이주로 인해, 원래 대만 섬의 주인이었던 대만 원주민은 조상이 물려준 터전을 이주민에게 내어주고 차츰차츰 산지로 밀려나야만 했다. 여기에 한족과의 통혼으로 유전적 정체성마저 점점 희미해져, ‘대만 원주민’이라는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104쪽)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계륜미 주연의 영화로 타이베이에 독특한 콘셉트로 운영하는 카페의 이야기를 다뤘다. 저자에 의하면 작지만 개성 있는 커피전문점이 타이베이 곳곳에 있는데, 타이베이는 세계10대 커피도시 중 하나라는 것. 쿠바 아바나, 포르투갈 리스본, 호주 멜버른, 노르웨이 오슬로, 미국 포클랜드, 미국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 오스트리아 빈, 브라질 상파울루가 나머지다.

 

“대만에는 예쁜 카페가 많다. 한국에는 개성 없이 프랜차이즈가 장악했는데, <꽃보다 할배>를 보면 대만 사범대학 근처의 예쁜 카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옛날 건물을 활용한 카페를 비롯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들도 많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도시 단수이도 좋은데, 밤이 되면 아주 좋은 야경을 자랑한다. 사랑의 항구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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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왜 대만을 선택했는지 듣고 싶다. 3년 동안 대만에서 살아보니 어땠나?

 

오래 전부터 대만과 중국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했었는데, 우연히 대만 대표부와 인연을 맺게 됐었다. 그런데 간혹 내 성적과 함께 졸업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더라. 대학원에 가서 석사를 마치고 싶다고 했더니 대만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더라.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만에 가게 됐다. 대만에 가서 살면서 여유 있게 사는 것을 배웠다.

 

<비정성시>를 보면 대만의 슬픈 역사를 알 수 있는데, 초반에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나면서 대만 사람들이 일본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에 대한 감정은 우리와 다른 것도 같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 듣고 싶다.

 

국민당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 외에는 일본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이 한국과 달리 대만을 온건하게 통치했다. 중국은 싫어하면서 일본은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만의 전 총통인 리덩후이(이등휘)총통은 1923년에 태어난 사람인데, “나는 정신세계는 일본 사람인데, 식민지 대만에 태어나 비애를 느낀다”는 말을 했었다. 그는 또 히로히토 국왕이 죽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낀다거나 총통 퇴임 후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도 했는데, 실제로 퇴임 후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기도 했다. 2010년에 대만 TV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센카쿠 열도를 놓고 일본 땅이 맞다면서 중국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참 놀라웠다. 

 

중국은 대만과 통일을 호시탐탐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만 내에서도 정치 체계가 친중과 반중으로 나뉠 것 같은데, 현재 대만의 분위기나 중국과의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다.
 
대만에는 양대 정당인 국민당과 민진당이 있다. 지금은 국민당 정부가 정권을 잡고 있다. 국민당은 친중, 민진단은 친일에 가깝다. 중국과 통일하는 것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면 대만 사람의 70% 이상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분위기다. 중국에서도 ‘일국양제’(중국이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를 공존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중국의 홍콩 통치 원칙이자 대만 통일 원칙이기도 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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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 최창근 저 | 리수
타이베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도시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유럽의 고도(古都)와 같은 예스러움이 있는 도시도 아니고, 마천루가 즐비한 화려한 도시도 아니다. 탄탄한 경제 대국의 수도라는 명성에 비하여 겉모습은 밋밋하고 초라하기만 하다. 타이베이는 이렇듯 외국인에게 자칫 실망감을 줄 수도 있는 도시지만, 《타이베이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는 타이베이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지 그 차별점을 확실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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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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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저자 서경식 교수와 함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가 대담자로 같이 자리했다. 김응교 교수는 몇 년 전, 69일 동안 지하에 고립되었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된 칠레 광부들의 이야기를 하며 입을 뗐다. “칠레의 한 탄광에서 광부들이 60여 일 동안 어둠을 이겨냈던 이야기 아마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그들은 지하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낭송하며 어둠 속에서 공포를 이겨냈다고 합니다. 그들의 친구가 파블로 네루다였다면, 우리에게도 주변인, 이방인, 핍박 받은 사람들의 친구였던 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서경식 선생님입니다.”

 

서경식 교수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으며, 현재 도쿄 케이자이대학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개의 고국을 가진 그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혼란과 아픔을 겪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민족적 자긍심이 강했던 부모님 덕분에 그 역시 자긍심과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유난히 해가 뜨거웠던 그날, 서경식 교수는 하루 종일 얼음으로 열을 식히면서 다녔다고 말하며 얼음 주머니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독자들을 이렇게 가까이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첫인사와 함께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됐다.

 

그는 먼저 이번 책『시의 힘』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까지 크게 나눠서 두 가지 분야의 글을 써왔습니다. 하나는 미술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인 것이었고 두 번째는 사회적인 것이었습니다. 원래 저는 시나 소설처럼 조금 더 문학적인 것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일단 제 자신이 힘이 없어서였고, 두 번째는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언어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고, 세 번째로는 정치적인 문제가 항상 저에게 과제로 밀려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60대로 접어 들면서, 지금까지의 제 인생을 돌이켜보다가 이런 책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의 힘이 필요한 이유

 

요컨대 나는 저소득층 피차별자의 세계로부터 중산층 주류들의 세계로 옮아갔고(비유하자면 식민지에서 종주국으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옮아갔고), 양자 사이의 경계에 서서 주위 사람들에게 ‘타자’ 인식을 촉구하려는 동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동시에,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온몸이 찢기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행위를 통한 자기 인식의 시도이기도 했다.(24-25쪽)

 

서경식: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는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하려는 행위인 로고스적인 것이 있고, 또 한가지는 분노나 슬픔같이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려는 뮈토스적인 행위가 있습니다. 로고스 중심주의에서는 주로 지식인이나 상위 계급이 언어를 해석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일본에 살고 있는데, 일본에서 언어를 해석하는 권리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어요. 로고스적으로 아무리 말하더라도 해석은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하니까 불만이 생기는 거예요. 위안부 문제의 경우도 일본에서 지식이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해석한 것이죠. 그러한 사고에 대해 저항하려면 시와 같은 행위가 필요해요. 우리가 평소에는 상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시는 상상력을 활성화하고, 공감을 합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해야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문학 쪽으로 갔었죠. 이런 경로로 문학을 하게 된, 세계적으로 소수자인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경계인인 것이죠.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사이의 경계입니다.

 

김응교: 재미있네요.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요. 일반적으로 선생님을 경계인이라고 칭할 때, 사람들은 그 경계를 한-일 간의 경계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선생님은 로고스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간의 경계라고 표현하셨네요. 이어서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선택된 아이덴티티’에 대한 것입니다. 『시의 힘』에 팔레스타인 출신이면서, 아버지는 미국 국적을 갖고 있었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는데요.

 

서경식: 먼저 시대적 배경을 말씀 드리자면, 90년대에 ‘포스트 콜로니얼(Postcolonial)’이라고 해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되면서 당시 재일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조국 지향인지, 재일 지향인지 묻는 양자택일론이 등장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조국이나 민족에 구애 받지 않고 보편적인 아이덴티티로 살아도 된다는 얘기와 함께, 내셔널리즘은 환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해방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역사적으로 우리가 식민지 시기를 거쳤고, 여전히 식민지적 사고가 남아 계속 차별 받고 있으면서도 이제 우리는 보편인이고, 해방돼도 된다는 얘기가 제가 볼 때는 너무나 권위주의적이고, 억압해온 사람들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90년대에 하기 시작했죠. 그때 에드워드 사이드를 만났어요.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에서 ‘복합적 아이덴티티’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미국 국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선택해서 충분히 여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1967년 제3차 중동전쟁과 그로 인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불법 점령 등 중동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했어요. ‘강제된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자신이 아이덴티티를 선택하는 것이죠. 우리 재일조선인도 스스로 진지하게 고찰하면서 아이덴티티를 선택해야 합니다. 외부에서 이제 너희는 해방되었다라는 식으로 강제 받는 것이 아니고요. 말하자면 이것은 90년대 일본에서 있었던 포스트 콜로니얼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문제제기이자 항의였습니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중략)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110-111쪽)

 

김응교: 이제 조금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요. 바로 시의 힘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책에서 루쉰에 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셨는데요.

 

서경식: 중학교 1학년 때인가, 교과서에서 루쉰의 「고향」이라는 단편을 봤어요. 그 당시, 그 글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야 한다라는 미래지향적인 맥락으로 해석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루쉰이 자신의 글에서 ’걸어가면 길이 된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운동선수가 열심히 연습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걷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게 걷다 보면 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뜻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그 후에 일본의 소설가인 나카노 시게하루가 그런 저의 생각과 잘 맞닿아있는 논평을 썼어요. 루쉰의 말은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희망적 메시지가 아니라,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뜻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요. 가장 어두운 암흑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희망, 바로 그것이 루쉰이 말하는 희망이에요. 시와 같은 문학의 시간적 척도는 개개인의 인생보다 길어요. 80여 년 전 루쉰의 이야기가 지금의 나에게 격려를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아주 짧은 척도로 단편화돼 성과, 결과를 내라는 압력 때문에 긴 척도로 인간의 희망 등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와 같은 작품과 만나면 더 넓은 시야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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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

 

김응교: 『시의 힘』을 보면, 3장에서 여러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마지막에 ‘시인이란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인들은 주로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곁으로 가는 시인들인 것 같은데요. 시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경식: 이전까지 일본어로 번역된 조선 민족시가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 70년대 들어오면서 김지하 시인의 「오욕」이나, 신동엽 시인의 「금강」 등 몇몇 시들이 일본에 있는 우리에게도 번역되어 소개되기 시작했어요. 그 동안 조선의 시를 떠올리면 너무나 서정적인 시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었는데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번역되지 않은 시를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언젠가는 우리말로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단순히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만으로는 조금 부족한데요. 시인이 계몽주의적으로 정치적인 자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인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침묵하라고 해도 침묵하지 않는, 참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이죠. 시집이 팔리든 안 팔리든, 피해를 받든 안 받든 그런 문제를 떠나서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침묵을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 그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죠.

 

시인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의 눈물과 아우성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 그래야만 하는 이들이 바로 시인이고, 그것이 시가 가지고 있는 힘인 것이다. 이어서 『시의 힘』을 우리말로 번역한 서은혜 교수가 나와, 이번 책의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이 갖고 있는 차이점과 번역하면서 느낀 생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그는 『시의 힘』한국어판에 붙은 부제가 달라진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어판의 부제는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이다.

 

서은혜: 중요한 세 종류의 글이 한국어 판에 들어갔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시인 사이토 미쓰구의 시를 소개한 「의문형의 희망」이라는 글과, 「패트리어티즘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글, 그리고 여류시인 이시가키 린의 시가 담긴 「픽션화된 생명」입니다. 이렇게 세 개의 글이 들어감과 동시에 세월호 참사,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과연 문학이, 시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서경식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는 것처럼 시가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저항의 몸부림이라면,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시라는 것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제가 한국판에 붙게 되었습니다.

 

김응교: 책에 ‘동심원의 패러독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해의 중심부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피해의 진실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고, 거리가 가까운 이들은 고통스러운 진실에서 눈을 돌리게 된다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이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경식: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고 나서 몇 개월 후, 한국에서 글을 하나 써달라는 청탁이 왔어요. 그래서 그 당시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동심원의 패러독스가 생각났어요.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무시한 채 사람들이 왜 사고를 정지하고, 새빨간 거짓말에 매달리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후쿠시마는 도쿄에서 200k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어요. 후쿠시마가 우리와 상관이 없을 리가 없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려는 것입니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완전히 관리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일본 사람들 대다수가 알고 있어요. 그런데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지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합니까. 지금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고,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피해의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일수록 피해의 진실에 대해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피해의 진원지와 가까운 이들은 용기를 내 가혹한 진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서은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고 나서, 제가 서경식 선생님께 큐슈나 오키나와 정도로 피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근데 선생님은 도쿄를 떠나기는커녕 후쿠시마로 가셨어요. 방금 동심원의 패러독스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선생님처럼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진원지로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경식: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증언자이니까 꼭 직접 가서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보고 나서 나의 말로 증언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장소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해요. 그런데 과연 정말로 안전할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김응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아픔이 있는 진원지에서 도망가는 원심력 있는 사회가 아니라, 그곳으로 찾아가는 구심력 많은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날 함께 대담을 나눈 김응교 교수는 대담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책은 표지만 보고 읽지 않는 책이 있고, 어떤 책은 한 번 읽고 나서 또 보고 싶지는 않은 책도 있습니다. 이 책은 이번 대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빨리 읽어야 했지만, 아마 제가 원래대로 읽었다면 두 달 정도 걸렸을 것 같아요. 눈물이 나고 억장이 무너져서 빨리 읽지 못하는 책. 그런 책, 그런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북 콘서트에 참석한 독자들이 사전에 서경식 교수에게 질문한 것들 중 몇 가지를 추려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선정된 질문들은 다음과 같았다. ‘아우슈비츠에도 신이 존재했을까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 중 관심 있게 본 것이 있다면?’, ‘독재정권에 두 형을 잃은 아픔이 있으신데, 죽음과 같은 그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견디는지?’. 이 세 개의 질문들은 결국 우리가 아픔, 실패, 좌절 등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가장 무거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네요. 세 질문들은 결국 아우슈비츠에 신이 있냐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죠. 죽음은 우리가 지성만으로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입니다. 모든 사회과학자들도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힘, 우리의 지성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믿으려면 죽음에 대해서 신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알아야 해요. 그래야 삶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죠. 죽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죽었는지 가능한 한 제가 상상해보려고 해요.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죽은 자와 대화하는 것이 제 자신의 존재, 인간이라는 것을 인간답게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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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서경식 저/서은혜 역 | 현암사
『시의 힘』은 그의 첫 문학 에세이이자, 시대의 격류와 그 흐름에 휘말린 개인사를 아우르는 ‘언어’에 관한 비평집이다. 제목은 ‘시의 힘’이지만 그의 사유는 ‘시’와 ‘문학’을 넘어서서 ‘언어’의 바다에 닿는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습득하기 시작하는 ‘말’과 학습을 통해 배우는 ‘글’이 어떻게 개인의 사상을 구축하는지, ‘모어’와 ‘모국어’의 틈새에 갇힌 디아스포라의 외로움은 이해받을 수 있는지, ‘시’와 ‘문학’이 주는 힘은 무엇이며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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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느낀 우리의 노동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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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의 저자 정진아에게 호주는 ‘사건’이었다. 나쁜 의미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생에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사건 말이다. 진짜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전과 후가 달라져야 한다. 존재론적 단절의 계기. 어떤 일을 겪고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됐을 때 그 일은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건을 겪고 사람은 달라진다.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 좋고 나쁨을 떠나, 되돌릴 수 없음을 받아들일 때 사람은 반뼘이라도 성장한다. 사건에 대처하는 태도와 자세가 중요한 이유다.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의해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정진아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사건을 겪었다. 사건을 겪기 전 신학도였던 정진아는 사건 이후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 법조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호주에서 없는 존재 취급당하고 법의 틀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존재로 살았기에, 그는 힘없는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법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전과 후가 바뀌었다.

 

“호주에 다녀온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해 마음 고생했던 일 등, 워킹 때 겪었던 부당함이 억울해서 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학교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던 내가 전공도 아닌 ‘법’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래서 왜 갑자기 전공을 바꾸었냐고 사람들이 물어 보면 나는 항상 호주 이야기를 한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법’의 보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호주는 알바와 대학 생활로 무기력해졌던 내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계기였다.”(16쪽)

 

좋은 이야기는 그것이 끝나도 삶 속에서 계속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정진아의 스물다섯 워킹홀리데이는 지금도 계속 되는 좋은 이야기다. 5년 전의 이야기는 그렇게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로 나왔고, 지난 7월 10일, 서울 대학로 책방 이음에서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정진아는 자주 웃었고,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 노동하는 자로서 불편부당하고 부정의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 책을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가이드 책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은 노동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누구나 노동하고 해야 하는 세상,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는 뜻이다.

 

 

워킹홀리데이, 환상은 없다!

 

책방 이음의 주인장은 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에 빠져서 눈과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한 까닭이다. 이날 만남의 시작은 책방 이음 주인장의 책 소감 발표부터 시작했다. 작가의 친구들을 비롯해 곧 호주로 떠날 커플, 영국 유학생, 다른 나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싶은 사람, 방학동안 책방 이음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안학교 ‘꽃피는학교’의 학생 등이 이날 정진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근래 책 낸 뒤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게 됐다. 말이 무섭더라. 내가 한 얘기를 지켜야 하고, 책임감 있게 해야 하고, 생각도 많아진다. 호주에 왜 갔니? 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이 책을 쓴 것은 내 경험이 사회의 증상이자 현상, 지표가 되기도 해서 다른 이와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밀려나서, 호주로 가게 된 것도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행기와 달리 좀 더 평범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워킹홀리데이. 한국에서 적지 않은 숫자가 이것을 위해 밖으로 나간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해당 국가에서 여행, 어학연수, 취업을 할 수 있는 비자로서 한국에서 4만 명이 이 비자를 발급받아서 나간다. 이 가운데 3만 3천명이 호주로, 나머지 7천 명이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등으로 나간다고 한다. 정진아가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2가지 이유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택했다. 특별한 사람이 엄청난 용기를 갖고 상황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책을 쓰고 나서 어른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던지더라. 집안이 크게 어려웠니?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20대를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는 시각 때문인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용돈벌이로 생각하고 부차적인 노동처럼 접근하기도 하더라. 나는 자체로서 내 생계를 책임지는 주체인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살짝 난감하기도 했다.”

 

책의 표지에는 낡은 운동화가 그려져 있다. 잘 보이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뉘는데, 다 의미가 있었다. 저자가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빤히 보이는 데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다뤄졌던 슬픈 경험. 살아있는데 살아있지 않구나,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구나.

 

“도시에서 내가 해야 했던,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주로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하는 일들 말이다.”(126쪽)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감정은 외로움, 슬픔과 함께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한 사회가 1등 시민과 2등 시민, 인정받는 시민과 인정받지 못하는 시민, 법과 제도 위에 있는 시민과 아래 있는 시민으로 나눠져 있다는 그런 생각. 일상에선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인종차별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시민권자와 외국인은 전혀 다른 정책의 적용을 받았다.

 

“나는 일을 했지만 호주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똑같은 일을 해도 (호주인보다) 금액이 적었다. 법의 보장을 받는다는 건 그 사회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권리를 침해받아도 이야기할 수 있으나 나는 그렇지 못한 경우였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신고하라는 말도 들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사회에서 혼자 튈 수도 없었다. 튀지 못하게 막는 암묵적 합의가 있더라. 그게 외로웠다. 도시에서 느낀 가장 강한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그는 도시에 있을 때 한인업소에서도 일을 했다. 좋지 않은 일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이 한국 사람이어서 생기는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쉬이 말하는 민족성과 상관없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여겼다. 어느 사회에나 그렇듯 아래로 갈수록 삶의 질이 나빠지고 이들을 예의 없이 막 대하는 그런 모습. 호주에 있는 중국인, 일본인 등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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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진아는 도시에서 일하다가 농장으로 옮겼다. 농장 생활이 도시 생활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계기도 있었다. 도시에서 일할 때 조사관이 나왔다. 노동 착취 등에 대해 선진국이니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부당한 노동 착취를 알리기 위한 준비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조사관들은 위생 검사만 할뿐 노동자에게 노동 여건이나 조건 등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 사람들이 가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노력하고 주장하면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음을 깨달았다. 고객과 친해지는 것과 무관하게 사회적 계급의 차이는 명확했다. 그래서 도시에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농장으로 가기로 했다. 많은 워킹홀리데이는 대박 친다며 농장으로 많이 간다. 도시에서 일하다가 울분이 쌓이면 절반은 한국으로, 나머지 절반은 농장으로 간다더라. 농장은 다 같이 일하니 도시의 외로운 삶과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다. 한국에서 예를 들면 새벽에 일하는 환경미화원 존재와 비슷하다. 일하는 것이 보이지 않도록 노동시간을 배치한다. 단순히 출퇴근 시간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같은 공간에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 사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러나 농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농장의 열쇠말은 ‘하청’이었다.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브로커에게 돈을 떼이고 하청 구조에 편입되듯 호주의 농장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하청에 하청을 주면서 사람을 싸게 부리는 구조가 있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됐다. 저자는 딸기농장과 토마토농장에서 일했다. 하청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토마토농장에서였다. 그런데도 아무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급 등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알량한 권력 등이 붙으면서 불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약자들끼리 서로 돕는 모습도 경험했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도 여러 방법으로 서로를 도왔다는 것. 모르는 사람인데, 진심의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정진아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치사하고 더럽고 멍청한 것도 사람이요, 따뜻하고 고맙고 영리한 것이 사람이었다. 그 모든 것이 사람이었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만 세상이었다. 날것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밥 못 먹고 쓰러져 죽을 것 같고, 여러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이런 일화도 있었다. 농장주가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다. 내가 신입 때 왕따를 당해서 네팔 사람들이 많은 토마토밭에 갔다가 농장주에게 틀켰다. 농장주는 네팔과 한국 부류를 나눠 경쟁을 시켰다. 약간 미묘하게 조건을 달리해서 서로 싸우게 만들었는데, 네팔 사람들 사이에 내가 끼어있으니 사람들 앞에서 내게 욕을 했다. 네팔 사람들은 내게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네팔 사람에게 껴서 멍청한 짓을 하느냐고 되레 타박을 하더라. 그때 한 대 맞은 기분이더라.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

 

그리고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도난 사건이 생겨서 농장에 경찰이 출동했다. 그때 농장주가 자신들, 즉 워킹홀리데이 노동자들을 숨겼다. 그 순간, 정진아는 깨달았다. 나는 여기서 살고 있는데 살아 있는 게 아니구나. 멈춤, 한국에 돌아왔다.

 

“경찰들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호주가 우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사람들을,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더 이상 호주에 머물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호주에서 일을 하고 집을 구하고 마치 그 나라 사람처럼 지냈지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나는 이곳 사람이 될 수 없었다.”(219쪽)

 

 

한국 역시 ‘워킹홀리데이 사회’

 

한국에 돌아왔지만 정진아는 3개월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열패감 때문이었다. 능력이 부족해서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책을 쓰게 됐고, 워킹홀리데이에 다녀온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면에서 맞장구를 치다가도 이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고 제도적 문제점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자기가 했던 이야기는 넣지 말아달라며 표정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거의 거절당했다.

 

“그런 것이 나의 실패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영어도 늘고, 취업도 하고, 외국에 대한 두려움도 털었다며 인터뷰를 거부하더라. 그래서 책에는 인터뷰를 싣지 못했다. 외롭다는 감정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정말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곳에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살아남은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거듭 제도의 문제를 강조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야만 바뀐다는 것. 창피함을 무릅쓰고 증언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것을 하기로 했다.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안 가는 사람도 이 책을 재밌게 읽으면 좋겠다. 이 경험이 내게 준 큰 전환점이 있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정말 시야가 넓어졌다. 삶은 다양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못 보던 세계가 나와 함께 할 수 있고, 내가 상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고, 그들과 더불어서 살아야 한다는 것. 호주 사람들도 이런 상황을 모른다. 눈에 보여도 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 마트에 갈 때마다 나는 슬프다. 아스파라거스 캐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피망을 보면 눈물이 나고, 공산품을 봐도 슬프다. 얼마나 슬프게 만들었을까 충분히 떠오르는 거지. 호주가 외국이어서 특별한 상황인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누군가 청소를 하고 노동을 한다. 그런 시선의 전환이 일어나면 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2차 대전 아우슈비츠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프리모 레비는 살았을 때 이런 말을 남겼다. “독일인들이 아우슈비츠를 몰랐을까. 눈을 가리고 알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에게 ‘워킹홀리데이 사회’가 아닐까. 그들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모른 척, 불편부당하고 부정의하게 대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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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 정진아 저 | 후마니타스
언어 연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때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 호주가 내게 다가왔다. 저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돈도 벌면서, 영어도 배우고, 여행도 다닐 수 있다니. 듣기만 해도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떠났다. 그리고 나처럼 매년 3만여 명이 호주로 떠난다. 이 글은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통해 호주에 갔으며, 여행자와 이주 노동자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라는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살았던 나, 20대 중반의 청년이 기록한 일종의 참여 관찰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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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김진혁 PD와 '언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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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뉴스가 ‘진실’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사람들은 바빠졌다. 어느 매체를 봐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저 뉴스가 제대로 된 프레임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분석해야 한다. 같은 뉴스를 다룬 여러 매체를 두루 살피는 것까지 하다보면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자조하게 된다.


그렇게 시민은 뉴스를 선택하고, 개별 사안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확립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공부도 이런 공부가 없다. 뉴스보다 지인들이 전달하는 카톡 메시지를 더 신뢰하게 되기까지 우리 언론은 참, 멀리도 왔다. “죄송합니다”라는 최승호PD의 말 역시 이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매 순간 프레임, 어젠다, 이슈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선택된 범주 그러니까 이 전쟁에서 이긴 범주를 제시한 이들이 세상을 움직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는,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범주를 끊임없이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뿐이다.(14쪽)

 

지난 7월 8일, 양천도서관에서 진행된 『5분』출간 기념 강연회의 주인공은 <뉴스타파>의 최승호PD와 김진혁PD였다. MBC <PD수첩>의 책임자로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 이명박 정권 대운하 등을 파헤치며 논란의 중심에서 뚝심 있는 언론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최승호PD는 MBC에서 해직당한 이후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논쟁적인 이슈를 다루는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뉴스타파>에서의 일을 만족한다는 그는 무엇보다 탐사 저널의 ‘정확성’을 강조했다. 또한 현재 우리 언론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김진혁PD는 EBS 퇴사 후 당시 <뉴스타파>에 있던 이근행PD의 제안으로 합류해 <5분>을 제작하고 있다. 생각을 깨는 책을 좋아한다는 그답게 자신의 책 『5분』도 독자들의 생각에 균열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진혁PD. 그는 현재 해직 언론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대담 형태로 진행된 이날 강연은 참석자들의 질문 공세로 이어졌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진행된 이야기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 4대강, 탈북자, 세월호에서 메르스까지 다양한 사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진혁PD의 <5분>을 묶은 책 『5분』에서 가장 먼저 다룬 ‘에드워드 머로(Edward Murrow)’의 영상을 감상하는 것으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김진혁PD가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는데, 바로 ‘의제’다.
(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dvDbB2s7LQI)

 

진보적인 태도와 다른 견해, 학문적 이론까지 종북으로 수렴되는 세태에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유달리 부상했던 종북 프레임이 2013년 대한민국을 흔든 모든 사건에 작동하는 괴력을 발휘했다”면서 “최근의 종북몰이는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등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고 경계했다.(32쪽)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


어떻게 <뉴스타파>와 인연을 맺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최승호PD는 “<뉴스타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을 일생일대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철 사장이라는 분이 저를 2012년에 해고를 하셨어요. 그래서 이런 기회를 주셨습니다.”라고 해 좌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해고 전 이미 인사 조치로 MBC <PD수첩>에서 쫓겨나 있던 최승호PD는 때문에 “저로서는 다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었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해고 후 <뉴스타파>를 만나게 되고 앵커로 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단박에 수락함으로써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


김진혁PD는“EBS를 그만두고 나서 <지식채널e> 형태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고, 격주로 <5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길게 갈 것이라는 예상은 안 했는데 책까지 나오고 보니까 참 신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뉴스타파>에서 다루는 아이템 선정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아이템은 무엇인지 둘에게 물었다.


김진혁:방금 보셨던 에드워드 머로 편이 가장 애착이 가는데요. 아무래도 언론인의 입장에서 에드워드 머로 같은 언론인이 과거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뭔가 뭉클했어요. 자부심이 느껴지고요. 멋있는 선배가 있으면 든든한 느낌이 있잖아요. 다른 아이템도 열심히 만들었지만 감정이입이 좀 더 많이 됐던 아이템입니다.

 

최승호:역시 가장 애착이 많이 남는다고 할 만한 것은 간첩조작사건입니다. 탐사저널리스트로 오랫동안 취재를 해왔지만 이렇게 장기적으로 한 사안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현재 굉장히 큰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 중에 있습니다. 올 겨울이나 내년 초 정도 되면 아시게 될 겁니다. 조작이라는 게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어왔던 것이거든요. 완전히 뿌리를 뽑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서로의 아이템 중에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 있었을까?


김진혁:유우성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물론 조작이라는 것을 국가 권력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당연한 점도 있지만 한 개인의 소중한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해 저는 조금 더 충격을 받았었죠. 이런 사건을 통해 그분이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요. 그런 과정에 <뉴스타파>가 있었다는 것, 탐사저널리즘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껴서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최승호:고맙습니다.(웃음) 김진혁PD가 만든 것은 다 좋은데요. 성찰을 주는 부분이 많았어요. 아주 좋은 책 한 권을 잘 요약해서 머릿속에 집어넣어주는 것 같아요. ‘부동산 불패 신화와 아이 낳지 않는 나라’도 좋았어요. 스웨덴과 일본이 똑같이 부동산 문제가 심각했는데 그걸 어떤 방식으로 푸는가 차이를 짚었어요. 스웨덴은 아이 키우는 것에 투자를 하니까 아이가 자라서 나중에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그 결과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고 해요. 그런 내용을 쉽게 설명해주었어요. 최근에는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것이었고요.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오던 날이었는데 그날, 결국은 전염병을 치료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어야 치료가 된다는 주제를 다뤘어요. 마치 예언한 것 같았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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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PD에게 묻다


<지식채널e>를 연출하게 된 계기와 <5분>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해주세요.


김진혁:<지식채널e>가 개인적인 기획으로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EBS가 프로그램 사이에 임팩트 있는 영상을 내보내서 시청자를 붙잡아보자고 한 의도가 있었죠. 지식이란 것을 토대로 새로운 포맷을 해보자고 해서 출발하게 된 거고요. 구체적인 연출, 내용, 구체적인 포맷팅은 제가 했습니다. <5분>은 엄밀하게 말하면 <지식채널e>의 연장선상에 있고요. 큰 차이는 없지만 다만 <지식채널e>는 아이템 범주가 굉장히 넓어요. SF도 있고, 심지어는 ‘호랑이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 이런 것도 있어요. <5분>의 카테고리는 주로 사회, 넓어야 휴먼 정도로 좁혀져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최승호PD가 언급했지만 ‘전염병에 정치를 처방한 의학자’편은 마치 메르스를 예언한 듯이 내보냈는데요. 어떻게 아이템을 만들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김진혁: 계시를 받아서 한 건 절대 아니고요.(웃음) 운이죠. 우연히 맞은 건데요. 제가 올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의제가 ‘정치’라고 하는 개념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이 개념이 굉장히 좁게 해석이 되고 있고, 정치인이 하는 행위만을 정치라고 생각하죠. 심지어는 정치인들조차도 ‘민생이 이렇게 급한데 정치놀음을 하느냐’라고 하는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어요. 정치인들도 정치를 못하게 해요. 그래서 아무도 정치를 안 해요. 대통령만 정치를 하죠. 이 왜곡된 개념을 제대로 잡아보고 싶어서 ‘모든 게 정치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쪽으로 기획을 진행했죠. 그러다 작가 한 분이 이 내용을 제안해서 만들 게 된 거예요.

 

<5분>이라는 짧은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가 갖는 긴 호흡에 비해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김진혁: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전형성 중 하나가 몰입도 측면에서 드라마나 예능만큼 친절하지 않다는 부분이 있어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친절하게 할수록 시청자가 스스로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볼 수 있는 것이 제한될 단점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다큐가 약간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5분에서 10분만 견디면 그 다음부터는 기존의 예능, 드라마처럼 압박하는 것과는 다른 대단히 풍성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5분, 10분을 이 바쁜 현대인들이 어떻게 참습니까. 그렇다면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기존의 다큐 장점을 살려보자, 해서 존재하는 것이 미니다큐입니다. 몰입도, 적은 시간 투자란 부분이 최대 장점인 것 같습니다.

 

해직언론을 위한 다큐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언제 개봉하게 되는지도 말씀해주세요.


김진혁:이것도 제가 기획해서 진행하는 건 아니고요.(웃음) 해직 언론인들이 이명박 정권 이후 YTN, MBC 등의 방송사를 주축으로 많이 발생했고요. 그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잊히는 부분도 있는데요. 이들의 존재는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우리에게 공정한 언론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이 있잖아요. 제가 중점적으로 표현해서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1차적으로 현직 언론인들의 고민, 애환이고요. 단순히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진정한 피해자는 이분들이 아니라 이분들이 없는 언론을 바라봐야 하는 국민들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겁니다. 이분들이 원래 자리에 계셨더라면 세월호 당시 그런 오보가 있었을까요? 물론 이분들이 전지전능하지는 않고, 실수를 할 수도 있죠. 그래도 원래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보들은 훨씬 줄었을 거고 ‘기레기’라는 말도 훨씬 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 의제를 던져보고 싶은 게 제 욕심입니다.

 

 

우리 언론에 대한 이야기들


두 분 모두 언론에 대해 많은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진혁:언론에게는 정확하게 비판하고, 꼬집고, 감춰져 있는 것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소위 감시견이라고 하는 역할과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우리가 어떤 범주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답할 역할이 있는 정치적인 리더나 경제적인 분야의 리더들이 그런 일을 안 하고 있죠. 그들에게 왜 안 하냐, 나쁘다 얘기하는 것보다는 언론의 역할을 한정짓지 말고 의제설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 차원에서 <5분>에서도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라고 하는 스웨덴의 과거 재정부 장관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런 사람이 의제설정을 하는 게 맞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언론이 할 수 있는 쪽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터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승호: 현재 언론이 너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한 마음이죠. 이번 메르스 사태 때도 비슷한 행태를 너무 많이 보여준 것 같아요. 세월호 때는 아주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오보를 냈죠. 메르스 때는 감염 경로 같은 것들을 정부가 밝히지 않고 계속 감췄잖아요. 어떻게 보면 메르스가 막 확산되는 상태에서 국민들은 어디로 가면 메르스에 감염되는가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한 채로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정부가 발표하지 않는다 해서 언론 역시 그대로 온순하게 받아들이면서 가만히 있었어요. 좀 선진적인 언론이 있는 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가진 않았을 겁니다. 물론 정부가 이런 식의 비밀주의를 선택하지도 않았겠죠. 이런 나쁜 언론들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많은 시민들이 자구책을 강구했어요. SNS로 정보가 다 퍼졌잖아요. 일반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각자 찾아 헤매면서 판단해야 했던 게 참 웃긴 상황이죠. 죄송합니다. 저희라도 더 잘하겠습니다.(웃음)

 

<뉴스타파>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또한 앞으로는 TV나 방송국이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요. 이에 대한 의견도 궁금합니다.


김진혁: 모든 매체는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갖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과 공유한다는 안도감 형성을 통해 느끼는 만족감도 크거든요. 현재 <뉴스타파>가 그런 측면에 있어서는 좀 더 광범위하게 대중에게 전파를 쏘는 매체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알듯 앞으로 언론은 인터넷, 독립 언론 등으로 분리가 될 것이거든요. 결국 방송이 지금 상태로 유지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형태로 가게 된다면 <뉴스타파> 같은 매체는 훨씬 유리한 지점을 형성하게 되어 있죠. 콘텐츠의 질을 꾸준히 개발하고, 그 틈에 의외의 대박이 들어간다면 <뉴스타파>에게 분명히 가능성은 있고요. 이 사실을 기존 거대 방송사들이 모르지 않기 때문에 경쟁하는 데 있어 유통과 콘텐츠 질이라는 면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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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김진혁 저/뉴스타파 기획 | 문학동네
『5분』은 [지식채널ⓔ]를 기획하고 연출한 김진혁 피디가 EBS를 퇴사한 후,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통해 선보인 [김진혁의 5minutes]를 엮은 책이다. ‘감성지식’이라는 방송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5분’ 간 전해지는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을 시청자들에게 제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사회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도망갈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던, 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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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책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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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도가 사라진 시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이를 대신한다지만 과거와 수능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때까지 갈고닦은 자신의 역량을 검증받는다는 점에서 억지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으나 중요한 차이는 ‘시대’에 대한 물음의 여부다. 과거가 자신이 갈고닦은 학문과 오랫동안 수양과 인격과 정신을 사회에 펼치기 위해 필요한 관문이었다면, 수능은 속된 말로 학벌을 결정하기 위한 국영수 점수 경쟁이다. 인격과 정신도 없고, 시대에 대한 물음도 없다. 과거제는 특히 마지막 관문으로 ‘책문’이 있었는데, 이는 시대가 출제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최종 심급이었다. 곧 당대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에 빗대어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대해 응시자가 자기의 역사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총망라하여 해법을 제출하는 것.

 

“더러 책문을 대입 논술시험에 견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입 논술시험과 책문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대입 논술시험은 글자 그대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지금 논술을 공부하는 목적은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과 분석의 능력을 길러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부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의 하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483쪽)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시대의 물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아야 할까. 300명 이상을 태운 배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몰했으나 최고 통치자는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자 묵묵부답으로 일삼고, 이 땅을 공포로 몰아넣는 바이러스가 돌아도 누구도 손쓰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교과서에만 있는 박제된 단어가 됐고,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생존을 책임지는 일이 정치라면 이 땅에는 정치가 없다.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려고 하지만 백성의 실정이 위로 통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백성을 보호한다지만 정치의 혜택이 아래에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성과에 만족하여서 먼 장래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일을 맡은 사람들은 한때의 이익에 연연하여서 장기 계획을 소홀히 합니다. 위에서 직무를 게을리하면 아래에서는 생업을 잃고, 위에서 혜택을 베풀지 못하면 아래에서는 분노가 쌓입니다.”

 

광해군 3년 별시문과 최종시험에서 임숙영이 제출한 대책이다. 놀랍게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400년 전에 제출한 과거시험 답안이 지금의 현실을 다룬 듯한 기시감이라니. 그래서 고전저술가 김태완은 다시 ‘책문’을 꺼내들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세상을 향한 출사표이자 당대의 대책이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불통과 모순의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원칙 있는 해법으로까지 읽힐 수 있다는 데에 착안했다. 2004년 첫 출간했었던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는 다시 세상과 만났다. 지난 7월 15일, 서울 중림동 중림사회복지관에서 김태완 저자는 ‘위기의 시대에 묻는 책문정신’이라는 주제로 독자들과 만났다. 

 

“책문은 시대의 물음이다. 시대가 출제한 시험이다. 곧 당대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에 빗대어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대해 응시자가 자기의 역사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총망라하여 해법을 제출한다. 그리하여 책문이란 권력을 갖고 권력을 행사할 사람의 권력에 대한 이념과 철학, 권력 운용의 역량과 비전을 묻는 시험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를 이끌어간 수많은 문신관료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적어도 관료로 출사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때는 관료로서 자기가 처한 시대와 역사에 대한 성찰, 학자관료로서 세계를 보는 자기의 세계관을 책문을 저술함으로써 치열하게 점검하고 성찰했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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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정신, 과거에나 지금 모두 필요한 무엇

 

그는 기원전 206년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세운 중국의 한(漢)나라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나라는 지금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한 나라이다. 앞서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나라가 중국 대륙에 뿌린 영향력이 워낙 컸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중국인들에게 한나라가 들어섰던 것 자체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한나라의 시조 유방은 그야말로 미천한 신분의 잡놈이었기 때문이다.

 

“유방의 방자는 ‘나라 방(邦)’자다. 그는 사실 이름도 자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냥 불렸던 이름이 ‘유씨네 막둥이’로 수표교 바닥에서 굴러먹던 사람이다. 반면 유방과 싸운 항우는 뼈대 있는 가문의 귀족이었다.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항우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유방은 그야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다. 전통적인 귀족 가문이 아닌 듣보잡이 왕이 된 거지. 당시 사람들이 왕을 존경할 수 있었겠나?”

 

그런 마당에 유방이 황제가 되자, 골치가 아파졌다. 유방이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놈이자 듣보잡을 필연적으로 황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타고 난 것으로 포장해야 했다. 즉, 정통성을 만들어야 했다.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이 ‘현량대책(賢良對策)’이었다. 그것이 책문의 출발점이었던 것. 백성들에게 하늘이 내린 천자가 황제가 됐다는 논리를 제공해야 했다.

 

‘어떻게 통치하면 좋겠는가’를 주제로 지금으로 보면 장문의 논술을 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모든 유학자들의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동중서가 그 논리를 제공했다. 『춘추』를 전공으로 했던 동중서는 세상을 양과 음, 위와 아래, 정통과 이단 등으로 구분하며 위계질서를 세웠다. 그렇게 해야 세상이 바로 돌아간다고 봤던 것. 특히 그는 천인, 하늘과 사람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천인상응(天人相應)’을 내세웠다.

 

“여기서 천(天)은 자연이라는 뜻이고, 인(人)은 인간 사회를 총칭하는 말이다. 사람의 살림살이는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대책을 써서 동중서는 장원을 했고, 한나라의 통치 기반을 만들었다.”

 

저자는 왕의 이름을 붙일 때 조(祖)와 종(宗)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조(祖)는 공적이 많은 사람에게, 종(宗)은 덕이 많은 임금에게 붙였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조선시대 가장 공적이 큰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세조, 영조, 순조 등은 ‘조’가 ‘종’보다 더 끗발이 높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후대 왕들은 조를 붙였다. 원칙적으로 중국을 보면 조는 한 왕에게만 붙고, 나머지는 종을 붙인다. 중국에서는 한고조라고 부르고 그 이외의 왕에게는 한무제, 한문제 등으로 불렀다. 당은 고종, 현종 등으로 불렀다. 규칙은 없으나 원칙적으로 시조는 고조, 태조라고 붙이고 나머지는 효O황제 등으로 붙였는데 일부를 생략해서 ‘O제’ 등으로 불렀다.”

 

저자는 책문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중국에서 과거 제도는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나 수당 시대 때 생겨났고, 송나라 때 정착됐다. 명실상부한 권력집중화, 왕권집중화가 이뤄졌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과거 제도이자 책문이었다. 책문은 글짓기, 상식, 교양 등을 점검한 뒤 최종심에서 자질 평가를 위해 낸 시험이었다. 한 사회가 직면한 현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를 묻고 그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내놓은 인재를 뽑았다. 따라서 책문을 보면 당대의 문제와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책문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를 볼 수 있다. 인간은 생물이 가진 모든 문제를 안고 있다. 인간 사회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한 문제가 비슷하게 반복된다. 조선 책문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이었다. 천리는 보편적인 욕망이고, 인욕은 나만의 구체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왕들이 인욕에 몰입하기 쉽다. 행정을 맡은 사람이 어떻게 인욕을 억누르고 천리를 확보하게 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했다. 늘 주입하고 각성하고 자각하고 코치를 받아야만 습관이 된다. 천리를 지향하고 인욕을 억누르는, 그것이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지향이었다. 조선의 책문을 보면 지금도 반복되는 질문임을 알 수 있다.”

 

“책문은 젊고 싱싱한 넋을 가진 지식인이 시대의 부름에 대답하는 주체적 결단의 절규이다. 그것은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대의 부조리에 반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려는 시대의식의 투영이었다.”(4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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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김태완 저 | 현자의마을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책문의 정신’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공자가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 노릇 할 수 있다 하였으니 조선시대의 옛것인 책문을 어떻게 오늘날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 읽어낼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책문을 읽어보면 책제나 대책이나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현안과 문제의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는지 실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공자의 온고이지신이라는 설교는 여전히 우리에게 천둥 같은 울림을 울리고 있다. 책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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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고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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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가와무라 겐키)는 제목과 같은 이야기를 풀면서 우리 주변에 고양이가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결국 고양이는 자기보다 먼저 죽고, 그 죽음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슬픔은 불가피한 것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도 인간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다.(중략) 인간은 자기는 알 길 없는 자신의 모습, 자신의 미래, 자신의 죽음을 알기 위해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건 아닐까? 어머니의 말이 옳다. 고양이가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고양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다면 이날의 모든 웃음소리와 탄성도 없었을 것이다. 귀여워, 우와, 와 같은 탄성은 물론 하하 호호 까르르, 모든 웃음을 짓게 만든 것도 고양이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갖가지 모습은 모든 넋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지난 7월 21일, 서울 합정동의 빨간책방은 고양이 덕분에 행복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고양이가 없었다면 ‘고양이 시인’ 혹은 ‘고양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했을,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의 이용한 저자가 인도하는 고양이 세계에 빠졌다. 이 책은 이용한 시인의 여섯 번째 고양이 관련 책으로 산골에서 가족과 함께 열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담았다. 앞선 고양이 책에서 안쓰러운 길고양이 사진만 담았다면 이번에는 평화로운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용한에게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이용한 시인의 첫 번째 고양이 책이었던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고양시에 살면서 만난 길고양이를 기록한 책이었다. 그의 첫 고양이었던 희봉이에 대한 추억을 언급한 뒤 결혼과 양평으로 이사한 뒤 양평에서 만난 바람이라는 고양이에 대해 말했다

 

“바람이는 그 동네 왕초고양이였다. 우리집 동정을 늘 살피고 마루에 올라와서는 당당하게 밥을 요구했다. 바람이는 잊을 수 없는 고양이다.<고양이 춤>이라는 다큐영화에 보면 바람이는 기생충에 감염돼 병원까지 갔지만 끝내 고양이별로 떠났다. 바람이 이후 두 번째 만난 고양이가 달타냥이다. 삼총사의 달타냥과는 상관없다. 아내와 함께 매일 산책하던 달밤에 담을 타는 걸 봤고, 단순히 그 이유로 달타냥이 됐다(웃음).” 


『명랑하라 고양이』『나쁜 고양이는 없다』는 첫 고양이 책에 이은 작품이었다. 이용한 시인에겐 아들도 태어났다. 아들은 덕분에 태어나면서부터 고양이가 아주 익숙한 존재가 됐다. 아들은 달타냥, 바람이, 희봉이, 봉달이, 덩달이 등의 고양이들과 만났다. 그 가운데 시인은 봉달이라는 고양이를 가장 좋아했다. 눈이 오면 고양이는 꼼짝하지 않는데, 봉달이는 달랐다. 드물게 눈을 즐길 줄 아는 고양이였다. 눈이 오면 개처럼 뛰어다니고 눈밭에서 수영하듯 즐겼다. 형제인 덩달이도 함께 눈을 즐겼다. 눈밭에서 봉달이와 경주도 하고 장난을 쳤다. 

 

시인은 고양이가 두 발로 서서 멀뚱히 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고양이가 가장 귀엽게 느껴질 때라고 설명했다. 허핑턴포스트 미국판과 일본판에 무단으로 실렸던 사진도 보여줬다. 앙증맞은 고양이 모습을 담은 사진은 무단으로라도 쓰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듯했다. 전원주택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듯한, 잡초를 뽑아주는 듯한 포즈의 고양이들도 등장했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도 보여준다. 텃밭 배수구에 들어간 새끼 고양이의 모습. 아, 고양이는 도시든 시골이든 늘 우리와 함께 있구나. 고양이 없는 세상, 상상할 수도 없구나.
 
“하수구 속에 들어간 고양이도 사진으로 찍었다. 하수구 속의 고양이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3개월 정도 진행했었다. 그런데 마을 하천 정비 사업으로 공사 장비가 들어오면서 하수구에 살던 고양이가 떠나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꽃다지가 핀 하수구 사이로 얼굴을 내민 고양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용한 시인의 앞선 고양이 책 세 권은, 길고양이를 기록한 책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길고양이를 기록하지 못했다. 고양이 급식소에 한 할머니가 쥐약을 자꾸 넣어서 고양이가 희생당했다. 고양이에게 밥 줄 의욕도 없어지고 자신 때문에 고양이가 희생당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길고양이에 대한 기록을 접기로 했다. 대신 고양이 여행을 떠났다. 고양이 작가라고 불리기 전에 여행 작가였던 그였기에 고양이와 여행을 접목했다. 고양이 여행의 시작.

 

 

이용한에게 고양이 여행

 

『흐리고 가끔 고양이』는 제주 가파도에서 울릉도까지, 전남 구례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섬과 뭍, 사찰과 공원, 도심과 오지, 수몰 마을과 철거촌, 마을과 거리에서 만난 전국 60여 곳 고양이들의 삶의 현장을 담은 고양이 여행의 기록이었다. 고양이 여행자에게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고양이는 요물이니 없애야 한다는 미신 혹은 편견이었다.

 

그가 발 디딘 거문도가 그랬었다. 섬에 있던 많은 고양이들이 학살당했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자라면 어업에 피해를 입는다는 민원 때문에 섬 고양이 전체가 살처분 당할 뻔도 했다. 동물보호협회 등의 동물단체들이 들고 일어섰고, 거문도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대신 살처분은 하지 말아달라는 협상을 했다. 많은 거문도 주민들은 그렇게 고양이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만 보이면 죽이려고 드는 주민도 있었다.

 

“거문도에는 어장을 관리하는 고양이가 있다. 그렇게 고양이 도움을 받으면서도 살처분을 해대기도 했다. 어장을 관리하는 고양이도 육지에 오르지 못한다. 그것도 고양이 학대다. 어장에 먹을 것이 뭐가 있겠나. 태풍이 오거나 물고기가 뛰어오르면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나, 그 자체로 학대라고 봐야 한다.”

 

반면 욕지도에는 시인 스스로 ‘고양이 마을’이라고 불렀던 마을도 있다. 책에 이곳을 소개하고 자기 혼자 고양이 마을로 부르겠다고 썼었는데, TV <동물농장>에서 이곳을 고양이 마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제주도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하얀 고양이들에 대한 사진도 탄성을 자아냈다. 양떼구름이라고 불러도 좋을 하얀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사진. 동네의 식당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스무 마리 정도가 하얀 털로 쌓여 있었다고.

 

그는 그렇게 국내의 고양이 여행을 2년 반 정도 다녔다. 그 사이사이 외국에 나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고양이 천국 모로코와 터키, 무심한 듯 느긋하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일본의 고양이 섬, 대만, 인도, 라오스 등 고양이라서 행복하고 사람들은 고양이가 있어 행복한 6개국 30여 곳의 고양이를 기록했다. 그가 가장 먼저 보여준 사진은 모로코였다.

 

도시 전체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모로코의 곳곳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사람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풍경은 일상다반사였다. 고양이를 특별히 더 예뻐한 것은 아니나 그 누구도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학대하지 않는 곳이 모로코였다.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길고양이는 사람을 보면 도망치기 바쁜데, 이곳 고양이는 자기 행동을 하면서 시크했다. 고양이가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되레 무시하는 정도?(웃음) 모로코 고양이의 주식은 빵이고 간식이 우유였다. 사료를 주면 좋지만 모로코는 가난한 나라고 사료를 주지 못한다. 대신 빵이 싸다. 가난한 사람도 누구나 빵을 사먹을 수 있는 나라가 모로코인데, 길에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당연한 풍경이었다. 고양이가 있는 자리는 사람들이 피해 앉을 정도다. 고양이와 장난치는 풍경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터키도 고양이 천국이었다. 모로코가 관리하지 않는 천국이라면 터키는 정부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할 정도였다. 터키의 고양이들은 외양도 깔끔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케밥을 들고 공원에 가서 고양이를 자연스레 만났다.

 

일본 역시 고양이에게 우호적인 나라다. 네코지마(고양이 섬)라 불리는 섬만 열 개가 넘고 정기적으로 배를 타고 섬에 들어와 밥을 주는 사람이 많은 곳이 일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시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섬을 돌아다녔는데, 우리나라의 섬은 육지보다 훨씬 더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많은 섬은 고양이를 보면 해코지 하려고 하나 일본의 섬은 고양이에게 해코지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아이노시마라는 고양이 섬은 고쿠라 지역과 후쿠오카 지역 두 개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후쿠오카가 유명하나 고쿠라의 아이노시마가 일본에선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만에도 허우통이라는 고양이 마을이 있다. 원래 탄광촌이었다가 쇠락해가는 마을이었다. 주민들이 절반 이상 떠나고 집이 비었다. 주민 중 한 명이 마을에 고양이가 많으니 ‘고양이 마을’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년 후에 이른바 대박이 났다. 대만의 유명한 블로거가 이 마을을 소개한 덕에 하루 평균 200~300명이 오던 마을은 2000~3000명이 오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쇠락한 탄광촌이 되면서 무너졌던 지역경제는 고양이 덕분에 불같이 살아났다. 허우통은 그렇게 특이한 모델이다.

 

시인은 인도 캘거리도 찾았다. 빈민촌인 이 마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먹을 것도 충분히 챙겨먹지 못함에도 고양이를 먹이기 위해 닭 내장과 물고기 내장을 얻어 와서 고양이를 먹이고 있었다. 시인은 그 장면을 찍어왔다. 그리고 그는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먹이는 측은지심을 생각했다고 전했다. 한국 인민들은 여기 인도의 인민들보다 훨씬 풍족한데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왜 좋지 않을까 아쉬웠다. 가난한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는 장면의 사진은 그런 아쉬움을 더욱 진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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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고양이와의 공존모델을 찾아서 

 

“8년 전 고양이 영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가 우리와 함께 이곳에 살고 있었구나. 그전엔 한 번도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고양이를 몰랐으므로 그들과의 공존을 생각할 기회조차 없었다. 고양이를 만나서 나는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다.”(4쪽)

 

고양이 여행 시리즈에 이어 시인이 여섯 번째로 내놓은 고양이 책이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이다. 이 책은 열여섯 마리 고양이의 좌충우돌 알콩달콩, 동화 같고 때로 만화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슬프거나 불편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시인의 설명이다. 시작은 사소했다. 

 

“한 라이더가 아기고양이 세 마리를 구조해서 역장에게 맡기려던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데리고 올 때만해도 입양시킬 생각이었으나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분유를 먹어야 할 정도였다. 한 달 정도 분유를 먹여서 키웠다. 살구, 앵두, 오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오디, 앵두, 살구를 키우면서 들었던 생각은 대만의 고양이마을처럼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모델을 작게나마 구현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세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물론 집에는 이미 다섯 마리 고양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순간들을 담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에게도 고양이는 가장 흔하게 본 동물이자 아주 가까운 생명체가 됐다. 장난꾸러기 아들은, 책에는 아들이 다소 미화됐지만, 고양이 수염도 뽑고 꼬리도 잡아당기는 등 장난을 엄청나게 치기도 한단다. 아들이 고양이를 각별히 아끼는 것은 아니나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인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인이 보여주는 고양이 사진마다 독자들은 탄성을 쏟아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미인을 얻는다’는 프랑스 속담은 귀에 솔깃했다. 책 제목이 탄생한 배경도 있었다. 고양이들이 좋아했던 낚싯대가 끊어졌는데 고양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로 자기네들끼리 놀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책 제목은 탄생했다. 사람과 16마리의 고양이가 공존하는 세계. 사료비용도 만만치 않고 중성화(TNR)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고양이 없는 세상은 사람 없는 세상보다 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고양이를 필요로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소설가 로맹 가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게는 사랑할 누군가를 줘야 해. 비행청소년이란 개도 고양이도 없는 아이들이야.”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고양이를 필요로 한다. 기승전고양이다. 그리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의식주에다 하나 더 붙이자. 의식주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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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이용한 저 | 예담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해서 먹을 것을 주려고 다가가면 늘 뒷걸음친다. 늘 불쌍하고 안쓰러운 고양이 사진만 찍던 이용한 시인이 이번에는 슬프거나 불편한 이야기가 아닌 평화롭고 행복한 고양이들의 사진을 갖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국내를 비롯해 세계 다양한 곳들의 길고양이 사진을 찍던 그가 가장 한국적인, 그리고 가장 행복한 고양이들의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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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출간 기념 북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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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은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우리 곁에서 음악은 마치 공기처럼 언제나 존재하고 있고, 그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통해 시대를 다시 들여다보고, 역사의 순간들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면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책의 제목은 이전에 강헌이 ‘벙커1’에서 진행했던 음악 강의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는 “음악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의 20대들은 정말 불행한 세대죠. 자신이 속한 삶에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들은 이미 정해진 틀 속에서 가혹한 경쟁을 하고 있어요. 무언가 뒤집어질 때, 예상했던 기대가 무산될 때 한 인간의 에너지나 사회의 가능성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음악 강의로서 이 제목은 별로 어울리지 않죠. 음악은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기존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야말로 극적인 순간의 집단적 일체감을 고양시키는 데 최고예요. 집단적 일체감이 집중되는 바로 그 순간이 해방의 순간입니다.”

 

이날 북 콘서트의 진행을 맡은 CBS의 정혜윤 피디는 “이 책을 처음 보고 일단 두께에 한 번 놀랐고, 두 번째로는 선생님의 약간은 저렴한(?) 말투가 그대로 담겨 있음에도 책이 굉장히 품위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런 것이 선생님의 매력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산만하지만 하나, 하나가 모여서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니까요. 그리고 제목을 보고 뭉클했는데 제가 무언가를 전복해본 지도 오래됐고, 반전을 기대하면서 산 지도 오래돼서 그런 것 같아요”라며 책을 읽은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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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속 전복과 반전

 

정혜윤: 가요, 클래식, 재즈를 묶어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고 한다면, 그것들을 관통하는 지점이 있나요?

 

강헌:사실 모범생이 이 세상에 도움을 주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모범생들은 주로 권력에 봉사해요. 그들이 사회를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 같지만 이전의 지배적 가치를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죠. 진정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비정규직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권력적 질서 안에서 소외되고 저주 받은 자들이었어요. 하지만 사실 이런 비정규직에 의해 음악이 비약적인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복과 반전이란 것은 현상유지를 바라는 권력자들이 꿈꾸는 순간은 절대 아니죠. 그들은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두려워합니다. 저는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꿈꾸는 자들에 의해 인류의 모든 역사가 굉장히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혜윤: 결국은 자신이 놓인 불안정한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안느냐의 차이네요. 인간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사실 우리가 안정적으로 현재에 만족하며 살 때는 생각을 안 하게 되죠. 다음으로 책에 나오는 김민기의 노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강헌:김민기의 노래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가 ‘친구’예요. 그 노래의 2절에서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라는 굉장히 유명한 가사가 나옵니다. 김민기는 그 노래를 고등학교 3학년 때 썼습니다. 죽은 친구에 대한 슬픔을 굉장히 평범한 코드로 쓴 것이에요. 김민기의 또 다른 노래 ‘아침이슬’도 겉으로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냥 대학생의 내면을 표현한 노래예요. 그런데 사실 이 노래들은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까지 굉장히 강력한 변화와 변혁의 에너지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코드로 읽히게 돼요. 놀라운 일이죠. 저는 이것이 바로 예술이 지니고 있는 마법이라고 생각해요.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모순에서 발생하는 힘. 이런 것들이 김민기의 노래에서 굉장히 강력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90년대에 와서, 김민기의 노래는 연속성을 상실하게 돼요. 제가 볼 때 이런 것들이 예술사 특유의 반전인 것 같아요. 폭력적인 상황이 반복되었던 한국의 우울한 20세기 현대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밑에서부터 이러한 예술의 에너지가 만들어져 온 것에 주목해야 해요.

 

 

서양음악사의 영원한 챔피언, 베토벤

 

정혜윤: 이제 클래식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이 책에는 정말 짠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요. 해도 해도 안 되는 사람들, 끝없이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저는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나오는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울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베토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어요. 베토벤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강헌:사실 베토벤에게 놀랐던 것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베토벤이 놀라운 능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발상이 놀라웠던 것입니다. 선배 음악가들의 텍스트를 출발점으로 삼았던 모차르트와 같은 작곡가들과 달리, 베토벤은 선배나 스승에 대한 경외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베토벤은 음악적 소스를 어디서 찾았을까요? 그는 농민을 향해 갔어요. 그 이전의 음악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에요. 그는 빈 근교의 농민들을 쫓아다니면서 그들이 일하며 부르는 노래, 축제 때 부르는 노래, 시위할 때 부르는 노래를 다 악보로 옮겼어요. 민중들의 소박한 힘을 재료로 삼아, 다른 선배들로부터 배운 갖은 음악적 테크닉으로 요리한 거예요. 굉장히 혁신적이죠.

 

정혜윤: 그렇다면 이전의 작곡가들은 할 수 없었던 일을 베토벤이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강헌: 그래서 이념, 철학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토벤은 이전의 작곡과들과 계급은 같았어도 이념이 달랐어요. 바로 공화주의라는 이념이에요. 베토벤은 서양음악사에서 공화주의를 자기 삶의 원천으로 만든 최초의 작곡가예요. 그는 자신의 그 이념을 오로지 오선지 위에서만 펼쳤어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학의 힘으로, 새롭고 강력하게 음악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죠.

 

잠깐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성악가 박경종의 노래로 2부의 막이 올랐다. 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더 이상 날지 못하리’라는 제목의 아리아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 나오는 아리아 ‘이룰 수 없는 꿈’을 힘 있는 목소리로 불렀다. 강헌은 “백 번 강의를 듣는 것보다 한 번의 노래가 낫다”고 말하며 멋진 노래를 불러준 박경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정혜윤: 그러면 이어서 아까 못다한 베토벤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눠보겠습니다.

 

강헌:앞서 말했던 베토벤의 첫 번째 놀라운 점에 이어서 두 번째로 베토벤이 갖고 있는 위대한 점은 어떤 사람도 주목하지 않았던 가장 밑바닥 계층의 음악으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음악을 직업으로 삼았던 작곡가들에게 음악은 밥벌이였기에 잘하면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것이고, 못하면 굶어 죽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증명해야 했어요. 기술적인 요소들로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죠. 그런데 베토벤은 그런 기술적 요소들로 자신의 음악을 규정하지 않았어요. 그에게 음악은 사람들에게 관습화된 쾌감을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새로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그 동안 많은 이들이 무시했던 콘트라베이스, 트럼본 같은 악기들, 즉 기술적 차원에서 화려한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악기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들도 당당하게 주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이를 통해 베토벤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의미가 담긴 노래 가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는 악기와 연주를 통해 자신의 이념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강헌은 “베토벤은 오로지 작품 속에서만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가치들을 실현하는, 그런 전형적인 예술가의 표본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서양음악사의 영원한 챔피언으로 남아 있는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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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모차르트

 

정혜윤: 다음으로는 모차르트 이야기를 해볼게요.

 

강헌:베토벤에게는 있지만 모차르트에게는 없었던 것이 바로 이념입니다. 모차르트에게 음악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었어요. 하지만 베토벤에게 음악은 이념의 투쟁이었죠.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의 투쟁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베토벤은 분명 두렵고 불안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자신의 이념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반면, 모차르트는 혁명 이전의 세대였고 그의 투쟁은 불행하게도 개인의 투쟁으로 머무르게 돼요. 그는 열악한 시기에 불운한 조건 속에서 혼자 처절하게 투쟁하다가 패배했습니다. 저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진실로 아름다운 이유가 그가 아름다운 선율을 잘 만드는 기술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숙명적인 패배가 그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곡을 써야 했어요. 그가 작품을 쓰지 않는 순간은 비참한 현실과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음악 속으로 도피한 거예요.


 

전복의 역사, 재즈

 

정혜윤: 이번에는 재즈 파트로 넘어가볼게요. 재즈 역사의 흐름을 한 번 짚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강헌: 재즈의 역사는 10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클래식 음악이 400~500년 동안 이룩했던 것이 재즈에서는 100년 안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어요. 저는 재즈 파트에서 왜 노예 출신의 흑인계급 문화가 세계 최강대국의 주류 문화로 성장했는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영국 땅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 신대륙을 건설한 이유는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에 헌신하는 기독교인의 사회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동을 위해서 강제적으로 사왔던 흑인 노예들은 늘 어떻게 하면 도망갈 수 있을지 궁리하고,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링컨에 의해 노예 해방이 실현됐을 때 남부의 대다수 흑인들은 시민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시민이 되는 순간 자신들이 백인 사회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강헌:정작 그들 자신이 해방의 주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자 북부에서는 남부의 흑인들이 조롱거리가 돼요.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사회의 주류계급이 아닌 하층 계급의 백인들에게는 오히려 흑인들의 그러한 쾌락추구적 삶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백인 청교도주의의 억압을 해방시킨 것이 역설적으로 흑인 노예들이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흑인들의 문화가 백인 사회로 침투하기 시작해요. 초기에 주류 백인들은 그러한 상황에 공포를 느끼고 끊임없이 차단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차라리 재즈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버리자라고 생각하게 돼요. 굉장히 이상하게 문화적 승인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들은 흑인 문화의 백인적인 요소를 강조하면서 재즈를 미국의 것으로 만들어갔어요.

 

재즈는 가장 가난한 민중의 일상에서 탄생해 주류의 문화가 되었는데, 이는 인류의 예술사에서 아주 보기 드문 사례다. 재즈의 역사는 단순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흑과 백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라 훨씬 탄력성 있는 흐름과 배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이다.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날 강헌과의 만남은 끝이 났다. 우리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음악. 음악사의 역사적 순간들을 통해 그는 지금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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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저 | 돌베개
이 책은 이렇듯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나 네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서 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네 개의 각 장은 각각 다시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지는 듯하더니 그 두 개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소급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이야기 네 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로 합해져 결국 개별적인 정보와 사실 관계의 정리를 넘어, 음악을 통해 문화사 전반을 대하는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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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누구에게나 찌질한 면은 있다, 심지어 위인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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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여 나는 바로 보마.”


함현식 딴지일보 기자는 김수영의 이 말에 꽂혔다. 그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는 이 말이 신기했다. 그리고 위인들 역시 사람이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찌질함’이 있다는 것에 주목해 딴지일보에 ‘찌질한 위인전’을 연재했고, 이것을 묶어 『찌질한 위인전』을 펴냈다. 지난 7월 16일,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찌질한 위인전』출간기념 북콘서트를 열었고, 저자와 독자들이 만났다.

 

“그들의 찌질함은, 한편으로는 대중의 머릿속에 자신을 위인으로 각인시킨 힘이 되기도 했다. 자신의 찌질함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다음을 바라보게 된 이도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찌질함과 맞서 싸우면서 생을 살아간 이도 있다. 그들이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에게 남긴 어떤 업적이나 작품과 같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닿기까지의 과정 때문일지 모른다.”(6쪽)

 

이 책은 위인전인데, ‘찌질한’ 위인전이다. 찌질함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해준다면?

 

원래 표준어는 찌질하다가 아닌 ‘지질하다’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변변치 않은’, ‘보잘 것 없는’이라는 뜻이다. 즉 못났다는 뜻이다. 『찌질한 위인전』은 재작년에 딴지일보에 연재해서 묶은 책이다. 연재 명을 짓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른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딴지일보에 들어오기 전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했었다. 1년 반 정도했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그만뒀다. 그리고선 백수 생활을 11개월 동안 했다. 그 기간 찌질한 생활을 했다. 우울하고 자존감이 가장 떨어졌던 시기였다. 내 스스로 찌질하다는 생각을 했고, 김수영이나 고흐 등의 삶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찌질한’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불온도서 같은 느낌이고, 어느 연령대에서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나이 제한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다가 이해를 못하면 그냥 넘어가면 된다(웃음). 나이보다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어려움을 겪은 그런 상태에서 이 책을 읽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그래도 고2 이상 돼서 이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위인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보면서 찌질함에 찍어야 하나, 위인에 방점을 찍어야 하나.

 

굳이 방점을 찍는다면 ‘인(人)’에 찍어야지. 사람이니까 위인이고, 찌질한 데도 불구하고 뭔가 있기도 하고.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에 나온 위인 중에는 보통의 위인전에 나오지 않는 인물도 있지만, 김수영 시인 등과 같이 대단한 작품이나 이름을 남긴 사람도 있다. 어린 날 위인전을 보면 업적이 대단한 사람만 소개되는데, 이는 주관적이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찌질할까? 찌질해 지는 것일까?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머리말에 썼듯, 어린 날 위인전을 보면 좋지 않은 것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려움을 겪는데, 다 이겨낸다. 어려움을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처럼 다룬다. 위인들도 사람이고 찌질함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약함을 갖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찌질하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보잘 것 없고 변변치 못하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 같은데, 저자 스스로 가장 찌질해 보였던 순간은 언제인가?

 

쉽게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찌질해도 생각에서 머물거나 그런 행동을 했어도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부모가 여행을 간다고 했고 내 수중엔 돈이 하나도 없을 때였다. 마침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입사 최종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는데 떨어졌다. 부모가 여행 떠나기 전날 발표가 났는데, 말씀을 못 드렸다. 마침 친구가 함께 놀러가자고 했었는데 집에 돈이 있을까 뒤지고 온라인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돈을 마련했었던 적이 있다. 나를 제외하고 나의 가장 찌질한 모습을 본 사람은 부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서도, 내가 자신을 포기하고 있을 때도 묵묵히 지켜봐주셨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뭔가를 반복하는 게 있어서 고치려고 하는데 안 된다. 평생 조심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연재하고 있었을 때도 반복되는 무언가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편집장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극복이나 완치는 없다며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해주더라.

 

이 책이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찌질함을 극복하는 매뉴얼이 될 수 있을까?

 

극복까지는 모르겠다. 각자 자신의 찌질함이 있고 그것을 알 것이다. 그것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한동안은 조심하면서 괜찮아질 수 있다. 그런데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찌질해지고 굴레처럼 그것이 반복된다. 그러다 극복이 안 되면서 자신을 받아들인다. 찌질함의 완치는 없는 것 같다. 찌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거대한 찌질함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 책은 찌질함을 극복하기보다 버텨내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 책을 쓴 목적이 위인들도 찌질하니까 독자들도 찌질하게 살아도 된다, 이런 건 아니다. 나는 일종의 위로를 주고 싶었다. 나를 잃지 않고 잘 발견하는, 찌질함이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요인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 소개한 이중섭 화가는 정말 아이 같다. 인생의 3/4 정도는 불행했다. 집안의 도움으로 유학도 갔지만 집안의 도움을 많이 받다보니 금전적인 관념이 없다. 이중섭이 어렵게 살게 된 이유는 자신 때문이다. 돈을 모으지도 못하고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도 않는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남들이 놀리고 욕해도 헤헤 거리면서 웃고. 이중섭은 금전적인 문제에선 백치에 가까웠다. 한편으로는 그런 천진함이 있어서 이중섭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찌질함이 있어도 자기의 장점도 그것에서 나올 수 있다.

 

“이중섭이 내게 보여준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찌질함 속에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의 가장 어두운 부분의 이면에 가장 빛나는 부분이 함께 있는 것은 아닐까.”(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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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하면서 자신에게도 위로가 됐나?

 

내게도 위로가 되고 도움이 많이 됐다. 태생적으로 위대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요, 완벽에 가까워서 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연재하면서 1차 자료로 평전을 많이 봤는데 이야기의 마지막은 거의 죽음이다. 위인 모두 시대, 직업 등 모든 것이 다름에도 울컥하는 것이 있었다. 한 이야기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끝까지 버텨내려고 하는,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위로가 됐다.

 

김수영 시인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연재하기 전부터 김수영을 참 좋아했는데, 그가 가장 큰 위로가 됐던 이유는 자기 고발 때문이었다. 「죄와 벌」이라는 시를 보면 시장 바닥에서 아내를 때렸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아내를 팬 것이 미안한 것이 아니라 아는 누군가가 그것을 본 게 아닐까 싶어 걱정한다. 시적 화자를 시인과 동일시할 순 없지만 부인의 인터뷰나 평전을 보면 아내를 한 번씩 때렸다고 하더라. 아내를 때리는 순간을 남이 보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시를 써서 발표하면, 불특정 다수가 그것을 알게 되는데, 이율배반적이지 않나? 김수영이 생각하는 시인의 이상향이 있었다고 한다. 인간 김수영은 아내를 때리는 허약함이 있지만 시인 김수영이 되고자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는 표현한다. 대개의 사람은 찌질한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쳐다보기 어려워서 외면한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어떻게 찌질한 지를 정면으로 봐야 다음도 있다. 물론 또 반복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또 바로 봐야 앞으로 그보다 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맨 처음으로 김수영을 쓴 이유도 그렇다. 자신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좋은 모습만 볼 게 아니라면 바닥도 보고 확인해야 한다.

 

“불가능한 꿈과 이상! 도달하고 싶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곳에 이르기 위해 김수영은 자신의 흉한 내면, 밑바닥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고,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김수영이 한국 현대시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도 결코 그의 태생적 비범함에 있지 않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의 첫 번째 우인으로 김수영을 소개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이다. ‘불가능한 꿈과 이상’, 그리고 ‘스스로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어찌 보면 식상하기 그지없는 이 말이 김수영이 나에게 던져준 가장 묵직한 울림이었다.”(28쪽)

 

책에는 11명이 나오는데, 여성이 한 명도 없다. 남성 우월주의의 반영인가?(웃음)

 

예전은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적으로 상위에 있었던 시대였다.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찌질한 모습을 더 많이 보인다. 반면 억눌린 사람은 찌질함을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찌질한 여성 위인이 없었다기보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후보 중에는 여성이 있었다. 헬렌 켈러의 경우에도 뒷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사람을 다뤄서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지 고민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연재 중에는 다루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람도 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나 괴벨스가 그렇다. 그들을 다룬 이유가?

 

달빛요정만루홈런은 내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 가사를 보면 대체로 찌질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승리의 기억은 찰나의 순간이다. 거의 매순간 지고, 마음속으로 매일 사표를 쓰는 평범한 사람들의 심경을 잘 표현한 것이 그의 노래였다. 위인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한편 괴벨스는 진짜 나쁜 놈이다. 당시 유태인은 히틀러보다 괴벨스를 더 미워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도 사람이다.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의 모습이 있다면 괴벨스는 어둠의 극단에 있는 사람이다. 그가 왜 그렇게 못된 인간이 됐는지 궁금했다. 그를 파헤치면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괴벨스가 나쁜 인간이 된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한 일에 자신이 없었고 신적인 뭔가, 믿고 따를만한 대상을 늘 필요로 했다. 어릴 때부터 다리를 절었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그는 10대였는데, 애국을 하고 싶었으나 다리 때문에 참전할 수 없었다. 또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서 자라서였는지 그는 성직자가 되고 싶어 했다. 괴벨스가 한때 성직자를 꿈꾼 사람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나? 그러나 그는 성직자가 되지 못하자 좌절하면서 신을 버리고 방황하면서 다른 신적인 존재를 찾았다. 그러다 히틀러를 알게 됐고 히틀러가 그에겐 신이었다. 자신과 의지하는 존재 사이에 균형이 없었다. 자기 안의 동력이 없고 항상 바깥에서 그것을 찾았다. 동기부여를 가장 확실하게 한 것이 증오였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힘이 그를 버티게 했다. 선동을 하면서도 그가 써먹은 방법은 증오였다. 

 

안타깝게 넣지 못한 위인이 있다면?


딴지일보에 연재하면서 12명을 했다. 케네디 편이 책에서 빠졌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는 지점이 있다. 케네디는 정치 초년생 시절, 메카시즘, 즉 종북몰이를 했다. 또 여자를 몹시 밝혔다. 이 사람의 호색 기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런 걸 찌질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 중에도 그렇게 색을 밝힌 이가 있었다. 허균이 그랬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미움을 사고 꼬투리 잡힐 일도 많이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여자를 밝힌 것을 합리화했다. “남녀 간의 정욕은 하늘이 내린 것이고, 나는 하늘의 도리를 따르겠다.”

 

책을 보면서 ‘찌질하니까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막연한 희망을 강요하는 느낌의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책과 대척점에 있다고 본다.

 

내게 중요한 것은 버티는 것이다. 버티는 것이 현재 나의 상황을 반전시키고 힘을 내도록 강요되는 상황보다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버티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힘들 때 숨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기 합리화도 필요하고 내게 이런 좋은 면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고. 일단 버텨야 자기 성찰도 할 수 있다.

 

이 책을 쓰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나?

 

예전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말하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내가 예전보다 덜 찌질해졌다고 말하기보다 내 스스로와 화해를 많이 했다. 내가 잘못하고 실수하고 못난 모습을 보여도 나를 품는다. 나는 이 책에 나온 인물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위안, 위로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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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함현식 저 | 위즈덤하우스
아홉 명의 동서양, 근현대 위인들의 숨겨진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위인’과 ‘찌질함’을 한데 묶었다. 우리는 완결된 위인들의 생애를 보고 있지만 당시 그들에게도 지우고 싶은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인이기 이전에, 결국 그들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상처, 못나고 변변찮았던 면들을 짊어지고 분투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삶에서 느끼는 슬픔과 불안, 절망감과 우울함 등을 조금은 의연하게 극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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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작은 캠핑요리로 만나는 큰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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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서울 홍익출판사 마당은 왁자지껄했다. 사람들로 복작거렸고 여름밤 공기를 삼킨 것은 요리 냄새였다. 여기저기 들어선 텐트와 의자, 캠핑 도구들은 또 무엇인고. 출판사 마당은 도심 속 캠핑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지글지글 요리가 만들어지고 하하호호 사람들의 웃음과 담소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이곳은 ‘『재미있고 맛있는 15분 캠핑요리』 작가와 캠핑 만찬 즐기기’.

 

이 책은 장진영(중앙일보 키즈팀 사진기자) 저자가 캠핑을 다니면서 즐겁게 해먹었던 캠핑 요리들 중 54가지를 엄선했다. 캠핑의 성격에 따라 그에 맞는 가장 적합한 요리를 선별하고 레시피를 건넨 책이다. 캠핑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저자가 캠핑의 묘미는 요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내놓은 책이기도 하다.

 

“멋지게 담겨 있는 한 접시의 결과만이 아닌 야외에서 즐겁게 음식을 만드는 과정 또한 캠핑의 묘미입니다. 이것저것 비교하며 재료를 구입하고 연인, 친구, 가족과 같이 때로는 나만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8쪽)

 

저자가 이날 선보였던 캠핑요리 3선은 까수엘라, 스모어, 케사디야. 진짜 15분 만에 만들 수 있는지 시간을 재보겠다는 익살부터 정말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냐며 놀람까지, 요리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이 세 가지 캠핑요리를 선택한 이유도 단순했다. 조리과정이 무척 간단하고 단순한데다 잔반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마지막으로 재료를 쉽게 준비해서 캠핑 가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가 책에서도 밝힌 캠핑요리의 다섯 가지 원칙과도 통한다.

 

1. 조리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할 것
2. 한 가지 재료를 여러 요리에 응용할 것
3. 재료는 구하기 쉬운 것으로 선택할 것
4. 미리 재료를 손질하여 캠핑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할 것
5. 최소한의 양념으로 요리할 것

 

분위기는 캠핑장에 온 것처럼 자유분방했다. 저자가 요리하는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삼삼오오 모여 캠핑요리를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팀들도 있었다. 저자의 요리 실연과 강습은 계속 이어졌다.

 

저자의 캠핑 맞춤형 요리 레시피는 포털사이트에 연재를 했다. 2012년 발을 들였던 캠핑의 세계, 아주 푹 빠졌다. 거의 매주 캠핑을 다녔다. 캠핑이라고 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집보다 텐트 속 침낭에서 더 잘 잔다는 것도 깨달았다. 캠핑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붓기 시작한 저자, 그리고 캠핑의 8할은 먹는 것으로 구성된다는 것도 발견했다.

 

“캠핑을 시작하기 전에도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이 책은 내가 캠핑하면서 먹는 것을 추렸는데, 한 끼를 먹더라도 잔반을 남기지 않고 맛있고 유용한 것이 캠핑요리로서 좋더라. 예전에 잡지를 제작할 때도 맛집이나 여행을 좋아했던 것도 있었고 혼자 해먹어도 번거롭지 않고 같이 먹어도 좋은 캠핑요리를 꼽았다.”

 

요리를 만들면서도 레시피나 설명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쉽게 손댈 수 있는 요리다. 까다롭지도 않다. 캠핑을 가서 뚜껑이 있는 프라이팬을 쓰면 오븐 효과가 난다는 그의 설명은 캠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팁이다. 토핑 재료도 크게 고민할 것이 없단다. ‘스모어’를 만들기 위해 마시멜로를 불에 간단히 익히더니, 그가 곧 이어 꺼낸 비기(?)는 ‘빈츠’다. 빈초의 초콜릿 소스를 익힌 마시멜로에 묻혀서 먹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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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어(S’more)는 초콜릿과 구운 마시멜로를 비스킷 사이에 넣어 먹는 간식입니다. 모닥불 앞에 앉아 꼬치에 마시멜로를 끼워 즉석에서 구워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72쪽)

 

■ 스모어 레시피
준비물(2~3인분) : 통밀 비스킷1팩, 초콜릿 약간, 마시멜로 1/2봉지, 꼬치 여러 개

 

1. 초콜릿을 잘게 으깬다
2. 통밀 비스킷 위에 1의 초콜릿을 올린다
3. 마시멜로를 꼬치에 끼어 살짝 녹을 정도로 굽는다
4. 2의 비스킷 위에 구운 마시멜로를 올리고 또 다른 비스킷으로 눌러 덮는다

 

저자는 요리를 만들면서도 캠핑 예찬론을 편다. 캠핑이 이미 대중화의 길로 들어선 지금, 그의 예찬론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만하다.

 

“캠핑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할 건 없다. 자기 눈높이를 정할 수 있다.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는 비싼 브랜드의 캠핑 도구나 용품을 쓰지만 나는 아무 거나 쓴다. 흙바닥에서 자고 밥 먹는 것도 좋고. 캠핑을 하면서 옷이나 밥 등에서 더 자연스러지면서 남들의 시선에도 초연해지더라. 성격이 좋아지고 미운 게 많이 사라졌다(웃음). 회사에서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그러세요~’라는 태도와 자세를 갖게 됐다. 내 캠핑 스타일이 오토캠핑이 아닌 오지캠핑이나 백패킹인데, 일상에서도 그런 자세가 스며들었다. 캠핑 덕분에 삶이 더 풍성해지고 좋아졌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캠핑요리를 둘러싸고 캠핑과 삶에 대한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다보니 여름밤도 깊어가고 있었다. 캠핑 간다고 하면 고기만 구워 먹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캠핑을 좀 더 풍성하고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길잡이다. 여름날, 캠핑을 떠난다면 이날 저자가 전한 캠핑요리의 핵심을 명심하며 좋겠다.

 

“캠핑요리는 과하지 않아야 한다. 적당함의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 캠핑을 가서 먹을 것인가도 중요한데, 남이 먹고 좋아할 것을 만들면 좋다. 물론 혼자 캠핑을 가면 내가 맛있게 먹을 것을 해야 한다. 무엇이 됐든 남기지 않는 것이 캠핑요리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다.”

 

먹방, 쿡방만 유행이 아니다. 이젠 먹캠, 쿡캠도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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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캠핑요리장진영 글,사진 | 홍익출판사
더 이상 고기만 구워먹는 뻔한 캠핑은 싫다! 한 끼를 차려먹어도 다양하고 풍성하게 먹어야 한다. 한번 시작하면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초간단 레시피로 누구나 쉽게 최고의 캠핑요리의 달인이 되어보자!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활동 중인 장진영 기자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프로의 수준까지 도달하고야 마는 취미의 달인이다. 그런 그녀가 수년간 캠핑의 매력에 홀딱 빠졌다. 《재미있고 맛있는 15분 캠핑요리》에서는 그녀가 캠핑을 다니면서 즐겁게 해 먹었던 요리들 중 최고의 캠핑 레시피 54가지를 엄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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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영화감독 이명세와 시인 채호기가 주고, 받은 이야기 『주고,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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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는 영화감독과 시인이다. 영화감독과 시인이 될 당시, 이들은 친구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만난 이들에게 지난 시간을 나누는 것은 일이 아니었고, 그저 영화와 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바빴다. 신기하리만치 서로가 살아온 얘기는 뒷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깊이의 우정을 나누고, 이제 이들은 서로에게 훌륭한 영감을 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주고, 받다』는 영화감독 이명세와 시인 채호기, 두 친구가 나눈 예술과 삶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무더운 여름 가운데서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 감각적이고 친밀하고 다정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소규모로 진행된 이 만남 행사에는 영화를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두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채호기 시인이 먼저 “이런 자리는 저도 처음입니다. 조금 서툴더라도 양해해 주세요.”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이어 이명세 감독은 “1988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3년에 한 편 정도 만든 것 같아요. 가끔 올림픽 감독(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 비유한 표현)이기도 하고요.(웃음) 지금은 영화를 만든 지 꽤 됐죠. 마지막 작품 <M>이 2007년에 개봉했으니까요. 계속 놀고 있습니다. 그냥 노는 것은 아니고, 이 시간을 아주 좋은 시간으로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는 내용으로 근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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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의 첫 만남


예술가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두 친구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그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묵직했다. 가장 먼저 낭독의 시간으로 두 친구의 내밀한 세계에 참석자들을 초대했다. 채호기 시인은 “가장 사적인 글이 있어요. 그 부분은 읽어보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낭독을 시작했다. 이명세 감독과의 첫 만남을 추억하는 대목이었다.

 

늦은 귀갓길에서 나는 종종 밤의 한복판에 섬처럼, 등대처럼 서 있는 그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서 한참을 홀로 서 있곤 했다. 그 늦은 밤에 어디론가 뚜렷이 전화할 곳도 없으면서, 수화기를 들고 마치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심각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이 전화 거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159~160쪽)


우리 둘은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름과 어느 정도의 인간됨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먼저 연락해온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놈인지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신촌사거리 근처 어느 술집에서 우리는 만났다.(167쪽)

 

이명세 감독은 곧이어 “이심전심인지, 제가 읽으려고 했던 글 역시 우리 관계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라 하며 투박하지만 진실된 낭독을 이어갔다.

 

그랬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 서로의 지나간 시간에 대해 단 한 번도 작정하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너나 나나 만날 때부터 그렇게 하자고 규칙을 정한 것도 아니었다. 묵계였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영화를, 시를 그리고 살아가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과거사나 서로의 사생활은 메인 정식이 아니었다. 그때그때의 에피타이저나 디저트쯤, 혹은 간식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은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먹는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73쪽)

 

채호기 시인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을 보고 감탄했다. 시인이 영화를 본 곳은 그러나 동시상영관. 시인이 이명세 감독에게 물었다. “제가 삼류극장, 동시 상영하는 곳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요. 그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어요. 왜 삼류극장에서 보게 됐을까, <개그맨> 상영과 관련한 배경을 좀 설명해주세요.”

 

이명세:저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1988년 데뷔라고 한 곳도 있고 1989년 데뷔라고 한 곳도 있어요. 분명하게는 1988년 <개그맨>이 개봉했어요. 부산의 한 극장에서요. 당시는 지금 같은 복합 상영관이 아니라 단관 상영이었죠.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영화사에서 데뷔했는데도 당시 <다이 하드>가 개봉하는 바람에 <개그맨>의 상영이 계속 연기되었어요. 흔히 영화는 생물 같다고 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영화가 계속 묵혀지니까 제작사 쪽에서는 그냥 버릴 수도 없고 해서 부산의 한 극장에서 먼저 상영을 했던 거예요. 그 다음 해에 단성사에서 개봉을 했고요. 계획된 개봉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문에 간단한 정도의 광고만 났었죠.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삼류극장에서 상영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죠.

 

첫 작품이 계획대로 개봉해서 알려지지 못해 아쉬울 법도 하지만 결국 이 <개그맨>이라는 영화가 채호기 시인과 이명세 감독에게 단단한 연결 고리가 된 셈이다.


이어 편안하게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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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예술가에게 궁금한 모든 것


낭독하신 부분에서 서로가 알지 못했던 유사성에 의해 가까워졌다고 하셨어요. 전체적인 글에서 두 분은 유사성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채호기:유사성이라고 한 것은 저 혼자의 생각인데요. 저 역시 『밤의 공중전화』라는 시집을 내고, 공중전화에 관한 시도 썼습니다. 무의식 속에 공중전화박스에 대한 어떤 것이 있었는데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이라는 영화에 나온 공중전화박스 장면을 보니 무척 인상 깊었어요. 그 장면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말이죠. 도망 중에 도시 외곽에서 잠시 한숨 돌릴 때 배우가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전화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이 인상 깊었고 그 부분에서 어떤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개그맨>에서 주로 열차를 타고 도주를 하는데요. 제 시에도 열차에 대한 많은 이미지들이 있거든요. 열차와 공중전화박스라는 유사성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성격도 많이 다르고요. 글 쓰는 스타일 역시 물론 다를 수밖에 없겠죠. 지적하신 부분이 맞습니다.(웃음)

 

영화를 볼 때 늘 고민되는 지점이 정말 좋은 영화임에도 관객과 가까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명세 감독님의 작품 역시 미학적이고 공부할 부분이 많은 영화인데 관객 입장에서는 좀 어렵게 느끼는 면도 있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명세: 영화야말로 시간 예술이잖아요.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DVD라든지 다른 방법으로 영화를 볼 수 있지만요. 환경도 많이 달라졌고요. 보는 공간, 방식 등이 다양해졌어요. 문제는 그런 영화가 그곳까지 닿는 과정이에요. 좋은 영화들이 있지만 소개가 안 되잖아요. 저널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소통을 시키고, 좋은 영화를 찾아내주는 것이 저널의 역할인데 말이죠.


브로드웨이의 경우 연극도 시사회를 했어요. 어떤 연극은 보고난 후 관객들의 표정이 아주 어두워요. 이해도 안 되고요. 그래도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 있어요. 다음날 새벽 <뉴욕타임스>의 기사예요. 아직도 저널이라는 게 살아있다는 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근현대사 최고의 극작가 작품들이 다 시사회 때는 관객들에게 외면 받았지만 평론가들이 ‘꼭 봐야 한다’고 한 작품들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위대한 극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는 볼 수 없었겠죠. 문학,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특히 국내에서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었어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요. 대중이 평론가들에게 배신을 느낀 경우도 생기고요. 저널이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써주느냐가 중요해요. 요즘은 어떤 면에서 혼돈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매체의 힘은 커졌는데, 그 안에서 뭔가 하는 사람들의 힘은 적어진 것 같아요.

 

채호기:저도 영화는 잘 모르지만 들은 얘기가 있어요. 영화가 만들어지더라도 극장에 올리지 못해서 사장되는 영화들이 1년에 200편정도 된다고 해요. 영화라는 것이 적은 돈을 들여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영화들이 있다고 하니까 무척 안타까운 일이죠.

 

문학이나 책은 현재 매니악하게 느껴질 만큼 소수가 향유하는 분야라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영화에 비하면 훨씬 더 그런 면이 강한데요. 문학 안에서도 시라는 분야는 더욱 그럴 테죠. 시인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채호기: 시를 쓰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이제 시를 써서 먹고 산다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그런 점에서 시라는 것은 판매라는 것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요. 대중의 눈치를 안 보고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가 있죠. 어떻게 생각하면 시인들이야말로 예술가적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독자 눈치를 안 보고도 쓸 수 있는 단계가 있으니까요.


시인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이들에게 시 쓰는 일이 자기 일의 주변부에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아요. 시가 중심이라고들 해요. 직업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갖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때문에 시가 소중한 것이고 시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순수한 예술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거친 세상에 시는 섬세함으로 대항하고 있다”고 누군가 말했어요. 모든 언어가 거칠죠. 방송, SNS 모두 그래요. 섬세하고, 꼼꼼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왜 시가 중요한지 알 수가 없겠죠. 이 바쁜 세상에 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웃음)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를 읽는다는 사람을 보면 좀 다르게 보여요.

 

이명세:정말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대중에게 시가 공급되지 않음으로써 예술성을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어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갈 때, 이때 진짜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어느 곳에 박혀있는 수도자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은 그런 수도자와 같은, 가장 순수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죠. 저도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 꼭 시를 읽으라고 해요. 하지만 안 읽어요. 그게 너무 좋아요.(웃음) 예술은 보물과 같은 것이고, 인간 정신에 있어 시야 말로 순수함을 수혈하는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순수함이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죠. 태고에 갖고 있었던 느낌들을 품은 것을 보고 ‘시적이다’라고 하잖아요. 제가 어떤 영화에 ‘시적이다’라고 말하면 그건 최고의 칭찬이에요.

 

예술이라는 틀 안에서 시와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채호기:시와 영화, 그림은 굉장히 가까워요. 모두 이미지일 수 있죠. 시와 소설은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이 소설은 이야기 중심이라는 점인데요. 시는 언어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요. 그런 점에서 영화와 시가 가깝다고 말할 수 있어요. 실제 우리 기억에 오래 남는 것들은 이미지예요. 감각적이거든요. 감각적인 것들은 육체에 새겨지죠. 어떤 음식의 맛, 감각적이기 때문에 안 잊어버려요. 이야기는 머리로 이해하는 성격이 강한 거죠. 이야기는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접근이 쉽죠. 그렇지만 쉽게 잊어버릴 수 있어요.

 

이명세:마크 로스코(Mark Rothko) 전시회를 갔는데 너무 시끄럽더라고요. 뭐가 시끄러웠냐 하면 너무 설명을 많이 써놨어요. 이를 테면 그림 이야기책이었어요. 채호기 시인이 한 얘기와 같은 맥락이에요.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여러 감각을 방해했죠. 추상이라는 건 뽑아내는 거예요. 수학에서 빼기와 같은 것인데요. 작가의 눈으로 무언가를 빼서 뽑아내는 거죠. 시는 언어를 뽑아내고, 영화는 프레임의 움직임으로 장면을 뽑아내요. 카메라 앵글, 프레임으로 장면을 만들죠. 다양한 방법으로 사물을 달리 볼 수 있어요.

 

이명세 감독이 크게 영향 받은 감독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이명세:다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과거에는 지난 영화들을 볼 수가 없었어요. 어린 시절에 본 영화들이 기억의 창고 속에 남아있었겠죠. 지금처럼 공부하듯이 어떤 영화를 계속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영상자료원이라는 곳이 생긴 것도 얼마 안 됐으니까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나서 그때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상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요. 영화를 많이 보면 영화를 잘 찍을 수 있느냐? 아닐 거예요. 책을 많이 읽으면 소설을 잘 쓰나? 그렇지도 않잖아요. 잘 볼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많이 본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책을 통해서 상상력을 더 키웠던 것 같아요. 시도 그렇고요. 어떻게 이런 단어를 썼을까 깜짝 놀라요. 그건 영화의 한 샷과 같거든요. 이야기 자체에 빠졌던 적은 없는 것 같고요. 문장이 주는 배열의 힘에 태생적으로 반응했던 것 같아요.

 

현대시를 읽다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추상화 같은 면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읽기가 쉽지 않은데 과거 윤동주 시인처럼 읽기 편한 시만 읽어야 할지 고민이 들기도 하고요.


채호기: 시가 2000년대 이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그 이후 등단한 한국의 시인들부터 말이에요. 이전 시들은 주로 ‘나’라는 사람, 시인의 가면이 쓴 화자가 중심이 되어 그 화자가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들을 썼어요. 2000년 이후에는 화자 ‘나’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거예요. 화자가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화자가 감각, 동물 등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물론 모든 시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시들이 각자 다 다릅니다. 이런 상황이니 예전 시만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굉장히 낯선 세계죠. 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젊은 시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화자들이에요. 전문 비평 용어로는 ‘비인칭 화자’라고 합니다. 왜 이런 화자를 썼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해요. 주체의 문제가 화두가 된 이후 시가 변했다고 볼 수 있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말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이명세: 전체가 다 기억에 남아요. 오고 갈 때는 잘 몰랐어요. 원고 교정하면서 읽으니까 제가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준 것 없는 것 같고요. 책 제목이 ‘주고, 받다’인데요, 저는 ‘받다, 받다’인 것 같아요.(웃음)

 

채호기:책 출간 후에 출판사 대표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이성복 시인이 이 책을 읽고 하신 말씀 중에 “채호기는 인파이터고 이명세는 아웃파이터다”라고 하신 말씀이 있대요.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저는 금방 알아들었어요. 인파이터는 주먹을 먼저 날리고, 아웃파이터는 주먹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받아치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이명세 감독은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와 같이 글을 쓰게 되다보니 생긴 모습이죠. 싸움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제가 해야 했고요, 이 친구가 받아치는 구조였어요. 이명세 감독이 ‘받다, 받다’라고 한 것은 그만큼 아웃파이터 입장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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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받다이명세,채호기 공저 | 꽃핀자리
이명세 감독과 채호기 시인의 서간집 『주고, 받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1년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풀어서 다듬고, 에필로그에 따끈따끈한 새 편지를 추가해서 묶어낸 서간집이다.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첫 만남 이후 진짜 20년지기가 된 두 사람은 서로 힘이 들 때, 흔들리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따듯한 교감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영화감독과 시인으로서 영화와 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친구로서 서로의 삶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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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로 돈을 벌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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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서울 논현동 북티크에서 『나는 우리집으로 투잡한다』이창현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우리집으로 돈버는 에어비앤비 재테크’라는 제목으로 열린 강연회는 문래동 14평짜리 아파트에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저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공개됐다. 저자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전업 중이다. 대기업 계열 IT회사를 다니면서 투잡으로 에어비앤비를 하다가 책이 나오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 에어비앤비는 무엇일까?

 

에어비앤비는 2008년 디자인을 전공한 세 명의 청년들이 시작했다. 비싼 집세 때문에 고민이 많던 이 세 청년은 자신들이 살던 샌프란시스코에 디자인 컨퍼런스가 열리자 자신들의 방을 빌려주는 것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사업모델로 파죽지세로 큰 에어비앤비는 2014년 한국지사도 설립했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가 자신의 주거지 일부 또는 집 전체를 게스트에게 빌려줄 수 있도록 게스트와 호스트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로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하여 190여 개국 3만4000여 도시에서 100만여 개의 숙소가 등록되어 있다. 전세계 2000만 명이 넘는 이용객들이 에어비앤비 서비스를 통해 숙박을 하고 있으며, 그 수는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10조8000억 원으로 세계 최대 호텔체인인 하얏트 호텔 기업가치보다 높은 수치이며, 최근에는 47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으로 손꼽힌다.”(15~16쪽)

 

저자는 에어비앤비가 좋은 이유로 3가지를 말했다. 먼저 적은 비용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 비용이 적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고 리스크 역시 작다는 장점을 꼽았다. 그는 치킨집 창업과 에어비앤비 호스트 사업을 비교했다. 

 

“치킨집 창업에 필요한 비용이 평균 5천만 원이라고 한다. 그러면 치킨집 사장은 한 달에 180만원을 번단다. 높은 투자비용에 비해 적은 수익이다. 그에 반해 에어비앤비는 투자금 200만원만 있으면 한 달에 80~100만원을 벌 수 있다. 일부만 그렇게 버는 것이 아니라 평균치가 그렇다.”

 

두 번째 장점으로 꼽힌 것은 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 그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 회사에 다니면서 에어비앤비를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면서 별로 할 일이 많지 않아서였다. 손이 많이 가지 않아서 직장인들은 부업이 가능하고, 5060세대도 체력적인 부담이 없다. 저자가 마지막 장점으로 꼽은 것은 재밌고 유익하다는 것이었다.
 


적은 돈으로 에어비앤비를 하는 방법

 

저자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기 위해 투자금 200만원만 있으면 한 달에 80~100만원 순수익을 낼 수 있다며 호스트를 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 월세로 집을 빌리기 : 내 집이 없어도 된다.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70만원이면 충분하다(서울의 원룸 오피스텔 기준).
(2) 집(방) 인테리어 : 인테리어 비용은 200~300만 원 가량 든다. 인테리어 공사가 아닌 홈스타일링을 추진한다. 인테리어 소품을 통해 인테리어를 하면 된다.
(3) 게스트에게 집을 빌려주기 : 원룸 1박에 숙박비 60~80달러, 청소비 20~30달러를 받으면 되는데 한 달에 평균 25일 가량 방이 찬다. 비성수기는 20일 정도다. 최근 메르스 때문에 예약률이 떨어지긴 했으나 평상시 성수기는 한 달이 가득 찬다. 청소 및 관리비는 한 달에 약 10~20만원 비용이 발생한다.

 

“한 달 수익을 내보면 75달러 곱하기 환율 1100원 곱하기 25일 곱한 다음 에어비앤비 수수료 3%를 제하면 2백만625원이다. 월세(70만원)와 관리비(20만원)을 빼면 110만625원 순이익이 난다. 원룸이 아닌 투룸 이상이라면 가족 단위가 많이 와서 가격을 더 높게 받을 수 있다. 원룸이 2개 이상이라면 수익이 또 늘어날 수 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되어보기

 

저자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밟으면 된다고 소개했다. 

 

1. 집 알아보기 : 에어비앤비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다. 인테리어가 아무리 좋아도 입지가 좋지 않으면 선택을 받을 수 없다. 다음과 같은 사항에 주목하면 좋겠다.

 

(1) 강남보다 강북 : 나는 강북을 추천한다. 외국인들이 왔을 때 주로 가는 곳이 강북이다. 서울시내 관광지들은 강북에 몰려 있다. 
(2)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 : 지하철역에서도 유독 잘 되는 지역이 있는데, 공항철도와 2호선을 추천한다. 홍대?합정ㆍ신촌ㆍ이대가 좋다. 그 중에서도 홍대가 베스트다. 홍대 자체만으로 놀거리가 많다. 두 번째로는 월드컵경기장이다. 아파트 근처여서 생활 여건이 좋다. 세 번째 당산, 문래, 신도림이다.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외국인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 집은 문래동에 있는데, 2호선이고 홍대와도 가까운 장점이 있다. 주변에 레스토랑, 카페, 타임스퀘어 등 밥 먹기 좋고, 쇼핑하기에도 좋다. 다음으로 공덕과 서울역도 좋다. 왕십리, 여의도, 신사, 강남ㆍ잠실, 이태원 등도 좋다. 
(3) 역세권 집 : 외국인들이 집을 구할 때 지하철에서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 10분 이내이며 집까지 오는 방법이 단순해야 한다.
(4) 관리비 많이 나오는 집을 조심해야 한다. 한 달에 번 돈이 관리비로 다 나가는 수가 있다.
(5)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으면 게스트 만족도가 올라간다. 호스트 입장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바로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에 좋다.
 
2. 인테리어 :집을 돋보이게 해줄 몇 가지 인테리어 방법만 알고 있으면 누구나 멋지게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 다음의 세 가지만 알면 된다. 오프라인 인테리어 숍으로 이케아, 자라홈, 모던하우스, JAJU, 에잇컬러스 등을 추천한다.

 

(1) 포인트 벽과 블라인드로 집안 분위기 중심을 잡아라. 벽은 벽지보다 페인트칠이 낫다. 벽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색깔로 칠할 수 있다. 창틀에는 블라인드를 해주면 좋다.
(2) 패브릭 및 소품이 많을수록 좋다. 허전한 것보다 소품으로 차 있을 때 집이 예뻐 보이고 게스트의 만족도가 높다.
(3) 바닥에 러그를 깔자. 바닥 색깔과 반대되는 명암의 러그를 깔아주는 것이 좋다. 밝은 바닥이라면 어두운 러그를, 어두운 바닥이면 밝은 러그를 깔아주면 된다.  

 

3. 사진 촬영하기 : 게스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진을 찍어보자. 인테리어가 멋지지 않더라도 사진으로 단점을 커버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무료로 사진을 찍어준다. 신청하면 일주일 내 전문 사진사가 찾아와서 사진을 찍어준다. 무료 사진촬영 서비스의 장점은 무료이며 전문가가 찍어주는 고품질 사진이고 에어비앤비의 상위리스트에 올라갈 때 가산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사진 촬영에서 등록까지 2~3주 걸리며 한 결 같이 똑같은 스타일의 사진이 나온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사진 촬영 팁은 다음과 같다. 
 
(1) 최대한 밝게 찍어야 게스트 눈에 잘 들어온다. 주황색 불빛이 있는 주광등이 형광등보다 낫다. 형광등은 끄고 찍어야 밝게 나오는데 포토샵 등으로 보정을 해주는 것이 좋다. 
(2) 창문과 바깥풍경이 나오게 찍어야 넓어 보인다.
(3) 인테리어 소품이 많아야 사진이 멋있게 나온다.

 

 

예약률을 높이려면 

 

저자는 마지막으로 에어비앤비 예약률을 높이는 팁을 공개했다. 먼저 게스트 문의에 빨리 응답하라고 권했다. 10분 이내가 골든타임이라는 것. 게스트는 여러 숙소를 알아보기 때문에 빠른 응답이 게스트의 호감을 살 수 있다. 에어비앤비 앱을 이용한다면 실시간으로 응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좋은 후기가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스트들이 후기를 눈여겨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초기에는 숙박 가격을 낮춰서 후기를 많이 받는 전략을 취할 것을 권했다. 어느 정도 후기가 쌓이면 원래 가격으로 올리면 된다는 것. 좋은 후기를 많이 받기 위해 게스트와의 교감도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체크인/체크아웃 때 게스트와 직접 만나라고 언급했다.

 

“프로필 작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프로필에 의해 게스트 수준이 달라진다. 지역 토박이임을 강조해라. 게스트들이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택하는 이유가 있다.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레스토랑, 쇼핑 장소 등을 알고 싶어 한다. 나이, 직업, 학교 등을 솔직하게 밝힐수록 게스트에게 신뢰감과 호기심을 줄 수 있다. 프로필 사진은 무조건 본인 사진으로 해야 한다. 외국인 게스트들은 프로필 사진을 보고 믿을 만한 사람들인지를 판단한다. 찡그린 사진보다 웃는 사진이 좋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부부 사진을, 젊은 사람은 커플 사진보다 싱글 사진이 좋다(웃음). 아울러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 숙박사이트에 많이 등록하자. 많이 등록할수록 예약률이 높아진다. 다만 중복 예약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Q&A

 

게스트로 어느 나라 사람이 많이 오나?

 

내 경우는 중화권이 50% 이상이다. 미국, 호주에서 많이 오고 교포들도 꽤 찾는다. 그밖에 동남아시아, 유럽, 일본 등의 순이다. 그런데 나는 일본 사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일본 사람의 성격상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비즈니스호텔로 많이 가서 만나기는 힘들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나?

 

잘할 필요는 없다. 쉬운 영어 수준만 하면 된다. 방을 알아보기 위해 물어보는 패턴이 거의 비슷하고 답변도 이에 맞추면 된다. 다만 간단하게 읽고 쓰는 정도의 영어는 필요하다.

 

게스트가 집안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훔쳐가지 않나?

 

게스트가 물건을 훔쳐가거나 파손했을 경우 에어비앤비가 보상해준다. 호스트 프로그램이 있어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수건 1장도 청구가 가능하다. 집에 불이 나면 에어비앤비에서 최대 10억 원까지 보험이 가입돼 있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불법이 아닌가? 세금은 어떻게 하나?

 

도시민박업에 해당되지 않으면 불법이다. 지금 에어비앤비와 도시민박업이 맞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아직까지는 세금을 내고 있지는 않다. 도시민박업은 원칙상 세금을 신고해야 하나 도시민박업에 가입한 사람들도 대부분 신고하지 않더라.

 

“세금 납부 방식은 신고제이다. 즉 본인이 얼마만큼 매출이 발생했는지 양심껏 신고해야 한다. 신고제인 이유는 에어비앤비는 외국기업이므로 각 개인이 얼마만큼 매출이 발생했는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 민박 업을 등록한 경우 과세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도시 민박 업에 등록되어 있더라도 대다수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또한 도시 민박 업에 등록하지 못한 호스트들 역시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기 때문에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는 경우가 없다.”(59쪽)

 

게스트와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나?

 

에어비앤비 앱에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또는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는 한국어 서비스를 지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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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집으로 투잡한다 에어비앤비 [나는 우리집으로 투잡한다 에어비앤비]는 부업을 원하는 직장인, 생활비에 쪼들리는 주부, 노후를 걱정하는 은퇴예정자 및 이미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소액투자로 누구나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될 수 있으며, 손이 많이 가지 않기 때문에 직장 다니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에어비앤비의 장점이다. 이 책은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기 위한 과정뿐 아니라 슈퍼호스트인 저자의 깨알 같은 노하우를 전부 담은 책이다. 호스트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좀 더 호스팅을 잘하고 싶은 기존 호스트들한테도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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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음식 이야기에 왜 그릇 이야기는 빠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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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침이 고인다. 가지런하고 정갈하게 놓여 있는 음식이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요리가 자리한 그릇, 요리를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플레이팅이 어우러졌다. 내게 군침을 돌게 만드는 것은 모든 감각이 작동했기 덕분이다. 요리에 후각이 끌린다면 플레이팅은 시각과 기분을 달라지게 만든다.

 

지난 7월 23일, 서울 논현동 이도 아르쎄 강남점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이윤신의 그릇 이야기』출간 기념으로 ‘그릇으로 아름다워지는 시간, 이도yido와 함께하는 플레이팅 클래스’가 열렸다. 이도의 그릇으로 6명의 독자들이 백지원 요리연구가와 함께 플레이팅 테크닉도 배우고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음식을 어떻게 플레이팅 하는가에 따라 음식을 향한 감각이 달라짐을 경험했다. 그러니까 그릇과 플레이팅은 ‘음식을 빛나게 하고 식탁에 온기를 불어넣는 마법’과도 같은 것임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릇은 참 신기하다. 품는 물건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보자기처럼, 그릇도 담는 음식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77쪽)

 

백지원 요리연구가는 이날 비빔밥, 매콤 삼겹살 구이, 꼬들꼬들 오이, 타피오카 오미자 화채 등을 준비했다. 비빔밥을 위한 나물을 준비했는데, 거의 간을 하지 않다시피 슴슴하게 준비했다고 했다. 밥도 적게 담아 나물을 많이 먹으면서 진짜 나물의 맛을 느껴보라고 권했다. 나물마다 양념을 다하면 염분 섭취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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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재료


A. 밥 8인분


B. 나물


애호박 2개, 어로 2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오이 3개, 소금 2큰술, 물 1컵-참기름 1작은술, 느타리버섯 350g, 참기름 2작은술, 어로 1작은술, 빨강색 파프리카 2개, 요리유 1작은술, 소금 약간, 노랑색 파프리카 2개, 요리유 1작은술, 소금 약간, 가지 3개, 요리유 1큰술, 어로 1/2큰술, 표고버섯 12개, 참기름 1큰술, 어로 1작은술


C. 양념장


소고기 양념장 : 소고기 500g, 참기름 2큰술, 다진마늘 2큰술, 다진파 4큰술, 어로 3큰술, 다진 양파 2/3개, 다진 청양고추 1개
바지락 양념장 : 참기름 1큰술, 다진마늘 1큰술, 다진파 2큰술, 다진양파 2/3개, 바지락살 500g, 어로 1큰술, 다진 청양고추 1개

 

제철 채소와 나물이 그렇게 준비됐다. 독자들에게 부엌에 있는 그릇 하나씩 집으라고 권했다. 모두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가진 그릇들의 향연. 각자 그릇을 하나씩 집어 들고 나물을 플레이팅했다. 백지원 연구가는 각자 플레이팅한 것에 대해 한 마디씩 품평회를 던졌다. 그리고 이윤신의 그릇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윤신의 그릇이 워낙 다양한데 활용도도 높고 무엇보다 선이 예쁘다. 그릇이 커서 많이 놓아도 예쁘다. 화가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욕망을 숨기지 못하듯 이곳 그릇도 그렇다. 참 예쁘고 좋은 그릇이 많고 음식 궁합도 잘 맞는다.”

 

『포크를 생각하다 : 식탁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식탁에 올려두고 사용하는 여러 기술과 도구를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 부엌과 식탁에 있는 수많은 도구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사와 사건, 수많은 발명이 쌓인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음식과 식탁 예절을 변모시키고, 문화로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그릇이라고 다르지 않다. 음식을 담는 물질로서 그릇은 식감과 식욕을 돋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요리 기법이 바뀌고, 최첨단 요리 도구, 다양한 플레이팅 기법이 등장한다손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요리라는 과정, 그리고 함께 나눠먹는 과정이다. 각자가 지닌 감각으로 플레이팅을 마친 독자들에게 비빔밥이라는 선물이 다가왔다. 나물을 정성스레 플레이팅한 비빔밥의 맛은 또 달랐다. 결국엔 섞고 말 것임에도 그릇이 주는 포스가 있었다. 정성스레 준비된 오이지도 군침을 돌게 만든다.

 

“음식은 나눠먹어야 하고 음식을 보고 안 먹으면 안 된다(웃음). 지금 먹을 오이지는 다시없을 오이지다. 곧 물이 넘치고 향이 배일 텐데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정말 입맛이 다시 돌아온다.”

 

백지원 연구가는 오지지 만드는 법도 간단하게 읊는다. 오이를 길게 자른다. 물에 소금을 넣고 끓여서 1시간 30분 있다가 어슷썰어서 베주머니에 넣고 짠다.

 

 

■ 꼬들꼬들 오이

 

재료 :끊는 물 5컵, 천일염 70g, 오이 3개, 채 썬 양파 150g, 고춧가루 2큰술, 액젓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식초 2작은술, 매실청 2 1/3큰술, 설탕 2큰술, 통계 1작은술, 송송 썬 쪽파 2작은술(기호대로)

 

만들기


1. 오이는 반으로 잘라 끓는 소금물에 1시간 30분 절인다


2. 절여진 오이는 4mm 두께로 썰어 물기를 꼭 짠다.(2~3회에 걸쳐 시간차를 두고 짠다)


3. 양념을 모두 섞어 오이, 양파를 넣고 고루 버무린다


4. 기호에 따라 통깨, 쪽파를 뿌려낸다

 

 

“지금 양파가 제철인데 연하고 아삭거린다. 섬유질이 풍부하다. 여름엔 배추김치가 맛이 없다. 배추에 섬유질도 없고 수분이 많다. 아무리 솜씨가 좋은 사람도 맛있게 배추김치를 만드는 것이 힘들다.”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행복하다. ‘맛있다’는 말속에는 미각과 후각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릇과 요리의 궁합이 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릇 하나만 달리해도 요리를 향한 구애도 달라진다. 접시 높낮이를 달리하거나 굽을 다는 것으로도 식탁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 그릇에도 음식을 살리도록 하는 색깔이 있다는 백지원 연구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담을 때 우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게 만들었어도 어울리지 않는 그릇을 선택하면 실패다. 예를 들어 나는 접시와 볼의 사용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 두께가 얇고 넓적한 음식은 접시에, 볼륨이 있는 음식은 볼 쪽에 담는 것이 예쁘다. 우리나라 음식은 대부분 옆으로 퍼진 접시보다는 약간 오목하고 깊이가 있는 그릇이 어울린다.”(18쪽)

 

매콤한 삼겹살 구이도 준비됐다. 먹기조차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스타일링과 플레이팅된 삼겹살 구이지만 먹어보지 않는 음식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과감하게 한 점 두 점 독자들은 삼겹살 구이를 집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고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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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콤 삼겹살 구이

 

재료 :삼겹살 600g, 매실청 2큰술, 다시마물 6컵, 설탕 2큰술, 매실청 2큰술, 고춧가루 3큰술, 고추장 4큰술, 다진파 4큰술, 다진마늘 2큰술, 미림 2큰술, 간장 2큰술, 깨소금 1큰술, 참기름 2큰술, 깻잎 20장, 양파 1/4개, 영양부추 20g

 

만들기


1. 매실청과 다시마 물을 끓여 삼결살을 삶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준비된 양념을 모두 섞어 양념의 2/3 분량에 삼겹살을 30분 재운다


3. 약한 불로 삼겹살을 구운 후 남은 양념을 앞뒤에 발라 살짝 더 구워낸다


4. 양파, 깻잎은 채 썰고 영양부추는 3cm 길이로 썰어 얼음물에 담궜다 건진다


5. 접시에 삼겹살을 놓고 그 위에 채소를 얹어낸다

 

이날의 요리와 플레이팅은 타피오카 오미자 화채로 맺음 했다. 이 화채를 마시자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향미를 그대로 입안에 품고 싶어서 물로 씻어낼 수가 없었다. 눈과 배가 호강한 하루, 행복은 별 것 아니다. 플레이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음식을 말할 때 그릇도 가능하면 말해주면 좋겠다는 것.

 

 

타피오카 오미자 화채

 

재료 : 오미자청 1컵, 물 4컵, 배 1/2개, 타피오카 펄 160g, 민트 1백

 

만들기


1. 타피오카는 끓는 물에 30초 삶아 건진다


2. 배는 모양 나게 썬다


3. 오미자청과 물을 섞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4. 배, 타피오카 펄을 넣고 민트잎을 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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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신의 그릇 이야기이윤신 저 | 문학동네
생활도예 1세대 이윤신이 그릇에 관한 이야기를 오롯이 모은 책을 냈다. 이윤신은 2004년 설립한 수공예 도자 브랜드 ‘이도(yido)’ 대표다. 이 책에서 그는 각양각색의 그릇을 식탁에 올리고, 밥상을 차리며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릇은 식탁에 올라와 음식이 담겼을 때 비로소 빛난다”는 단순한 진실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말하자면 이 책은 찬장 속에 모셔둔 도자기 ‘감상 안내서’가 아니라 식탁 위 그릇 사용을 위한 ‘실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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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뒤흔든 소금, 모피, 보석,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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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한두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그간 발간된 세계사 책 목록만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다. 날씨가 어떤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기술의 발달이 세계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치명적인 몇몇 인물들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모습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상품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삶을 해석한 책『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역시 그래서 흥미롭다. 저자 홍익희는 소금과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등 다섯 가지로 세계사를 읽어냈다. 문명의 기반이 되는 도시의 발달이 소금을 통한 교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척박한 땅 시베리아를 개척한 것이 모피를 얻기 위한 강한 경제적 동인에 인한 것이었다는 사실 등 인류를 좌지우지했던 매력적인 다섯 가지가 세계사에 어떻게 기능했는지 살핀다.


지난 7월 16일 동교동에서 진행된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 홍익희 저자는 가장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난과 생존


“사람들이 살기 편한 곳은 온대나 아열대 지역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문명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온대 지역에서 모두 발현했어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굶어죽거나, 대비하지 않으면 얼어 죽는 기후죠. 즉 문명은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곳에서 발현했습니다.”

 

토인비는 문명은 도전과 응전 속에서 발전했다고 말했다. 위기나 도전이 발전을 가져왔다는 지적이었다. 저자 홍익희는 이를 감람나무(올리브 나무)를 들어 설명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감람나무입니다. 사막성 기후에서 사는 감람나무는 살기 위해 뿌리 내리는 데만 15년 이상을 쏟습니다. 최초의 열매를 맺는 건 거의 20년이 다 될 때입니다. 바로 그 최초의 열매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기름이 나오죠. 그 첫 열매에서 나온 기름을 ‘엑스트라 버진 오일’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왕의 머리에 바르는 데 사용했어요.”

 

고난을 극복한 생명이 강하게 진화한다. 소금 역시 고난과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인류 문명사의 가장 중요한 상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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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시작에 크게 기여한 ‘소금’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보자.

 

수메르문명이 발생할 수 있던 것은 야생 밀과 소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이후 메소포타미아 강 하류에 수메르문명이 꽃피면서 기원전 5300년경부터 에리두를 필두로 도시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택, 성벽, 지구라트 등 도시 건축과 설형문자가 탄생했다.(13쪽)

 

“도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당시에 이미 교역이 발전했다는 의미입니다. 농업, 어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로 교환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도시예요. 고대는 생각처럼 그런 원시시대가 아닙니다.”

 

소금은 교역과 시장 발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금 생산지에서 멀어질수록 소금 가격은 엄청나게 상승했다. 때문에 소금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왔고, 도시는 번성했다. 소금을 사간 상인들은 소금 생산지에서 먼 곳으로 가 소금을 되팔았고 큰돈을 벌었다. 인류 최초의 도시 예리코(Jericho,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도시)가 사해 옆에 형성된 도시라는 점을 떠올리면 된다.

 

성경에서는 이 도시를 ‘종려나무의 도시’라 부른다. 지금도 예리코 오아시스 근처에는 종려나무가 많다. 일면 대추야자나무로 불리는 종려나무는 광야에 사는 사람들의 귀중한 식량이었다. (21~22쪽)

 

페니키아인들 역시 소금을 다른 민족에 비싸게 되팔면서 소금을 이들 무역의 근원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소금을 사기 위해 페니키아로 모였고, 페니키아인들은 소금을 주석과 교환하면서 유럽의 청동기 문화를 이끌게 된다. 청동기 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다름 아닌 소금이었다는 사실이다.


페니키아와 자주색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페니키아’는 ‘자주색 옷을 입은 사람’이란 뜻이에요. 당시 자주색 옷은 수십만 마리의 뿔고둥의 내장을 모아서 짜야 나오는 소량의 염료들로 만든 것이에요. 고대부터 가장 비싼 색의 옷이 자주색 옷이었습니다. 아무나 못 입어요. 왕족이나 추기경만 입을 수 있죠. 그래서 자주색 자체를 추기경이 색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소금은 희귀하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천혜의 염전을 보유한 우리에게 소금은 다양한 식문화를 발전시킨 강력한 동력이었다. 저자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 천일염이 많이 나기 때문에 흔하게 생각하지만요. 소금은 쉽게 생산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현대에도 바다에서 만드는 천일염은 전체 소비량의 몇 퍼센트 되지 않아요. 대부분은 땅 속에서 파낸 암염을 사용해요. 우리나라 서해안만큼 드넓은 갯벌을 갖고 있는 곳이 다섯 군데 정도 되는데요. 그 중에 서해 갯벌이 가장 좋은 갯벌입니다.”

 

소금은 유럽 문명에 뿌리 깊은 영향을 주었다.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sal’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 초기에는 소금이 화폐의 역할을 했다. 관리나 군인에게 주는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했다. 이를 ‘살라리움(salarium)’이라 했다. (중략)봉급을 뜻하는 샐러리, 봉급생활자를 일컫는 샐러리맨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참고로 ‘soldier(병사)’, ‘salad(샐러드)’ 등도 모두 라틴어 ‘sal(소금)’에 어원을 두고 있다. 채소를 소금에 절인다는 뜻에서 샐러드는 ‘salada(소금에 절인)’에서 나왔다. 심지어 사랑에 빠진 사람을 ‘salax’라 불렀다. 채소를 소금에 절인 것처럼 사랑에 취해 흐물흐물해졌기 때문이다.(29쪽)

 

 

세상을 움직인 ‘모피’


인간이 처음 만난 옷감은 동물의 털가죽이었다. 동물의 모피는 사냥의 기념품이자 최초의 의복이었다. (중략)모피가 신성하고 귀한 소재였던 만큼 그 값어치도 만만치 않았다. 인구가 늘어나고 공급이 제한되면서 모피는 대표적인 사치품이 되었다.(103쪽)

 

시베리아. 그 추운 땅에 섣불리 들어가려고 한 사람은 없었다. 16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뒤늦게 시베리아가 개척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모피’였다.

 

“당시 모피가 대유행을 합니다. 시베리아에 들어가서 담비를 잡으면 큰돈을 벌었어요. 모피 상인이 시베리아를 개척하는 속도가 군대가 진격하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어요. 순식간에 시베리아를 상인들이 다 개척을 합니다. 경제적인 동력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에요.”

 

미국의 서부 대륙 개척, 알래스카 개척 모두 모피로 인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한반도 인근에서는 모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시아에서 모피 동물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 어디일까요? 백두산입니다. 백두산 일대에는 호랑이나 표범 등 많은 동물이 있었어요. 그 모피를 사기 위해 많은 장사꾼들이 고조선이나 발해, 고구려를 찾았을 겁니다. 고대 역사학자가 중앙아시아에서 모피를 찾아 발해까지 찾아온 길을 발견했어요. 그만큼 모피가 우리 역사에도 큰 역할을 했을 텐데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요. 그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1625년 서인도회사는 아메리카 대륙의 섬 맨해튼에 가죽거래교역소를 세운다. 모피를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그 섬에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과의 싸움도 치열했다. 책에는 ‘월가(Wall Street)’라는 이름의 탄생 배경에 관한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교회나 도로의 건설이 진행되면서 인디언의 습격을 막기 위해 통나무 벽을 쌓았다. 1653년에는 맨해튼 남단에 영국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목책(Wall)도 세웠다. 그 뒤 나무목책이 세워진 거리와 인접한 거리를 ‘월가(Wall Street)’라 불렀다.(118쪽)

 

인간들의 모피 사냥으로 바다표범, 해달을 시작으로 현재는 밍크, 여우, 너구리 등이 치명적인 죽음을 당하고 있다. 바다표범의 경우 수세기 동안 사냥을 당한 결과 숫자가 80%나 줄어든 20세기 초부터 비로소 산업의 쇠퇴가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금만큼이나 무서운 경제적 동인으로 모피가 세계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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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자본주의


보석 산업이 확대된 데에는 유대인들의 영향이 컸다. 무엇보다 보석 산업은 유통의 폐쇄성이 특징이다. 그야말로 독과점 체제인 것인데, 이 체제를 유지해야 수급 조절이 자유롭고 보석의 고가정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유 시장에 맡기면 어떻게 될까요? 다이아몬드는 하루아침에 돌값이 되겠죠. 그런데 이러한 보석 시장에 중국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서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 2위의 다이아몬드 소비시장이며, ‘타오 바오(Tao bao)’ 등 중국의 인터넷 쇼핑몰들은 적지 않은 다이아몬드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인터넷 쇼핑몰의 향후 발전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보았다.


한편 보석의 역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론의 단초가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영국의 존 홉슨(John Atkinson Hobson)은 1899년 보어전쟁 취재를 위해 남아공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한 줌도 되지 않는 유대인들의 탐욕에 의해 자신의 조국, 영국이 제국주의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 후 그는 『제국주의론』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긴다.

 

“결국 이 『제국주의론』이라는 책이 레닌(Vladimir Il'ich Lenin)에게 연결이 되어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낳았고, 후에 홉슨이 얘기한 ‘과소소비설’은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유효수요이론의 원형이 됩니다. 공산주의의 핵심이론과 자본주의 이론이 보석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보고 쓴 홉슨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커피의 역사


“모카커피 아시죠? 무엇을 모카커피라고 할까요? 과거 아라비아 반도에 사는 유대인들이 커피를 독점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 있습니다. 우선 절대 생두 상태로는 다른 곳에서 키우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에요. 또 수출하는 항구를 한 군데로 묶어버렸어요. 그 항구 이름이 모카였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모카 항구에서 온 커피를 다 모카라고 불렀어요.”

 

1616년 동인도회사는 인도에 몰래 들어가 커피 원두와 묘목을 밀반출해낸다. 네덜란드에 그렇게 밀반출한 커피 묘목을 재배하다 해충 피해를 입고 재배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들은 다시 재배지를 인도네시아로 옮긴다. 그곳에 바로 ‘자바’지역이다.


네덜란드는 아메리카 식민지에도 커피를 전파한다. 가이아나, 수리남, 카리브 해 등에 커피를 옮겨 심어 재배에 성공하게 된다. 이 중 수리남에서 자라던 커피는 이후 브라질로 들어가는데, 책에는 브라질에 커피가 전해진 로맨틱한 사연이 있다.

 

프랑스령 가이아나의 총독 부인이 화려한 꽃다발 속에 커피 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브라질로 퍼져 나갔다.(274쪽)

 

역사를 쫓다 보면 사건이 되는 중요한 물건들이 아주 많다. 저자는 활, 마차, 펌프, 도자기, 화약, 종이, 설탕부터 비교적 근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전구, 기차, 자동차, 전화기 등이 얼마나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 아주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 거대한 흐름 안에 우리 민족의 위치를 꼼꼼하게 살피며 좀 더 다양하고 적극적인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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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홍익희 저 | 행성B잎새
기존 출간도서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서술 대상이 되는 상품들을 우리만의 시각으로 파악해 좀 더 독자들이 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야기들이 많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지금까지 유용하게 쓰이는 상품들의 역사는 단지 책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박제된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보완해 미래의 새로운 상품 교역의 활로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진행형’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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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저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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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연회에서는 광고회사 TBWA의 카피라이터인 저자 김민철이 기록한 모든 요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카피라이터로 생활하고 있는 에피소드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책에서 다룬 그녀의 '스승'들에 대해 다양한 영상자료를 토대로 보여주며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의 스승에 대해 김민철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이번 강연은, 작가의 지난 여행의 기록도 함께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여행의 기록들을 돌아보는 작가의 표정은 마치 소녀처럼 설렘이 가득했다. 여행 중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한 어떤 여자의 무덤 묘비명을 읊어주던 작가는 그 날의 감정이 떠오르는 듯 아련하면서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여기 두 번 축복받은 한 여자가 누워있다. 그 여자는 행복했고,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
 
이번 강연에는 김민철 작가처럼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지망생들도 많이 참석했다. 이상 속 카피라이터의 모습과 실제 카피라이터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현실의 카피라이터는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강연이라기보다는 마치 인생 선배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번 강연회에는 유독 많은, 그리고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글은 주로 어떻게 쓰고 있나?


개인 홈페이지를 갖고 있어, 그곳에 글을 기록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제외하면 글을 쓸땐 주로 손 글씨를 애용하며, 카피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요일의 기록』서문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손 글씨로 썼고, 이렇게 서문을 쓰고 나니 그 다음부턴 잘 써졌다.
 
TBWA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원래 취직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 4학년이 되자,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는데 무려 50군데였다. 하지만 다 떨어지고 TBWA는 마지막에 붙은 곳이다.
 
지금까지 쓴 카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카피는?


'진심이 짓는다' (대림 e편한세상) 처음부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정말 단순하게 썼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진심'이란 키워드가 들어왔고, 건축회사이다보니 '짓는다'를 붙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의미가 덧붙여지고 나니, 대단한 것이 되었다. 이렇게 처음엔 별 게 아니지만 무언가가 되고 나면 의미는 그때부터 덧붙여지는 것 같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50군데 이력서를 넣고 다 떨어지고는 거의 마지막쯤 제과회사 영업사원 면접을 봤다. 최종 면접 질문이 '동네 슈퍼에 갔는데, 냉장고에 우리 회사 아이스크림이 제일 아래 깔려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였다. 순간 든 생각 '내가 알 게 뭐야'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면접이 끝난 후 받은 면접비 3만원으로 막내이모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박웅현 작가와 같은 팀에서 일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웅현 작가의 강연에서도 김민철 작가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하는데, 박웅현 작가는 오늘 강연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하셨는지?


워낙 서로 무뚝뚝한 사이라, 낯간지럽게 응원을 해주거나 그러진 않는다. 편하게 이야기하고 오라는 정도로만 하셨다.
 
요즘 SNS 같은 것을 보면 나만 빼고 다 잘사는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낀다. 작가님은 이런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SNS상에서 나만 소외되는 느낌, 나도 그렇다. 나 빼고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나 빼고 다 친한 것 같고. 생각해보면 내 SNS만 봐도 상당히 이상적이다. 현실은 화장도 안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SNS에는 유럽여행 사진을 올리고 있고. 나도 SNS에 올릴 때 즐거운 모습들 같은 편집된 인생을 올리는데, 남들도 같지 않을까. SNS에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됐는지?


처음 에디터에게 집필 제안을 받았을 때 못 쓴다고 했다. 평소 내가 쓰는 스타일과는 달라, 못 쓸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원래 문장이 길고 무거운 만연체인데, 힘을 빼고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안 쓰려고 했는데, 에디터가 일기를 쓰듯 일상을 기록하는 거라고 이야기해서 쓰는 건 부담스럽지만 기록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이 책은 김민철 작가와 남편의 서재 중 누구의 서재에 꽂혀 있나?


아직 서재에 꽂히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소화가 안 된 것 같다. 책이 내 책이 맞는 건가, 아직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꽂히게 된다면 남편의 서재에 꽂히지 않을까 싶다.


강연 내내 김민철 작가는 자신만의 '보석'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신만의 '스승'과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나만의 프레임으로 자신만의 보석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한 김민철 작가. 그녀는 보석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라며 싱그럽게 웃어 보였다. 자신만의 보석을 잔뜩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 김민철 작가의 모습에서 백 마디 말보다 더 귀한 보석 같은 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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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저 | 북라이프
스스로에 대해 “같은 구절을 수백 번 읽어도 고스란히 잊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쓴 카피 한 줄도 못 외우는 카피라이터”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모든 악조건을 성실함,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실한 ‘기록’으로 극복해냈다. 살아남기 위해 회의 시간에 작성한 회의록을 바탕으로 2011년, 《우리 회의나 할까?》라는 책에서 TBWA KOREA의 지난한 회의실 풍경을 밀도 있게 그려냈던 저자는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배경을 자신의 ‘일상’으로 이동해 10년차 카피라이터가 아이디어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과정들을 꼼꼼하게 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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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어떻게 미국 유학생들이 한국의 엘리트로 변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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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은 지식 생산 능력에서 큰 격차를 보이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은 이 간극에서 트랜스내셔널 기회를 포착한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어떤 의미에서 지식 생산의 경제적 지위를 뜻하며, 지식인의 계급적 질서에서 중간적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미들맨 소수자가 식민지적, 전근대적 상황에서 출현하듯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한국 학계의 지적 식민성과 전근대성 속에서 탄생한다.(중략) 따라서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의 주요 생존 전략은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 받아들여 한국의 로컬 지식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25쪽)

 

위치는 언제나 상대적이어서 한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자리하던 사람이 다른 사회로 가 엘리트 지위를 차지하는 일은 늘 일어난다. 이렇게 엘리트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은 ‘지배받는’ 지배자가 되어 이방인으로 살며 배운 지식과 가치 등을 이 사회에 전파한다. 이들은 또한 자신에게 부여된 엘리트 지위를 폐쇄적으로 사용하고 주변인을 배제함으로써 또 다른 ‘이방인’을 양성한다. 이른바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들이다.


지난 7월 20일, 벙커1 카페에서는 『지배받는 지배자』의 저자 김종영 교수가 미국 유학생들이 한국의 엘리트로 변신하는 과정과 결과를 다층적으로 분석해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미국으로 유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년간 심층 면접을 통해 사례 연구한 김종영 교수는 무엇보다 ‘1급 체제’의 국내 학계 분위기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또한 국내 대학의 교수직을 차지하기 위해서나 직장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기 위해서 미국 유학을 통한 학위 습득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다시 많은 사람들이 미국 유학을 결정하도록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


김종영 교수는 우선 비민주성, 폐쇄성, 비합리성 등을 국내 학계의 특징으로 지적하며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합리적인 미국 대학의 연구 분위기가 유학생을 유입하는 강한 힘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막스 베버는 합리성이 결여된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라고 했는데요, 저는 합리성이 결여된 한국 대학과 학문 공동체를 ‘천민 학문 공동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과격한 말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학술적 측면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엘리트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은 국가 경제와 교육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직업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펼치고 싶어한다.”(41쪽)


지방대 출신, 여성 등의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같은 학부 출신 학생을 우선으로 하는 상위권 대학의 대학원들은 이들에게 기회의 제공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미국의 대학원은 학부의 학교를 따지지 않는다. ‘기회의 땅’이 되는 순간이다.


김종영 교수는 또한 한국과 미국 사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중간에 위치하면서 이익을 보는 지식인을 ‘미들맨 소수자 이론’으로 설명했다.

 

“이런 이론에 기반한 저의 연구 대상은 지식인들입니다. 이들이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느냐면 미국과 한국 중간에 위치했고, 글로벌 지식과 로컬 지식의 중간에 위치한 지식 매개자 역할을 전담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입니다.”

 

김종영 교수가 만난 많은 미국 유학생들은 이와 같은 점을 증명하듯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분에게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 오는 한국 부모들과 자녀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 지구 반대편까지도 가는 겁니다. 기러기 가족이 있는 나라가 몇 곳이나 될까요. 한국, 홍콩, 타이완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내 자녀가 한국을 넘어서서 교육 받고, 직업을 가지길 바라는 거죠.”

 

또 이들이 가진 중요한 ‘유학’의 원동력은 폐쇄적인 한국 사회의 학벌 차별, 성 차별 등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였다. 이것이 바로 미국 유학의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강릉대 조명석 교수님이 『강릉대 아이들, 미국 명문대학원을 점령하다』라는 책을 썼어요. 이 분 역시 미국 유학파인데 한국에 와서 보니 제자들이 너무나 공부할 의욕이 없던 거예요. 또 제자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시키려고 했는데 많은 실패를 겪었어요. 그래서 직접 미국 명문 대학원에 제자들을 보냅니다. 그 학생들이 세계 굴지의 기업에 취직을 하고요.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쓰셨어요. 미국 유학이라는 것이 한국 대학의 어떤 비민주성을 해소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미국 유학을 결정한 유학생들의 경험은 그야말로 ‘똥밭’을 구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이방인’의 자리를 쉽게 벗을 수는 없었다. 김종영 교수는 이를 ‘똥밭이 거름이 되기를 꿈꾸는 이방인’이라고 표현했다.

 

즉 트랜스내셔널 이방인으로서 미국 유학생은 한편으로는 ‘똥밭’을 구르지만 이는 자신의 미래에 ‘거름’이 되는 가치 있는 장소라는 이중성을 띤다. 미국 대학의 교수진이 전수하는 학문자본의 양과 질, 미국 대학 인프라의 탁월함, 대가라는 학문 권력과의 만남, 우수한 연구 네트워크, 미국 학문 활동의 에토스와 규범은 한국 대학이 제공하지 못하는 귀중한 ‘거름’이다. 이것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미국 대학은 학문을 하는 이상적인 장소로 인식되고, 미국 대학의 학문적 규범은 누구나 따라야 할 준거가 된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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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더럽다(Academia Immunda)’

 

“공부라는 건 감정적인 것이죠. 집단적인 분위기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다 같이 공부 안 하는 집단에서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들은 교수의 연구 활동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한다. 또한 연구 실적에 따라 교수를 차등 대우한다. 연구 업적이 적으면 대우가 없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은 연차가 쌓이면 월급도 자연히 쌓이는 구조다. 연구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학벌 체제, 폐쇄적 학문 문화 등이 큰 벽으로 가로놓여있기 때문이다. ‘다 같이 공부 안 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미국의 국공립 대학에서는 교수의 연봉을 인터넷에 공개하게 되어 있어요. 사이트에 가면 그 사람의 연봉을 알 수 있어요. 어느 교수가 실력이 있는지 알려면 연봉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자본주의적이에요. 잔인한 것 같지만 합리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알 수가 없죠.”

 

미국 대학의 학과장이 학문적으로 성과를 낸, 학과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권력자라면 한국 대학의 학과장은 일종의 명예직으로 학문적으로 탁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이 많은 교수가 학장과 학회장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한국 대학에서는 그가 특정 학벌이나 파벌의 리더일 가능성이 크다. 리더십은 물론 기대할 수 없다.

 

“여러분이 보셨듯이 정치만 더러운 게 아니에요. 학문도 더러워요. 왜냐하면 글로벌 권력 관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학문 공간이 언제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는 공간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헤게모니 안에서 영원히 속박된 채 중간 지식인으로 살려는 개인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연구 현장의 확대, 개방적이고 실력 위주의 학술 문화 구축 등을 말하는 김종영 교수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였다.

 

제국의 대학이 한순간에 세워진 것이 아니듯이 한국 대학의 부상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서 지금의 한국 대학이 처한 현실이 숙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중략) 한국의 공학 분야가 세계 수준에 근접했고, 몇 개 대학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 대학의 상당수 연구진들은 중요한 글로벌 행위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연구 문화를 합리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실력주의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한국 대학이 독수리가 되어 비상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301쪽)

 

이어 미국과 한국의 연구 문화, 거시적 관점의 지배 체계, 사회, 문화적 차이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미국 대학의 우월성은 계속 될 것인가?


앞으로의 일들은 예측할 수 없지만 당분간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단적으로 세계의 가장 우수한 대학 중 절반이 미국 대학이니까요. 구조적, 문화적 우월성이 있어요. 격차를 줄이는 데 있어 비교적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대학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일본이 아닐까 싶어요. 일본 사람들은 미국 유학을 잘 가지 않는데 그만큼 우수한 대학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어찌 보면 그런 우수한 대학들을 만드는 게 시급한 과제겠죠.


최근에는 미국 대학들도 어려워졌어요. 경제 상황 등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죠. 외국 유학생들도 많이 받고 있고요. 헤게모니가 변동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지식이나 좋은 제도가 한국에 수입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이유가 뭘까?


위치 경쟁의 구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야 하는데요. 흔히 말해 1급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서울대 중심 엘리트 학교의 지위가 있죠.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요. 근데 모든 사람이 다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합니다. 방법론의 철학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위치 경쟁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중심의 대학 체제를 전국적인 우수 대학으로 골고루 퍼지게 해야겠죠. 가령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같은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있겠고요. 궁극적으로 탈중심, 다원적 체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한 분들 중 차별을 겪어서 한국에 다시 온 분들도 계신지, 차별을 견디면서까지 미국 유학을 한 것에 회의를 느낀 사례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국내에서 지방대를 나오시고 미국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따신 분이 있는데요. 이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한국이 더 차별적이라고요. 한국 사회가 차별적이죠. 그분만 하더라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게 국내에서는 걸림돌이 되었어요. 1급 체제에서 소수의 몇 개 대학을 나와야 하는 거죠. 물론 미국에도 인종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학식이 높을수록 인종 차별에 대해서 민감한 거예요. 표면적으로는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야죠. 한국에서 차별이 너무 심해서 미국에서 사는 게 낫다고 말하시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분들이 대다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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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저 | 돌베개
이 책은 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이 학계와 기업에서 어떻게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는지를 탐색한다. 미국 유학파 엘리트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어떤 상황과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분석하고,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규명한다. 이를 통해 학벌사회의 최상위에 있는 한국 엘리트 지식인 집단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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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행복, 나, 꿈을 적는 나의 첫 다이어리 북 『고민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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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고민이 있냐는 질문 앞에 ‘NO’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늘 고민을 한다. 하던 고민이 끝났는가 하면 다시 새로운 고민이 고민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어떤 고민은 나를 짓누를 것처럼 무겁고, 어떤 고민은 큰 숨 정도로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가벼운가 하면, 어떤 고민은 떠나갔다 다시 돌아와 질기도록 같은 괴로움을 또 안겨주기도 한다. 고민이 나를 괴롭히는 나쁜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훨씬 많지만 어쩌면 고민은 나를 지탱하는 단 하나의 버팀목이자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는 유일한 동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고민의 발견』은 고민이 외로이 은폐되지 않도록 손을 내미는 다정한 친구 같은 책이다. 나도 이런 고민을 합니다, 누구나 고민 앞에서 이렇게 흔들립니다, 하고 솔직하게 말해준다. 책의 저자 줄리와 유지는 고민, 행복, 나, 꿈, 등 네 가지 열쇳말을 가지고 당신의 고민을 우리와 함께 나누자고 제안한다. 저들의 고민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자들의 민낯에 독자가 무장해제 되는 까닭은 아마도 이런 솔직함에 있을 것이다. 예쁜 이 책을 따라 고민을 끼적이다 보면 그들의 말처럼 ‘고민으로 얼룩진 마음은 글이 되어 흩어’진다.


수시로 소나기가 다녀가는 무더운 여름, 평일 한낮에 홍대의 한 카페에서는 『고민의 발견』의 두 저자 줄리와 유지가 독자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기 위해 기꺼이 모였다. 맥주 한 잔, 따뜻한 노래, 다정한 말들이 어우러져 낯선 이가 친구가 되는 특별한 만남이 아담하게 꾸며진 것.


“나의 고민을 한 번 들으면 그 고민이 바로 풀릴 때도 있어요”라는 저자 줄리의 말처럼 고민이란 그저 말하는 것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고민을 이해하고, 누군가는 고민을 두고 자리를 떠나게 됐을 것이다. 혹, 그보다 훨씬 무거운 고민이 여전히 남았으면 어떠랴. 그 고민이 당신을 든든하게 지켜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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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발견하다


싱어송라이터 도마의 축하 공연으로 고민 상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도마는 저자 줄리의 페이스북 친구다. 이런 독특한 인연으로 행사에 초대되었다는 도마는 책 『고민의 발견』에 대해 “썸을 이끄는 책”인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특히 저자 줄리의 신청곡 <너 가고 난 뒤>를 부르며 함께 모인 공간의 분위기를 촉촉하게 만들어주었다.


저자 줄리는“많이 와 주셔서 감사드려요. 회사를 많이 옮긴 게 자랑은 아닌데 그만큼 노하우가 쌓인 것 같아요. 자기 소개서는 정말 잘 쓰는 것 같고요.(웃음)”라는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유지는 “저는 제 자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편인 것 같아요. 남들보다 조금 느린 편이라 여러분들과 자존감, 신세한탄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며 자리를 차지한 독자들의 고민에 손을 내밀었다.


낮술, 고민, 그야말로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단란한 자리, 그곳은 ‘고민’이 ‘발견’되는 것이 가능한 곳이었다.

 

사전에 댓글로 받은 고민을 낭독한 것은 성우 김소형이었다. 그 역시 저자와의 친분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성우의 목소리로 듣는 고민은 그대로 특별함을 지닌 새로운 이야기로 공간에 흩어졌다.

 

자, 이제부터 모든 개인들의 보편적인 고민들을 들어보자.

 

짧은 연애가 힘듭니다. 그냥 사랑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항상 결말이 이러네요. 밤마다 이유 없이 막연한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에 우울함에 빠지고 또 낮엔 아무렇지도 않고. 남들에겐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이미지로 보이는 나의 모습과 쓸모없는 자존심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내가 참 답답합니다.


유지: 저와는 많이 다르시네요. 저는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어려워서 사람을 많이 못 만나본 게 오히려 콤플렉스예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만나보고 싶은데 말이에요. 끊임없이 만나는 것도 저 같은 사람들은 부러워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완급 조절을 해야겠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우연히 들은 얘기인데요. 5년 뒤 나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이나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늘 소설만 읽는 사람,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사람은 5년 뒤에도 똑같은 거예요. 5년 뒤에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도 만나보고, 안 만나보던 사람도 만나는 거죠. 그래야 살아가면서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애에서도 그렇겠죠. 다음 사람에게는 진짜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휴학하면서 마음의 공황기도 거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도 생기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을 괴롭히는 게 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네요. 무엇보다 한 번 크게 앓고 나니 이런 깊은 고민을 말할 상대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창시절을 거치며 성격이 많이 소심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고 하고 싶은 걸 뚝심 있게 했는데 말이죠. 저는 신경 쓰지 않는 건 관심 없지만 신경 쓰는 건 사소한 것도 예민하게 이것저것 생각해 스스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인생에서 과감하고 중요한 선택들을 많이 하면서 신념에 따라 살고 싶은데 이런 성격이 큰 걸림돌입니다.


줄리: 성격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정말 예민해요. 착해 보이는지 저만 보면 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는데요. 솔직히 듣기 싫을 때도 있거든요. 예민하고, 소심하고, 힘들다고 말해도 정말 안 믿어요. 저는 계속 어필하거든요. 예민하다고요. 그래서 저만의 노하우를 개발했어요. 1년에 3개월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놀아요.(웃음) 안 그러면 너무 힘드니까요. 1년에 3, 4개월만 열심히 하고 그 에너지를 다른 데 투자해보세요.

 

유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말을 하셨어요. 사실 하고 싶은 것을 몰라서 고민인 분들이 정말 많잖아요. 힘든 시기를 거쳐 하고 싶은 것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꽤 나이가 있는 분들조차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하고 싶은 것이 생겼으니 남들 시선에서 더 자유로워지셨으면 좋겠어요. 가끔 내 자신을 놓아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강박적인 면이 있는데 가끔은 ‘포기야, 못해’ 해버리는 것도 제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더라고요.

 

휴가 내고 왔어요. 제 고민은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애정을 줄 때마다 늘 실망하고 떠나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말에 봉사단 활동을 하며 친해진 친구들이 있어요. 잘 맞는다고 생각했죠.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것도 같이 먹었어요. 한 번은 같이 만나서 봉사활동 장소로 가자는 약속을 깜박해서 저 혼자 그 장소로 바로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오해가 생겼어요. 제가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친구가 오해를 하니 무척 실망스럽더라고요. 그런 의사를 그 친구에게 전했더니 저를 차단해버리더군요. 이유를 모르겠네요.


유지:남자 입장에서 사연을 들었잖아요. 그 사이에 빠져있는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아마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 사소한 말투나 표정들이 그분에게는 차단할 만한 이유가 되었던 게 아닐까요. 조금 더 상세하게 관찰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또 지긋한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아무리 옆에서 화를 내도 진정을 시켜주고 든든하게 있어주면 지금은 그래도 나중에 다시 돌아볼 수 있거든요.

 

줄리:멘탈이 강한 편인데 좋아하는 남자가 제게 한 말은 이상하게 오래 가요. 차단을 할 정도였다면 감정이 있었다는 의미 같아요. 신경 안 쓰는 남자가 뭐라 해도 기억에 남지 않잖아요. 분노 역시 애정의 한 반응일 수 있으니까요. 포기하지 말고 좀 더 지켜봐주세요.

 

줄리 작가님에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제 고민은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은 회사를 그만 두었어요.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지금 하시는 일을 결정한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줄리:아직 더 방황해도 돼요. 이런 고민을 40, 50대에 하는 것도 무척 불쌍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30대시니까 차라리 지금 이런 고민 하시는 게 훨씬 낫고요. 이런 고민을 하는 지금이 정말 인생의 큰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서 직업이 열 개 정도 바뀔 만큼 다양한 시도를 했었는데요. 제 결론은, 일은 100%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어차피 일을 하면서도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안정기를 찾은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은 언제든지, 회사를 다니면서도 계속 찾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보셔야 해요. 많은 직업을 경험했지만 완벽하게 좋아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는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말이죠. 사명감이란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불가능하죠.

 

유지: 원래 사람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첫 직업으로 갖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어요. 혹 좋아하는 직업을 가졌더라도 좋아하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저 위에 있어요. 지금 그 일을 할 수는 없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축복받은 사람이고, 사실 그런 사람은 나이 어린 또래에는 드물어요. 좋아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일단 분야를 정해서 그 업계에 들어가 보세요. 일을 하다보면 하고 싶은 게 생겨요. 욕심도 나고요. 전혀 관심 없던 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더라고요. 이런 생각은 일 밖에 있으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조금 버티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요. 버티다보면 관심 없던 일을 잘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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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이 옮겨갔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선택의 순간에 어떻게 결심을 하고 삶을 살아왔는지 물었다.


김소형:다양한 성우 일을 하긴 했지만 방송국에 들어가진 못했어요. 중간에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 경험도 했죠. 한 마디도 못할 정도로요. 목소리가 안 나왔던 게 5년 전인데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뭘 해야 할지 정말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하고 싶은 일을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찾게 되는 일이 있더라고요. 타로 카드도 줄리 작가와 함께 배웠고요.(웃음) 아코디언도 그렇고요. 춤도 췄어요. 정말 많은 일을 배웠는데 그런 것들도 나중에 일이 될 수 있더라고요.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직업이란 게 알고 보니 ‘이런 직업도 있나?’할 정도로 직업인 줄 몰랐던 것들까지 직업인 경우가 의외로 많더라고요. 노는 게 직업인 놀이전문가도 있어요. 제게도 “여기 와서 놀아주세요. 돈을 드릴게요.”라고 하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우리가 아는 직업 말고도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일단 거기 들어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셔야 해요. 그러다 보면 ‘이걸 내가 한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하는 느낌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자 줄리와 유지는“결론은 자신 안에 있다. 발설해야, 써야 치유가 된다, 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아쉬운 낮술 고민 상담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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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의 발견줄리 앤 유지 저 | 이콘
고민의 발견은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살아가기에는 아쉬운, 그렇다고 나만의 개척하기에는 두려운, 어쩌면 너, 나, 우리와 같은 두 여인의 기록이다. 사춘기면 끝난다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아직도 거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자 하는 아름다운 몸부림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두 여인의 고백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도 서슴없이 꺼내놓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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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UFO와 외계생명체는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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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티칸 소속으로 천체를 관측하는 바티칸 천문대는 “지구 이외의 또 다른 행성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신(神)의 존재를 믿는 종교가 신 이외의 다른 ‘고등 생명체’의 존재를 거론한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서 약 1400 광년(1경3254조 km) 떨어진 곳에 지구와 가장 많이 닮아 있는 행성 ‘케플러-452b’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정말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의 존재가 있는 것일까.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 8월 5일, 서울 논현동의 한 북모임 공간에는 ‘UFO쇼’라는 이름의 흥미로운 북토크가 펼쳐졌다.『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의 공저자인 지영해 교수(옥스퍼드대 한국학)와 최준식 교수(이화여대 한국학) 등이 UFO(미확인비행물체)와 외계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독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디를 봐도 UFO는 우리 곁에 있어왔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이 UFO 현상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UFO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은 꽤 일치합니다. UFO가 전부 거짓이고 환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우리 인류들이 겪은 UFO 체험이 전부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32~33쪽) 

 

종교학을 전공한 최준식 교수는 어려서부터 UFO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월터 하우트라는 미국인의 유언장이 공개된 2007년부터 UFO 현상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에 의하면 미확인비행물체(UFO)라고 관찰되는 현상 중 5~10%가 설명이 안 된단다. 미국의 NARCAP(전미항공 이상현상보고센터)가 수집한 데이터를 보면 조종사, 항공관제사, 군?민항기 공항 레이다 기술자들이 보고한 UFO 목격 혹은 출연은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200건이 넘는다.

 

“미국 공군에서 엄밀한 잣대로 1948~1969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목격 사례의 6퍼센트 정도가 기존의 비행물체나 자연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확인’이라고 한다.”(33쪽)

 

또 우주의 곳곳에서 생물학적 다양성을 목격할 수 있음에도 외계인을 묘사한 거의 대부분은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가령 얼굴이 옆구리에 달려 있거나 발이 하늘을 향해 있는 등이 아니다. 최 교수는 이 문제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온 우주에서 각기 다른 몸의 형태를 지닌 생명체가 나올 수 있는데도 비슷한 형태의 외계생명체를 목격했다는 건 지구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생명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어 지영해 교수가 지구인이 외계인에게 피랍된 사례 등을 언급한 가운데 두 교수의 견해를 함께 전달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외계인은 왜 인간을 피랍 할까?

 

우리는 영화 등을 통해 외계인에 의해 인간이 납치되는 경우를 접했다. 영화의 내용에 따라 좋은 외계인과 나쁜 외계인이 등장했고, 납치한 인간을 이용해 자신들의 목적을 전달하곤 했다. 지 교수는 ‘납치’ 혹은 ‘피랍’이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딱히 이에 부합하는 단어가 없기에 피랍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양해를 구했다.

 

“(피랍된 인간의) 성비를 보면 65%가 여성, 35%가 남성이다. 외계인의 비행물체로 들어 올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1989년 11월 뉴욕 브루클린 다리 주변에서 핀다 코틸이라는 여성은 아파트 창문을 통해 세 명의 외계인과 함께 UFO로 빨려 올라갔다. 20여 명의 목격자도 있었다. 상당히 유명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렇게 피랍된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외계인들이 기억 자체를 건드린다는 것. 그래서 피랍자들은 언뜻 꿈의 형태로 이를 기억하기도 한단다. 피랍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미싱 타임(missing time)’이 발생한다고 지 교수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외계인에게 피랍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외계인은 인간에게 무슨 일을 벌이기 위해 피랍을 하는 것일까. 

 

“피랍 경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생체 실험이 있다. 여자와 남자는 각각 난자와 정자를 채집 당한다. 여성은 피랍 후 임신 증상을 느끼고 다시 2개월 후 재피랍 된다. 목적은 외계인과 인간 사이의 혼혈종 생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목적을 알 수 없는 각종 신체검사 및 사회성 관찰 등이 이뤄진다. 외계인들은 특히 피랍자들에게 지구상의 환경파괴 및 재난상황과 비슷한 영상을 보여주며 그 반응을 관찰하기도 한다. 단발성 피랍은 거의 없으며 일생을 두고 반복된다. 피랍자 부모의 자식들이 피랍자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UFO내에서 탱크 속에 떠 있는 수많은 혼혈종 태아를 보거나 성장한 혼혈종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영화 등을 보면서 외계인에게 피랍되면 어떨까 궁금하다면, 지 교수의 말을 명심할 필요도 있겠다. “납치는 상상 이상의 공포를 안겨다 준다! 로맨틱한 현상이 아니다.” 피랍의 증거는 의외로 많다고 한다. 피랍 보고자의 숫자가 연간 전 세계적으로 수천 건에 달한다는 것. 거의 대부분 정신적으로 건강한 보통 사람들이 피랍을 당한다. 지 교수는 피랍자들에게 공통적인 현상 중의 하나는 외계인이 피랍자의 몸에 임플란트를 심는다며 그밖에도 공통적인 증언 및 그림들도 있기에 피랍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인 ‘외계인은 누구인가, 어디서 오는가’를 따졌을 때, 두 교수는 외계인은 다른 별이나 다른 은하계, 지구 안에서 오지 않는다는 공통 견해를 갖고 있는 반면 ‘다른 차원(최준식)’과 ‘다른 공간(지영해)’에서 온다는 차이를 나타냈다.  

 

최준식의 해석
“외계인은 물질계와 정신계를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다. 외계인은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다. 물질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다른 차원일 경우에 가능하다. 외계인은 인간보다 한 단계 진화한 존재다. 외계인의 몸은 ‘의식 에너지체(conscious energy body)’다. 그러므로 우주선은 외계인의 사념으로 만든 에너지체라고 할 수 있다.”

 

지영해의 해석
“지구상의 인간 등 고등생물체는 외계인과 신체 구조가 비슷하다. 인간과 같은 진화론적 체제에 속해 있다. 외계인은 마치 자기 집 드나들 듯 수시로 나타나는데 인간의 사회적?생물학적 형태를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가까이 맞닿은 다른 공간이 있다는 말이고, 외계인은 그곳에서 온다. 이 공간은 다른 차원이 아닌 3차원 물질적 시공간의 연속체로서 우리의 생명 공간과 더불어 하나의 커다란 ‘광역생명진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공간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지능과 감각적 인지 능력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왜 지구를 방문하는가?

 

외계인은 20세기 들어 이전보다 자주 출몰했다. 왜 그랬을까. 두 교수는 인류가 20세기 직면한 문제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핵 문제다. 즉 핵확산의 추세와 맞물려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지구환경문제(온난화) 때문이다. 지구 환경파괴에 대해 외계인들은 관심과 경고를 주고 있다는 것. 많은 피랍자들의 보고도 이를 증명한다. 외계인들은 피랍자들에게 핵이나 온난화로 인해 황폐해진 지구 모습을 보여줬다. 한 피랍자는 외계인이 “인간이 지구와 대기를 돌보지 않아서 세상은 끝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계인은 어떤 이유로 지구에 그렇게 관심을 쏟는 것일까. 이는 외계인들이 어디서 오는가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 두 교수의 공통된 견해다. UFO 목격빈도는 핵확산 추세와 지구온난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것도 그것을 증명한다. 

 

“20세기 중반 들어 이들의 활동이 눈에 띠게 늘어난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20세기 중반이야말로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두 가지 사건, 즉 핵무기가 등장하고 환경 파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이 두 사건의 영향을 받는 한, 가만히 그들의 영역에 앉아 바라볼 수만은 없었겠지요.”(283쪽)

 

최준식의 해석
“외계인들은 본성적으로 자비롭다. 악한 존재였다면 나쁜 짓을 했겠지만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진화의 과정을 겪었고 그들이 보니 인간의 지금 상황이 불쌍해보여서 인류의 정신적 진화를 돕기 위함이다. 물론 이런 이론에는 약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인간들을 붙잡아가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영해의 해석
“나도 외계인들이 본성적으로 선하다고 보나 우리의 재난적 상황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본다. 광역생명진화권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외계인들에게도 지구의 문제는 심대하게 영향을 미쳤고, 이것은 외계인들 스스로도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존 맥이 1992년 달라이라마를 만나서 UFO 출현이유에 대해 물었다. 달라이라마도 “인간이 지구에서 하는 일 때문에 외계인들의 집(home)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 교수는 UFO와 외계인이 진짜로 있는지,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고 납치하고 있는지를 단순하게 묻고 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UFO에 대한 연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즉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인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자는 문제 제기이며 무엇보다 문명의 종말에 관한 문제이기에 우리가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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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나는 UFO를 목격했는데, 각 민족의 고대 신화 등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영적 존재가 인간과 만나 민족이 형성되곤 했다. 이게 상징이라고 치면 지금 피랍된 사람들의 목격담과 비슷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지영해 :대개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하늘을 빗댄 존재를 신화에 등장시킨다. 이는 인간의 사고구조에 보편적인 것으로 외계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반면 나는 지금 외계인이 유전자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류에게 종적인 개량이 필요할 때 기존의 종을 건드려서 그 다음 단계로 높인 것이 아닐까 하는 설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연구를 하면서 그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본다.

 

최준식 :종교를 정의하는 것 중의 하나로 성스러운 체험이 있다. 각 민족의 신화나 종교를 보면 사람들이 성스러운 존재를 만난다. 물론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과거에는 이렇게 신적인 존재를 만났다면 지금은 비행체라는 대상과 만나는, 즉 대상은 달라져도 내용은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외계인과 만날 때 피랍을 당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한국인 피랍에서 독특한 경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 만약 피랍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맹성렬 : 15년 전에 외계인과 만났다는 연락이 와서 대전에 간 적이 있다. 한 대학의 여학생이었는데 그 만남에서 공포를 느끼진 않았고 우호적인 상황이었다고 했다. 한밤중에 (외계인에게서) 연락이 와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만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피랍 사례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건 없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숨기거나 본인들도 잘 모를 수 있다. 해외에서는 방송이나 책 등 미디어를 통해 그런 사례를 접하고 자발적으로 전문가와 접촉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디어에서 외계인에게 피랍당한 사실이나 UFO 관련해서 다루지 않는다. 심지어 해외에서는 베스트셀러였던 피랍 관련 책이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았다.

 

지영해 :일산에 있는 분이 피랍당한 적이 있다고 해서 만난 적은 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아닌 것 같더라. 농반진반으로 말하자면, 피랍됐던 여성이 거의 대부분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여기 오신 분들은 모두 해당하니 조심하시라(웃음). 외계인에게 피랍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피랍당한 사람은 신경 계통을 통제당하고 몸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외계인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밖에 없다. 남자의 경우 피랍당하면서 묘령의 여인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정자 채취에 도움이 되도록 외계인이 그렇게 조장한 것이다. 외계인들은 인간의 신경 계통을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보고돼 있다. 탈출이나 저항하는 방법은 없다고 알려졌다. 특이한 것은 여성의 경우, 폐경기가 지난 여성이 피랍됐다고 보고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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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최준식,지영해 공저 | 김영사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어디서 오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방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어떻게 개입하여 무엇을 바꾸겠다는 것인가? 그들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왜 대처하지 않고 있나? 인류의 미래는?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UFO 이야기. “대한민국 사회와 지식인은 이 책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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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욕먹는 브랜드 디자이너는 어떻게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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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 미쳤어!”
이런 말을 들어도 멈추지 말 것.
집요하게 끝까지, 지쳐도 끝까지..
보이지 않는 본질과 디자인의 이유를 찾아내
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모든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브랜드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한 프로젝트에 5년여를 매달렸고, 마침내 그렇게 출시된 제품은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브랜드 디자이너 엄주원이다. 그가 아이덴디티 지자인과 브랜드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유 있는 디자인』이라는 책을 펴내고, 지난 7월 30일, 서울 서교동의 더 갤러리에서 독자들과 북토크&칵테일 파티를 가졌다.

 

 

스타일은 강한 신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브랜드’는 상징체계와도 같다. 상품이나 정체성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인다. 그런 브랜드의 어원을 따져보면, 고대 스칸디나비아 목동들이 썼던 ‘Brandr(불로 지지다, 불에 태우다)’에서 나왔다. 가축 등에 불로 지진 낙관을 찍어서자신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지금에는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차별하기 위해 만든 모든 것들의 결합체인 브랜드로 개념화됐다.

 

아이덴티티 디자이너로 시작해 지금은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다소 어색하고 생소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엄주원. 시오노 나나미가 언급했던“스타일은 겉발림과는 반대다. 그것은 강한 신념이다”라는 말을 꺼내며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스타일은 내적인 강한 의지나 신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이나 신념을 가지려면 욕을 먹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디자인-디테일-혁신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그는 이것을 ‘디자인 → 디자人’ ‘디테일 → 장인정신’으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디자인은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시작했기에 생존을 위해 터득한 인간의 신체에서 진화하고 발전했다는 것. 이어 브랜드에 있어서 장인정신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인 스토리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유홍준의 인용했다.

 

“모든 사람이 장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인정신은 가질 수 있다. 장인정신은 감동이다. 진실된 자세와 마음이다.”(유홍준,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

 

 

욕먹는 디자이너 엄주원

 

엄주원은 자신이 주로 듣는 세 가지 욕을 언급했다. 하나가 “무엇 하러 그런 것까지 신경 쓰냐! 작작 좀 해!” 그에게 디자인은 최종 결과물로 나와 소비자의 손에 건네질 때까지 세세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애플을 보면 제품 자체의 디자인도 훌륭하지만 소비자에게 전달될 상황을 염두에 두고 패키지의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다. 잡스에 대한 영화(<잡스>)를 보면, 컴퓨터에 들어가는 폰트 하나 때문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잡스는 작고 사소한 요소들이 모여 애플을 만든다고 여겼다.”

 

그는 세세한 것에 신경을 써서 좋은 평가를 얻었던 예로 ‘조니워커 블루 5초 패키지’를 들었다. 그는 면세점에서 선물용으로 구입하곤 하는 조니워커 블루 패키지를 단 5초 만에 포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니워커 블루에 슬리브 방식의 패키지를 고안함으로써 이 제품의 매출은 이전보다 150% 성장했다. 이 조니워커 블루 5초 패키지의 성공으로 그는 전 세계적인 선물용 패키지 디자인 경쟁PT에 초대됐고, 프랑스, 영국, 대만을 비롯한 국내 디자인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내 디자인이 해외로 수출되다니, 짜릿하고 벅찼다. 조니 워커 블루 면세점 패키지가 바뀐 후, 매출은 150퍼센터 성장하고, 경쟁 제품군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소비자가 느끼던 문제점과 원하는 답을 정확히 제시했기에 거둔 성과였다.”(129쪽)

 

그가 듣는 또 다른 욕은 “극소심! AAA형”이다. 이것을 언급하면서 그가 설명한 예는 제너럴 밀스의 케이크 믹스. 1950년대 미국 식품회사 제너럴 밀스는 물을 붓고 섞어 오븐에 구우면 케이크가 완성되는 제품인 케이크 믹스를 출시했다. 기대가 컸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유를 알아보니 너무 편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에게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부로서의 책임감이 이 간편한 제품을 선뜻 사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제너럴 밀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믹스에서 달걀 성분을 빼고 케이크를 만들 때 달걀을 집어넣도록 만들었다. 

 

“브랜드 디자인은 자기의 만족도 있지만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 한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본질, 소통의 핵심 키워드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 IDEO 브랜드 디자이너 ‘폴 밴넷’은 ‘디테일 안에서 디자인을 발견하기’라는 주제로 TED를 했다. 그는 휠체어에 자전거의 거울을 묶었다. 환자가 의사와 간호사에 의해 보조를 받을 때도 거울을 통해 그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작은 고안으로 상호작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또 하나의 예를 들었다. 고구마 씻는 세탁기. 중국의 한 가전회사가 세탁기를 농민들에게 제공했다. 그런데 농민들은 고구마를 세탁기에 씻곤 했다. 그러다보니 세탁기는 자주 망가졌고 A/S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A/S기사들은 농민들이 무식해서 그런다며 불평했지만 이 보고를 들은 사장은 고구마 씻는 세탁기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 고구마 씻는 세탁기는 히트를 쳤고, 농민들 마음을 헤아려줬다며 이 브랜드의 로열티도 크게 상승했다.

 

“고객들의 불만에 대해 무식하고 몰라서라고 생각하지 말고 왜 그랬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진정한 발견, 진정한 혁신은 소소하게 살아가는 현재에 있다.”

 

그가 듣는 욕에는 이런 것도 있다. “미쳤구나, 미쳤어 때려치워!” 내부적으로 가장 많이 들었던 욕이라고 했다. 한국의 전통주인 ‘화요’의 브랜드를 리뉴얼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욕이었다. 장장 5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한국에 이런 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광주요 그룹 회장의 뜻에 함께하고 싶었던 브랜드 디자이너의 미친 작업. 화요 뚜껑만 수천 개, 모법만 수백 개를 만들었다. 햇수로 5년여, 징그럽다며 그만하라는 소리를 숱하게도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신념을 끌고 간 덕분에 화요는 ‘레드돗 디자인 어워드(reddot design award) 2013’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디자이너로서 화요라는 프로젝트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화요의 브랜드 리뉴얼을 중요 사안으로 판단, 디자이너와 함께 발맞춰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고민해준 클라이언트 덕분에 일방적 보고가 아닌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102쪽)

 

“작작 좀 해”
“극소심”
“미쳤구나, 미쳤어”


이렇게 세 개의 욕은 그에게 일상다반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브랜드(디자인)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누는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면 욕먹어도 좋다’는 심정이었다. 그는 욕을 먹는 것이 좋은 건 아니지만, 욕먹어도 좋다는 것은 책임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책임질 수 있음. 그러한 책임의식 덕분에 그는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일을 완성하도록 만들었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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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화요 브랜드 디자인을 할 때의 오랜 시간이나 비용 등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한 건가? 브랜드 디자인을 할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감수하면서 했다. 대한민국에 이런 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게 5년을 버티게 했다. 그것도 4년째에는 너무 힘들더라. 그럼에도 여기서 포기하면 한국의 술 브랜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겠구나 싶어서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진행했다. 내게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될 때까지 가보는 게 중요했다. 또 디자인은 기호이면서도 클라이언트의 성향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브랜드는 분명 자기 역할이 있기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도 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디자인이 분야가 넓어지고 다른 것과 섞이고 있는데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서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디스커버리아이’라는 회사는 모두가 아는 유명 기업은 아니다. 이 회사도 작은 홈페이지에서 시작했다. 1~2년 차에 회사를 그만 접어야 하나 등의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차곡차곡 일을 진행했다. 나는 아이덴티티 디자이너에서 시작했다. 패키지, 제품 등 한 브랜딩을 할 때 총체적인 모든 것이 들어간다. 전화를 받는 직원의 매너까지도 아이덴티티다. 패키지 디자인이 들어오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들어왔을 때도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어려워한다. 심볼 하나를 만들 때도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한다. 사회적인 시선은 그저 동그라미 그리고 세모 그리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해서다.

 

디자인과 예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디자인을 할 때 예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디자인과를 나오면 주변에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 있기도 하다. 디자이너를 상업적(커머셜)이라며 인정하지 않으려는 예술가들도 있다. 내 생각에 디자인은 철저히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그게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디자인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중간에서 표현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아닐까. 브랜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클라이언트는 본인의 성향을 브랜드에 개입시키지 않는다. 개인이 아닌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 철학 등이 확실하면 개인의 취향은 들어가기 어렵다.

 

상품 기획자인데, 디자이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좋은 방법이나 접근 방식이 있을까?

 

내부적으로 시안이나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도 여러 기준 설정에 맞춰서 말한다. 어떤 체크포인트를 가질 것인가를 정리해보면 어떨까. 아이디어도 많고 예쁜 것도 많은데, 브랜드와 관련된 생각들의 기준을 맞춰보고 대입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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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디자인 엄주원 저 | 두성북스
삼성화재 서비스 아이덴티티, 조니 워커 블루 면세점 패키지 등 실제 브랜딩 및 브랜드 디자인 사례들이 자세히 실려 있어 브랜드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 손색이 없다. 브랜딩 전략을 세우는 동안 디자이너가 끝까지 끌고 가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 브랜드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실제 현장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유 있는 디자인』은 꼭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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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방인의 도시 걷기,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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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저녁 7시 종로구에 위치한 정독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최근 책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를 출간한 사회학자 정수복의 강연이 진행됐다. 평소 바쁜 삶에 치여 살기 바빴던 우리가 그 동안 눈여겨보지 않거나 외면했던 일상 속 풍경들을, 그는 천천히 걸으면서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봤다. 정수복은 “쫓기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걷는 사람에게 헛걸음은 없고 이방인에게 당연한 풍경은 없습니다. 삶이 힘겨울수록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유년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서울에서 생활했던 그는 198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7년 정도를 그곳에서 머물다가 공부를 마치고 다시 귀국해 한국에서 여러 활동을 펼치던 그는, 2002년 다시 파리로 돌아가 10년 정도를 살다가 2011년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거의 절반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낸 셈이다. 그는 그런 자기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칭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곳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여기 사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겐 당연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방인의 시선이죠.”

 

이방인의 눈을 가지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익숙한 것들이 이제는 그의 눈에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말에서 조금은 슬프고 외로운 느낌을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이방인, 혹은 경계인의 삶이란 어떻게 보면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이방인의 눈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울을 보려고 하는데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나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서울에 살 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파리에서 사는 동안 자유롭게 파리를 여기저기 걸어 다녀봤어요. 파리는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에요. 서울의 6분의 1 정도이고, 인구는 200만 명 정도죠. 외국에 오래있다가 돌아오면 낯설어 보이고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이상하게 느꼈던 것들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있고요. 서울에만 계속 살았으면 보이지 않았을 텐데, 먼 곳에 갔다 왔기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써보고 싶었어요. 사진기로 서울을 찍은 것이 아니라 글로 스냅사진을 찍었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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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

 

그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타지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에게는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것들을 글로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평소 걷는 것을 사랑하며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정수복이 기억하는 최초의 걷는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산다는 것이 곧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적에는 집 안에서만 걸어 다니다가 시간이 흘러 집 밖에도 나가게 되고, 학교에도 가고, 자신이 사는 동네 밖으로 나가 점점 멀리, 다른 지역, 다른 나라로까지 가게 되죠.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매일 학교와 집만 오가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느 날 부모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제가 살던 약수동에서, 이모 집이 있는 청량리까지 걸어갔어요. 아마 그때부터 걷는 버릇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 못 걷거든요. 저는 어린이 신분으로 그 당시에 걸었던 경험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걸으면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는 생각이 박힌 것 같아요.”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의 1부에는 평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2부에는 도시란 과연 무엇인지,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들어 있다.

 

“좋은 도시의 기준에는 교통이 편리하고,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고, 교육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것들도 있을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는 걸을 수 있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도시를 걸어 다니잖아요. 도시를 걷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차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뇌가 커지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즉, 걷는다는 것은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도시를 걷기 위한 방법
 
그의 말에 의하면,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걸으면서 평소보다 더 깊이 생각하며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시각을 조금만 달리 해서 주변을 바라본다면 그 동안 볼 수 없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멀리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어보는 것이다. 

 

“저는 도시를 걷기 위한 방법도 여러 가지 생각해봤어요. 요즘의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부분적인 지도만 보는데, 저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벽에 큰 지도 하나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시의 지형지물을 머리에 익히는 것이죠. 중요한 장소들이 어디에 있는지 머리에 넣고 있으면, 어떤 곳을 가더라도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감이 사라지죠. 그리고 매일 가는 곳만 다니지 말고 가지 못했던 곳에도 가보는 것이 중요해요. 그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또 누구와 다니는가도 중요하죠.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어떤 사람과 가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곳을 다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 우리가 많이 걸어 다니지 않는 이유를 꼽아 보자면, 걷는 것보다 앉아서 쉬는 것을 더 좋아하거나, 일상생활에서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면 남는 시간을 걷는 데 쓸 수 있게 된다. 정수복은 “걷는 행위는 삶의 시야를 넓히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걷기를 통해 어쩌면 틀에 박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우리의 삶을 매일매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진정한 걷기의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태어난 도시를 마음 속 제1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서울이 제1의 도시인데, 살면서 제2, 제3의 도시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도시의 공간적 구성 요소들을 배워서 내가 사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집이라는 것이 단순히 우리가 사는 아파트 몇 동 몇 호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집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그 도시를 내 집처럼 꾸미고 점점 더 살기 좋게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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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묻고 정수복이 대답하다

 

Q. 어느 철학자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걸으면서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기 위해서는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지켜야 할 텐데, 그렇다면 서울을 어떻게 보존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요?

 

A. 유럽의 여러 도시를 걸으면서 서울과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장소가 과거에는 어떤 곳이었고, 어떤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 잘 명시돼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느낌을 그대로 받으면서 다닌다는 기분이 들면서, 내가 선조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살다가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역사의식을 갖게 돼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서울은 오랜 세월의 역사가 잘 느껴지지 않잖아요. 그나마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궁궐들 몇 개 정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서울의 중요한 장소들이 어떤 배경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해요. 그리고 시민과 연구자, 지역 국회의원 등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서 정부에 압력을 계속해서 줘야 합니다. 그렇게 공론화 과정과 타협을 거쳐, 더욱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합니다.

 

Q. 사회학의 출발은 당연한 것에 의심을 품고 질문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새롭게 바라보고 질문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우리가 살면서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 호기심이 가장 중요해요. 호기심은 편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걱정이 없을 때가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생겨나죠. 그런데 단순히 호기심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가를 계속 탐구하는 탐구심도 있어야 해요. 호기심과 탐구심이 더해져야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호기심을 갖고 어떤 분야를 계속 탐구하다 보면 무언가 나오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더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다른 도시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그렇게 호기심이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고 탐구로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존재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인생을 만들어가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호기심을 탐구심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을 넓혀가는 과정이죠. 단순히 학교를 졸업해서 형식적으로 졸업장을 따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고 다른 이들과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것이야말로 문화국가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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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 저 | 문학동네
오랫동안 머물렀던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지겨웠던 서울의 풍경들이 파리에서 온 이방인 ‘정수복’의 눈에는 놀랍고 생생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이라는 화려한 거대도시, 그 도시 속 작고 고단한 서울 사람들. 이 책은 그 명암을 특유의 문학적이면서도 냉철한 문장으로 그려낸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인 서울의 풍경화이다.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이 아닌,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에서 건져올린 ‘정수복의 서울 33경’은, 서울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지만 눈여겨보지 않거나 외면했던 현대인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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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중혁 “소설가는 세상을 얕고 넓게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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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세상을 얕고 넓게 봐야 한다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하는 ‘소설학교’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소설가 김중혁이 초대됐다. 지난 18일, 정동의 한 카페에서 독자들과 만난 그는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강연을 시작하며 그가 공개한 일과표는 의아함을 자아냈다. 기상 시간은 오전 10시와 11시 사이, 이후 세 시간이나 이어지는 아점(아침 겸 점심), 2시간의 산책, 2시간의 운동, 3시간의 독서, 4시간 동안 이어지는 드라마와 영화와 음악 감상… 소설을 쓰는 시간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들로 가득 찬 작가의 하루를 보며 독자들은 궁금해졌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 소설가 김중혁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까. 작가는 몇 편의 영상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중에는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북 트레일러도 있었고 소설 리뷰 사이트 ‘소설리스트’의 홍보영상도 있었다. 1초라는 짧은 시간 속에 담긴 작가의 하루와 집필 과정을 기록한 영상도 있었다. 모두 자신이 직접 촬영하고 제작한 것이었다. 언뜻 소설과는 무관해 보이는 다양한 활동들의 이유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얕고 넓게 세상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깊고 좁게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저도 그럴 때가 있는데요. 소설가들은 어떤 견해를 가지기 전에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어떤 일에 파고들 수 있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생활신조가 ‘물수제비를 뜨듯 살자’예요. 깊게 파고들지 말고 최대한 얕고 빠르게 지나가자는 거죠. 그렇게 지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제가 꽂히는 게 있어요. 그때 그 일을 파고들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평상시에는 안테나를 세우고요.”

 

작가의 단편 「크랴샤」 역시 일상의 안테나에 포착된 사건이 소설로 재탄생한 경우다. 우연히 도로에서 트럭의 뒤꽁무니에 적힌 ‘크랴샤’라는 글자를 보고 흥미를 느꼈던 작가가 건물이 부서지는 이미지와 크랴샤라는 글자의 이미지를 겹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물론 그 사이에는 많은 시간차가 있었고, 잊고 있었던 ‘크랴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뜻밖의 경험도 있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던 중, 레이저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건물에 투사하는 퍼포먼스 영상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제가 소설을 쓰는 방법이 대체로 이런 것 같아요. 이전부터 계속 조사해왔던 것들이 파편처럼 모아져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하고 있는 일들이 굉장히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작은 파편이 되어서 작품 속에 들어갈 거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이건 시간의 힘인 것 같아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초반에 5년 정도는 무엇을 써야 될지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을 쌓아 나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런 작업들이 생긴 것 같아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작품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던 ‘악어빌딩’은 제가 찍었던 오래 된 건물의 사진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어요. 그 작품을 쓰면서 생각했던 공간들이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상황과 비유에도 굉장히 많이 쓰였고요. 작품마다 주제나 이야기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공간 혹은 테마들은 계속 반복되고, 예전에 관심 가졌던 것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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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관찰과 끈기, 애정으로 만들어진다


이어진 이야기는 상상력에 대한 것이었다. 소설을 쓰면서 ‘상상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작가는, 언제나 명쾌하게 답하기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상상력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들려주었다.

 

“저는 상상력이라는 게 결국은 관찰과 끈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한 대상을 오래도록 바라 본 사람은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소설가는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람을, 사물을, 관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데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생겨나는 거지, 어떤 직관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어내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는 건 애정이기도 하죠. 대상에게 애정이 없으면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없고, 끈기 있게 보지 않으면 그에 대한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김중혁 소설가에게 있어 소설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최근 들어서 거울에 대한 이미지를 자주 생각하는데요. 현실이 있고 그 현실을 소설을 보여줄 수 있다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거울은 중요한 무기가 아닐까 싶어요. 『가짜 팔로 하는 포옹』안에 있는 「보트로 가는 곳」은 굉장히 허무맹랑한 이야기이고 「요요」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조금 더 현실적인데요. 저는 두 개의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있을 때 그 거울을 또 한 번 비춤으로써 현실을 보여줄 수도 있잖아요. 거울이 여러 겹이 있으면 현실이 왜곡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울이 많을 뿐 형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소설은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현실을 잊게 해주기도 하는, 공감과 위안을 전해주는 무엇이었다.

 

“어떤 현실의 일들이나 환상들은 고통스럽고 원인을 알 수 없잖아요.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도 모르겠고요. 소설은 거울이 되어서 그 일들을 비춰주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그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현실을 잠깐 잊기도 하면서 약간의 위안을 얻는 거죠. 저는 소설을 쓸 때 ‘이 소설은 거울이 몇 개짜리인가’를 생각해요. 거울이 한 개라면 현실과 굉장히 가까운 소설일 테고, 거울이 다섯 개라면 많이 반사가 되어서 현실과 조금 떨어져 보이지만 현실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는 소설일 거예요. 「요요」는 거울이 한 장짜리인 작품이고 「보트로 가는 곳」은 열 장 정도의 거울이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상황과 비율」에는 거울이 세 장 쯤 있는 것 같고요. 거울을 생각할 때마다 공감한다는 것의 의미가 떠오르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거울에 비친 영상을 보고 공감을 한다는 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강연을 마무리하며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대하는 태도와 스스로가 택한 이야기 방식에 대해 말했다. 

 

“소설을 쓰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는 버릇 같은 게 생겼어요. 어떤 분들은 제 소설을 보시고 끝나면 안 될 것 같은 지점에서 이야기가 끝난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실 수 있어요. 그게 저의 태도인 것 같아요. 이야기에서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결론을 내리고 싶은 유혹이 들 때도 굉장히 많은데,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하는 게 저한테 더 맞는 이야기 방식인 것 같고요. ‘이야기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느 지점에서 끝이 나는가’가 소설가가 가지고 있는 소설의 윤리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어디에서 끝내는가, 주인공이 어떤 상태일 때 끝내는가, 해피엔딩을 원하는가 아니면 고통스러울 때 끝내길 바라는가, 이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데요. 저는 확실히 덜 판단하고 덜 마무리 지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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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엇박자 D’


소설가 김중혁과 함께한 ‘소설학교’의 마지막 시간은 독자들의 질문으로 채워졌다.

 

 

자꾸만 게을러지는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저도 작가가 되기 전에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고민들이 있었고, 작가가 되고 나서는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는데요.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과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결과를 냈느냐 안 냈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결과를 내면 뭔가를 한 거고 결과가 안 나오면 아무것도 안 한 거잖아요. 그런데 결과는 누군가가 판단하는 거고, 아주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뭔가를 한 것과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관심 있는 걸 그냥 계속 하면 돼요. 저는 게으름 피우려고 하는 것 자체가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은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 당신은 뭔가를 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꼭 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열등감의 시간, 좌절의 시간은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님은 자신의 문체를 확립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소설가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 세계관, 철학 같은 것이지 기교나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타일의 의미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요. 저는 ‘평범해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놀라운 뭔가가 있는’ 소설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소설이 잘 읽히기를 바랄 뿐이지 도드라져 보이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문체라는 것도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문장과 문장을 어떻게 연결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문장과 어떤 문장을 잇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리듬이 생기는 것이지, 한 문장으로 그 사람의 스타일이 생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것인지는 작가에게 평생 풀어야 될 과제인 것 같은데요. 그건 구조적인 문제이고 리듬의 문제이지 스타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면 그 리듬이 스타일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고요. 

 

지금까지 쓰신 소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엇박자 D’인데요. 그 작품을 쓰면서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 케미컬 브라더스의 공연 영상을 보다가 ‘저 많은 관중들 사이에서 한 사람만 엇박자로 점프를 하면 알아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특이한 사람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가 「엇박자 D」를 쓰게 됐어요. 사소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작품을 써 나가면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재미가 생기고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후에 『1F B1』『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인물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썼어요. 예전에는 사물이나 장소나 조합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제가 알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요소를 조합해 나가면서 인물들을 만들어 냈죠.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작업이지만 캐릭터를 완성해 놓으면 생명이 생기면서 독특한 인물이 돼요.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작품을 쓴 것 같고요.

 

소설 수업을 듣고 있는 문창과 학생입니다. 소설을 쓸 때 의미화 작업이 중요하다고 들었는데요.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꼭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해도 의미화 작업이 되려면, 굉장히 오랜 기간의 숙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가장 좋은 학습방법은 소설을 읽는 거예요. 이야기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돼서 어디에서 끝나는지 많이 보다보면, 어떤 이야기가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거든요. 영화를 보셔도 돼요. 이야기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두 시간 안에 볼 수 있으니까 제일 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럴 때 ‘이 이야기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를 생각하시는 게 의미화 훈련을 하는 데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요. 오랫동안 훈련이 계속되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의미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초고를 쓴 후에 고쳐 쓰기 과정이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심사를 하거나 강의를 하지는 않지만, 얘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확실히 객관화 과정이 필요하긴 해요. 초고를 끝낸 후에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작품을 잊어버리려고 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보면 객관적으로 보이거든요. 다시 봤을 때 손 댈 데가 없다면 완벽하게 잘 쓴 거죠. 그런데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겠죠. 대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객관화 작업을 거치고 난 뒤의 작품은 허술해 보이고 빈틈이 보일 거예요. 고치고, 다시 잊어버리려고 하고, 다시 고치고, 그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죠. 이런 과정이 익숙해지면 객관화 작업이 조금 더 쉬워지는 차이가 있는 거고요. 소설을 빨리 마감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없으면, 제 경우에는 게임을 합니다(웃음). 게임을 하면 순식간에 뇌가 텅 비어지고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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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김중혁 저 | 문학동네
그의 신작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막 꺼내든 참이다. 숫자로 치자면 네번째 소설집이고, 그의 입을 빌리자면 첫번째 연애소설집이다. 대놓고 연애라니, 그렇다면 주요한 테마를 ‘사랑’으로 잡았다는 얘기인데 세상 그 어떤 소설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서 쓰일 수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김중혁이 이야기하는 남과 여’는 보다 특별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왜? 서두에 밝혔듯이 그는 ‘잡(雜)’한 남자니까. 잡종은 원래 변종과 별종을 낳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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