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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채널예스 :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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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다루는 게 파격적이라고요?” - 김혜나 『정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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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으면 드러날 테니까, 드러나면 혼란스러울 테니까, 믿는 거잖아. 믿고 싶은 거잖아. (중략) 너는 어차피 네 눈에 보이는 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믿고 또 만들어 갈 거잖아. 내 대답 따위, 내 현실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거잖아. 네 눈에 드러난 현실만, 바로 그 서류만 믿을 거잖아.”(p.68)
『정크』에서 백화점 화장품매장에서 면접을 보는 성재는 아버지는 없느냐는 질문에 이어 어머니와 성이 같다는 점장의 말에 마음속으로만 이런 심정을 토한다. 지젝의 말과 맥락이 통하고 있다. “우리는 믿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미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입증해줄 이유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다. 무사유를 택한다. 자신의 생각 혹은 신념을 강화하는 쪽으로만 관심을 둔다. “산다는 것은 타인이 되는 일”이라고 했던 시인 페르날두 페소아의 읊조림은 그렇게 못하는 우리를 타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동성애자 성재의 이야기를 그저 타인의 것으로만 여기거나 ‘정크’라고 규정하는 건 불합리하다. 그것이 지금-여기의 청춘에 너무 근접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됐든, 청춘이 됐든, 이 사회는 너무 쉽게 힘없는 것을 정크처럼 다룬다. ‘속속들이 아픈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해 정크족이 떴다!’는 김혜나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의 주제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은 이유다. 방송작가이자 에세이스트 김신회 사회로 김혜나 작가와 김조광수 감독이 ‘우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김혜나, 청춘의 방황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었나?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학교가 가기 싫었다. 집도 싫고. 그래서 가출하고. 어쩌다 학교 가면 소설만 봤다. 백일장에 나가도 내 딴엔 잘 쓴 것 같았는데, 상도 못 탔다. 항상 상을 받는 것은 1,2등 하는 아이들이었다. 나 같은 애는 뭘 해도 안 되구나, 인정 못 받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꿈도, 희망도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다고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런 학생이었는데, 소설가의 꿈을 놓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면?

어릴 때는 그런 꿈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살았다. 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했다. 퇴학당하고, 수능 안 보고 대학도 안 갔다. 알바하면서 매일 술 마셨다. 그러다 죽겠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삶이 이게 뭐지, 난 왜 여기 있지, 질문을 하게 되더라.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하면서 실존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그렇게 고민하다보니 어느 순간 술 먹고 노는 게 재미가 없더라. 술 먹는 것 말고 좋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어릴 때 읽던 소설이 떠올랐고, 소설이 읽고 싶었다. 스무 살이 끝날 무렵,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 책만 읽었다. 하나에 꽂히면 뭔가 끝장을 보는 성격인 것 같다. 소설에 재미를 들여다보니 소설을 알고 싶더라. 소설과 문학에 대해 공부하면 소설을 더 잘 알게 되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스물한 살 끝날 무렵 대학에 갔다. 대학에 가서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문예지도 알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두 살부터 습작하고 투고하고, 2010년 데뷔했다.

『제리』, 『정크』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문제적 작가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파격적이다, 세다는 얘기에 놀랐다. 소설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일상에서 쉽게 보지 못할 수 있으나, 인물은 유약하고 소심하고 존재감 없고, 흔들리는 약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센 이야기라고 생각 못했다. 흔들리고 불안한 내면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에 외적인 그런 평에 놀라운 면이 없지 않았다. 정크 발표 뒤 더 놀라운 것은 미드나 퀴어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많이 접할 수 있고, 동성애 문화가 파격적인 소재라고 생각 못했는데, 인터뷰 하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파격소설이라는 평에 놀랐다.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또 무서워했던 것, 그것은 바로 삶이었다. 죽도록 도망치고 싶지만 죽어도 도망쳐지지 않는 이 현실, 내가 서 있는 이곳, 나, 라는 인간, 나, 라는 인간의 더럽고 구질구질한 한 생애가 두렵고 무서워 이가 덜덜 떨렸다.”(p.175)
그래서 앞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소설을 쓸 건가?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내적인 면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제리』는 청춘의 방황을 다루고, 『정크』는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이루지 못한 청춘의 절망을 다뤘는데, 다음엔 청춘의 상처를 다뤄보고 싶다. 끝까지 가보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쉽게 겪는 상처가 아니라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만큼의 상처를 가진 청춘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때로는 자꾸만 화가 났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아닌데, 나 자신으로부터, 내가 속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노력한 만큼 나를 봐 주거나 인정해 주며 받아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럴 때면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와 절망이 찾아들었다.”(p.214)
두 소설을 아우르는 테마도 상처였다. 취재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쓰면서 힘들었던 점은?

동성애자, 에이즈보균자, 치과의사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동성애자인 성재라는 인물을 쓰기 위해 채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재라는 생각을 하고 보건소에도 가고 극장에도 갔다. 그 분들에게 들었던 곳에 가서 있어보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내 기분은 어떤지 느끼고 경험했다. 성재 내면의 절망감은 내 이야기였다. 놀다가 대학 가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계속 습작하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계속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소설가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서 다른 길을 생각 못했다. 평생 소설만 쓰겠다고 5년을 살았는데, 1년 동안 패스트푸드 알바하면서 썼는데 등단이 안 되는 거라. 사람들이 비웃고 한심하게 여기는 것 같더라. 그러다 우울증도 앓게 되더라. 부모가 소설 쓴다고 생활비를 대주진 않았다. 부모가 있어도 없다는 생각이 들고, 알바를 해도 직업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애인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남들 다 갖고 있는 게 나는 없는 것 같더라. 그런 것에 자괴감을 느꼈고, 그때 느꼈던 절망감에 힘들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건, 현실에서 나는 남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갈등을 싫어하고 피하는데, 소설은 갈등을 요구하고 폭발시키는 신도 있어야 한다. 갈등이 성재와 민수가 싸우는 장면으로 표현됐는데, 그게 힘들더라. 이렇게까지 써야하나 싶고. 소설을 쓰면서 힘든 건, 갈등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

동성애 등 논란과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취재할 때 그런 말을 많이 하더라. 이성애자들은 더 심한 게 많지 않느냐고. 아동성애 등 문란한 행위를 하면서 이성애자들은 당당하게 다니잖나. 1회성 섹스는 동성애자라서 하는 게 아니잖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오해가 많더라. 책을 통해 내적으로는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고, 취재했던 동성애자들도 응원을 많이 해주더라. 이렇게 드러내서 불편함이나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더 많이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발표해보니 이반 사이에서 비판도 있더라. 동성애자라고 다 여성스럽지만은 않은데, 편견의 3종 세트를 썼다고. 쓰기 전에도 그랬고, 쓰면서도 남성이 여성스럽다는 게 나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도 게이들이 나오는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낸 것뿐이다. 여성성이 남성에게 없는 것도 아니다. 그건 생명력이라고 본다. 동성애자로서 편견이나 차별을 받은 분들은 또 이런 걸 하느냐고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나, 좋은 쪽으로 인식이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남성이 여성스러운 게, 나쁜 건 아니잖나.




김조광수와 김혜나, 동성애를 말하다

1월에 양악수술을 한 덕에 아직 붓기가 가라앉지 않고, 발음이 좋지 않은 게스트 김조광수 감독이 초대 손님으로 등장했다.

『정크』, 어떻게 봤나?

(김조광수, 이하 광)재미있었다.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이 왜 이래?’하면서 읽었는데, 제목을 왜 그렇게 썼는지 명확하더라. 작가가 한편으로 부러웠다. 제리, 정크 등의 용어를 과감하게 제목으로 써서. 자기 자신감이 충만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오늘 처음 뵀다. 내면에 뭐가 있기에 이런 소설을 썼는지 궁금했었다. 소설은 무척 사실적이었다. 동성애자 삶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을 보고, 자기가 동성애자거나 주변에 동성애자 친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만나보니 내면적 깊이가 겉보기와 다르게 (웃음) 있고, 발랄한 문체로 표현한 것도 부럽더라. 일부 동성애자들이 안 좋은 얘기를 했다고 했는데, 과감하게 다루는 것도 부러웠다. 나는 동성애자라서 과감히 다룰 수 있는데,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의 치부라고 할 만한 것을,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처지라 그렇게 다루기 쉽지 않은데, 부러웠다.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다뤘나.

성재와 민수의 연애담이 나오는데, 나의 짝사랑, 나의 연애이야기가 반영이 됐다. 동성애자라고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같고, 그런 감정을 쓰고자 했다. 감정을 그대로 써서, 성별만 바꾼 거다. 동성애자 감독도 이성애자 연애를 다룰 수 있지 않나.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구분하는 시선이 없으면 좋겠다.

영화제작자 혹은 감독으로서 볼 때, 동성애자 독자로서 볼 때 각각 어떤가?

(광)다음 영화 시나리오가 안 풀려서 머리가 너무 아팠다. 좀 더 잘 만든 대중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 그런 찰나에 이 소설을 소개받고, 좋으면 각색하겠다며 신이 준 좋은 기회라고 덥석 물었는데, 영화화하기엔 대중적이지 않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고 단순하고 자극적이면서 명확해야 대중에게 각인되는데, 이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잘 만든 예술영화밖에 안 나오겠는 거야. 무척 좋았는데, 상업적인 면에서는 안타까웠다.

동성애자로서는 반가웠다. 동성애자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사는지 모르면, 동성애자라고 하면 패셔너블하고 여성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동성애자들은 그렇게만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거다.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들춰내지 않길 바라는 바람도 있을 텐데, 이성애자가 그걸 들췄을 때의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드러낼수록 아무렇지 않아진다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으려면 자꾸 드러나야 한다. 책이 좋은 사람들은 좋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개 표현한다. 그래야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음도 알고, 동성애자라서 다 멋있는 것도 아니고, 미화하거나 혐오할 필요가 없음도 알 수 있다. 성재를 그리 다뤘다면,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것이었다면 문제가 있다고 느꼈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성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연민과 따듯함이 있더라.


김조광수 감독은 커밍아웃 이후 어떤가.

(광)커밍아웃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방송에 출연해도 5천만에게 나를 보여준 건 아니잖나. 내가 누군가에게 우호적인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가를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평생을 그런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길 듣는다는 게 상처가 될 때도 있다. 나는 커밍아웃한지 오래라 이젠 상처가 되진 않는다. 5년 전만해도 블로그 댓글 등을 볼 때 상처가 됐었다. 한 번은 누가 쌍욕을 해놨더라. 그 사람 블로그를 찾았더니, 엘레강스 뽀사시 꾸며놓은 여성의 블로그더라. 화가 나서, 어떻게 그런 댓글을 올릴 수 있느냐고 하니까, 왜 이러느냐면서 블로그까지 와서 이럴 필요가 있느냐고. 그러다가 친해졌다(웃음). 이 사람 알고 보니, 자기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데가 없는 거라. 울컥한 마음을 표할 대상으로 날 택한 거였다. 그런 사람임을 아니 안쓰럽더라. 앞으로 욕하라고 하면서도 당신이 욕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줬다. 나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내가 넘어서고 대적해야 할 대상이 아닌 손 잡아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성애자는 때론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성애자라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왜 그리 예민하게 구냐고 할 때가 있듯이. 그런 면에서 동성애자와 여성이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동성애를 인정한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우습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광)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이해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으면 좋겠다. 이해는 불가능하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100%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무 이해하려다보니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해하려 애쓰다가 결국 배제하고 마는. 동성애자들은 그런다.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이 수지한테 왜 그리 목매는 줄 모르겠다고, 옆에 예쁜 납득이가 있는데(웃음). 그렇게 다른 거다. 내 주변에 동성애자가 없다면 자신을 돌아다봐야 한다. 동성애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얘기니까. 이 사회에는 5~10%의 동성애자가 있다. 뉴욕에 게이가 많은 건 게이들이 뉴욕으로 오기 때문이다. 동성애 친화적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줘라. 처음 커밍아웃할 때 이성 친구에게 했다. 퀴어영화를 보고 나면 좋은 이야길 많이 해줬다. 이런 친구라면 동성애자를 받아주겠거니 생각해서 그리 했다. 김 작가에게 앞으로 동성애자들이 편하게 대할 거다. 동성애에 친화적 모습을 보이면, 그동안 내가 못 보던 동성애자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광)뱀파이어와 암행어사가 나오는 판타지 버디무비 시나리오가 재밌게 나오진 않아서 계속 수정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하겠다고 했는데, 시청광장에서 하고 싶다. 올 가을 시청광장에서 결혼식을 해보려고, 엘튼 존도 못한 것을, 많이 와서 축의금 많이 내 달라(웃음).

(김혜나)소설로는 청춘 3부작의 끝을 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획은 끝났고, 쓰면 되는데, 그 전에 산문집이 2권 나올 것 같다. 하나는 요가를 하면서 느낀 변화들을 다뤘다. 10대부터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해서 위장 장애가 있다. 요가를 통해서 몸과 마음도 건강해졌다. 요가가 내겐 큰 변화를 많이 줬다. 요가 하면서 느낀 내면의 변화를 담은 요가 에세이가 올해 안에 나오고, 인도에 다녀와서 거기서 만난 사람을 쓰는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독자들이 김혜나 작가에게 묻다

성재 아버지가 잘 나타나지 않는데, 돈만 주고 왔다가고 민수도 자꾸 선물을 사 주더라. 그런 게 사랑의 일부인지, 죄책감인지,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나?

성재가 인식하기로는, 죄의식의 한 부분인 것 같다. 다른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쓰다 보니 그렇게 하는 심정도 이해가 되더라. 성재도 인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알고는 있다. 물질로 표현하는 게 올바른 형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읽은 뒤 몸이 욱신거렸다. 몸살 날 것 같더라. 스물한 살인데, 글 쓰고 싶다. 파격적인 묘사를 잘 못한다. 남이 어떻게 볼까 하는 부담감 때문에. 자신감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두 가지로 돌파했다. 나도 부끄럽고 창피한 게 있었다. 그럼에도 소설이 좋으니, 창피함보다 좋은 게 더 크니 할 수 있었다. 내 얘기냐고 많이 물어본다. 처음엔 내 얘기처럼 읽힌다면 잘 써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나중엔 그냥 인정했다. 부담되고 창피하지 않느냐고 해도 인정하면 창피하지 않다. 내가 나인 게 창피하지 않다. 나이에 따라 극복 단계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인도까지 가서 요가를 하게 된 건가?

이번엔 요가 하러 가는 게 아니고 취재 때문에 간다. ‘오르빌’에 간다. 거긴 삶을 요가라고 생각하더라. 삶이 요가의 한 행위로 보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 모두 요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인도에 요가 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 요가 강사를 하다 보니 요가원과 연결된 아쉬람이 있다. 선배들과 2~3달 수련하고 오기도 한다.

작가상이나 미래상은 무엇이며, 지금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도 낄낄거리면서 웃으며 볼 수 있는 소설을 쓴 게 있다. 아직은 절망을 더 얘기한 뒤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의 모습, 재미있고 웃긴 소설, 따뜻하고 온화한 소설을 쓰고 싶다. 나는 여성성을 되게 좋게 인식하고 좋아한다. 美에 대한 관심도 많고. 갈등 없는 평이하되 따듯한 소설도 쓰고 싶다. 맨 처음 요가를 가르칠 때는 남을 가르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고 잘 안 됐다. 나를 보여주고 내세우려고 했다. 글도 높은 곳에서 보여주리라는 그릇된 욕망 때문에 힘들었다. 요가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위에 올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밑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돼야겠다! 계속 올라가려다보니 길이 안 보이고 길을 잃게 되는 느낌이 있었다. 나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길이 보였다. 소통하고 싶다. 『제리』『정크』모두 주인공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고민이 있었는데, 진심으로 소통하고 보고 느낀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서 이런 것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처럼 요가를 통해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예수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남들 머리 위에 군림하는 선생이 아닌 사랑으로 섬기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20대 중반엔 열정이었다. 포기한 적도 있었다.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1년 정도 안 쓰고 회사도 다녀봤다. 소설 쓰기 너무 힘들고 가시밭길이다. 등단하겠다면 말리고 싶다. 그런데 나는 포기하니까, 안 하는 건 더 힘들더라. 즉자적인 성격이라, 하고 싶은 거 바로 한다. 온몸을 다 던져서 선택한다. 허투루 하지 않는다. 술 먹을 때도 끝장을 본 것처럼 글쓰기도 끝까지 가보려는 욕심이 있다. 그러다 존재가 망가지고 부서지지만 그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각오나 열정, 이런 게 중요한 것 같다.


『제리』『정크』를 쓴 세계관이나 철학은 무엇이었나?

나 자신의 내면 탐구가 제일 컸다. 나는 대체 뭐지? 내 안에는 뭐가 있지? 대충 생각하면 발견하지 못한다. 깊이 고민하고 들어가 봐야 안다. 남보다 나부터 알아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내 실존을 발견하고, 내 안의 세계에 항상 집중했다. 나와 내 자신이 분리된 경우가 많다. 일단 진짜 나와 하나가 돼야 남과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사회와도 세계와도 우주와도 하나가 되고. 시발점은 항상 나다. 나와 하나가 되는 과정이 글쓰기에 담기지 않았나 싶다.

“소설을 쓰는 데 있어 나의 화두는 언제나 ‘나’였다. 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를 드러내고 또 감추어 왔다.”(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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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김혜나 저 | 민음사
『제리』로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가 김혜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정크』가 출간되었다. 『정크』는 김혜나가 3년간 퇴고를 거듭하며 심혈을 기울여 온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정크』는 ‘상실의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포스트 루저’들의 서바이벌 게임이자 크라잉 게임이”라고 상찬했고, 서평가인 로쟈 이현우는 “이 시대 사회적 루저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동시에 정크들의 존재론을 제시한” 작품이라 말하며 “작가의 고투와 함께 한국 소설의 영역이 좀 더 확장되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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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대통령 됐어도 대한민국은 똑같다 - 정봉주 『대한민국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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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는 꼼수다’를 통해 기성 정치인의 전형과는 한참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며 공감을 이끌었던 정봉주 전 의원. 정권의 실정을 실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후련함을 선사했던 그지만 대선 4개월을 앞두고 ‘BBK 사건’관련 허위사실 유포란 죄목으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나온 판결은 정권에 의해 괘씸죄가 더해진 듯한 인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교도소에 들어가는 그의 표정은 기죽어있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정치인 최초(?)로 만기 출소를 한 후 그의 행보는 여전히 남달랐다.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등 지난 정권 내내 첨예한 갈등 상황을 연출했던 현장을 돌아다니며 한 서린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손을 잡았다. 자신의 지지자들과는 토크 콘서트로 인사하며 유쾌함을 잃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비록 그가 원했던 정권교체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그런 그가 최근 감옥 생활 동안 이어온 고민과 사유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 놓았다. 이른바 『대한민국 진화론』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강연장에 모인 독자들의 눈빛은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한편으로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그러나 “진보의 가치를 갖고 있는 21세기 마지막 인간병기”라며 예의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그의 농담은 일시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강연회는 그런 유쾌함 속에 시작됐다.




둘 다 잘못됐다는 것은 둘 다 옳은 것

지난 대선은 진보와 보수, 지역 간,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이 정점을 찍었던 순간이 아닐까. 결과는 박근혜 정부의 탄생이다. 보수는 환호했으며 진보는 좌절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각 진영이 추구하는 가치를 벗어던지고 나면 정권 창출을 위한 목적은 큰 차이가 없다. 바로 ‘대한민국의 발전과 그 안에 삶을 영위하는 국민들의 행복’이다. 이를 직시한 듯, 정봉주 전 의원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하면 싸우게 되죠? 그럼 둘 다 잘못 된 거예요. 여러분들도 잘못됐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도 잘못된 거죠. 그런데, ‘둘 다 잘못됐다’는 것은 ‘둘 다 옳다’는 말과 같아요. 100% 틀린 것과 100% 옳은 것은 사실 통하는 것이거든요. 견해가 다른 친구들과 싸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자꾸 싸우다보면 둘 중에 하나에서 길이 나와요. 두 번 다시 안본다고 하지만 싸우면서 친해지는 친구들이 있어요. 개중에 아주 얄밉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 말고 ‘진심으로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뭐냐’ 하며 터놓으면 적어도 감정적인 대립까지는 치닫지 않거든요.”

그는 감옥에 있는 1년 동안 근본에 집중했다고 털어놨다. 인의예지(仁義禮智), 맹자가 이야기한 사단(四端)이다.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에게 좁은 독방의 공간은 적지 않은 고통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외공(外功)과 내공(內功)을 단련하며 버텨냈다. 동양과 서양철학 서적을 파고들며, 수백회의 팔굽혀펴기와 맨손운동으로 보낸 시간 속에서 그는 자아성찰을 통한 스스로의 진화를 일궈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셔야 되요. 생각은 자기 성찰이거든요.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고 여러분들의 생활을 쭉 보세요. 밖으로만 이야기했지 안으로 나를 들여다보거나 이야기한 것은 몇 번일까요. 사람들은 힘들고 절실할 때가 닥쳐서야 자기를 들여다보죠. 성직자나 종교인들이 훌륭한 이유는 늘 자신을 들여다보기 때문이에요. 오늘 한 줄의 글을 읽고, 1년 내내 단 한권의 책만 보더라도 나는 이 책과 대비해서 어떤 삶을 살고 있지를 들여다본다면 여러분들은 진화하는 겁니다.”

명진 스님은 그런 그를 “살면서 오는 사건들을 깊은 성찰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돼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그가 살아온 삶은 치열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 안에서 그는 과연 어떤 성찰을 했을까. 『대한민국 진화론』에 담은 생각들을 쏟아놓는 그의 말 속에 뼈가 들어있었다.




진보는 과연 준비가 되어있나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은 진보진영에서 소위 멘붕(멘탈 붕괴) 상황을 연출하게 했다. 자조와 패배감, 절망감이 뒤섞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정봉주 의원은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책에 담은 목적은 그 깨달음과 맥이 닿아있다.

“보수는 논외로 하더라도 진보 진영만을 이야기하자면, 저를 포함해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에 대한 약간의 비판조차 참지 못하더라고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나 뛰어난 논리력을 구사하는데 나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는 너무나 인색한 거예요. 특히 우리 진영을 제대로 직시하자는 담론을 제시하면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리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책의 출발은 ‘우리를 한 번 돌아보자’였어요. 그 다음에 정말 우리는 이길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담론을 던지는 것이 목적이죠.”

정 의원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분명한 것은 보수가 승리했고 새로운 정권이 시작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 측에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하거나 부정하는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책을 쓰게 된 두 번째 이유를 말하는 정 의원의 표정에는 어느새 웃음 대신 진지함이 채워지고 있다.

“유권자 51.6%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아쉬울 것이 없어요. 그분들은 48%를 들여다봐도 되고 안 봐도 됩니다. 어찌됐든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5년 동안 이 나라를 끌고 갈수 있는 힘이 생긴 거죠. 지금 진보진영은 5년 후 정권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하는 절실함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해요. 그러나 그들이 현재 열심히 하는 행동은 새누리당을 찍은 사람들을 한심하게 치부하는 정도죠. 이런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이길 방법은 도대체 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 거예요.”

정 의원이 내린 진단은 ‘현재 진보진영의 상태로는 어렵다’는 것. 철저하게 세상과 격리된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는 절박하게 스스로를 돌아봤다. ‘과연 5년 후에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는 어떻게 될까’와 같은 자문은 이어졌고 고민의 결론은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하게 하고 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미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김두관 전 후보가 야당이 다시 승리하기 쉽지 않은 경남도지사직을 던졌거든요. 게다가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모두 장담할 수 없죠. 박원순 시장 역시 불안하다고 봐요. 현재 민주당에서는 모바일 선거를 제외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당원 중심의 후보 선출 방식으로 회귀하게 되면 박원순 시장이 후보가 되기 어렵죠. 그런 상황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은 상대 진영의 실수거든요. 사실 대한민국 정치는 자살골 정치에요. 자살골을 덜 넣는 팀이 이깁니다. 반사이익을 취하는 거죠. 박근혜 정부가 실수를 얼마나 하는지 여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보는 관전 포인트에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특징이 볼을 몰고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립지대에서 공을 돌리면서 대체로 자살골도 잘 안 먹다는 거예요. 이런 것만 짚어 봐도 내년 지방선거가 보이죠.”




근본적인 의식 개혁이 필요

통칭 여권이라 불리는 진보진영의 현주소는 사실 사분오열에 가깝다. 성찰은 고사하고 현실도피 수준이다. 정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다음에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번에 혹여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뭘 바꿀 수 있었을까요. 우리 사회는 사실 어느 것도 제대로 뜯어고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로 돼 있어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40여년이 넘는 시간, 그 이전에 일제 36년과 소수 사대부들의 민중 수탈해 온 물적 토대가 여전하거든요.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대단히 보수적이고 소수권력지향적으로 세팅이 돼 있다는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진보가 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한순간에 바뀔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변화의 첫 번째는 보수와 진보로 굳어진 프레임을 깨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프레임은 보수진영에 의해 만들어 졌고 고착화 돼 왔다. 영호남 대립 구도, 좌우이념구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보수진영과의 싸움은 진보진영의 백전백패일 뿐이다. 정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공감’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보는 진화해야합니다. 보수와 진보 프레임을 뛰어넘는 제 3의 길을 가야한다는 거죠. 공감의 마인드로 접근하다보면 보수 쪽에서도 생각보다 우리의 마인드와 일치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1987년 6월 항쟁 때 대한민국의 혁명적 변화를 주도했던 분들이 50대가 돼 있잖아요. 그분들 역시 이 사회를 개혁적으로 끌고 가려 했던 주역이었음을 인정하고 다시 우리와 함께 가보자는 제안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보수가 한동안 주장했던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가치, 미국적 신자유주의 가치’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실패한 가치 전락하고 있습니다. 대신 떠오르는 것이 공동체적 가치, 수평적인 가치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은 정형화 된 보수와 진보가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오랫동안 진보의 가치로 여겨져 왔던 것이기도 하다. 승패는 어느 쪽이 먼저 자신의 프레임에 안주하지 않고 정치를 향한 국민의 바람과 목소리가 반영된 가치를 선점하느냐에 결정됐다.

“21세기의 패러다임에서는 이미 보수와 진보가 합종연횡 되고 각각의 주제에 따라 가치관이 뒤섞여 버립니다. 이것에 맞춰 보수와 진보의 틀에 대입을 시키는 것이 아닌, 주제에 따라 진보적 가치에 동의할 수 있는 보수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거죠. 물론 반성을 위한 자기 부정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유의 가치철학을 부정하는 일이 발생해서도 안 되고요. 다른 친구를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이 변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죠. 핵심은 나의 가치를 온전하고 강고하게 지켜가면서 공부하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 의원이 이야기하는 고민은 사실 진보진영만이 아닌 보수진영 역시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가치는 아직도 보수진영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보수든 진보든 정치가 추구하는 목표는 한 가지임을 자각하는 태도가 절실한 때다. 국민의식 진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의 성숙, 굳이 봉도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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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진화론정봉주,지승호 공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물론 경제 민주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남북 통일에 대한 비전, 한미 관계를 핵심으로 한 국제 질서 등…….『대한민국 진화론』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실로 방대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였으며, 국내 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와의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큰 흥미를 유발한다. 날카로운 질문과 정봉주의 내공이 어우러져 정말 ‘대담(大膽)’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매년 12월 31일을 ‘실패의 기념일’로 정했다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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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가 저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의 인생에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었다면 어쩌면 이 책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작가의 말 中)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는 그 제목부터가 전작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시인이 말했듯이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가 많은 독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다’라는 시인의 말에, 자신의 나약함을 자책하던 누군가는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미련 없이 비워버린다’는 깨달음은,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시인은 온 가슴으로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우리의 어깨를 토닥였고, 때로는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텨라’고 말하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이렇듯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마치 주문처럼, 삶의 무게 앞에 무릎 꿇지 않으려 고전하는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정호승 시인은 다음 말을 이어간다. 이제 용기를 내어 보자고 이야기한다. 독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방식은 이전과 같다. 시인의 가슴에 울림을 주었던 책 속의 글귀들, 소중한 만남들이 남겨준 유산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삶의 순간들

지난 2월 21일, 예술의전당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예스24 ‘책 읽는 풍경’에서 정호승 시인과 독자들, 그리고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가 만났다. 시인과 독자, 그리고 시인의 지혜와 독자들의 재회가 이루어진 자리였다. 오랜 시간 수많은 경험들로 숙성시킨 삶의 진실 혹은 깨달음을 공개하며 작가는 말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가 출간된 후 생각해 봤습니다. 내 인생에 용기가 필요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용기가 없어서 나의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던 적이 언제였는가. 생각해보니 인생의 고비마다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때로 찾아오는 특정한 시기가 아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 삶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우리는 용기를 내야할 수많은 순간들과 마주한다. 진실을 말할 용기가 필요할 때도,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할 때도, 때로는 질끈 눈을 감는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안에서 정호승 시인이 다양한 형태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시인이 이야기하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들’은 삶의 모든 순간들을 아우르는 것이다.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 담긴 내용들을 추려 전하며 삶의 가치와 순간들, 실패와 고통,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은 실패가 허락된 유일한 창조물

“실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성공이라는 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실패라는 수만 마리의 개미가 기어 다닙니다. 성공했다는 사람 모두가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입니다. 작은 실패에 우리가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정호승 시인은 우리들이 필요 이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했다. 누구나 겪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만 성공에 다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 없는 삶을 꿈꾸는 모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티 없이 하얀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의 실수를 모든 것을 망친 것이 아니라 완성의 밑그림이다. 그는 오히려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 귀중한 가르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인은 매년 12월 31일을 ‘실패의 기념일’로 정했다.

다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저는 저의 실패를 기념합니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 해의 실패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제 인생 전체의 크고 작은 실패를 생각합니다. 12월이라는 인생의 길 위에서 한 사내가 추위에 떨며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모습, 그게 바로 실패 기념일의 제 모습입니다. (p. 28)

매년 자신만의 기념일을 맞으며 그는 ‘실패가 실패가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고 놀라곤 한다. 자신이 어떤 이유로 실패했는지 차근차근 짚어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성공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호승 시인을 ‘신춘문예 3관왕’이라 부르곤 한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로, 이듬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시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까지 당선된 그의 이력을 두고 이름이다. 하지만 이 역시 쓰디쓴 실패를 거듭한 끝에 얻게 된 단 열매였다.

“저도 몇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최종심사에서 떨어지기도 했어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던 저는 학교도 휴학하교 군대에 자원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 보초를 서면서도 계속 시를 썼어요. 제대 후 복학할 등록금이 없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떨어지고 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신춘문예에 당선된 겁니다. 실패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는 실패를 받아들이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에 길들여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성공하기 위해서 실패했구나’ 하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하듯이 모든 것이 실패인 것처럼 보일 때도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인간은 실패가 허락된 유일한 창조물입니다. (p. 418)

실패는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실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래도 실패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실패 속에 있는 성공의 향기부터 먼저 맡아보세요. 실패에는 늘 성공의 향기가 납니다. (p. 419)




무엇을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누군가 말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도대체 그 때가 언제냐고. 인생은 수많은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고 우리는 정답을 찾아 헤매며 살아간다. 때 혹은 순간에 대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도통 ‘그 때가 언제인지’ 정답을 알 수가 없다. 어떤 때는 섣불리 행동해서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뒤늦은 선택으로 기회를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 때’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는 걸까.

“목수가 대패질을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팻날을 숫돌에 가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길 수도 있는 거예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됩니까? 그물을 손질해야 되는 겁니다. 그물을 손질하는 시간이 길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계속 준비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큰일 나죠. 준비의 시간이 길 수도 있지만 한계를 넘으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때는 없는 거예요.”

지금이 자신이 무엇을 하기에 이른 순간인지 늦어버렸는지, 아니면 적정한 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지금 해보는 것이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처음 들어서는 길이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걷다보면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누구도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정호승 시인은 완벽한 때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아비정전>으로 유명한 홍콩의 영화감독 왕저웨이(王家衛)에게 한 기자가 ‘왜 좀 더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시작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매번 완성된 시나리오도 없이 촬영을 시작하는 왕 감독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라는 것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중략) 언젠가부터 왕 감독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그 자체가 이미 그 일을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p. 39)

아울러 정호승 시인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흔이 넘은 시인의 어머님은 예순이 넘은 아들에게 아직도 ‘아직도 늦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해 봐라’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스스로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인생임을, 시인은 일깨워주었다.




고통이란 그냥 견디는 것

실패 없는 인생이 없듯, 고통 한 점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호승 시인은 고통 없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죽은 자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는 ‘고통은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하나의 징표’라는 사실을 전하고자 했다.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므로 고통 없는 삶을 바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넘어서야 할까. 시인은 고통을 이해하는 관점이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통을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로 생각하고 극복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바람인 듯 생각하고 견디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같은 시인의 깨달음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으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했다. 박완서 선생은 1988년 병고로 남편을 잃고, 3개월 뒤 아들까지 사고로 잃는 슬픔을 경험했다. 산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는 작가의 애끊는 심정이 드러나 있다.

선생을 인터뷰한 잡지사 기자는 “선생님,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선생께서는 “그것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고통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이 말씀을 저는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고통이든 고통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그때 비로소 고통은 견디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p. 162)

정호승 시인은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고통을 견디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페인 속담에 ‘항상 날씨가 좋으면 곧 사막이 되어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햇볕을 원합니까, 그늘을 원합니까. 햇볕을 원하시죠? 저도 햇볕을 원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햇볕을 원한다는 것은 내가 소망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렇게 햇볕이 계속 내려쬐면 내 인생이란 땅이 무엇이 될까요.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햇볕을 원한다고 해도 내 인생이란 땅은 사막이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끔 가다가 고통이란 비바람이 몰아치기 때문입니다. 절망이라는 눈보라가 몰아치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감사한 일이예요? 그래서 저는 그늘과 햇볕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어서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썼습니다.”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정호승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고백했다. 그들은 그늘을 사랑하고 스스로 그늘이 된 사람, 눈물을 사랑하고 자신이 눈물이 된 사람이다. 삶의 고통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견뎌낸 그 고통이 삶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는 정호승 시인의 솔직하고 생생한 경험들과 주옥같은 글귀들로부터 얻은 가르침, 그로부터 비롯된 성찰은 물론 그 모두가 반영된 시인의 소중한 작품들이 함께 담겨있다. 시 ‘수선화에게’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시인의 대표적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시 ‘수선화에게’의 한 행이 그대로 제목이 된 경우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시인이 어릴 적 친구를 위해 건넨 말이었다. 중년에 들어서 외로움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인간은 외로움이라는 본질적 숙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본질이면 받아들여야 됩니다. 사람이니까 죽는 겁니다. 죽음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니까 외로운 거예요. 외로우니까 사람인 겁니다. ‘왜?’라고 생각하지 말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길을 걸어가고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살아가시면서 뼈저린 외로움이 느껴지실 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렇게 긍정화 하고, 본질을 회의하지 마시고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인생을 마주하는 정호승 시인의 자세는 언제나 겸허하다. 거대한 파도에 맞설수록 뒤로 밀려나듯이, 파도를 넘는 방법은 물살을 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그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 시련과 고통까지도 낮은 자세로 감사히 받아들인다. 그러한 시인의 지혜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통해 독자에게 물들어간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는 시인이 불어 보내는 순풍이다. 그 따스한 바람을 타고 독자들은 시인과 함께 인생의 바다를 순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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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정호승 저 | 비채
3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이후 7년간의 기다림과 산고 끝에 정호승 시인이 신작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저자가 사무치도록 마음에 담아둔 한마디를 매 꼭지마다 던지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서술하는 형식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지 않았던 작품만을 모은 신작 산문집이다. 지금 절망하고 있다면 가슴을 울리는 정호승 시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지나간 실패와 좌절을 털어버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남자들이여, 부장으로만 살지 마라! - 신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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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혹(惑)하지 아니한다하여, 붙여진 마흔(사십대)의 또 다른 이름. 삶에 대한 자신만의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옛 이야기다. 사십의 나이, 도처가 허방이다. 한 발만 헛디디면 낭떠러지다. 그러니 마흔이라고 흔들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지만, 마흔의 추락은 날갯짓만 요란하다.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에서 신정근 교수는 불혹을, 사십이라는 변곡점을 말했다. 그는 장 레옹 제롬(Jean-Leon Gerome)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를 보여주면서 이야길 꺼냈다. 그는 이 그림을 책에 넣고 싶었다.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이 온기가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해서 (조각이) 사람이 되고 결혼을 한다. 조각일 때는 늙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체가 되면 노화가 시작된다. 마흔, 사십년 동안 노력에 의해 얻은 게 있다. 사십이 되고 잃은 것도 있다. 마흔은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는 묘한 시기다. 그런 측면에서 얻기만 하고 잃지 않으려고 하면 힘겨워진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 사십이라는 나이다.”

“내가 피그말리온이라면 갈라테이아를 인간이 되게 하여 늙어서 죽게 했을까, 아니면 조각상의 상태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진 젊은 상태로 있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피그말리온의 사랑의 열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늙고 병들어 죽게 하는 것도 몹쓸 짓이다.”(p.224)

이어 꺼낸 것이 공자의 후손들이 사는 곳을 ‘공부(孔府)’에 있는 벽화로, 용머리, 기린 몸, 소발로 된 상상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그 동물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해를 먹으려고 한다. 배가 불러 먹을 수도 없는데도 먹으려는 이 동물의 이름은 ‘탐(貪)’이다. 즉, 탐욕을 경계하는 그림인 것.

“이 벽화를 보면 내가 과욕을 부리는 게 아닌가 반성을 한다. 피그말리온은 사랑을 얻었지만 아름다움은 노화를 향한다. 둘 모두를 얻을 순 없다. 하나를 놓아야 한다. 공자는 더 가지려는 습성을 경계했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의 인간유형과 마찬가진데, 이 그림은 탐욕을 경계한다. 내려놓아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을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내려놓기를 거부하면 짐이 점점 더 늘어난다. 그러니 멀리 못 뛰고 뛰어도 뒤로 넘어진다. 사십을 경계로, 혹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정리할 때 가져가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이 뭔지 알아보자.”

“사실 노화는 성장이 멈추는 때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마흔 즈음이 아니라 20대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마흔은 20대부터 진행되어 온 노화가 축적되어 더 이상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기이다.”(p.23~24)

이규보 <산석영정중월 山夕詠井中月>

산승탐월색       산에 사는 손님이 달빛이 좋아
병급일병중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었네
도사방응가       절에 돌아와 비로소 깨달았으리
병경월역공       병을 기울이면 달도 따라 비게 되는 것을

초발심과 진심

신 교수, 입설구도(立雪求道)와 단비구도(斷臂求道) 두 그림을 꺼낸다.

“두 그림에서 달마스님과 혜가스님의 관계가 다르다. 입설구도에서는 서로 쳐다보지 않으나 단비구도에서는 서로를 향하고 있다. 돌아보지 않고 있던 사람을 어떻게 돌아보게 만들었을까. 인간은 12월과 1월에 가장 착하다. 2월은 후회하기 시작하고 9~10월이면 내년에 보자고 한다. 되돌이표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 뭔가 하나를 한다는 건 다른 하나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달마스님을 마주보도록 만든 것은 혜가스님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뭔가 내놓지 않고 다 가지려 하면 아무 것도 못 가진다. 혜가스님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달마스님과 만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내가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나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다른 하나를 가질 수 있다. 스스로 답을 해야 하는 과제다. 자, 당신에게 묻는다. 무엇을 내려놓고 희생할 수 있는가.




의미를 찾는 삶

신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의미를 좀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시황이 책의 제작?판매?유통 등을 금지하는 협서률(挾書律)을 발표한다. 그러다 한나라가 들어선 뒤 서적을 수집한다. 문예부흥을 생각하고 공묘(공자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의 노벽을 허무는데 책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30~40년을 사면 노하우나 교양, 소양이 생기는데, 그것을 통해 스쳐가는 것에 의미를 찾는 게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다.”

“의미는 느끼는 것으로 부족하고 만들 때 충만해진다. 의미가 충만한 삶은 그다지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40~50대라면 의미를 만드는 나이라 생각한다. 의미를 찾느라 혹하지만(흔들리지만) 의미를 만드느라 불혹하게(흔들리지 않게) 된다.”(p.239)


상상, 나의 세계를 키우는 것

명나라 왕가의 후손인 ‘팔대산인’의 그림은 간결하다. 그는 순간에서 사물의 핵심을 꼽아낸다.

“그의 많은 그림 중에 물고기가 날고 있는 것 같은 그림도 있다.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을 파괴한 것이다. 한 세계에 갇혀 있으면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꾸지 못한다. 팔대산인의 그림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를 해야 할 상황인데 안 한다. 수수방관이다. 악을 행하지 않았으나 선을 한 것도 아닌. 보통사람의 특징이다. 살아가면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신 교수는 카드와 자선냄비를 결합한 구세군 디지털 자선냄비의 예를 꺼냈다. 이 덕분에 올해 전체 모금이 늘었다. 이전 상황을 내버려두지 않고 좋게 풀어냈다.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 잡지를 만들어서 팔 수 있는 길을 만든 예.

“사십뿐 아니라 인생 후반기에 가장 후회할 것이 있다. 뚜렷하게 나쁜 일을 하진 않았지만 뭔가 좋은 쪽으로 나아가는데 한 게 없는 거. 그것이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큰일이 아니어도 일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무엇이라도 했느냐. 나빠서 안 한 게 아니라 방법이 없어서 낯설어서 수수방관한다. 수수방관보다 일을 풀어나갈 수 있는 묘안을 짜내야 한다.”

정약용 <지각절구 池覺絶句>

중화인지해간화       꽃 심은 사람들 꽃구경할 줄만 알지
불해화쇠엽경사       다시 화사한 잎펴짐은 모른다네
파애일번림수후       한 차례 장맛비 그친 뒤에
약지제도눈황아       가는 가지마다 연노랑 새싹
“사람은 자신들의 방식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며 억지를 부리게 된다. 이런 이들은 새가 죽은 뒤에도 자신의 잘못과 한계를 돌아보지 못할 수 있다.”(p.93)


마흔, 내려놓아야 할 짐과 챙겨야 할 짐

‘내려놓기’의 예로 신 교수는 진시황의 ‘천지구장(天地久場)’을 꺼낸다. 진시황은 노화에 저항하고자 했다. 영생을 바랐다. 인간의 조건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내려놓아야 한다.

“진시황의 ‘천지구장’은 『노자』의 ‘천장지구’를 완전히 비틀어서 받아들인 것이다. 『노자』는 천지가 노화에 저항하는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에 영생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지만 「진시황본기」의 천지는 인간의 욕망을 투사시켜서 실현하게 하는 기호일 뿐이다.”(p.23)

주 려왕의 ‘오능미방(吾能?謗)’이 따른다. 주나라 려왕은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을 가차 없이 죽였다. 그러니, 백성들은 눈짓으로만 의사전달을 했을 정도였다. 폭군처럼 남의 입을 틀어막는 것에 대한 경계다. 신 교수는 인간은 안 좋은 소리를 막으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놓고 진실한 자세와 마음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사이불사(死而不死)’.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이순신 장군을 꺼낸다. “그 사람하면 어떤 사람이라고 연상할 수 있는 것. 그 사람이 한 것에 대해 총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이지의 ‘동심전심(童心眞心)’에 대한 이야기가 뒤따른다.

“진심은 자기 자신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사회화된 진심도 있다. 약간 거짓이 섞인 진심이다. 어쩔 수 없이 거짓이 섞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지는 아이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것에 한 번 더 주목할 것을 권한다. 남을 따라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다른 것을 끼워놓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본, 사회적 규범 등에 몸이 길들여져 있다. 그것을 벗어나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한다. 자기 삶에 대해 자기 식의 도전을 않고 사회나 자본의 포로가 돼 있다. 동심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한 번씩 발동시켜야 한다.”




마흔, 자기주도적 존재가 돼야 할 나이

“나는 『예기』 「옥조」에 나오는 구용을 잘 닦고 『논어』 「계씨」에 나오는 구사를 챙겨서 『중용』에 나오는 구경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이도 『격몽요결』에서 구용과 구사를 익혀야 할 것으로 꼽았는데, 우리는 구용, 구사에 구경까지 더해서 40대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나침반으로 삼았으면 좋겠다.”(p.277)

신 교수는 구용(九容), 구사(九思), 구경(九經)을 사십대의 미덕으로 꼽았다. 구용은 『예기(禮記)』의 구절을 소학에 옮긴 것으로 ‘아홉 가지 올바른 태도’를 뜻한다. 족용, 수용, 목용, 구용, 성용, 두용, 기용, 입용, 색용 등이 그것이다.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하게 되지만, 주의해야 하는 행동거지다.

“첫째는 족용중으로 걸음걸이는 무게 있게, 둘째는 수용공으로 손놀림은 공손하게, 셋째는 목용단으로 눈 모양은 단정하게, 넷째는 구용지로 입 모양은 꾹 다물며, 다섯째는 성용정으로 목소리는 조용조용하게, 여섯째는 두용직으로 머리(고개)모양은 똑바르게, 일곱째는 기용숙으로 호흡(기상)은 정중하게, 여덟째는 입용덕으로 선 자세는 점잖게, 아홉째는 색용장으로 낯빛은 엄숙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용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이 아니라 생각해 봐야 할 체크 포인트이다. 초점은 근엄한 모습을 하라는 데 있지 않다.”(p.277~278)

신 교수는 중요한 것만 꼽으면 된다고 언급한다. 관계맺음에서 의미 있는 것만 추리면 된다는 것. 발걸음은 무거운 것이 바람직하고, 손동작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 상하지 않게 공손하게 하며, 목용은 단정하게, 입 모양은 늘 걸쳐있게, 소리는 조용하고, 머리는 단정하게, 목소리는 정숙하게, 서 있는 모양은 가볍게, 낯빛은 가볍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용은 간단한 듯하지만, 첨예한 의견 결정 사안에선 간단하지 않다. 신뢰성 있는 자세와 태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이 구용이다.

구사(九思)는 『논어』 계씨(季氏)에 나오는데, ‘군자가 지켜야 할 아흡 가지 올바른 생각’을 가리킨다. 시사, 청사, 색사, 모사, 언사, 사사, 의사, 분사, 견득사의 등이 그것이다.

“구사는 사고 판단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아홉 가지의 초점이다. 첫재는 시사명으로 볼 때는 분명한지, 둘째는 청사총으로 들을 때는 확실한지, 셋째는 색사온으로 표정(낯빛)은 따뜻한지, 넷째는 모사공으로 태도가 공손한지, 다섯째는 언사충으로 말이 진실한지, 여섯째는 사사경으로 일에는 신중하게 신경을 쓰는 것이다. 일곱째는 의사문으로 헷갈릴 때는 물어보고, 여덟째는 분사난으로 화가 치밀 때는 이후에 닥칠 어려움을 떠올리며, 아홉째는 견득사의로 얻을 일이 생기면 옳은지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구사는 계율이자 원칙이 될 만하다 초점은 사람이 신경 쓰고 집중해서 이루어야 할 상태를 한두 번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굳게 지키는 데 있다.”(p.278)

『중용』에 나오는 ‘구경(九經)’은 위정자의 도를 제시한 것이다. 수신(修身), 존현(尊賢), 친친(親親), 경대신(敬大臣), 체군신(體群臣), 자서민(子庶民), 래백공(來百工), 유원인(柔遠人), 회제후(懷諸候) 등이 구경이다.

“구경은 책임자가 자신의 조직을 잘 이끌고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 원칙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첫째는 수신으로 몸을 닦고, 둘째는 존현으로 전문가를 높이며, 셋째는 친친으로 친척(이너서클)을 살갑게 대하고, 넷째는 경대신으로 의사결정권자를 우대하며, 다섯째는 체군신으로 실무자를 포용하고, 여섯째는 자서민으로 시민(동료)을 사랑하며, 일곱째는 내백공으로 전문가(기술자)를 초빙하고, 여덟째는 유원인으로 외국인을 회유하며, 아홉째는 회제후로 지도자와 연대해야 한다. 구경은 40대가 각 분야의 의사결정권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입지를 굳히기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이자 목표이다.”(p.279)

신 교수, “구용, 구사, 구경을 제대로 섞으면 자기 주도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나’는 가족, 회사 등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데, 당장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얼마나 적실하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문제. 그는 ‘라잇놔우(지금당장)’를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고 권한다. 죽게 될 때는 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단수이지만, 많은 경우 복수로 산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 어떤 직급 등 나를 이루는 요소는 꽤나 많다. 완전한 단수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단수로 살 수 있는 것과 복수로 살아야 할 것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게 못한다면 남을 대신해서 사는 삶이 되고, 사십 넘어 오십이 될 때 찾아오는 것이 허무다. 날 위해 무엇을 했나, 하는. 허무에서 벗어나는 법? 그는 욕망이 아닌 ‘의미’를 권한다. 의미가 충만한 삶으로 살게 한다는 것이다. 수수방관이 아닌 묘안을 짜야 한단다.

“남자들에게 특히 당부하고 싶은 말인데, 부장으로 살지 마라. 스스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사회적 역할, 친구와의 관계 등 부족하거나 충동할 수 있지만, 그 무엇으로도 흔들릴 수 없는 것이 부장, 과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키워야 행복이 찾아오고 새로운 것을 가꿀 수 있다. 어머니, 아버지도 틀이다. 아버지로만, 어머니로만 살지는 마라. 사람이라는 측면을 늘 인식해야 한다.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것 자체로 소중한 것에 대해 묘안을 짜내면 주변의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것이 노년의 에너지원이 된다. 할 수 있는 것의 이유를 찾고 움직여 나가자.”

“정약용은 남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자칫 미화와 허영, 왜곡과 오만의 결기일 수도 있지만 고백과 용기, 자기반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자신을 심판하는 자세는 결국 후회, 아쉬움, 절망, 흥분, 도취 등으로부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고, 그 속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p.31~32)




신정근 교수에게 묻다

동양철학이 서양철학과 다른 이유와 동양철학 공부를 하면 좋은 이유에 대해 듣고 싶다.

서양철학의 첫 번째 물음은 앎(지식)이다. 최초의 근원에 대한 탐구. 그것을 아르테라는 말로 탐구했다. 중국에서 최초의 탐구는 관계맺음 방식이다. 물리적인 관계, 덕에 의한 관계인데, 어떻게 사람을 나의 의지와 연합해서 함께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연구했다. 덕 있게 살라는 탐구였다. 최초의 출발점에서 두 개가 다르고, 동양철학은 관계를 놓고 바라보기 때문에 자유로워지고,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 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기독교는 성선을 믿지 못했다. 기독교는 인간을 신이 구원하나, 성선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다. 다른 존재에 기대지 않는다. 유학에서 가장 오랜 전통은 자신의 맨 얼굴을 대면하는 것인데, 서양에서는 고백 전통이 근대에 와서 사라졌다. 자기변명은 늘어나지만 자기 고백의 전통은 없다.

내 안에는 흔들리고 바람이 불고 어둠과 빛이 교차한다. 이런 삶에서 부동의 삶, 주인 되는 삶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다. 흔들리며 사는 삶이 인간적인 삶이 아닐까?

중심을 부동의 축으로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 접시를 돌리는 서커스를 할 때, 접시가 아무 움직임 없이 도는 것이 아니다. 기우뚱거리면서 중심을 돈다. 우리의 중심도 그런 기우뚱한 중심이다. 중심축이 있고, 흔들리면서 무너지지 않는 축인 거지. 中도 깃발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흔들리는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서 40대는 전환기이다. 숨 가쁘게 살아온 지난 4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미지의 세계로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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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신정근 저 | 21세기북스
이 책은 고전의 해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들로부터 주제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저마다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양고전의 고사들은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여기에 소설, 영화, 노래 등 주제와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맞물려 글의 재미를 한층 더한다. 또한 독자와 함께 40대를 보내고 있는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 나만의 요령은…” - 『서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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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중에서’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인생이 교집합이기 때문이에요. 읽는 사람의 삶도 함께 담아낸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SNS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작가 하상욱. 그가 쓴 『서울 시』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다. 각 시의 주제에 맞춰 그려 넣은 일러스트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겸손하지 않고 뻔뻔해 보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시선을 받자 쑥스럽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였다. 그런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제가 ‘~중에서.’라는 말을 쓰는 이유를 아시나요? 인생은 교집합이잖아요, 제가 경험했듯 글을 읽는 분들의 인생에도 분명히 저와 같은 상황과 감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들의 인생을 인용하는 것처럼 쓰고 싶었던 겁니다.”

당찬 걸음걸이로 그가 등장했다. 아담한 키, 검은 뿔테 안경, 청량한 그린 컬러의 바지는 이미 하상욱 본인을 소개하고 있는 듯 했다.

“반갑습니다. 편하게 질문해주세요. 제가 들어보고 답하기 싫은 건 하지 않을 거예요. (웃음)”

등장한 지 몇 분만에 모두와의 긴장을 풀어버린 한마디였다.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2줄짜리의 시, 목을 발로 차는 모습을 담은 ‘목차’사진이 떠올랐다. 먼저 한 여성독자의 질문이 쏟아졌다.

“친구 결혼식장에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봤어요. 인상 깊었는데, 정말 직접 노래하신 건가요?”

“네, 제가 직접 한 거예요. 연습은 집에서 혼자 했고요. 원래 제가 ‘뻘짓’을 잘 하거든요. ‘내가 하면 어때?’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책 속에 있는 ‘작가 소 개’에서 저의 사진도 그런 마음으로 찍은 거예요. 아, 오늘 입고 온 바지가 그때 그 바지예요. 뭐든 일단 시도해본 뒤, 반응을 보고요, 혹시 반응이 없다 싶으면 바로 삭제도 해요.”

“노래 잘하시던데요?”

“그래서 더 그런 짓을 하게 되는 거예요. (웃음)”

“페이스북을 거쳐 e-book으로 출간한 다음에 종이 책이 나왔는데, 전개 과정을 자세하게 알고 싶어요.”

“7월26일이었나, 처음으로 ‘개허세’라는 글을 올렸어요. 다음 날 보니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30개에요. 그 당시에 ‘좋아요’ 30개면 굉장히 많은 거거든요. 희열을 느꼈죠. 그래서 그 뒤로 계속해서 시를 올렸고요, 역시 반응이 안 좋다 싶은 글은 바로 지웠고요. 지금의 『서울 시』같은 글을 쓴 건, ‘넌 필요할 때는 내 곁에 없어. 넌, 바쁠 때만 날 괴롭혔지. 잠 중에서.’ 이런 글이에요. 그 글이 처음이었어요. 근데 반응이 정말 좋은 거예요. 그러다 같은 회사 직원들이 전자책으로 내보라고 권유했고, 처음에는 말을 듣지 않다가 두 번째 권유를 받았을 때는 진심이 조금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디자인 하고 만들어서 추석 전전날 등록했어요. 추석 다음날, 주변에서 ‘너 빨리 트위터 봐라. 난리 났다.’라고 해서 봤더니 누군가 올려놓은 저에 대한 게시물에 천 몇 백 개의 댓글이 달려있는 거죠. 아직 기억하는데, ‘악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분이 올린 게시물이었어요. 그 분을 찾아내어 책을 보내드렸죠, 감사해서. 그러다 전자책의 다운로드가 1만 건, 2만 건이 넘고, 그러던 차에 중앙북스 조한별 에디터와 편집장님께서 책을 써보자고 제안을 받았어요. 이미 『서울 시』를 80여 편 이상 써놓은 상태여서 ‘지금 여기서 좀 더 써서 내자’고 말씀 드렸어요. 그 후로 3달 걸려 종이책으로 나왔습니다. 전자책 다운로드는 지금 10만 건 약간 넘더라고요. 음, 근데 여러분들 표정이 굉장히 실망한 표정들이신데요? 제가 뭔가를 더 얘기해야 할 것만 같은……. (웃음) 저는 좌절과 극복, 뭐 그런 거 없어요! 한가지 확실한 건 출판사에서 연락온건 중앙북스, 여기 딱 한 군데라는 사실입니다. 딴 데는 연락 안 왔고요. (웃음)”

몇 개의 질의응답 후 프로젝터가 켜졌다. 비공개 사진과 글을 보여주며 『서울 시』의 책 내용에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요즘에는 서로 대화하려는 태도가 없고 ‘아닌데? 맞는데?’라는 식으로 먼저 의심하는 자세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썼어요. 예를 들어, 상대가 틀린 말을 했어요. 거기에 대고 ‘너 틀렸는데?’라고 공격적인 말을 해버리면, 저는 그걸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난다고 봐요. 요즘 사람들이 너무 ‘그거 아닌데?’, ‘맞는데?’ 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요즘 SNS문화가 바로 ‘셀카’문화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셀카는 내 모습을 담아내는 거죠. 그렇게SNS에는 내가 먹은 것도 올리고 본 것도 올려요. 남이 공감할지 안 할지는 생각하기 보다 스스로의 얘기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이 봐주기를 바라고요. 제3자는 이런 고민에 빠지죠. ‘내가 뭘 더 얘기해줘야 하지?’라고. 저도 철저하게 SNS문화에 빠져있는 사람이지만 남의 입장을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도 SNS로 시작하여 이름을 알리지 않았나. 하지만 그는 SNS로 인해 오히려 소통이 단절되기도 하는 부분에 아쉬워했다.

“한 가지 얘기를 말씀 드릴게요. 어색한 사이의 두 명이 있어요. 공교롭게도 둘이 같은 7호선을 타고 가요. 그러면 ‘아, 그럼 오늘 제가 7호선 타고 갈까요?’라는 식의 말을 하면 분위기가 편안해져요. 이건 제가 실제로 경험한 얘기예요. 꺼내기가 어렵거나 부끄러운 얘기를 찾아서 하면, 두 사람의 경계를 허물게 되는 거죠. 여러분도 한번 써먹어 보세요. 관계를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요.”

캡처사진은 진짜인가요? 조작되었다거나 컨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혀 조작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말씀 드리자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8년째 연애 중이에요. 이제는 그냥 동네 옆집 친구 같죠. 어느 주말엔가, 저희 집에서 각자 다른 방에서 놀고 있었어요. 갑자기 여자친구가 “야! 벌레, 벌레!”하고 소리치길래 얼른 약을 들고 달려갔죠. 근데 여자친구가 저를 가리키고 있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서로 장난을 많이 쳐요. 그래서 시가 떠오르면 여자친구에게 괜찮은지도 물어보고, 괜찮다 하면 올리고 그러죠.”

책에 대한 몇 장의 이미지를 더 본 뒤, 다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트위터에 자기 이름을 검색하기도 하시나요?”

“많이 해요. 아까 이 곳 오면서도 검색했어요. 포털 사이트로 말하자면, 하루에 ‘네X버’ 10에서 20회, 다X 10회, 네X트 4에서 5회, X글에서는 생각날 때마다 검색해요. 저에 대한 글이 올라왔나, 무엇을 재미있어 하는지도 보고요.”

“‘하상욱 별로다.’와 같은 글이 있으면 어떻게 하세요?”

“일단, 기분은 좋지 않은 게 사실이고요. 너무 열이 받아서 “에잇!” “어우!”’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해요. 저에 대해 꾸준히 비판하는 글을 쓰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실제로 그분은 시인을 꿈으로 갖고 계신 분이에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감히 ‘하상욱 따위’를 갖고 글을 쓰면서까지,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보여주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요.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어요. 제가 원래 ‘시’를 썼던 사람이 아니니까. 게다가 저는 제 글을 ‘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를 컨셉으로 한 글’이라고 생각해요. 짧으니까 ‘시’라고 한 거예요.”

“시를 길게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

“시가 길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저랑 비슷한 컨셉으로 책을 내신 분이 있어요. 그 분의 글은 10줄도 있고, 길죠. 근데 저는 본문이 길면 읽히지도 않고 읽기 싫어지더라고요. 짧게 쓰는 재미가 있는데, 그 재미가 없어지는 게 싫어요.”

“작가로 불리는 게 좋으신가요?”

“물론 좋죠. 뿌듯해요. 그렇지만 작가로 안 불린다 해서 싫은 것도 아니에요. 본래의 제 직업은 서비스 기획자이자 마케팅을 돕고 있는 ‘기획업무’이니까요. 뭐든 괜찮아요.”

“좋은 디자인은 ‘더 이상 뺄 게 없는 디자인’이라고 하셨는데, 글을 쓸 때도 그렇나요.”

“네, 맞아요. 더 이상 뺄 요소가 없는데도, 애초부터 내가 계획했던 것이 잘 전달되는, 그게 좋은 디자인이죠.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요. 제가 그렇게 학습하다 보니, 글에도 접목시키게 되고요.”

“작가님의 인생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어릴 때부터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특이한 짓을 많이 하거든요. 20대 초반엔 사람들 앞에 나가서 노래한 적도 있고요, OT같은 델 가면 사회도 맡고. 아, 몇 달 동안 컨퍼런스 사회도 본 적 있어요. 심지어는 밀리오레 가요제도 나갔었어요. 여러분들 밀리오레 가요제 아세요? 나가서 “유후~” 하며 분위기도 띄우고 춤도 췄는데, 아예 반응이 없었어요. 당시에 ‘안되나요’ 라는 곡을 불렀는데, 제목처럼 정말 안되더라고요. 그래도 그땐 제가 이미 유명한 사람이 된 줄 알았어요. 한 때는 찌질한 정치 논객, 파이터이기도 했는데 신물이 나는 행동이란 걸 안 뒤로 관뒀죠.”

“라이프 스타일이 듣고 싶어요.”

“저는 인생을 계획 없이 살아요. 그렇게 살면 재미있어요. 오히려 계획을 세우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할 때, 자신감을 상실해 버리거든요. 그런 건 시간낭비예요. 저만의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 요령이 있다면 ‘계획 없이 사는 거’예요.”

덧붙여, 작가는 계획 없이 살다 보니 어느 날 자신이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 되어있더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를 즐겨 하는 사람이, 디자이너였다가 서비스 기획을 하는 기획자가 되어있었다고 했다.

“원래 하던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바꾸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냥, 자신감이죠. 저는 ‘아, 이것도 재미있겠는데?’하면서 재미있는 것이 보이면 바로 도전했어요.”

“티비에 나올 생각은 없나요? 인터뷰이로 나오는 것 말고, MC같은 걸로요.”

“별로요. MC를 해보니까, 제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MC는 일찌감치 생각 접었어요.”

“애인과 싸우고 나서 잘 화해할 수 있는 요령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먼저, 자존심을 버리세요. 저는 “으어엉~내가 미안해애~”하며 막 울고 그래요. 효과가 떨어지면요? 그럼 더 많이 우시면 되요. 그리고 그 후엔 애인에게 티가 나게 잘해주세요. 단, 여성분들은 그러지 않는 편이 나을 거예요. 대부분 남자의 심리가, 여자가 그렇게 하면 기고만장 해지거든요. 음, 이건 별로 좋은 얘기가 아닌 것 같지만요. 아무튼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래요.”

“시각디자인 전공을 하셨는데, 기획자부터 작가까지 하고 계신데, 또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신지.”

“특별히 다른 걸 생각한 적이 없고요. 혹시 드라마에 조연급 정도로 캐스팅이 된다 ‘발연기’를 한번 펼쳐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웃음) 그것 말고도, 앞으로 재미있는 것이 생긴다면 또 하겠죠.”

마지막 대답을 한 뒤, 프로젝터 화면을 넘기더니 크게 ‘짝짝짝짝’이라고 쓰여있는 페이지를 보였다. 독자들이 박수를 치니, 작가도 박수를 치며 위트 있는 말로 마무리 했다.

“자, 우리 모두 건강을 생각해서 열심히 박수 치자고요! 하하.”

책의 맨 앞장에 사인을 받고 나서, 작가에게 단독 컷을 요청했다. 그는 옆에 놓여있던 의자를 끌고 와 앉더니, 금새 독특한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를 닮은 유쾌한 책, 『서울 시』의 종이책 발간에 힘찬 ‘건강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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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하상욱 저 | 중앙북스(books)
단 두 줄의 짧은 글을 통해 SNS 10만 유저의 머리와 가슴을 관통한 『서울 시』 종이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무료로 출간되어 전자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2권이 1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된 컨텐츠다. 하상욱의 시는 짧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찰나에 관통하는 순간적인 심상은 읽는 이들에게도 명료하게 다가간다. 본 책은 전자 시집에서 발표된 시와 번외편을 포함해 시는 총 119편, 번외편으로 알려진 카피 같은 산문은 총 5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책 10권 분량에 달하며, 짧은 전자책을 읽고 아쉬웠던 수많은 독자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은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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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치욕적 역사지만 기억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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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을 갔다. 서울의 중심에 있지만, 지금의 서울에서 벗어나 있는 장소다. 메트로폴리탄 서울과는 다른 풍광이 펼쳐져 있다. 근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는 그런 정동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외국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요량으로 정동 한가운데 있는 경운궁(덕수궁)에 머물렀다. 실질적으로 정동이 나라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특히 외교관계를 통해 조선의 생존을 모색했던 고종이 여러 나라 외교관과 자주 만나면서 서양식 문화를 받아들인 흔적들이 궁궐 곳곳에 남아 있다.”(p.179)




원구단, 대한제국의 시작

과거 대한문은 지금보다 훨씬 앞에 있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태평로가 뚫리면서 대한문은 뒤로 밀렸다. 대한문은 정문이 아닌 동문이었고, 현재 위치보다 14m 앞에 있었다. 한 나라가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문도 밀리고 만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20세기 초, 조선과 대한제국은 함께 쓰이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독립을 부르짖었을 때도, 3명 중 2명은 ‘조선독립만세’를, 3명 중 1명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대한’이라는 명칭은 대한문에서 명동을 바라보는 곳에서 시작됐다. 원구단(환구단)이었다.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그곳으로 향했다. 어쩔 수없이 맞닥뜨리는 재능교육 건물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난 2월 27일부로 이전까지 가장 오랜 기간 농성 투쟁기록(1895일)을 깨고 계속 이를 갱신하고 있는 재능교육 조합원들의 모습이 밟힌다.

재능교육 건물 옆에는 엉뚱하게 자리 잡고 있는 원구단의 정문이 있다. 고종은 1897년, 왕권의 강대함을 알리고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해 왕을 황제라 부르고, ‘광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정해 사용하는 ‘건원칭제’(建元稱帝)를 단행했다.

“조선은 1882년 청나라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맺었다. 장정은 조약이 아니다. 조선은 청의 아래라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조선이 청과 같지 않음을 대내외에 공표한 셈이다. 우리가 자주국이자 독립국이라고 하는데 부족함이 있음을 가슴 아파한 고종은 1897년 이전의 조선과 단절하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원구단(원단, 환구단)에서 나아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로써 나라 이름이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었고, 고종은 황제가 되었다. 백성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고 밤새도록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p.166)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까지 나라 안팎으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고종은 자신의 신변안전에 지극히 민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1882년 구식군대가 일으킨 ‘임오군란’ 때도 죽을 고비를 넘긴 고종은 1895년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낭인(불량배)을 고용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을미사변’으로 충격을 크게 받았다. 을미사변 당시 일본은 독기를 품고 있는 상태였다.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해 10여 년을 준비했는데,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가 끼어들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 을미사변이었다. 이에 고종은 러시아를 자신의 배후로 택해 이듬해 아관파천을 단행하고,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조선을 공부하면서 이해가 안 간 것이 있다. 1894년까지 조선은 명나라 제사를 지낸다. 이것은 조선 사람의 머리를 이해하는 열쇠말이기도 하다. 자주나 독립을 위정자나 양반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 가긴 하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건 왕이나 황제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었다. 제후는 종묘ㆍ사직만 지킬 뿐이었는데, 유교문화가 들어오면서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국의 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되기 위해 원구단을 만들었는데, 유교적인 발상이다. 그냥 황제라고 선포만 해도 됐다.”

재밌는 것은 1897년 고종의 황제 선포를 가장 기분 나쁘게 봤던 나라는 일본이 아니었다. 청나라였다. 청은 결국 조선에 항의를 했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가 내부 사정으로 어려울 때였다. 조선은 청에게 장정의 개정을 요구했다. 물론 청은 거부했다. 2년 뒤 상황은 달라졌다. 청은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조선에 사는 청나라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1899년 한청통상조약이 맺어졌다. 이는 곧 대한제국의 완성을 의미했다. 그러나 고종은 기막히게 좋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인민(백성)의 힘을 토대로 더 확실한 개혁과 국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원구단 자리가 지금은 없어졌다. 고종이 장소를 물색하다가 자신이 머물던 덕수궁 건너편의 중국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던 ‘남별궁’을 봤다. 당시 덕수궁보다 높은 자리에 있던 남별궁 자리에 원구단을 쌓았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본 사람들이 지금의 태평로를 냈다. 조선은 풍수 때문에 종각 쪽으로 길을 냈었는데, 일본인들이 길을 만들면서 원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호텔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 황궁우만 남아 있다. 이 일대는 여러 시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일제 강점기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원구단은 신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었다. 제사를 바로 밑에서 지냈으나 일본에 의해 철도호텔이 들어서면서 흔적을 지웠다. 황궁우 앞에 놓여 있는 석고는 1902년 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

“원구단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세웠다는 점에서 일제 정책의 교묘하고 잔인한 한 면을 볼 수 있다. 결국 남별궁에서 원구단으로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의 침략 정책을 지원하는 호텔이 되었다.”(p.168)




서울시청, 근대의 아픈 상처

원구단 건너의 서울시청. 역시 일제에 의한 상처가 있다. 강제병합 후 일제는 전국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한양을 경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기도의 부속고을(경성부)로 편입시켰다. 이른바 ‘한양의 굴욕’이다. 그리고 경성부청사를 만들었다. 지금의 서울도서관(구청사)다. 해방 후 경성부청사를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늘에서 보면 ‘本’ 모양을 하고 있다는 이유 등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총독부는 ‘日’ 모양을 하고 있다.

“총독부를 없앤 건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다. 그런데 다른 나라, 특히 유럽인들은 근대를 무척 사랑한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랑 겹쳐서 근대를 밀어버린다. 그러다보니, 갓 쓰고 도포를 입다가 갑자기 양복을 입는다. 일제 강점기에 구두 신고 검은 두루마리를 걸쳤다. 근대를 잃어버리니, 다음에 우리가 갈 길을 잃는다. 치욕적인 역사지만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서울시가 굳이 구청사를 없애지 않고 도서관을 만든 것 아닐까.”




정동길, 거닐다

이어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면서 덕수궁을 품은 역사를 만난다. 저자에 의하면, 덕수궁은 조선 5대궁(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가운데 궁 노릇을 가장 못한 곳이었다. 광해군 때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까지 원래 이름은 ‘정릉동행궁’. 태조 이성계의 총애를 받던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 있었다. 원래 사대문 안에는 묘를 쓸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으나 태조는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능을 쓰게 했다. 정(貞)은 존경받는 부인에게 부쳐지는 이름으로, 정능은 정숙한 여인의 무덤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태종은 태조가 죽자 신덕왕후의 능을 지금의 정릉으로 옮겼다. 정동이란 이름은 ‘정릉동’의 줄임말이었다.

이후 선조가 임진왜란 후 한성에 돌아왔으나 거처할 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황폐되어 머문 곳이 정릉동행궁이었고, 광해군이 창덕궁을 보수해 거처를 옮기면서 정릉동행궁은 경운궁이란 정식 궁호를 얻었다. 덕수궁은 20세기 와서나 붙여진 이름이었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순종은 창덕궁에 머물고 경운궁은 고종이 머물렀다. 순종은 고종에게 오래 살라고 하면서 ‘덕수(德壽)’라는 이름을 올렸다. 덕수는 현 임금이 살아 있는 임금에게 올리는 것인데, ‘덕수궁 폐하’라고 고종을 불렀다. 덕수궁은 궁궐 이름이 됐다. 그러나 일제는 1919년 덕수궁을 다 쪼갰다. 덕수궁은 경희궁과 붙어 있을 정도로 컸으나 지금은 1/3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고종은 아관파천 후 왜 덕수궁으로 왔을까. 그것에는 국제정치적 맥락이 있다. 덕수궁 근처에는 러시아, 영국, 미국 대사관이 있었다. 고종은 일본보다 이들이 더 믿을 수 있다고 봤고, 다른 궁궐을 놔두고 이곳에서 머물렀다.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이 있던 곳이라고 해서 정동貞洞이라 불린 이곳에는 중국 사신이 머물던 남별궁과 선조가 임진왜란을 피해 잠시 머물던 행궁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경복궁과 격이 다른 주변지의 하나로 남았을 정동을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온 것은 대한제국의 외교정책과 관련이 있다.”(p.178)

정동길을 걷다보면 만나는 교회가 있다. 정동제일교회. 유명한 대중가요(「광화문 연가」)에도 나오는 교회다.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베델예배당)’이 있는 곳. 교회 바로 길 건너엔 ‘이영훈 작곡가님의 5주기를 추모합니다. 2013. 2. 14-작곡가 이영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괜스레 노래를 흥얼거리며, 약간 늦었지만 이영훈 작곡가의 5주기를 추모했다. 참, 좋아했던 노래. 그리고 이곳을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

“정동제일교회는 유일한 19세기 교회로 근대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펜젤러 목사가 교회를 지으면서 학교를 지었다. 고종이 그 학교에 ‘배재’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후 이화학당의 이름은 명성왕후가 하사했다. 정동교회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학교가 등장한 것이다. 그 뜨거운 분위기가 정동의 분위기였다. 서재필이 또 불을 지폈는데, 그가 한국에 돌아와 기댄 곳이 교회였고, 협성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젊은 청년들의 대화모임으로 독립협회를 만들 때 중추세력이자 독립운동의 한 그룹을 형성했다. 서양 종교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되고 한국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한옥으로 지은 교회가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지어 지금과 같은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하던 건물이 들어섰다. 정동교회는 아펜젤러 목사가 목회 활동을 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첫 손에 꼽히는 교회라고 할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정동교회는 이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교육 부분에서 큰 성과를 냈다.”(p.180)




중명전, 역사의 치욕

길을 따라 정동극장 옆으로 난 골목길에 있는 중명전에 다다랐다. 덕수궁의 일부였으나 일제의 쪼개기에 의해 외떨어진 공간이다. 원래 이름은 ‘수옥헌’이었으나, 덕수궁에 불이 나고 고종황제가 머묾으로써 격이 가장 높은 ‘전(殿)’이 붙은 ‘중명전(重明殿)’으로 바뀌었다. 황실의 도서관이면서 ‘외교’를 정치 키워드로 삼은 고종의 주무대로 활용됐다.

“고종의 외교정책에 대해 알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은 독립협회 해산이다.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가 기본입장으로 그 안의 일부가 공화정을 주장했는데, 이를 이유로 해산시켰다. 고종은 1900년 전제군주정을 발표했는데, 10개 항목 모두가 황제 권한만 강화하는 내용일 뿐 국민은 없었다. 한편으로 개혁 진행 세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를 생각했지만 고종은 전제군주정을 추구했다. 중추원 의원 선거가 있던 날 독립협회 간부를 체포한 것만 봐도 정치에 대한 견해가 얼마나 달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종은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수립 이후 백성들이 보여 준 외국에 대한 시위가 자신에 대한 저항으로 바뀔 수 있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정작 국가를 지탱해주는 힘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놓친 판단이었다. 백성이 없는 나라는 더 이상 지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p.175)

중명전은 무엇보다 을사늑약(1905)이 체결된 치욕의 장소다. 즉, 통감정치가 시작된 곳이다. 을사늑약은 대한제국 외교를 담당하는 ‘통감’을 두는 것을 뼈대로 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이에 맞춰 통감이 됐다. 통감을 둔다는 것은 곧 외교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었다. 외교는 주권을 가진 나라 사이에서 하는 것이나 을사늑약을 통해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를 장악함으로써 그 마수를 본격적이고도 대놓고 드러냈다.

“고종은 ‘보호조약’ 체결을 완강하게 저항했다. 이토는 남산에 포병부대를 도열시키고, 덕수궁을 군인들이 둘러싸게 해서 고종이 회의를 할 때마다 대포를 쐈다. 결국 을사오적이 새벽 1시에 도장을 찍었다. 조약은 상호 개념인데, 고종이 사인을 하지 않아서 무효다. 이토의 강압으로 일부 대신들이 사인을 했고, 이들이 그 유명한 을사오적이다. 다 나쁘지만 중 이지용과 권중현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셋(박제순, 이근택, 이완용)은 협박에 못 이겨 그리 했다. 우리말 중에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을사늑약을 빗대 ‘을사년스럽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을사오적의 이름은 정확히 알고 있으면 좋겠다. (중략) 그런 행위 자체를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을사오적의 이름에 침을 뱉으라. 이 행위를 통해 우리 역시 현재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그 선택이 역사적으로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보게 될 것이다. 나의 이름에 후손들이 침을 뱉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지를 말이다.”(p.185)

일본은 덕수궁 일부를 뚝뚝 떼어내 민간에 팔았고, 중명전도 그러했다. 그러다 1963년 영친왕에게 기증됐고, 1976년 민간에 재매각됐다가 2006년 문화재청이 인수하면서 2010년 복원,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중명전은 을사늑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1시 을사늑약 강제. 일제는 군대를 동원해 중명전을 침범하고 고종과 대신들을 협박,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보호국으로 만들었다.(늑약 : 강제로 체결한 조약) (18일 새벽 1시경 강제되었지만, 을사늑약문에는 11.17일자로 명기)

중명전 안에는 <을사늑약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조목조목 제시되어 있다.
첫째.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황궁을 침범하고 황제와 대신들을 협박하였다.
둘째. 대한제국의 주권자인 광무황제는 결코 늑약을 허락하지 않았다.
셋째. 필수적인 ‘위임, 조인, 비준’이라는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넷째. 국제법적인 조약문의 형식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다섯째. 한민족 전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을사늑약의 체결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는 외교관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외교관 모두를 귀국하라고 지시했다. 대부분 들어왔으나 2명만이 남았다. 자신들은 대한제국 황제의 명령만 듣는다는 이유였다. 이범진 러시아공사와 이한응 유럽공사였다. 당시 서른둘의 이한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라 없는 슬픔이었다. 대한제국 외교의 종말은 곧 대한제국의 멸망을 의미했다.

중명전은 외교의 부활, 즉 대한제국의 부활을 꾀한 공간이기도 했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 파견(1907)을 결정한 곳이 중명전이었다. 이준, 이상설, 헐버트 그리고 이범진 러시아공사의 아들인 이위종도 가세했다. 그러나 헤이그 특사는 본래 목적이었던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거부당했다. 일본의 공작 때문이었다. 일본과 동맹을 맺은 영국의 방해가 있었다. 이위종은 기자들을 만나 프랑스어로 왜 이곳에 왔고, 대한제국의 상황을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기사가 실렸으나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일본은 헤이그 특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대한제국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동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

이날 정동 역사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 구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했다. 르네상스풍의 건물인 이곳은 1895년 완성됐다. 당시 조선과 러시아는 친밀한 관계였으며, 고종은 니콜라이 2세를 후견인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1896년 아관파천이 이뤄질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이 공사관은 6.25 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현재 볼 수 있는 종탑만 남아 있다.

고종은 러시아를 믿고자 했지만, 러시아라고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니콜라이 2세의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에서 출발, 50일 만에 모스크바에 도착한 민영환 특사 일행은 초기 협상은 실패했다. 당시 일본 특사단 대표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러시아와 협상을 벌여 양국은 상호 협의 없이 조선의 군사ㆍ재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비밀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결국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를 한반도에서 몰아냈고 민영환은 을사늑약 체결이후 자결을 택했다.

기층 인민보다 외국 세력에 기대 근대화를 열어 젖히자했던 위정자들의 판단은 결과적으로도 틀렸다. 당시의 국제 정세나 정국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손 치더라도, 인민들과 함께 자주적인 근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시로 외국 세력의 눈치를 봤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외국의 요구에 ‘NO’라고 대답하면서 정부의 의지를 관철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근대의 아픔과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다. 정동거리에서 다시 역사를 생각하는 이유다.

“대한제국 선포부터 국권을 빼앗기기까지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가 이끈 10년 남짓한 시간에 대한 평가는 분명 엄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과 현대를 연결하는 공간에 일제 강점기만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역사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조선 후기, 그리고 대한제국으로 연결되는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를 자극으로 삼아 활동하던 우리 민족의 고민과 노력을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동길을 걸으며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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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박광일,최태성 공저 | 씨앤아이북스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근현대사 사건들을 한 권에 담았다. 새로운 교과 과정에 맞추어 쓴 이 책은 실제 강의를 보고 듣는 것과 같은 생생한 문체, 파노라마 사진을 보는 듯한 다양한 이미지 자료를 통해 어렵고 지루할 것만 같은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읽도록 돕는다. 이 책은 ‘황사영 백서 사건’을 시작으로, 근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는 의미 있는 22가지 주제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 각 주제별 사건들은 시대적 배경, 주변 인물, 외교 관계 등을 다각도로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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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책 읽었지만 빈민가 단칸방에서 4억 빚더미 - 이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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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 작가는 자신만의 독서법을 통해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끝내 꿈을 현실화 시킨 장본인이다. 총 3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 외에도 그의 활동은 다양하다. 아프리카와 필리핀 등 세계 각국 빈민촌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국내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 등 독서를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꾸고 있다.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리딩으로 리드하라』, 『꿈꾸는 다락방』등 다양한 저서에서 그는 꿈을 향해 도약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통해 공개한 그의 노하우는 많은 이들의 삶에 나침반이 되어 스스로 인생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가능케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2』를 통해 성공을 현실로 만드는 독서법을 새롭게 제시했다. 이제까지 과정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독서법이었다면 앞으로는 생존을 넘어 성공을 현실로 만드는 책읽기를 강조한 것이다. 얼마 전 그의 저서를 통해 삶의 변화를 시도하는 많은 독자들과 함께한 강연회는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수많은 독자들이 빈자리 하나 없이 빼곡하게 자리한 강연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실천적 독서법을 제시하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

캐주얼한 차림의 이지성 작가가 등장하며 강연장의 분위기는 고조되기 시작했다. 인사말과 함께 강연장이 위치한 신촌의 풍경을 바라 본 소감을 털어 놓는 작가. 화려한 신촌 거리의 모습에서 점차 서점을 찾기 힘들어지는 요즘의 상황은 작가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온 듯했다.

“신촌 인근에 위치한 대학들은 소위 한국을 이끌어가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그 일대를 채우는 것은 술집과 옷집, 노래방과 같은 유흥업소더군요.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학생들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술이 위스키라고 해요. 우리나라 위스키 소비량은 세계 1위고요. 미국의 3배라더군요. 결국 신촌의 문화는 위스키 문화인 셈이죠. 그 안에 독서량은 할 말이 없는 수준이고요.”

호텔 앞에 구걸을 하는 거지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있는 독일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는 선진국의 첫 번째 조건을 지적으로 뛰어난 문화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인 독서는 개인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외에도 나라의 수준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그가 인문고전 읽기를 비롯해 생존독서, 나아가 성공하는 독서법을 설파하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그 같은 효용성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혁명적인 사회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독서로 삶을 바꾼 지난 시간

이지성 작가는 20세 때 작가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고 열정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당시 그의 주요 도서 목록은 대부분 문학과 역사, 철학 분야에 집중 됐다. 이른바 ‘문사철’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저서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도 ‘문사철’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이야기하는 독서법이 무작정 ‘문사철’을 읽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통의 독서와 다른 중요한 차이는 바로 책읽기 안에 목적과 고민이 깃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스스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작가의 말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문사철’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바로서고 나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고민과 같이 가야 의미가 있어요. 대안 없이 책만 읽는 것은 조선시대에 책 읽는다는 핑계로 인생을 낭비하는 양반들과 다를 바가 없죠. 사실 저도 처음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랬어요(웃음). 맹자의 호연지기를 본받아야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실천하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죠. 그렇게 7년간 책을 읽었지만 결과는 빈민가 단칸방에서 원금만 4억 원이 넘는 빚더미에 앉는 것이었어요.”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빚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7년 독서의 결과는 실패였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는 대신 자신이 놓친 것을 찾기 시작했다. 마음을 비운 채 세상을 바라보며 그가 깨달은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방식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가장 큰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을 양산하는 우리나라의 비틀어져 버린 교육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합쳐 대략 20년 가까운 세월을 공부와 책읽기에 쏟아 붓지만 많은 이들의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오늘의 상황은 그런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내 옆의 사람들을 이끌어 함께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창조적 인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백성들이 이치를 따질 수 없게 하고 단순한 기술만을 가르치도록 한 것이 오늘날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이어져 온 탓이죠. 떳떳하지 못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잘못된 교육이 이어졌고 그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 관리 능력이 없는 상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는 자신 또한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실패의 원인을 깨닫게 되면서 그는 그때부터 새로운 독서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로 성공한 사람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었다. 깊은 사유와 고민의 결과로 남과 다른 길을 택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위인들을 그는 책을 통해 만났다. 그렇게 그들이 살아간 궤적을 쫓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에 적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2천명의 성공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제 인생에 적용했습니다. 성공을 하려면 성공한 사람들처럼 생각해야 됐죠. 성공한 많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하루 18시간씩 자기 일에 집중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잠을 줄이기도 했죠. 그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대개 사람들은 성공한 이들의 화려한 삶 뒤에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간과한다. 그러나 이지성 작가가 주목한 것은 바로 그 노력이었다. 로큰롤의 전설로 불리는 비틀즈는 한때 영국 부둣가 싸구려 선술집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성공을 꿈꿨다. 무려 50군데의 레코드사에서 퇴짜를 맞을 때도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발명왕 에디슨 역시 축전지를 개발하기까지 10년간 1만 번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는 실패를 할 때마다 “나는 오늘 실패한 것이 아니라 축전지가 만들어지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 외에도 삶을 성공으로 이끈 무수한 이들의 사례를 접하고 자신의 삶에 그들의 교훈을 적용하며 그는 비로소 작가로서 입지를 세웠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를 세상에 내 놓으며 성공의 현실화 시킨 그는 그러한 자신의 독서법을 생존독서라고 정의했다.




생존에서 더 큰 성공으로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습득한 것의 80%를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린다. 그가 그간의 저서를 통해서 지속적인 독서를 재차 강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특히 전작인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에서는 1년 동안 하루 한권의 책을 읽는 365일 독서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모두 스스로의 뇌를 성공에 접속시키는 과정이다. 그에 이어 최근 발표한『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2』는 생존에서 벗어나 성공으로 가는 독서법의 실체를 제시하고 있다.

“제가 이야기하는 성공의 개념은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입니다. 자신과 경쟁하고 이겨서 눈부신 성취를 이루고 이것을 주위 사람들과 아름답게 나누는 것이죠. 그게 바로 성공의 개념입니다. 성공 독서의 처음과 끝은 치열함이에요. 내 자신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경쟁자가 내 자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제의 내가 경쟁자가 되는 거죠.”

그는 또한 성공 독서는 잘못된 실패의 뇌 회로를 모두 걷어낸 후 새로운 성공 회로를 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방법은 두 가지다. 성공한 사람들의 책 중 한권을 정해 백번정도 반복해서 읽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2천권 정도 읽는 것. 전자는 미국 역사를 바꾼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택한 방식이고 후자는 이지성 작가 본인이 취했던 방식이다.

“책을 통해 저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말과 행동을 했던 위인들과 만남을 계속했어요. 그렇게 15년이 흘렀을 때 뒤돌아보니 제 인생은 완벽하게 바뀌어 있더군요. 그게 저였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어요.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걸어왔던 길이죠. 치열한 독서가 제 사고방식을 바꾸었고 변화를 유도한 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제 안에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위인들이 살게 된 셈이에요.”

진실로 간절하게 성공을 바란다면 그 간절함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간절함은 주변 사람들조차 느낄 정도로 뜨거워야하며 날이 서야 한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독서를 했던 무명작가 시절 그 자신의 이야기다.

“당시에는 저 스스로도 거울을 보기 무서울 정도로 눈빛에 날이 서 있었어요. 죽기로 작정하고 책을 봤으니까요. 하지만 성공을 하고 그 성공에 도취돼 있던 시절도 있었죠. 그러다 다시 제가 찾은 것이 나눔과 봉사였고요. 한동안 미쳤다고 할 정도로 몰입했죠. 그래서 아프리카와 필리핀 등에 학교를 많이 세웠어요. 올해도 3군데 학교를 세울 예정이고요. 그런데 그렇게 봉사에 빠지다보니 삶에 중심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더군요. 제 본분을 망각한 탓이죠.”

봉사와 나눔이 결코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가 추구했던 것은 작가로서의 삶이었다. 봉사에 몰입하며 어느 순간부터 작가로서 소홀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한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느슨해진 스스로를 깨닫게 되면서 그는 다시금 성공을 위한 독서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제 작품인데 최근까지 제 삶은 봉사에 빠져 있었죠. 그러다 문득 내 일을 잘해야 기부와 봉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다시 또 수신제가치국평천하죠. 또 다시 책을 읽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또 한 번 진화 된 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거죠.”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독서법을 ‘주일무적(主一無適?정신을 한군데로 집중해 잡념을 떨쳐버리다)’이란 말로 설명했다.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해서 성공의 방법을 깨달았다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온힘을 기울여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공 독서의 시작과 끝은 치열한 간절함입니다. 내가 성공하고자하는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 때 비로소 길이 열립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실천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간절함의 여부에 미래가 달려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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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2이지성 저 | 다산라이프
출간 1년 만에 20만 부 이상이 팔리며, 대한민국에 독서열풍을 불러왔던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의 후속작. 14년 무명작가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 가장 큰 비결은 ‘독서’였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독서경험을 고스란히 담았던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는 출간과 동시에 실로 광풍이라 불릴 만한 책읽기 열풍을 불러왔으며, 작가는『리딩으로 리드하라』로 인문독서 열풍을, 전작인 『독서 천재 홍 대리』을 통해 운명을 바꾸는 독서법을,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실질적인 ‘성공독서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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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와 방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 김중미 『조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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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7일, 인문카페 창비에서 『조커와 나』를 발간한 김중미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알려진 김중미의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집 『조커와 나』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책은 현 10대들이 겪고 있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총 5편의 단편으로 담담하게 담아낸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작가는 말한다. 아동문학 평론가 박숙경의 사회로 청소년이 앓고 있는 문제와 그들만의 사회, 김중미 작가와 독자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듀센형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정우, 그리고 그런 정우를 도와주는 무뚝뚝한 선규, 그 둘을 괴롭히는 반의 일진 ‘조커’. 세 인물은 약자며, 방관자며, 가해자다. 어느 날, 정우는 폐혈증에 걸려 죽게 되고, 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은 정우를 금새 잊는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일상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10대뿐 아니라 청년기에서도 겪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약자이며 방관자, 때로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조커와 나』는 아이들의 일상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폭력이라는 주제와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사회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첫 청소년 장편 소설집을 낸 소감은?

특별한 소감은 없다. 하지만 평소에 하고 싶었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단편을 통해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았다.

청소년 단편을 쓰고 싶어서 책을 내게 되었나, 아니면 원고 청탁을 받았나?

한편으론 그렇다.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장편을 부탁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 알아듣고 청소년 단편을 썼다. 단편은 장편하고는 달리 안일한 사건을 즉흥적으로 얘기할 수 있어 좋다.

‘폭력’은 청소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는 청년층의 주제다. 이번 작품을 내면서 폭력을 어떻게 생각하나?

폭력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폭력을 이야기로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소설집 『조커와 나』에서 단편 「조커와 나」가 가장 이야기가 길다. 예전 출판사 시스템으로 본다면 단행본으로 나와도 될 만한 분량이기도 하고, 내용 또한 그렇다. 그런데 왜 제목이 「조커와 나」일까? 처음 읽어도 두 번 읽어도 나는 정우에 너무 빠져있어서 조커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폭력의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와 방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폭력의 피해자는 대개 약자나 장애인이기 십상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피해자였을 수도 있지만, 청소년 대부분이 방관자이거나 혹은 가해자일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조커와 나」의 세 주인공 정우, 조커, 선규를 어떻게 하면 동시에 다 드러낼 수 있을까, 하고 제목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결론은, ‘조커와 나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제목을 정했다.

그렇다면 김중미 작가가 마음이 가장 쓰이는 존재는 조커라고 할 수 있나?

그렇지는 않다. ‘정우’라는 인물도 나한테는 중요한 인물이다. 한 일화를 말하자면, 10년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떠난 뒤 나는 마음의 빚을 갚는 것처럼 ‘아무도 모르는 너의 죽음을 언젠가는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꼭 글을 쓰겠노라고 생각하여 그 친구의 이야기와 그를 둘러싼 가족 이야기를 메모해두었다. 그러다 최근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고민했고, 가상인물인 정우의 이야기를 빌어서 그 친구의 이야기와 엮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정우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정우가 엄마를 두고 가는 마음, 친구를 두고 가는 마음, 그리고 형이 먼저 떠났을 때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너무나 절절했다. 작가의 마음에는 그 동안에 메모를 했던 거나 실제 겪은 것도 있겠지만, 이번 이야기를 쓰면서 정우의 마음을 묘사하며 마음이 힘든 적은 없었는지?

있었다. 내가 「조커와 나」를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공부방에 있는 아이였다. 걔가 중학교 2학년 때쯤, 어느 날엔 학교에 다녀와서 굉장히 우울해 하고 있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같은 학교에 지적 장애를 앓았던 친구가 폐렴으로 죽었는데, 선생님이나 반 아이들이 며칠도 안 지나서 그 친구를 다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도 그 친구와 많이 친한 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해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한 존재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들 무심할 수 있는지 몰랐다며, 한참 얼이 빠져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는 누군가의 죽음에도 저렇게 무심할 수 있구나’하는 걸 느꼈던 거다. 그래서 이번 「조커와 나」를 쓰면서는, 누군가가 친구의 죽음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혹은 그 친구의 어머니도 감당하기 힘들어서 묻어두었던 죽음을 빗대어서 끄집어내어 썼다. 가장 쓸쓸한 감정이 섞이지 않게 더욱 담담하게 표현하려고 애썼다.

엄마, 고마웠어. 형이랑 내가 이 병에 걸린 거 엄마 잘못 아니야. 엄마도 아무 잘못 없는데 그냥 유전이 된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죽어도 엄마는 살아. (중략) 그러니까 엄마, 나 화장해서 그냥 뿌리지 말고 납골당에다 놓아 줘. 내가 살았다는 거 아무도 기억 못 하는 거 슬프잖아. 납골당에 내 유골 놔두고 엄마가 와줘. 내가 보고 싶을 때 와서 보고 가줘. (p.74)
‘내가 보고 싶을 때 와서 보고 가줘’같은 대사가 어떻게 생각이 났는지 궁금하다. 김중미 작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런 죽음을 많이 봤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려는 죽음. 근데 사실은 그 존재가 끔찍해서 죽자마자 바로 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던 존재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억하기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그 사람을 기억하면서 살 수 없을 만큼 아주 척박한 삶도 있고. 뉴스에 봐서 알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죽는다. 그 애달픈 삶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회가 죽인,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죽어간 영혼에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선규가 정우를 보는 것, 정우는 일기를 통해서 선규를 보는 것과 같이 교차서술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는?

어떤 아이 시점으로 서술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정우의 시선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방관자의 시선이 잘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선규의 시점으로 보자면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는지 그런 이야기에 대한 작품들은 많지 않나. 그래서 고민 끝에, 두 아이의 마음을 다 담았다. 현실의 모든 아이들이 ‘나는 방관자가 되고 싶진 않은데…’ 하며 갈팡질팡 하기도 한다. 그래서 ‘너희들이 외면했던 아이가 이런 마음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정우의 눈에 보이는 조커, 선규의 눈에 보이는 조커. ‘조커’라는 인물은 정우와 선규의 눈으로만 그려졌다. 이유는?

조커는 일부러 처음부터 많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정우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연민과 같은 마음이 있는 거고, 실제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은 조커다. 그래서 조커 스스로가 ‘난 이래서 나쁜 사람이 되었어. 그래서 너에게 폭력을 가했어.’라고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정우나 선규같이 자신을 괴롭히는 그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게 더 의미가 잘 전달될 것이라 생각했다.

5편이 모두 같은 시기에 쓰인 건 아닌데, 혹시 이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작품은?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라는 작품. 이 작품은 구상을 오래 전부터 해왔던 거다. 당시가 2011년인데, 그때 학생들의 사망 사건이 가장 많은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 힘든 마음으로 썼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에 가깝게 전해질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다. 아직도 애착이 많이 간다.

「꿈을 지키는 카메라」라는 작품을 쓸 때에는 인천 재래시장을 철거했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이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그 사건에 대한 분노가 작품에 영향을 끼쳤나.

그 작품은 특정하게 인천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시 용산참사가 발생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이후에 비슷하게 반복된 일이 인천 철거 사건이다. 인천 재래시장은 내가 어릴 때, 방학마다 가서 봤던 풍경과 시장의 사람들에 대한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있었다. 책 속에 나오는 구두가게 같은 경우는 실제 있었던 가게고, 가게 주인아저씨와 깊게 얘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저 분은 어떨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만두집도 실제로 내가 갔던 곳이라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지금 공부방 아이들과 사건이 일어났던 곳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자기 방법대로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인식을 하거나 ‘난 어떤 사람이 되겠어’라고 이야길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는 아이는 그림으로, 사진을 찍는 아이는 사진으로 표현한다.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연민, 책임, 연대 의식 같은 걸 조금씩 갖게 되는 거다.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많이 알려주고 싶다.

2000년대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왔고, 그 이후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니던 골목이나 동네 같은 건 없다. 정류장 이름도 ‘괭이부리말’이여야겠지만, 실제로 가보면 ‘만석비치타운’이라는 아파트 이름으로 되어있다. 13년 동안의 변화된 모습과 공동체의 변화, 지역변화 에 대해 말해준다면?

괭이부리마을이 만석동 전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예전에 있던 만석동이라는 행정단위의 한 구석을 말한다. 근데 그게 소설 때문에 알려지게 된 거다. 그리고 나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재정책 사업이다, 뭐다 하며 언론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쪽방체험촌’도 생겼다. 1인가구가 사는 가구형태가 쪽방이지 않다. 그래서 나 혼자 또 ‘괭이부리말은 소설의 이름일 뿐이다’, ‘쪽방촌도 괭이부리말도 아니고 만석동이다.’라며 싸웠다. 내가 아름답게 그려내고 싶었던 그 마을의 모습이 사라졌다. 지금은 그곳에 사람도 많이 살지 않고 거의 노인들 밖에 없는데, 공무원과 도시개발업자들은 북카페를 만들고 판자체험촌까지 만들 계획이었다. 그들은 관광상품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또 싸웠다. 다행히, 그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지만 어떤 주민들은 ‘우리동네에 돈이 들어올 수도 있었는데 저 사람들이 망쳤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옛날 골목의 모습이 조금밖에 남지 않아 매우 아쉽다. 그거라도 끝까지 지키고 싶다.




김독자들의 질문

현실은 굉장히 나빠지고 있는 듯하다. 작품 속에서도 학교의 모습은 썩 좋지 않다. 아예 좋지 않은 모습도 나온다. 지금 우리가 학교에 대해 품어야 할 희망이 있을까?

홈 스쿨링을 선택할 수도 없는 환경의 아이를 위해 학교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립학교는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곳이다. 기대는 많이 하지 않지만, 간혹 좋은 선생님을 만날 때는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설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속감이라는 것 때문에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다. 한국사회 안에서 국립학교의 역할은 아직 존재한다고 본다.

공부방 아이들과는 매해 인형극을 한다. 그곳에 모이는 아이들은 정말 불특정다수이다. 부모가 없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한 애들이 모여있다. 인천 아트 플랫폼에서 연극을 하는데 중산층의 부모와 아이들이 왔다. 하루는 모두가 인형극을 위해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중산층의 아이들도 똑같이, 따돌림을 받고 있거나 자기가 가해자가 되었을 때의 느낌을 다 겪고 있었고, 공감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얘기하고 털어놓았다. 한편으로는 대화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 부모들이 아이를 혼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미 부모들도 다 울고 있더라. 인형극으로 아이들에게 역지사지의 마음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내 바램이었다. 인형극을 10회 정도 하고 나니 나름 저명해저서 지방공연까지도 가고, 인형극 대회에 나가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래서 앞서 말했던 좋지 않은 상황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고, 아이들마다 진정성과 순정이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런 활동을 계속 확산해가면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게 목표다.


작가의 작업 스타일이 궁금하다.

괭이부리말은, 낮에 일을 하기 때문에 밤마다 글을 써서 3개월 만에 완성했다. 또 어떤 작품은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내가 이미 경험했던 사건들과 연관을 지어서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밥 먹다가도 내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지금의 상황과 겹쳐서 생각해본다. 공부방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아침에 여유가 남을 때면 아침에 글을 쓰기도 하고, 일이 너무 바쁠 때는 한 자도 못쓰고 하루를 날릴 때도 있다.

이제 나이 쉰이 넘어서 자신의 초등학생 시절을 생각한다면 어떤가?

어렸을 때 나는 되게 엉뚱했다. 우리 집이 가난했지만 부모님께서 날 자유분방하게 키우셨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면 아버지가 학교에 가지 말고 놀러 가자고 하셨다. 나중엔 오히려 스스로 개근상을 받으려고 갖은 애를 쓰기도 했다. 어릴 때 야뇨증이 있었는데, 그 때도 부모님께선 날 감싸주셨다. 오히려 그게 내겐 큰 우울함의 요소가 되었었지만, 항상 ‘넌 엉뚱하지만 강한 아이야.’, ‘넌 독특해도 돼.’ 라고 하셨다. 지금에 와서는 나를 너무 ‘자유방임주의’로 키우셨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씀드리기도 했다. 어릴 때 많은 문화혜택을 누리고 자랄 수 있었던 것에 대핸 좋게 생각한다.

누군가의 질문을 받으면, 작가는 잠깐 시선을 떨구었다가 다시 질문자의 눈을 응시하며 차분히 답했다. 이것은 상대에게 진솔한 말을 해주기 위해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이미 그런 태도는 작가의 몸에 베어있었고, 그래서인지 모든 질문에 ‘단답’으로 답하지 않았다. 독자들 모두에게 사인과 함께 3줄 이상의 정성스러운 메시지도 적어주었다. 그녀는 아이를 가슴에 품으며 이 세상 누구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 동시에 가장 사랑받고 있는 사람, 그리고 현 시대의 가장 용기 있는 대변인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10대 아이들은 가장 척박하고 무관심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위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지금 10대 아이들에게는 지나친 사랑보다 오히려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거대한 집단에서 겨우 몇 사람의 회심이나 용기가 폭력의 고리를 당장 끊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 또 한 사람의 작은 용기와 회심이 모이면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 조커와 나는 바로 그 작은 용기와 회심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세상의 변화는 이렇게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서 시작한다. (p.267,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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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나김중미 저 | 창비
파수꾼처럼 든든히 우리 곁을 지켜 온 작가 김중미의 새 소설집 『조커와 나』가 2013년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 첫 권으로 출간되었다. 『조커와 나』는 이 시대 10대들이 처한 다양한 폭력의 양상을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문장과 묵직한 주제 의식으로 담아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폭력'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두고 변주되는 이 소설집을 통해 작가는 소수의 용기로 폭력을 끊을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폭력을 이기는 내 안의 용기를 들여다 보기를 권하는 이 소설집은, 특히 청소년 독자들에게 힘으로 이기지 않고, 희망으로 이기는 법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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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성에게 꼭 필요한 것은? 책상, 시간, 통장 - 김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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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후속작이 나왔다. 여기까지는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에게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에서 흥미로운 점은 책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이 실제로 상품화되어 등장했다는 점이다. 책에서 김난도는 결혼한 주부에게 책상, 시간, 통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국민은행에서 결혼한 주부를 위하여 아내사랑통장을 출시했고, 상품 출시를 기념한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강연에 앞서 샌드 아티스트 마틸다와 팝페라 듀오 더퍼플의 축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김난도 교수가 무대 위에 올랐다.




불혹? 필혹!

김난도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의 초고를 완성한 후 출판사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20대부터 40대를 대상으로 “당신은 어른입니까?”라고 물었다. 응답자의 70%는 스스로가 어른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법적으로는 19세가 넘으면 성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 이전에는 금지되었던 술과 담배, 각종 유해매체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라고 물으면 어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진짜 어른은 언제쯤 되는 걸까? 공자는 40살이 넘어서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불혹(不惑)이다. 그런데 40살이 넘으면 정말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걸까? 김난도는 40살이 되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공자나 되니깐 가능한 일이며, 일반적으로 40대는 필혹(必惑)이라고 말한다.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요즈음에 서점에 가면 40대에 관련한 책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만약에 40살이 넘어서 흔들리지 않게 된다면, 40대를 위한 서적이 이토록 많지는 않을 것이다.

몸은 이미 다 컸다. 하지만 마음은 성장하지 못하여 흔들린다. 이렇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김난도는 어른아이라고 지칭했다.


어른아이를 만드는 유예사회

김난도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다고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그들은 왜 김난도가 책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대학시절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냐는 반문까지 들었다. 하지만 김난도는 많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며, 그들의 아픔이 크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김난도가 대학을 다니던 시기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여건은 좋아졌다. 대학생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민주화도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파하는 걸까?

김난도는 한국 사회를 유예사회라고 정의했다. 그가 말하는 유예사회란 고민이 뒤로 밀리는 사회를 뜻한다. 한국사회는 해당 나이에 해야 될 고민을 제 때에 하지 못한다. 청소년기는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다. 춘향과 이도령이 그렇고 그런 짓을 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고 못살던 때가 바로 그 시기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청소년기에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왕성하게 표출할 수 없다. 대학 입시 때문이다. 대학교에 간 다음에 마음대로 하라는 부모님의 말에, 청소년기에 필요한 고민이 대학 입학 뒤로 밀린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정은 변하지 않는다. 대학생 시기에는 ‘나는 누구인가?’ 또는 ‘나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 필요하다. 하지만 취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질문을 할 시간적 여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질문은 취업 이후로 밀린다. 김난도는 어렵게 취직해도 퇴사률이 높은 이유 또한 대학교 때 해야 할 질문이 유예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질문의 유예는 어른아이를 만든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은 유년기에 머문다.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24살인가 25살인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대신 제가 시골에 내려가서 상주를 했습니다. 6개월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또 시골에 내려가서 상주를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연세가 많으셨고,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시면 호상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5개월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런 폐암이었습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져 누우셨고, 모든 집안 문제를 제가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밀려왔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잘못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이런 시련이 왔다는 사실에 불쾌했습니다.”

힘든 김난도를 구해준 건 하나의 문장이었다. 그 때 김난도가 읽은 문장은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의 눈도 무겁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등짐으로 짊어진 무쇠도 가볍다”였다. 이 문장을 통해 김난도는 지금 있는 문제를 내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김난도는 마음의 부담을 덜고 이런 저런 일을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모두들 운명적인 아픔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이런 운명적인 아픔에는 나의 잘못으로 인해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고 사람을 옭아맨다. 하지만 김난도는 그런 아픔이 내 것임을 인정할 때에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힘든 아픔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픔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아이나 남편 뒤에 숨지 말라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결혼은 중요하다. 어른의 어원은 얼우다인데, 이 말은 결혼을 하다 혹은 성교를 하다라는 뜻이다. 어원상으로 살펴봐도 어른이 된다는 건 결혼을 하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특히 여성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김난도는 자신이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했다. 한국사회에서 주부로 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딸이 결혼할 때 어머니에게 말한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어머니는 답한다. “절대 나처럼은 살지 마라.” 이는 전통적인 결혼 방식이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렇게 어려운 결혼 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난도는 한국 주부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 전업주부와 취업주부로 나누어 각기 다른 조언을 해 주었다. 우선 전업주부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기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전업주부의 경우,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아이의 엄마로 불리게 된다. 여기에 전업주부의 경우 자신의 성취가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어려움도 있다. 세간에서 바라보는 성공한 전업주부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남편이 승진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전업주부의 뒷바라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전업주부가 뒷바라지를 잘한다고 반드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남편이 승진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다. 결국 취업주부는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언제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에 취약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 김난도는 전업주부에게 아이나 남편 뒤에 숨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치 판단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 두고 내가 언제 가치 있는지를 찾으라는 이야기다.

반면에 취업주부가 갖는 어려움은 시간의 부족이다. 취업주부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역할이 부여된다.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많은 경우 대한민국의 남편들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여전히 가사 노동을 여성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여성에게 일을 덜 시키는 것도 아니다. 결국 회사일과 집안일 양쪽에 영혼을 쏟아 부어야 한다. 물론 회사일과 집안일 모두를 잡은 여성도 있다. 대중 매체에서는 그런 원더우먼을 찬미한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는 취업주부에게 너무나도 많은 걸 요구하기 때문에, 취업주부는 늘 죄책감을 가지고 살게 된다. 주어진 일을 전부 해내지 못하니 자기 자신이 형편없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김난도는 취업주부에게 죄책감을 덜어내라고 조언한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미안해하고, 그 외에 부분에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라고 말한다.




결혼한 여성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는?

첫 번째는 ‘자기 책상’이다. 식탁이나 아이 책상은 안 된다. 반드시 자기 책상이어야 한다. 작더라도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는 조언이었다.

두 번째는 ‘자기 시간’이다. 특히 전업주부에게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전업주부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김난도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일 수록 시간 사용에 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짬을 내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세 번째는 ‘급여 통장’이다. 주부가 하는 집안일에 대해서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사 노동에 대한 가치 계산은 사고가 났거나, 이혼을 할 때에 진행된다. 그런 사건 사고가 터졌을 때 가 아니라 평소에도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를 보상 받으라는 이야기다.

“여러분 거지의 꿈은 무엇일까요? 거지는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옆에 있는 자기 보다 조금 더 잘 버는 거지를 부러워합니다. 저는 여성들이 이런 작은 꿈을 갖지 않기를 원합니다. 여성들이 담대한 꿈을 꾸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최선의 내가 되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흔들려가며 성장하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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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김난도 저 | 오우아
전작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한국을 넘어 중국, 일본, 태국, 대만,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로 수출하며 멘토 열풍을 불러온 김난도 교수는 신작에서 사회초년생들이 힘겨워하는 문제와 딜레마 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함께 고민한다.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과 진짜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제자, 이런 고민조차 해볼 기회가 없는 취업준비생들, 이밖에도 이직, 연애, 결혼 등 무수한 삶의 화두 앞에서 흔들리는 '어른아이'들이 나만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왜 하필이면 코카콜라를 훔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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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간의 주제는 탈북과 이주였다. 관람한 영화는 정지우 감독의 <배낭을 멘 소년>과 강이관 감독의 <이빨 두 개>였다. 두 영화는 탈북 영화이면서 동시에 청소년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정지우, 강이관 감독과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탈북 청소년, 소재의 선택이 궁금하다

관객: 탈북자 중에서도 많은 계층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강이관: 지금까지 단편 두 개와 장편 하나를 청소년과 관련해서 찍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세 작품 모두 주인공이 중학생 2학년 남자아이였습니다. 왜 자꾸 그 시기를 영화로 만드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기억도 하면서 정체성도 확립했던 시기가 바로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만, 잘 되지 않아 계속 재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 영화를 만들면 일반적으로 다양한 계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열어두고 있습니다. 특정한 주제를 드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야기 중에서 왜 북에서 온 청소년에 대한 영화를 만드셨습니까?

정지우: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서 왜 북에서 온 청소년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 순간의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너무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알아서 영화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탈북 청소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호하게 접근을 했지만, 영화를 만들어 가면서 보다 분명하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강이관: TV에서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뉴스에서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터뷰도 해야 되고 자료 조사도 해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마침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탈북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탈북 청소년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인 탈북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탈북 청소년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진행자: 호칭 문제가 참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일괄적으로 탈북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DJ 정부가 들어오면서 새터민으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했습니다. 여기가 새터면 북한은 헌터냐며, 우리를 대상화해서 부르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MB 정부가 들어오고 북한 이탈 주민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보면 정치적인 함의가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단어가 대상화 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낭을 멘 소년>의 정지우 감독에게 묻는다

관객: <배낭을 멘 소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소년과 소녀가 코카콜라를 훔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왜 그 많은 물건 중에서 하필이면 코카콜라를 훔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코카콜라가 미국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정지우: 소녀는 노래방에서 일을 했지만 임금이 체불된 상태였습니다. 체불된 임금을 되돌려 받고 싶었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불된 임금을 되돌려 받기 위한 수단으로 코카콜라를 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탈북자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영화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코카콜라는 말씀 하신 대로 미국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음료수 중에서 코카콜라를 사용한 것이 참 계면쩍습니다. 다른 음료수로 바꿀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막상 바꾸려고 하면 무엇으로 바꿀까 난처한 것도 사실입니다.

관객: <배낭을 멘 소년>에서 “내가 남한 아이들 보다 잘하는 건 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 밖에 없어”라고 했던 소년의 대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었습니다. 감독님이 무엇을 의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우: 제가 인터뷰를 했던 당시에 탈북 청소년이 많이 했던 일은 배달과 주유소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배달을 하면 오토바이를 타게 되는데, 오토바이를 타다 보면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격하게 타는 아이도 많았고, 실제로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은 탈북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탈북 청소년도 학교에 가긴 하지만 정규 수업을 따라가는 건 벅차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도 절반 정도는 정규 수업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니, 탈북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토바이를 더 빨리 타다가 죽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관객: <배낭을 멘 소년>에서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참는 소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소녀가 처음으로 한 말이 북한에 가야 된다는 말이었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탈북을 했지만 남한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우: 말을 다르게 하는 것, 차이가 있는 걸 다르다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열등하다고 인식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의 영어 발음은 어떻습니까? 서양인과 비교하면 열등한 영어 발음입니다. 그런 시각을 아직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도 열등하지 않고 인간적인 자존감이 있다는 걸 영화로써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아이들 중에 사내 아이 네 다섯 명이 함께 내려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북한에 심각한 흉작이 들어 국경 관리를 일부러 느슨하게 하던 시기였습니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중국에 있다가 남한으로 내려올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으로 들어가 부모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중국으로 다시 건너가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따뜻한 남쪽나라에 내려가고 싶어서 남한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공해서 이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컸습니다. 그 사실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우리의 관점에서는 모두 같은 탈북자로만 보입니다.





<이빨 두 개>의 강이관 감독에게 묻는다

관객: <이빨 두 개>에서는 주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 인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이관: 명확한 메시지를 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내가 저 상황이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 그리고 선생님의 입장이 다 다릅니다. 만약에 남한 아이 둘이 부딪혀서 이빨 두 개가 부러졌다면, 모르긴 몰라도 더 많은 걸 요구했을 겁니다. 북한 엄마에게 임플란트를 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지 않을 걸 보면 남한 엄마는 그만하면 선한 사람입니다. 북한 엄마는 문제가 없을까요? 아마 북한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보상을 해주었을 겁니다. 나는 북한에서 왔으니깐 잘 모른다면서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 아빠는 이 문제에서 발을 빼고 있습니다. 특별히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북한에 대해서 관심이 있지도 않습니다. 이런 태도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 때와 정지우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정지우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대사관의 담을 넘어 탈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를 만들 때는 제 3국을 거쳐서 탈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탈북의 형식도 변하고 탈북의 인식도 변합니다. 지금 탈북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 어떤 소재를 다룰지 궁금합니다.


관객: 현재 탈북 청소년의 교육은 대안 학교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규 교육에서 탈북 청소년을 얼마나 흡수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탈북 청소년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강이관: 영화를 찍기 위해서 인터뷰도 많이 해봤지만 어렵습니다. 대안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 개인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합니다. 많은 수의 탈북자가 넘어오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대안이 없습니다. 하나회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시킨 다음에 손을 놔버립니다. 국가에서 사람을 받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을 대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민간 자본에 의지하기 때문에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대다수의 탈북 청소년을 가르치는 건 종교 학교입니다. 제 3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때 기독교 단체가 큰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종교를 기독교로 가지게 됩니다.





인권 영화는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가?

관객: 일반인은 인권 영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면 인권 영화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우: 지금은 천만 관객 영화가 쏟아지는 한국 영화의 부흥기입니다. 반면에 많은 관객이 찾지 않는 한국 영화를 보기가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지나치게 편중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 시장이 세계 10위 권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위험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대기업 자본에 아부해서 장편영화 한 편 더 찍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딜레마에 빠질 때 마다 새장에 갇힌 기분이라 아주 힘이 듭니다. 대안도 딱히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 마다 울컥합니다. 결국 여러분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른 관점의 영화를 찾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강이관: 정지우 감독님 말씀에 다 공감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는 영화가 점점 밀려 독립영화, 예술영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영화관에 12개의 관이 있지만 걸리는 영화는 3개에서 4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찾으면 영화관에서는 영화를 걸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요구가 필요합니다.

진행자: 과거에는 예술을 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기업 자본 아래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렵기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고분분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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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랑하는 사이는 아픈 거예요 - 신달자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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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를 빼놓고 여자의 삶을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엄마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삶은 대부분 엄마라는 이름으로 끝이 난다. 그리하여 ‘엄마’ 와 ‘딸’은 한 여자가 갖는 두 개의 이름이다. 작가 신달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딸이라는 이름으로 70년, 엄마라는 이름으로 45년을 살아 왔다. 그 기나긴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작가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썼다. 후회의 눈물로 번지고 원망으로 얼룩진 기억들을 가감 없이 들려주며 딸과 엄마, 그 어렵고 아픈 관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예스24의 ‘책 읽는 풍경’을 통해 독자들과 만난 작가는 자신과 어머니, 자신과 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엄마와 딸의 관계란 어떤 모습인가’ 질문을 던졌다.




엄마와 딸,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사이

엄마와 딸 사이는 간단한 관계가 아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아픈 곳을 할퀴고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고, 다시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빌고 미안해하고, 울고불고 통곡도 마다하지 않는다. 눈물이야말로 엄마와 딸 사이에 핏빛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격렬하게 분노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그리고 격렬하게 몸을 다 바쳐 사랑한다.(p.14~15)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애증의 관계에 있는 이 두 여자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서로가 있어서 산다고 말했다가도 얼마 안 가 상대방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야단이다. 반목과 화해를 반복하는 이 관계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 신달자 작가는 말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사랑이란 원래 아픈 것이라고.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제일 서운해 하고 상처를 주죠. 엄마와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딸과 무지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엄마는 딸에게, 딸은 엄마에게 기대가 크기 때문이죠. 원래 사랑하는 사이는 아픈 거예요. 『엄마와 딸』이라는 책에 쓴 요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하면 아픈 거예요.”

엄마에 대한 딸의 불만은 큰 기대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이상일 뿐인 ‘이상적인 상’에 비추어 서로를 재고 판단한다. 그러니 상대가 눈에 찰 리가 없다. 그 괴리에서 원망과 비난이 싹튼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 같지 않을까, 왜 우리 딸은 다른 애들처럼 하지 못할까, 서로를 향해 화살을 겨눈다.

신달자 작가와 어머니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이 살지 못했던 삶을 딸을 통해 살리라 꿈꾸셨고, 작가는 그렇게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열다섯의 나이에 종갓집 며느리로 시집와 ‘아들 셋을 낳아야 한다’는 특명을 받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번째 아이인 작가를 낳기까지 아들 소식은 요원했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며느리로 매운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밖으로만 도는 남편, 뛰어난 학벌에 아들까지 잘 낳는 동서 사이에서 어머니는 외로움 속에 갇혀갔다. 딸들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어머니에게 허락된 유일한 탈출구이자 희망이었다. 주위의 우려와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딸들을 대도시의 고등학교로 유학 보내는 결단을 내린 것은 그래서였다. ‘너는 성악가가 되어야 한다, 끝까지 공부해야 한다’ 말한 것은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의 다른 표현이었다. 딸들의 삶은 이미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딸을 자기 자신으로 보는 겁니다. 조금 빗나가면 막 야단치고 꼬치꼬치 간섭하는 건, 자신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자존심을 있는 그대로 건드리고 모진 소리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도 마, 니는 될 끼다

거의 대부분의 딸들이 그러하듯, 신달자 작가 역시 많은 시간 ‘여자로서 엄마의 삶’을 바라보지 못한 채 딸로서 살아왔다. 어머니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었던 아버지보다, 악다구니를 쓰며 아버지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는 어머니가 더 싫었다. 세련된 외모와 말투로 치장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늘 불만이었다. 작가 자신이 엄마가 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엄마도 여자였다는 걸.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에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여자로서 어머니의 삶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단 한 번도 다정하게 말한 적이 없어요. 엄마가 외로움을 탄다는 걸 상상도 안 했어요. 우리 엄마는 욕이나 하고 밥이나 하고 빨래나 하고, 그런 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엄마도 여자였어요. 그런데 어느 딸도 엄마를 알아주지 못했어요. 바보들이었어요. 그런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러니까 우리는 꼭 엄마가 아니라도, 누구한테라도 마음에 있을 때 말해야 돼요. 말의 빚은 지지 말아요. 언제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날지 몰라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해요. 그 말은 우리 마음의 본성을 깨우는 가장 큰 치유의 한 목소리에요.”

엄마 앞에 모든 딸들이 죄인인 이유는 끝끝내 갚지 못할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받았던 희생과 사랑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결코 똑같이 되돌려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도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평가나 가능성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건 생각할 줄도 몰라서, 언제나 자신의 딸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마, 니는 될 끼다.” 이 말은 우리 엄마가 밥 먹듯 한 말이다. 내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세상이라는 절벽에서 미끄러져 아슬아슬할 때, 엄마는 꼭 이 말을 내게 했다. (중략) 엄마는 철저하게 나를 믿었다. 된다고 말해 주었던 것은 머리가 아니다. 가슴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엄마의 사랑이란 현실의 계산을 뛰어넘는 것이다. (p. 72~73)
엄마란 셈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말하는 단 한 사람이다. 돌이켜 보건대 어머니의 그 사랑이 자신을 만들었노라고, 작가는 말했다.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와는 달리 학업에 소홀할 때도, 엄마를 거역하고 반대하는 결혼을 했을 때도,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도 마, 니는 될 끼다.” 만약 누구도 자신에게 기대하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멸망하고 모든 것에서 패배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딸들의 몸에 저장되기 때문이란다.




그래, 그렇게 날아라

모든 걸 내주고도 더 나은 것을 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작가는 세 딸의 어머니가 되고 나서야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헌신적으로 잘해준 상대는 딸들밖에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씻을 수 없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슴속에 박혀 있었다. 그녀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뭐든 잘하고 싶고 멋있고 영리하고 너그럽고 딸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건 척척 해결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에 미치지 못하므로 모자라는 감정 내지는 죄의식으로 발전하는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 딸이 우울하거나 말이 없을 때, 아니면 약간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엄마!” 하고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린다. 왜 엄마에게는 이렇게 죄인의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일까. (p. 26)
엄마가 되어갈수록 나의 어머니가 새삼 대단하게 생각되는 것이 여자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그 모든 걸 해냈을까 싶어 놀랍고 ‘나는 그걸 다 받고 있었는데 알지 못했구나’ 깨닫고 후회하면서,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간다. 신달자 작가는 어머니가 자신의 곁을 떠나시는 순간 자신이 받았던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죽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나에게 일방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이것 좀 먹어라, 이거 먹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었어요. 부부도 자식도, 다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내가 잘해줘야 남편도 잘하고, 자식도 그렇죠. 늘 변함없이 좋아해주는 건 엄마 밖에 없어요. 우리 엄마가 죽었을 때 그걸 알았어요. ‘일방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이제 어디에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그것으로써 기쁜 거지, 자식이 나한테 뭐 해주나 안 해주나 그걸 따진 것 같지는 않아요.”

엄마와 딸에 대해 말하면서 신달자 작가는 루이스 세뿔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속의 주인공 소르바스는 고양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죽어가는 갈매기의 마지막을 함께하게 되고, 유언에 따라 새끼 갈매기를 대신 돌보게 된다. 새끼를 부탁하며 갈매기는 말했다.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줘.’ 하지만 고양이들 사이에서 자라난 갈매기가 저절로 나는 법을 터득할리 없었다. 소르바스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가 저 아이를 정말 구한 것일까. 나는 본성을 잘라버린 내가 과연 아이를 구한 것일까. 그는 어미 갈매기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나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다.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하는 권력자도, 거대한 재산을 가진 부자도 만나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새끼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데 성공한 사람, 그는 시인이었다.


“권력자도 부자도 날게 할 수 없었던 갈매기의 본성을 시인인 찾아 준 거죠. 그러면 시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진심입니다. 갈매기 안으로 들어간 거예요. 권력자나 부자는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힘으로 작용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시인은 아무 도구 없이 진심으로써 그 갈매기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바다로 데리고 나가서 ‘너는 갈매기다. 저기 날고 있는 갈매기를 봐라. 너는 네 안에 날개가 있다. 날개를 들어 봐라. 그래, 그렇게.’ 이야기해준 거죠. 갈매기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날개가 되어준 거예요.”

신달자 작가에게 어머니는 새끼 갈매기를 날게 한 시인이었다. 자신 안에 있는 열망과 가능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것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도운 사람이었다. ‘너는 원래 날았던 사람이야. 네 속에는 날개가 있다. 그래, 그렇게 날아라.’ 시인이 갈매기에게 말해 주었듯이 작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시인이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의 시인처럼 엄마는 딸들에게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법을 가르쳐준다. 어쩌면 그 날개가 엄마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비행은 딸이 날아오름으로써 시작된다. 그러므로 『엄마와 딸』은 엄마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딸들의 이야기다. 둥지를 떠나는 딸의 첫 비행을 슬퍼하지 않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작가와 어머니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나와 내 어머니, 내 딸들의 삶이 비춰 보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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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신달자 저 | 민음사
신달자 시인은 기쁨이면서 슬픔이고, 아픔인 동시에 희망인 엄마와 딸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유쾌하고 진솔하게 그려 낸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해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맺음을 한다.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을 살아온 시인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한 여자가 딸에서 엄마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 주며, 이 세상 모든 엄마와 딸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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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금지된 사랑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 고종석 『해피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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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입학을, 누군가는 개강을 하는 등 처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해 일상을 이어가던 날의 저녁, 3월 4일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상상마당 카페 6층에는 그 누군가들의 서로 다른 열기들이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 말을 건네며 고종석 작가는 모인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마지막 책, 『해피 패밀리』출간을 기념해 ‘향긋한 북살롱’ 행사가 진행되었다. 고종석 작가는 신문사의 기자로 재직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서얼단상』, 『고종석의 여자들』, 『기자로 산다는 것』외 다수가 있다. 그는 작년 9월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절필 선언 전 마지막 원고가 『해피 패밀리』다.

그의 마지막 책인 『해피 패밀리』는 가족의 이름으로 묶인 개인들의 이야기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이미 정해진 관계’의 일원이 된다. 가족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그 속의 개인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살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가족이 아니었다면 유민희와 유민형은 누나와 동생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가 되어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사회가 금기시하는 사랑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짧고 간결한 인사처럼 그의 말은 거의 시원스럽게 간단했다. 행사의 진행은 임경선 작가가 맡았다. 임경선 작가는 칼럼니스트로서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이라는 칼럼으로 독자와 소통해왔다. 저서로는 『러브 패러독스』, 『엄마와 연애할 때』등이 있다.




‘해피 패밀리는’

제목만 보면 어느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불행한 가족을 묘사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속하나, 구성원은 서로 다른 개인이다. 개인 사이에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그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 이야기라기보다는 외딴 섬에 사는 개개인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되니까 당연히 서로 사랑해주고 당연히 서로 위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충분히 친해졌을 사람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섞이지 못하고 친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각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맞부딪치며 불화가 일어난다.”

섞이지 못하는 그들은 책 속에서도 따로 생각하고, 따로 말한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일을 공유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융화되지 못한다. 작가는 관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작중인물 한민형의 내면 부분을 낭독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마저도 내가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것 같진 않다. 어쩌면 가장 가깝다 할 P마저도. 가족들에 대한 내 감정이 그렇듯. 그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그리 대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나를 진정으로 대하겠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친분과 우정이라는 그럴 듯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p.25)
고종석 작가는 말했다.

“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에서 치과 치료 중에 술을 마셔도 되겠냐는 민형의 질문에 치과의사는 말했다.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다고. 여러분은 금지된 것을 해보신 적 있나요?”

그는 같은 핏줄 내에서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근친혼을 금기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반도덕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종석 씨는 『해피 패밀리』가 지금의 가족제와 결혼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라 말했다.

한편, 임경선 작가는 유약하고 섬세한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고종석 페르소나를 이 책에서는 유민형이 따르고 있다고 했다. 이 인물이 고종석 작가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작가는 답했다. “아니요. 나는 허무하지도 않고, 허무주의자도 아니니까요.”하지만 작중인물 민희가 죽음에 앞서 썼던 일기에 대해 언급했을 때 작가는 동감하며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사실 저도 이걸 쓰면서 핑, 돌았거든요.”

짧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민희. 보통 사람들이 작가를 두고 유민형의 내면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사실 민희에 투사된 부분이 많다.

“나는 민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제일 생동감 있는 인물은 서현주라는 느낌이 들고요. 민희는 죽음으로써, 현주는 살아남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글과 위선 그리고, 절필.

글은 자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넘쳐나는 글의 바다 속에 살며 수많은 사람들은 표현을 하며 산다. 서로 믿지 못한다면 표현은 위선으로 전락한다. 임경선 씨는 자신의 고민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글을 쓰다보면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에 부흥하지 못하고, 또 그래서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책으로 알던 그 사람과 다를 때 느끼는 배신감은 곧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점에 관해 소설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이라곤, 대학교 때 겉핥기로 공부한 인류학 쪽 글이나 아무런 전문 지식이 필요 없는 문학적 글이겠지. 그러나 그런 글에서 위선을 파하기는 어렵다. 내 편견을 드러내지 않기는 어렵다. 나는 편집자로, 독자로 남게 될 것이다. 저자들의 선을 혐오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때로는 찬양하는 편집자이자 독자 말이다. 글과 글쓴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는 아주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p.26)
다음은 사회자인 임경선 씨와 행사의 주인공이었던 고종석 씨가 나눈 대화다.

임경선 : 위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종석 : 저도 당연히 위선자고, 속물이죠. 어쩌면 속물이 더 정직하다고 볼 수 있죠. 유민형의 엄마가 남편에 대해 ‘남편이 법조인이라면 더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잖아요. 굉장히 정직한 부분이에요. 교황 요한 바오로도 ‘하나님이 내 머릿속을 보실 수 있다면 나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죠.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을 밖으로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을 뿐이지요.

임경선 :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작가님 글의 애독자라면 누구라도 계속 작가님의 글을 볼 수 있기를 바랄 텐데요.

고종석 : 나는 지난 30년 동안 써왔어요. 글쓰기의 위선을 피하기 위해. 어느 날은 글쓰기가 싫어졌어요. 기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재직 당시. 하루에 짧든 길든 꼭 글을 써야 했어요. 정말 많이 썼죠, 그동안.

임경선 : 그렇다면 30년 글쓰기의 휴식기네요.

고종석 : 아니죠, 종식기죠. 글쓰기의 힘이 굉장히 미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영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격문같이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르는 글을 쓰지는 못해요. 제가 직업적 글쓰기는 접을지 몰라도 죽기 전에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말이 있으면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산 것 같아요. 어떤 형식으로든. 아마 다시 글 쓸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임경선 : 직업적 글쓰기는 그만 두셨는데 그 어느 때보다 트위터는 활발히 하고 계시는데요.

고종석 : 트위터는 글이라기보다는 말이죠. 글은 아무리 짧아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트위터는 짧은 글자수 안에서 내 할 말을 하는 것이고요. 직업적 글쓰기는 접었지만 말은 하고 살죠. 지금의 저를 두고 ‘트잉여’라고 하시더군요. '트잉여' 맞는 말이에요. 노동하지 않고 사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것이죠.

작가와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사인회가 진행되었다. 작가의 자취를 책에 남기려 줄을 서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사가 시작하기전의 기대와 열기가 제각기 다른 설렘과 많은 생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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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고종석 저 | 문학동네
고종석의 신작 소설, 세 번째 장편소설 『해피 패밀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친근하고 가깝다 여겨온 ‘가족’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파헤친다. 소설은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민형의 목소리부터 시작해, 아들이 일하는 출판사의 사장인 아버지 한진규, 고등학교 역사교사이자 어머니인 민경화, 한민형의 처이자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서현주, 한민형의 동생인 한영미와 한민주, 대학 후배인 이정석, 장모인 강희숙, 딸 한지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한민형의 누나 한민희까지 모두 화자로 나서 각자의 사연과 감정 들을 토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미드 애청자인 당신,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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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은 시대지만, 영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경중은 있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대개의 경우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요즘은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영어 과목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직장인이 되어서도 영어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닌,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 온다. 문제는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취업을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토익 점수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토익 고득점과 탁월한 영어실력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 방법을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스펙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영어를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가능성을 높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고민해 볼 문제다.

『하루 15분, 기적의 영어습관』저자 전대건 씨의 영어 학습법은 기존의 공부방식과 차별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한 것은 군대를 제대한 스물세 살 무렵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것은 늦었지만 방향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몇 년 후 그는 외국에는 가보지도 못한 지방 출신이지만, 유튜브를 통해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영어 수준에 도달했다. 현재 팟캐스트와 블로그를 통해 100만 명 청취자를 매료시킨 영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과연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어학연수 한 번 가지 않고 쉽게 영어를 터득할 수 있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목적은 외국인과 소통하는 것

『하루 15분, 기적의 영어습관』출간에 맞춰 독자들과 함께한 자리, 눈빛에는 장난기가 서려있는 앳된 얼굴이지만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강연을 시작하는 그의 입에서 난데없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흘러나온다. 경북 영주 출신, 유창한 (?)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가 어떻게 영어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처음 그가 집중한 것은 영어를 배우는 실질적인 목적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저는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어요. 여권도 한 보름 전에 처음 만들었는걸요. 저 역시 처음 영어를 시작할 당시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죠. 토익에 목매는 친구들을 봤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었어요. 제가 원했던 것은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를 배우는 것이었어요.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점수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남들보다 똑똑한 것도 아니었고, 언어적 감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남들에 비해 뛰어난 것, 바로 자신감이었다. 뚜렷한 목적과 자신감은 꾸준함과 뭉쳐져 그의 실력이 됐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는 이제까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유학을 다녀오시는 분들 보다 더 열심히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폄하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간절함이란 것을 가지게 되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말이죠. 저는 지금도 제 공부법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좀 더 나은 영어레벨을 향해 차근차근 공부하는 중입니다. 요즘 미드를 보는 분들이 많은데, 한 가지 방법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입증되고 입소문을 탔다고 해도 나에게도 100%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거든요. 일단 여러분과 궁합이 맞는 방법을 찾으시는 게 중요하죠.”

그가 체득한 두 번째 방법은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방법을 정했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꾸준함을 갖고 밀고 나가는 것이 비결이다. 자신의 방법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누군가 다른 방법으로 성공했다는 소리는 여기저기 들려오는 시기가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순간 갈등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라면 확신을 가지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영어공부에 흥미를 느꼈다고 해서 걷기도 채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자동차 운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지나친 힘을 쏟는다는 건 장기 레이스인 영어공부를 스스로 지치게 만들거든요. 약간 어렵긴 해도 할 만하다고 생각하시는 수준으로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의 말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은 ‘영어 공부는 장기 레이스’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는 열의에 불타오른다. 그러나 과도하게 시간을 쏟아 붓다가는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회사 업무와 병행해 공부를 이어가기란 정말 쉽지 않다. 저자는 자신의 예를 설명하며 공부의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라고 조언한다.

“하루 몇 시간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대신 내 할당량을 정해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하루에 할당량을 ‘입이 트이는 영어 문장 세 개 외우기, 생소한 단어 하나를 문장으로 만들어 외우기, Easy writing 내에서 써먹을 만한 문장 세 개 외우기’ 정도입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은 대신 그날 공부할 양을 완수했다면 성공입니다.”

그의 방식에서 단어, 문법, 듣기 식으로 구분 된 공부법은 지양해야 할 것들 중 하나였다. 대신 그는 그것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복합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하나의 생소한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만들고 다시 의문문이나 부정문으로 만들어 입에 익숙해 질 때까지 말하며 외우는 식이다. 형용사와 전치사 구를 끼워 넣어 말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문장을 확장시켜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의외로 쉬운 방법이지만, 그는 “단순한 문장이라도 구조를 아는 것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봤겠지만 외국인과 막상 대화를 시도하려고 할 때 알고 있는 문장도 입 밖으로 꺼내기는 쉽지 않다. 그가 퍼트리고 있는 공부 방법은 바로 그 얼어붙은 입을 녹이는 과정인 셈이다.




자신감을 가지기 위한 기초 실전 노하우

사실 이제까지 영어 공부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욕을 꺾고 흥미를 잃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용어였다. 명사와 형용사, 부사, 전치사 등과 같은 용어로 설명을 이어가는 강의에서 흥미를 갖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영어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처음 영어공부를 했을 때 용어에 부담감을 느껴 회피하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그 용어를 쉽게 이해하는데서 시작된다.

“한자라서 어렵게 생각하시는데 명사는 말 그대로 사물의 이름이에요. 동사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고요. 동사 원형은 동작을 나타내는 단어의 원래 형태죠. 형용사는 명사, 즉 사물을 꾸며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고요. 동사를 꾸며주는 것이 부사, 전치사는 ‘명사 앞에 위치한 단어’라는 말을 어렵게 바꿔놓은 거예요.”

영어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스트레스 두 번째는 바로 발음이다.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발음은 감탄을 하면서도 정작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흉내를 내는 것은 어색하고 바보처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속칭 ‘콩글리시’ 발음은 부끄러워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말문을 열기 어려워한다. 역시 문제는 자신감이다.

“제 생각에 보통의 일반적인 발음은 우리식으로 해도 상관없어요. 사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말할 순 없거든요. 단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으려면 몇 가지만 교정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B와 V, P와 F, R과 L 발음, th 발음 등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같게 들릴지 몰라도 외국인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리거든요.”

B와 V의 경우 B는 위, 아랫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며 나는 소리다. V는 입술이 절대 닿지 않고 윗니와 아랫입술이 살짝 닿으며 내는 소리다. P와 F 역시 마찬가지 법칙으로 발음하면 된다. L과 R의 경우 L은 혀가 입천장을 닿으며 내는 소리, 반면 R은 턱을 약간 내리고 내는 소리와 입술을 둥글게 해서 내는 소리 등 두 가지로 나뉜다.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th 발음은 혀를 내밀고 ‘ㄷ’ 된 발음을 한다는 생각으로 발음하면 된다. 용어와 발음의 문제가 해결됐다면 그 다음 할 일은 문장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어순을 중시하긴 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문법만을 강조하다보니 어순을 파악하기 더 힘들죠. 많은 분들이 영어로 말을 할 때 주저하는 것은 완벽한 문법의 문장을 지향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 봤자 얼마나 완벽하게 할 수 있을까요. 너무 완벽한 문장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에요.”

저자는 초보자의 경우 ‘be 동사’의 활용만 제대로 해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I→(am, was), (You, They, We)→(are, were), (he, she, it)→(is, was)의 구조가 익숙해지도록 문장을 만들고 직접 소리 내어 외우기를 반복하는 것이 비결이다. 이때 be 동사 뒤에는 1)명사, 2)형용사, 3)전치사구(전치사 명사), 4)과거분사, 현재분사(모두 형용사)가 올 수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새로운 단어를 접할 때 어떤 생각을 하세요. 저는 이것을 활용해서 문장을 만들어요. 예를 들어 tumbler라고 하면 ‘is this your tumbler?’, ‘this is my tumbler’, ‘this was my tumbler’ 등과 같이 반복하죠. 한국말도 단어로만 외우면 기억에 오래 안 남는데 영어는 더하죠. 이렇게 단어를 가지고 말로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한 문장 구조에서 새로운 문장 구조를 공부하면서 그 구조에 맞게 문장을 확장시키면서 연습을 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단어를 정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생활 속에 접할 수 있는 단어’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개인이 알고 있는 영어 단어는 의외로 많지만, 정작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의 명칭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사실 그가 강조하는 공부법의 핵심은 이미 알고 있는 단어와 문장구조를 적절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사용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바탕에 기본이 돼야 할 것은 역시 꾸준한 반복과 자신감이다.




『하루 15분, 기적의 영어습관』 전대건에게 물었다

듣기 훈련은 어떤 식으로 하고 있나요.

요즘은 미드 같은 것을 많이 보시는데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는 공부 안하셨으면 해요. 대부분이 공부가 아니라 그냥 무작정 보고 마시거든요. 굳이 미드로 듣기 공부하는 팁을 드리자면 절대로 많은 에피소드를 몰아서 보지 마세요. 미드를 보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것일 경우 20분짜리 짧은 에피소드 한 개를 골라 그 안에서 몇 문장을 내 것으로 할지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어요. 또 자막이 없이 안 들리는 것은 계속 안 들립니다. 차라리 캡션을 켜고 그 문장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따라해 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에요. 본인이 발음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은 들리게 마련이거든요. 최대한 미드의 발음으로 따라하는 것이 좋고, 본인의 수준에 맞춘 미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요.

문장을 만들 때 복잡한 구조의 문장은 어떻게 공부하나요.

일단 저는 형식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어요.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하다 보니 더 쉽게 받아들인 거 같아요. 분사개념이 있는데 분사는 그냥 형용사로 보면 되거든요. 형식이라는 말 자체를 무시했던 것 같아요. 용어에만 집착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아요. 제 방법은 단어하나를 보면 다양한 문장구조로 말을 해보고 구글 검색을 통해서 제 말이 맞는지를 확인해요. 15분 동안 그것을 가지고 다양한 식으로 여러 가지 경우로 변형을 해서 말해보는 거죠.

외국인 친구와 대화가 어려운데 쉬운 접근 방법이 있나요.

처음부터 다짜고짜 영어공부에 활용하겠다고 외국인 친구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간단한 말로도 대화는 되거든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해서 교류하면서 친분을 쌓고 그러면서 점차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해야죠. 억지로 친구를 만들려고 돌아다니면 역효과더라고요. 저 경우 처음에는 외국인 친구 만들려고 신촌에 가서 무작정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Excuse me 하자마자. 반응이 What do you want? 이었어요. 의도적으로 접근하면 그들도 안다는 거죠. 결국 저는 유튜브로 친구를 만들었어요. 셀프카메라로 삼각 김밥을 영어로 소개하는 식이었죠. 거기에 관심 있는 친구들로부터 코멘트가 달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실제로 알게 된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만나게 되며 친분을 쌓았어요.

문장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나요?

저는 문장을 통해서 유추를 하는 편이에요. 따로 찾으면 삼천포로 빠지거든요. 물론 진짜 이해가 안 된다면 찾아야겠지만, 그건 궁극적인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요. 단어하나 찾아가면서 공부하는 것은 나중에 깊게 공부하실 때 하면 될 거예요. 영자 신문 보실 때도 쉬운 걸로 활용하세요. 60~70% 정도 이해가 되면 딱 적합한 기사에요.

저자의 공부법이 시험 성적에서도 좋은 결과로 나오나요?

저도 얼마 전에 토익을 봤는데 점수는 곧잘 나오더라고요. 물론 따로 토익 공부는 전혀 안했죠. 토익은 비즈니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또 유튜브를 하다 보니 속도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고요. 그래도 주변에 토익 공부하는 친구는 뜯어 말리는 편이에요. 오래가질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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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분, 기적의 영어습관전대건 저 |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강의한 10분 분량의 동영상 강의와 5분이면 읽을 수 있는 텍스트들로 구성되었다. 15분에 하루 공부할 분량을 모두 담아 의지가 부족해 혼자 공부하기 힘든 학습자들도 부담없이 공부할 수 있다. 누적 다운로드 수 100만 돌파 기록의 영어분야 인기 팟캐스터 전대건이 모든 챕터를 강의하였고, 그가 엄선한 활용도 200%의 실용적인 영어문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구글을 잘 쓰면 야근할 이유가 없다 - 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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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들의 가장 큰 희망사항 중 하나는 아마도 정시 퇴근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주말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바람과는 달리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쉼 없이 일해야 한다. 사무 환경이 디지털화 되며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은 늘어났지만 회사라는 존재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길 요구한다. 주어진 시간이 한정된 상황에서 그 많은 일을 정해진 근무 시간에 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하며 일한다고 늘 시간이 부족한 이유다. 방법은 한정된 시간 동안 업무의 효율과 집중도를 높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한동안 사람들을 편하게 해준 문명의 이기가 이제는 도리어 발목을 잡는 장애가 되고 있는 상황. 업무에 필요한 자료와 데이터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적지 않게 걸린다. 오래전 수집해 놓은 자료가 있다고 해도 언제 어디에 저장해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USB와 집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메일을 죄다 뒤져봐도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상사의 결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역시 아깝기 그지없다. 바쁜 팀원들 간에 커뮤니케이션도 쉽지 않다. 누구 하나 외근이라도 가 있는 상황이면 회의시간은 퇴근 무렵이 되기 일쑤다. 그러는 동안에 정작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하루 1~2시간이 채 안된다. 결국 야근을 위해 저녁을 시키는 직장인의 표정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구글을 가장 잘 쓰는 직장인 되기』는 그런 딜레마에 빠진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양한 문서 프로그램과 저장 도구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정작 그 어느 것 하나 쓸모 있게 정리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이다. 업무에 필요한 데이터와 자료 관리에서부터 인력과 자원의 절약, 협업을 통한 업무량 감소 효과까지, 사무 효율 최적화를 위해 만들어진 구글 앱스는 새로운 혁신의 기준이 되고 있다.




계모와 직장의 공통점

『구글을 가장 잘 쓰는 직장인 되기』의 우병현 저자는 조선일보에서 산업부 IT팀장, U미디어랩 센터장, 경영기획실 마케팅전략팀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동영상 UCC 벤처기업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전문 매체인 조선비즈 총괄이사(COO) 겸 연결지성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를 비롯해 증권사의 HTS 등에 실시간으로 경제뉴스를 제공하고 있는 조선비즈는 회사 설립 당시부터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인 구굴 앱스를 경영에 전면 도입해 직원들의 일과 삶에 균형을 추구하는 스마트 워킹을 실현하고 있다. 이른바 ‘구잘직 프로젝트’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출간에 즈음해 독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진 우병현 저자.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을 향해 그는 대뜸 ‘신데렐라 계모와 직장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일을 많이 시킨다’, 둘째가 ‘매일 새로운 일을 더 준다’, 셋째는 ‘일만 주되, 해결 도구까지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일을 잘해도 보상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 정도겠죠(웃음). 즉 종합해보면 직장은 일과 중에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을 지시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기는 힘들죠. 회사 역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일을 찾아서 만들 수밖에 없고요.”

이에 반해 직장인들의 소망은 계모와 직장의 공통점과 상반되는 것들이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없고 제때 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직장.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다.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바랄 수 있는 욕구들이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대기업의 회장조차도 하지 못하는 바람일 뿐이다. 그가 ‘구잘직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현실과 상반되는 직장인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디지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과 중에 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기 힘든 이유는 많습니다. 변덕이 심한 상사에 과중한 일의 양도 이유가 되겠죠. 하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항상 사람이 남아도는 듯한데 부족하다고 하는 것 같고, 더 일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물론 보상은 충분하다고 생각되고요. 고용인과는 반대라고 할 수 있죠(웃음).”

업무 처리에 시간이 걸리는 또 다른 이유는 도구의 부족과 비호환성,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 등도 꼽을 수 있다. 그야말로 개인의 역량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모든 업무시간을 다 투자해도 일을 마치기 어렵게 되고 야근과 주말근무로 인해 삶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생산성은 오전에 90분, 오후에 90분이라고 합니다. 그 90분 동안 집중해야 생산적이라는 거죠. 그러나 현실은 보고를 해야 하고 프린트, 상사의 지적 사항 수정, 연락처를 찾는 등 비생산적인 일에 대부분을 쓰고 있어요. 가장 최악의 경우는 이로 인해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줄고 일은 더 늘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와 같은 고민은 고용인과 고용주인 경영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또한 전혀 다른 이해관계의 두 부류가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구글 앱스’라고 강조했다.




신데렐라의 두 번째 사례, 협업

일이 늘어나더라도 주어진 시간에 마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다시 한 번 신데렐라의 사례를 예로 들며 협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가기 위해 비둘기에게 콩을 골라달라는 부탁을 하죠. 결국 마법에 의해 협업이 가능한 상황이 됐고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이 마법이 직장인들에게는 어떻게든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신데렐라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의 시간을 쓰지 않으면 시간을 늘릴 방법이 없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내가 썼던 시간을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직장인에게 비둘기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디지털이죠.”

1980년대 사무실을 차지했던 타자기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바뀐 이후에 업무 속도의 변화는 놀라웠다. 한사람이 자료를 수집해 문서를 작성하고 수정을 해서 메일로 보내거나 보고를 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저는 현재 USB를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모든 강의 자료가 구글 클라우드에 올라가 있거든요. USB에서 해방 된 셈이죠. 그 전에는 강의하는데 디지털 매직이 오히려 족쇄같이 느껴졌어요. 직장인들은 하루에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어 냅니다. 이메일을 쓰고 블로그와 SNS, 페이스북을 하죠. 카톡과 문자, MS워드와 한글 까지 더하면 평균 5개가 넘어갑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콘텐츠를 관리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거죠.”

다양한 도구를 통해 문서를 만들고 옮기는 과정에서 흔히 처하는 문제는 뭘까. 바로 어느 것이 원본이고 어느 것이 복사본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저장 도구가 다양해지면서 자신이 만든 자료조차 키워드가 없으면 찾기 힘들어진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은 이럴 때를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회사 보직이 바뀔 때마다 열심히 하드디스크 카피를 해 놨지만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어요. 프린트 해 놓은 자료도 라면상자로 스무 상자가 넘는데 한두 번 열어서 찾아보다가 포기했죠. 최신 자료만 있으면 바로 작성할 수 있는 보고서도 인터넷에 범람하는 중복된 자료를 취합해 보면 겹치는 것을 제외하고 한 두 개 제대로 된 것을 찾기 힘들고요. 누군가 도와주면 금방 끝날 것 같지만 백지장을 맞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구잘직 3원칙으로 혁신을 시작하라

구글 앱스를 활용한 ‘구잘직 프로젝트’는 세 가지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모든 자료는 웹 오피스를 통해 만든다’ 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한글과 MS워드에 중독적인 충성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소득은 의외로 크다.

“저는 2007년부터 제 개인자료를 G메일로 주고받고 모든 자료는 구글독스로만 작성했습니다. 자료를 구글독스로 만들고 이메일과 주소록도 G메일로 통일하는 것이 구잘직 프로젝트의 첫 번째죠. 이것을 회사를 창업하며 전면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자료 제작에 사용하는 도구를 일원화하면서 원하는 자료를 회사 직원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복사본 생산 없이 모두가 하나의 도큐먼트를 공유하게 함으로서 협업과 업무 혼선을 없앴습니다.”

구잘직에서 제시하는 시간 확대 방법은 협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원화 된 도구로 작성된 자료는 제목이 달리고 완성되어가는 과정에서 협업을 통해 정보가 공유된다. 바로 두 번째 원칙인 ‘모든 자료를 처음부터 공유하라’이다. 조선비즈 직원들은 상사로부터 일을 지시받으면 구글의 문서도구인 구글독스를 가지고 문서를 만들어 바로 보고라인 및 협업라인과 ‘공유’를 시작한다. 시간이 절약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의 원본 문서에 동시에 접속해 수정이 가능해지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간단한 개요 정도만 담은 상태에서 공유된 문서를 가지고 관리자인 상사는 직원이 할 일과 도움을 받을 일, 상사로부터 확인이나 승인을 받을 부분을 구분하면 됩니다. 자연스럽게 협업이 일어나는 거죠. 업무 프로세스가 저절로 잡히고 커뮤니케이션 실수를 실시간 방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자료가 공유된다는 것은 자료를 누가 읽을 것인지 의식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읽을 독자를 의식하며 수치와 그래프를 사용하고 핵심내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작성을 하게 되면 자료는 오류를 줄이고 더욱 명료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원활한 작업을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인터넷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원칙인 ‘스스로 웹마스터가 되자’는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말이나 퇴근 후 갑작스러운 홍보전략 변경이나 사이트 수정을 지시받았을 때 IT부서의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아요. 결국 담당자는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기까지 발을 구를 수밖에 없죠. 인터넷 기능에 대한 의존도는 요즘 모든 직장인들의 발목을 잡는 요소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디자인, 게시판, 동영상, 사진 슬라이드, 입력양식 같은 것들이 애를 먹이죠. 조선비즈는 출범 때부터 전 직원이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웹사이트 구축 및 운영업무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병현 센터장은 이러한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3년 동안 일관된 조직문화를 구축해 왔다. 현재 조선비즈디지털시스템은 클라우드 속에 인사, 회계, 마케팅, 홍보, 미디어 플랫폼을 모두 올려놓은 상태다. 단 한 대의 서버도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낸 결과물이다. 그로 인한 소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관리 측면에서 볼 때 비용절감 효과가 확실하죠. 장비는 물론 소프트웨어와 인력 절감은 당연하고 회사의 인터넷 관련 문제의 상담원 역할에 한정 됐던 IT지원부서는 연구개발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요. 야근 및 주말근무도 감소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강연 막바지에 우 센터장은 “이 모든 고민이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됐다”고 고백했다. 바로 늦은 나이에 얻게 된 3살 늦둥이 덕분이라고 한다. 아이를 갖고 나서 매일 야근과 폭음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던 지난 삶을 돌이켜 봤다는 그. 구잘직 프로젝트는 그런 그에게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 외에도 잃어버렸던 가족과의 시간을 돌려줬다. 복잡해지기만 하는 디지털 사회 속에서 인간이 해야 하는 노력은 어쩌면 복잡한 것을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 얻은 시간은 삶의 질을 더욱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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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을 가장 잘 쓰는 직장인 되기우병현 저 | 휴먼큐브
이 책은 지난 3년간 조선비즈 사내에서 구축한 스마트한 업무환경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행동 사례를 담았다. 실제 업무 환경에서 구현해보고 수정하고, 보완하여 이제는 어느 조직 부럽지 않게 스마트한 업무를 실현한 조선비즈의 노하우는 그래서 직장인들에게 더욱 반갑고 가치가 있다. ‘구글’이라는 ‘디지털 기술’을 상징하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스마트한 업무를 말하는 이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디지털 기술로 아낀 내 시간을 나와 가족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고급 유모차를 타면 아이들이 행복한가요? - 이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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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화제의 육아서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는 이미 육아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육아필독서’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정말 엄마의 냄새만으로 아이의 인생에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심리학과 뇌과학 이론으로 검증한 현실적인 양육이론 ‘양육의 333법칙’ 속에 육아의 답이 있다.




이현수 박사가 말하는 ‘엄마 냄새’ 육아법

양육의 333법칙

하루 3시간 이상 아이와 같이 있어줘야 한다.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해당하는 3세 이전에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떨어져 있다 해도 3일밤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안정’

아이는 오로지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는 돈이 필요하지만, 아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는 시간으로 얻어낸 마음의 종잣돈이 필요하다.

정서뇌가 열려야 지능뇌가 열린다! 엄마 냄새를 맡아야 정서뇌가 열린다!

창조성, 자발성, 문제해결능력, 현실인식 등의 ‘자기실현욕구’는 선천적인 욕구다.
힘들게 억지로 공부시키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스스로 학습욕구를 가지고 지적 호기심을 채워나간다.

그렇다면, 자기실현욕구는 언제 발휘되는가?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정서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실현욕구가 발휘된다.




강연회에서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

열 살이 넘었는데, 이미 늦은 건가요?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상관없습니다. 엄마로부터 느끼는 정서적 안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엄마 냄새를 맡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아이 옆에 있어주면 됩니다. 스킨십이 힘든 상황이라면 곁에 두기만 해도 좋습니다. 3시간 내내 무엇을 끊임없이 아이와 함께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 곁에 함께 있어주면 됩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아이가 책을 통해 무엇을 얻길 바라지만, 그 순간에도 아이는 엄마 냄새를 맡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육아는 엄마만의 몫인가요? 아빠 냄새는요?

물론 아빠 냄새도 100% 가까운 효과를 냅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서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면 부모에게 먼저 설문지를 줍니다.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 질문에, 엄마의 90% 이상은 ‘지금 아이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라고 답하며, 아빠의 90% 이상은 ‘경제적으로 힘들 때’라고 답합니다. 육아는 결국, 엄마가 답입니다. 엄마가 육아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빠는 대신 집안일을 돕도록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우리 아이가 행복한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간단합니다. 우리 아이가 웃고 있다면 우리 아이가 행복한 겁니다. 오늘 아침,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나오셨나요? 어제는 아이가 웃고 있었나요? 그 전날은요? 비싼 분유를 먹고 고급 유모차를 탄다고 아이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웃게 해주는 것이 아이를 최고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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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시간 엄마 냄새이현수 저 | 김영사
세상의 모든 엄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 ‘엄마 냄새’가 아이의 인생에 기적을 만든다. 엄마 몸속에서 100%의 한 몸으로 살던 아이는 낯선 세상에서 엄마 냄새로 안정을 찾는다. 가장 원시적 감각으로 찾아가는 안전의 신호이자 생명의 필요조건, 엄마 냄새의 본질은 무엇일까? 수많은 아이들에게 제2의 탄생을 선물한 임상심리전문가 이현수 박사가 고려대학병원에서의 20년 연구와 경험으로 완성한 양육의 333법칙을 공개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초등학교 ‘스토리텔링 수학’ 이렇게 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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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학기부터 초등학교 1, 2학년 수학이 ‘스토리텔링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됐다. 그동안 주입암기식이었던 수학 교과서가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도 쉽게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고 사고력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올해 초등 1, 2학년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전 과정은 물론 중고등학교 수학이 순차적으로 이와 같이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이에 부모와 아이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존의 주입식 수학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텔링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 이에 예스24와 와이즈만 북스가 공동으로 기획한 ‘스토리텔링 수학 강연회’가 열렸다. 와이즈만북스는 『수학 해적왕』, 『수학 도깨비』, 『수학빵』, 『몹시도 수상쩍은 과학교실』, 『빨간 내복의 초능력 1, 2』, 『즐깨감』수학 시리즈 등 스토리텔링 수학ㆍ과학 동화를 내온 스토리텔링 전문 출판사다.

개정교과서 필진인 서지원 동화작가가 강연자로 나섰다. 서 작가는 ‘2013 수학교과서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주제로 스토리텔링 수학이란 무엇인가, 스토리텔링 수학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강연을 전개했다.




수학교과서에 대한 오해

서 작가는 스토리텔링 교과서를 둘러싼 오해부터 푸는 것으로 시작했다.

1.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보다 어렵다?
: 기존 교과서보다 학습 내용이 20% 감축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2.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처음부터 새로 공부해야 한다?
: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2013 개정 교과서가 아닌 2009 개정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다.

3. 스토리텔링 교과서의 시험은 지금보다 어려워진다?
: 주입암기식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암기 위주의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만 어려워진다.

4.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혼자서는 공부할 수 없으니 학원에 보내야 한다?
: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쉽고 재미있게 구성돼 있어 아이 혼자 얼마든지 가능하다.

5.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초등학교에만 사용된다?
: 2013년 중등, 2014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스토리텔링 교과서가 적용된다.


수학교육에 대한 반성

수학은 많은 사람, 아니 제도권 교육을 받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즐겁지 않은, 머리 아픈 학문이었다. 서 작가는 묻는다. 수학이 즐거우셨나요?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서 작가, 수학에 대한 우리가 가진 부정적인 생각들에 대해 말한다.

“수학 활용도를 모르겠다며 왜 배워야 하는지를 묻는다. 또 우리나라 수학은 인재를 길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성적이 잘 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편 가르기 위한 과목처럼 인식되고 있다. 수학의 풀이방식은 여러 가지임에도 한 가지 공식만 강요하는 교사와 칠판에 문제를 풀라고 하는 수업방식 또한 지긋지긋해 한다. 무엇보다 수학도 이해하고 탐구하며 응용하는 공부임에도 공식만 쥐어주고 문제를 풀라고 하니 배우는 학생도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학문으로서의 접근이 아니었던 거다.”

수학이 지겨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비슷한 형식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기
-단 하나의 정답 찾기
-틀리면 혼나기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 이유와 목적을 모름

암기주입식에 의해 주도됐던 우리나라 수학교육은 어렵고 추상적인 과목이자 입시 중심의 교육으로 치우쳤던 한편 높은 사교육비 부담과 낮은 흥미를 끌었던 어두운 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주요 교과목으로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였다. 수학ㆍ과학 성취도 국제비교연구(TIMSS) 2011에서 우리나라는 성취도 2위를 나타냈다. 문제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할 자신감이 있느냐는 각각의 질문에 50개국 가운데 꼴찌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학의 그늘이다. 자율보다 타율에 의한 학습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시험 끝나고 학교 졸업하면 그 필요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수학이며, 사회 나와서 미적분을 풀 일이 없으며 영어는 면접이나 해외여행 갈 때 쓸모라도 있지만, 수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개의 생각이다. 또한 다수보다는 소수를 위한 과목이 수학이라는 인식도 지배적이다. 그러다보니 소수의 수학 천재와 다수의 수학포기자로 나눠지고, 수학에 대한 거리감, 두려움, 무관심이 팽배하게 된다.




개정 수학교과서, 어떻게 다를까?

“문제 풀이만 시키고 채점을 해서 몇 개나 틀렸는지 지적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만 키워준다. 아이들에게서 공부가 즐겁고 수학이 재미있어서 빨리 공부하자고 하는 말이 나오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야기하기를 뜻하는 스토리텔링은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기억하기 쉬워서 교육에 효과적이며,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또 융합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를 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따라서 서 작가가 말하는 ‘스토리텔링 수학 교육법’은 다음과 같다.

1.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닌 세상을 배우기 위한 수학
2. 왜 배우는지 모르는 것이 아닌 수학을 배우는 의미와 목표가 분명함
3. 괴로운 것이 아닌 쉽고 즐거운 수학
4. 공식 암기가 아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창의력 수학

이번 스토리텔링 수학은 2009년 개정 수학 교육을 토대로 한다. 이번 개정의 특징을 살펴보면 쉽고 이해하고 재미있게 배우는 교과서, 수학적 전문성 향상을 위한 친절한 지도서, 가정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익힘책 등이다. 전체 구성은 이를 반영해 ‘단원도입 → 개별차시 → 단원평가 → 문제해결 → 창의마당’으로 구성됐다.

스토리텔링 교육법 5단계가 이를 보여준다.

-스토리텔링 추측하기: 삽화로 미리 이야기 추측
-스토리텔링 이해하기: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주고 잘 이해했는지 질문하기
-스토리텔링 속 수학 활동하기: 이야기에서 발견된 수학적 문제 상황 제시
-스토리텔링 마무리하기: 수학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점이나 느낀 점 나누기
-스토리텔링으로 창의력 키우기: 창의 수학 활동 놀이

“단원을 도입하는 1차시에는 핵심 발문과 활동을 통해 학습자의 깊이 있는 사고를 유도하면서 단원에서 배울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접근하게 만든다. 2차시에는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생각을 열고 구체적인 활동을 꾀하고 학습 내용을 수학 기호나 용어로 약속하면서 마무리한다. 단원 평가를 할 때는 기본 문제와 서술형 문제 등 다양한 평가 문항을 제시하고 만화, 놀이 등 다양한 방식을 제시한다. 창의마당은 창의력과 사고력,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스팀 교육을 바탕으로 수학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식하고 생활 속 수학으로 확장한다.”

서 작가는 ‘공부가 곧 학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혀야만 진정한 공부가 된다는 것. 따라서 수학이 진정한 공부가 되려면 실생활과 연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학이 세상에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목적과 이유가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스토리텔링 수학’이라는 것. 그는 엄마의 중요성에 대해 마지막으로 전했다.

“엄마야말로 진정한 스토리텔러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자,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며, 다시 강조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토리텔러다. 엄마는 절대 아이를 포기해선 안 되며 아이에게 행복을 가르쳐 주고 희망을 보여주는 존재여야 한다.”




스토리텔링 수학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이어 ‘학부모가 놓치고 있는 스토리텔링 수학에서의 고득점 비법’이라는 주제로 이미경 와이즈만영재교육연구소장이 발표를 이었다.

이 소장은 2013년 교육정책의 변화와 관련, 교과서의 변화, 수학적 창의성 및 인성 항목 신설, 평가 내실화 등 3가지 열쇠말을 제시했다. 교과서의 변화는 개념 원리 탐구를 중요시함으로써 스토리텔링형 교과서로 개편한 것을 꼽았다. 수학적 문제해결력, 추론 능력, 의사소통 능력을 강조하면서 확산적 사고를 촉진하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품 함양의 중요함을 창의성과 인성항목의 뼈대로 제시했다. 평가 내실화와 관련해서는 서술형 평가를 30% 이상 확대하고 자기학습 계획서 작성과 포트폴리오 구성 능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술형 평가는 강력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왜냐하면 선택형 문제의 맹점 때문이다. 선택형은 객관적이고 능력 변별기준이 뚜렷하나 창의성 발현이 어렵고 논리적 추론 능력을 측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서 평가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서술형 문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 원장은 서술형 평가가 원하는 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스스로 사고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
- 하나의 답 선택이 아닌 문제해결을 위한 논리적 사고 기술
- 문제해결의 이해력을 깊이 있게 설명
- 여러 가지 접근법을 활용한 문제 해결
- 다양한 상황에서 수학적인 도구를 선택해 사용

“창의사고력 수학 학습은 생각과 표현의 습관이다. 변경된 교과 과정의 주요 특징을 보면 학습자의 동기 유발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 형 수학 개념을 강화했고, 다른 교과목과 통합 학습을 시도하고 있다. 또 실생활 사례와 수학적 개념을 연계하는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에 학습자가 문제 속에서 해결 근거를 찾는 과정을 중시하고 있다. 이는 와이즈만 교육 프로그램과도 통한다.”

이 원장은 몇 년 후의 교육 변화의 핵심으로 ‘협업 능력에 대한 평가’를 꼽았다. 협업 능력은 21세기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2015년부터 협업 문제 해결 영역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학업능력이 좋음에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학생이 배출되는 것은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협동심, 커뮤니케이션 능력, 함께하는 학습, 책임감 배양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재석이 게으르다고 질타하더라” - 『일단, 시작해』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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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의 초석을 닦았던 잘나가던 신인 개그맨으로 시작해 하춘화, 윤복희, 이영자 성대모사로 웃음을 주고, 영어를 정복해나가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즐거움과 도전정신을 선사하는 김영철. 그는 이제 3권의 책을 낸 작가로 점점 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김영철의 신작 『일단, 시작해』를 소개하는 자리는 홍대의 한 까페 세미나실이었다. 약 30여 명의 독자들이 모인 이 행사는 강연이라는 딱딱한 형식보다는 즐겁게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모임에 가까웠다.

“어색함을 깨려면 ice breaking을 해야 하는데, 이영자 씨 흉내 한번 해볼까요? (웃음) 아, 제가 어색할 때가 다 있네요. 2,300명 혹은 1,000석 앞에서는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얼굴이 다 보이는 자리에서 좀 어렵네요. Yes24가 주최하는 이 자리가 처음이고, 강연은 많이 해봤지만 소규모로 처음 진행하는 것이라서요, 책을 읽고 오신 분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 긴장이 됩니다.”

김영철은 작년 무더운 계절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중간에 다른 영어책과 번역책을 먼저 출간하고 드디어 2월 초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대필의혹이 많았다. 김영철의 에이전시 사장님까지도 그를 의심했다는 후문. 대중도 이미 알다시피, 그는 마치 ‘말’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말’하기를 즐긴다. 특히 강연은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이 없다며 본인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건 너의 선택이다’ 라는 말이 책에 있죠. 이외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책을 쓰게 되었다고 조언을 구했어요.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가 모니터라고 생각하고 글을 써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작가의 말’을 써보면서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독자들이 미리 작성한 질문지에 김영철 씨가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행사가 이어졌다.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한 원동력이 있다면?

인터뷰 하면서 자신을 많이 돌아봤다. 나의 DNA는 51:49 인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할까? 말까?’를 고민할 때 항상 긍정적인 51의 쪽을 생각한다. 두려움을 인정하자. ‘되겠지?’ 하고 한번 해봐라. 질문한 분의 나이가 27이라고 했는데, 괜찮은 나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승무원? 남들이 당돌하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이 필요하다. 죽어도 하고 싶은 거라면 선배도 만나고 외국항공사 문도 두드려 봐라. 두려움도 극복해야하지만 간절함도 중요하다. 학원도 다녀보고, 기회 되면 2018년 평창 올림픽 김연아 씨의 PT도 한번 보라. 나승연, 김연아를 비교하면 누가 영어를 잘하나? 당연히 나승연이다. 그러나 김연아가 더 와닿지 않나? 그녀는 방송을 안다. (그는 역시 성대모사를 잊지 않았다) 인터뷰할 때 보면 카메라를 딱딱 찾아낸다.
‘Practice makes perfect’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개그맨 시험을 볼 때 10초간 자기 PR을 하라고 했다. 앞 사람들이 “다 KBS에 뼈를 묻겠습니다.” “제일 가고 싶습니다.” 식으로 얘기하더라. 그래서 고민하다가 나는 절실함을 연기했다. 반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10년 뒤 제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이홍렬, 이경규, 신동엽… 어떠세요? 저의 십 년 후의 모습 기대되지 않나요.”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너의 선택’이라는 말을 아까도 했다. 어느 날 라디오 국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영어하는 거 라디오로 편성하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 때 오랫동안 암기했던 말을 쏟아냈다. “국장님, 시간은 아침 6시부터 7시가 좋겠고요. 프로그램 제목은…” (웃음) 그 자리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라디오 ‘김영철의 FunFun Today’(SBS 107.7 파워 FM 아침 6시~7시)가 탄생했다. 준비를 늘 했으면 좋겠다. ‘승무원 왜 되고 싶나?’라는 질문에 답변이 달달 나와야 한다.


영어로 프리토킹을 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말하기가 제일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

개그맨 되기 전까지는 기본적인 인사정도만 가능했다. “Hello,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귀가 뚫린 건 10개월에서 1년 정도 걸렸다. 조금 늦게 걸린 편이다. 입이 먼저 뚫린 편이고, 남 말을 잘 안 듣는다(웃음). 개그맨들 중에 듣기능력 떨어지는 사람 많다. 자기 할 말만 하니까.
나는 말하는 게 정말 좋다. 스피킹은 타고나는 게 가장 좋은데 그렇지 않다면 노력해야 한다. 원래 과묵한 사람이 갑자기 영어로 말한다고 수다쟁이가 되지는 않는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본인의 한국어 습관을 돌이켜 보라. “엄마”라고 겨우 말하는 어린아이에게 “orange”(오륀지)라고 발음하게 하는 건 좋은 영어교육이 아니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외워야 한다. (예를 들면)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s” 라는 문장을 외우고 나서 상대와 말을 시작한다. 언젠가 대화 중에 그 말을 쓸 수도 있다. 이근철 선생님이 쓴 『Try again』이라는 책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수학 공식을 알고 외우면 정답을 맞히듯 영어도 패턴이 있다. 어머니가 하는 수준으로 영어를 해본다고 가정하자. “영철아, 뭐하나, 밥 먹었노, 화났나” “Did you watch TV?”, “Do you wanna…?” 더 나아가서 가정법 “I shouldn’t have done that~” 이 정도만 연습해놓고. 써먹을 타이밍에 쓰면 된다.


열정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면?

‘가슴 떨리고 싶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니’라는 쳅터에도 썼듯. 나이가 드니 가슴이 좀 덜 떨리더라. 20대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요즘은 가슴이 아니라 눈 밑이 떨린다 (웃음) ‘가슴 떨릴 때 여행을 해라 다리 떨릴 때 하지 말고.’라는 말도 있고.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는 것보다 열정이 사라지는 게 무섭더라. 이응준 작가의 『내 연애의 모든 것』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아픔도 아니요 가난도 아니요 병도 아니란다. 그것은 바로 생활의 권태로움이라고 한다.’ 이 구절을 보는데, 너무 무섭더라. ‘나도 나이 들다가 권태로움이 들면 어떡하지. 나와 잘 안 맞지 않나.’ (좌중 폭소) 가슴이 안 떨리는 건 개인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일요일 저녁시간을 활용한다. 책상에 앉아서 다음 주 일주일간의 계획들을 적는다. 방송 녹화, 인터뷰, 영어 학원 등등. 그림을 그리듯이, ‘Design you future’라는 모 광고카피처럼. 일주일치 그림을 그려보면 약간 설렌다.
또 중요한건 주변에 긍정적인 친구를 두는 것. 삶은 등식이다. 오늘 나를 만나고 김영철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을 달라고 기도를 한다. 부정적인 사람은 잘 안 만나게 되더라. 리액션이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참 힘들다. ‘yawning is contagious’(하품은 전염된다)라는 표현처럼 부정적인 것에도 전염성이 있다. 내가 열정적이든지, 아니면 주변사람에게 그런 영향을 받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비법이 있다면?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인 것 같다. 내 꿈이 International Comedian 이다. 영어만 잘한다고 국제적인 코미디언이 된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 그러다가 김윤진 씨의 매니저를 소개받았다. 한번 만나고 차 마시고 술 먹다가 친구가 되었다. 지금 김윤진 씨는 미드 주인공으로 시즌1의 촬영을 마쳤는데, 시즌2에 작은 역할 오디션이라도 넣어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동양인 청소부 역할로. 계속 혼자 말 많이 하는 사람 있지않나. (좌중 폭소) 그리고 한류 음악, 드라마는 있는데 왜 코미디는 없는가 라는 주제로 CNN에서 취재를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 때 “Here I am” 하면서 내가 나가는 거다. (웃음)
물론 슬럼프도 올 때가 있고, 생각보다 자주 온다. 슬럼프는 하기 싫고 귀찮을 때 오기도 하지만 지금 나의 레벨과 기대치와 맞지 않을 때 온다. 그럴 때 나는 영어학원 반을 낮췄다. 자신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 반에서 짱먹는 반으로 월반하는 게 도움이 되더라. 영어는 잘난척과 당당함이 어울리는 언어니까.
영어 정복비법을 물어보시는데 나는 아직 영어를 정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언어를 마스터하기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나중에는 스페인어나 중국어를 한번 해보고 싶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지난번 번역했던 책에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12가지 팁이 나온다. 그 중 I like my self 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뻔한 얘기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감은 결국 자기 인정이니까.
공항에서 우연히 읽은 작자미상의 책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What do you want to be?’ (당신은 뭐가 되고 싶은가) ‘I’d like to be myself. I tried to be other things, but I always failed’(나는 자신이 되고 싶다. 다른 것이 되려고 노력하던 때가 있었지만 항상 실패했다.) 이 구절처럼 나 역시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유재석, 박미선 누나, 호동이 형을 따라하려고 했다. 그 때 호동 형이 조언을 해줬다. 너에겐 너만의 것이 있다. 너는 ’talker’라고. 그 후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영어공부를 하게 되고, “책 속에 정답이 있다”라는 정선희 누나의 말을 듣고 책을 읽었다.
무한도전에 영어선생님으로 나가면서 ‘아 이제 사람들이 나를 그런 모습으로 인정해주는구나’ 라고 느꼈다. 나를 사랑하니 콤플렉스도 없어지는 것 같고, 내 장점이 보이면서 질투도 없어졌다. 여러분께 김형경 소설가의 『사람풍경』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호기심, 질투, 공포 등 사람들의 감정을 43개의 챕터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개그맨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공부하거나 책을 쓰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은 김영철이 가볍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영어공부하면서 그게 많이 사라졌다. 책 쓰면서 곤란하고 힘들었던 점은 없다. 오늘 보니 두려움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실패할 각오로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2008년에 강연을 가기 위해 007가방에 정장을 입고 준비하려고 하는데, 조영남 형이 조언을 하시더라.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아라. 가서 욕먹을 각오로 하고 웃기는 얘기해라”.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욕먹을 각오로 마음대로 했다. 의외로 결과가 좋았다. 박수도 많이 받고. 두려움이 생길 때, ‘어차피, 또 떨어질거야.’라는 마음으로 해보라. 어떤 일이든 늦은 건 없다. 승무원이 되려고 하는 데 나이가 많은 것 같다? 그럼 내가 먼저 인정하면 된다. 먼저 면접에 가서 말하는 거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나이가 문제 되나요?”라고 바득바득 대처하는 것보다는 한 템포 쉬고 가는 태도가 필요한 듯하다.

개그맨 될 때 반대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사실, 반대는 없었다. 옥동자나 박휘순이 그랬듯,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개그맨이 됐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불안정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자신감이 있었다. 아직까지 김영철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살면 말이다. 예전에 (유)재석 형이 니에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최선을 다했다. 책 읽고, 모니터링 열심히 하고 주변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를 깨어있게 했다.

그의 편한 모습에 강연장에 함께한 독자들 역시 마음을 열었다. 질문의 내용과 수준이 가히 ‘무릎팍 도사’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김영철은 친해지고 싶다는 한 독자에게 페이스북 친구를 맺기를 선뜻 제안했고, 책 출간을 앞둔 한 독자의 추천사 부탁을 마다하지 않았다. 독자의 질문에 귀기울이고 고민을 함께 하는 그의 모습에서 연예인보다는 소탈한 동네 오빠의 느낌을 받았다.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같은 인상을 받을 듯하다. 어렵지 않은 소박한 문체를 따라가며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다보면, Fun하고 뻔뻔한 이 남자의 절대 뻔하지 않은 인생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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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해김영철 저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이루고자 하는 꿈과 삶의 목적을 위해 꾸준히 배움의 길을 걸어온 김영철이 20~30대 젊은이들에게 전해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는 삶의 우여곡절이나 대단한 서사라고 할 만한 게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의 혜안과 그가 읽었던 책의 교훈과 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했던 흔적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배움이고 학습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배운 것들을 독자들에게 나눠주고자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어느 지하철 2호선 역, 좀 무섭지 않나요? - 『하루』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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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의 풍경을 그림으로 엮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늘 똑같다고 구시렁거리는 일상은 정말 굴레로만 끝나는 것일까. 그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건질 수 없을까. 미술평론가 박영택에게 ‘하루’는 그저 반복의 일상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지만 그것이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 그에겐 반복되어짐과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 공전하는 것이 일상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매 순간은 단 한 번뿐임을 아는 사람. 유일무이한 장면으로 일상이 채워져 있음을 아는 사람. 그는 그래서 일상을 다룬 이들의 작품을 찾아본다고 말한다. 그것을 통해 하루의 생을 반성하기 위함이다.

박영택 평론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 「벽암록」




박영택, ‘하루’를 말하다

책에 모은 50편의 작품은 박영택 평론가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발표된 작업들 가운데 자신이 보고 접한 것을 모았다. 하루 가운데 시간 추이에 따라 그림을 배치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풀었다. 작가들의 사유가 침전한 작품에 자신의 사유 역시 덧붙였다. 이날도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푼다.

“작가들이 다루는 일상은 자신을 둘러싼 삶에 대한 반성이자 주어진 현실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고 동시에 자기 존재를 일정한 거리를 갖고 조망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연유할 것이다. 응시는 많은 생각을 거느리고 반성의 시간을 동반한다.”(p.8)


이윤호 <새벽>

수묵화다. 교회의 십자가 뒤에서 미명이 빛나고 있는 이 그림은 새벽을 알려준다. 박 평론가는 이 그림이 동 트기 직전의 농촌의 새벽 풍경을 그렸다며, 작가가 농촌에서 산 세월이 묻어난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먹이 새벽에 스며든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비로소 짙고 어두운 무거운 어둠이 조금씩 밀려나고 빛에 의해 하나씩 드러나는, 세상에 처음으로 나온 얼굴 같은 저 풍경이 아름다운 것이다. (중략) 오늘도 여전히 새벽의 기운과 빛은 변함없이 도래할 것이다. 그 새벽으로 인해 비로소 하루는 하루가 된다.”(p.21)


민경숙 <Morning>

한 조각 햇살을 그렸다. 작가는 아침을 파고든 빛을 응시하여 파스텔 가루로 빛을 만들어냈다. 박 평론가는 감탄한다. 나도 따라서 감탄한다. 일상에서 저 작은 틈을 파고든 햇살 한 조각을 길어내 그것에 대한 경건함과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빛과 기운이 보는 이로 하여금 치유와 구원을 떠올리게 한다.”(p.28)


김경덕 <일상-보물>

박영택 평론가 왈. “작가는 방바닥에 놓인 몇 개의 물건들에 주목하고 있다. 잠자리에서 막 깨어난 자리인데, 노란색 장판은 콩기름을 먹여 번들거린다. 시계와 안약이 있고, 『진주 귀고리 소녀』를 표지한 한 책이 있으며, 그 밑에 흰색 표지의 책 두 권이 있다. 그 책들이 주인이 어떤 성품인지 드러내기도 한다.”배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저렇게 절묘하게 나오다니.

“일상은 늘 오늘이다. 그것은 매일매일 다소 지루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된 과정 속에 미세한 편차를 만들어놓은 것이 또한 일상이기도 하다.”(p.36)


유근택 <샤워>

먹으로 그린 그림이란다. 먹으로 그린 그림에 대한 편견을 깨는 잘 그린 그림이라고 박 평론가는 말한다. 단색톤으로 흔들리고 진동하면서 적셔진 화면 덕분이다. 샤워로 시작하는 하루가 일상의 시작임을 선언하는 듯한 그림이다.

“욕조라는 공간 또한 일상적인 풍경이면서도 매순간 다르게 다가오고 변화하는 장소다.”(p.40)


김수강 <코트 행거>

쓸쓸한 사진이자 회화다. ‘검프린팅’이라고 불린다. 코트 행거가 덩그러니 걸려 있고, 조명에 의해 그림자가 교차되는데, 박 평론가는 비어 있는 옷걸이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어떤 욕망을 길어 올린다. 이 작품, 사물을 다시 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전한다.

“김수강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물의 존재감,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보여준다. 작고 하찮으며 일상적인 도구들을 기념비적으로 부각하고 차분하게 조우시켜 그에 대해 많은 상념을 야기하는 사진이자, 그 소박한 사물의 영혼을 대면시켜 주는 사진인 것이다.”(p.48)


김선심 <검은 꽃>

싱크대 수챗구멍을 가득 채운 음식물 쓰레기와 식기, 고무장갑이 어지럽고 음산하다. 주부의 시선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즉 식사 후 남겨진 잔여물을 매일 치워야하는 주부들의 고역을 다뤘다. 늦게 데뷔한 작가가 느꼈던 일상에서의 풍경을 소스라치게 묘사한 작품이다.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들, 씻어야 할 그릇들, 어지러이 널린 쓰레기들로 가득한 이 혼돈스러운 부엌은 매일매일을 이런 일을 하며 지내는 여성으로서의 삶과 현실에 대한 기록이고 초상이다.”(p.55)


권기동 <8AM>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아침 풍경이다. 고속도로 풍경인데, 무서운 풍경이기도 하다. 차들이 하나 같이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만 나아간다. 늦지 않으려고 빠른 속도로 운전만 한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위태롭게 질주한다. 빨리 도착할 수도 있지만 죽음의 위협을 동반하고 있다.”


이정섭 <지하철 2호선>

“좀 무섭지 않나? 지하철 2호선 어느 역인데, 사람들이 지하철이 오는 한 곳만 바라보고 있다.”박 평론가의 말이 그대로 꽂힌다. 흑백 그림이 주는 아우라도 한 몫 할 것이다. 빠른 속도를 강요하는 도시의 일상에서 전철의 빠른 속도에 뭉개진 인간들의 표정은 우리네 일상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범석 <낮 12시>

하루의 정점인 정오에 텅 빈 운동장이 주는 분위기와 감정을 그렸다. 박 평론가는 작가가 몸 밖의 풍경을 관찰하고 느낀 것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그것도 낮 12시의 기운을 포착하여 촉각적인 표면 효과를 연출해냈음을 부연한다.

“시, 서, 화는 내 몸 밖의 것을 내 몸이 보고 깨달은 것의 진솔하고 핍진한 고백이다. 몸의 반응이고 몸이 깨닫고 인식한 것의 기술이다. 그래서 필(筆)은 몸의 반응을 따라가 섰다 멈췄다 흐르다 머물다를 반복한다. 그것인 호흡이자 기이며 숨이자 신경이고 인식이자 득오의 과정이다.”(p.101~102)


금혜원 <Blue Sunday>

“산동네를 찍었는데, 재개발 때문에 대부분 사라져서 파란 비닐천에 뒤덮였다. 그런데 교회 부근만 팔지 않아서 덩그러니 남았다. 파란 비닐천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면 아래로 없앴다. 우리가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풍경이다. 아마 이곳엔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토건자본주의, 부동산자본주의가 삼킨 비극이다. 삶을 몰아낸 대신 자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공권력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이에 동조한다. 용산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 푸른 풍경은 한국 자본주의의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 좀 더 나은 삶과 경제적인 이윤을 목표로 가차 없이 삶의 자리를 지워버리고, 폐기하고 다른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욕망은 욕사나 문화, 지난 시간대의 소중한 삶의 자리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p.111)


전금자 <오후 2시경>

“땡땡이를 친 것 같은 학생이 오후 2시쯤 노란색 주차선 밖으로 약간 삐져나온 새빨간 자동차의 표면을 긁고 도망가는 장면이다. 평온한 일상에서 예측할 수 없는 분노나 의도적인 훼손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이 그림은 보여주는 것 같다.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박 평론가의 얼굴과 목소리가 밝아진다.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는 그림 속의 시계가 평온함을 드러내듯, 작가의 제주도 생활을 다룬 그림이다. 작가 부부가 집에 앉아 있고, 한낮의 다른 생명체들도 활력을 띠고 있다. 개를 제외하고 다른 생명체들도 쌍을 이루고 있다. “이 작가는 현존하는 작가 중에 가장 그림이 잘 팔린다. 매달 트럭이 작가의 그림을 공수해 와서 전시를 하고 전시한 그림들도 거의 다 팔려나간다.”


전영근 <The Room>

작가는 이후 이 그림보다 더 좋은 작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고 박 평론가는 평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박 평론가의 애정이 묻어있다는 얘기렷다. 책들과 재떨이와 담배, 거울, 두루마리 휴지 등 소박한 사람살이가 배여 있는 그림을 통해 작가의 하루를 유추한다.


노석미 <나는 사랑에 너무 쉽게 빠져>

“여자와 남자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데,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고, 여자는 손을 입가를 가리면서 남자를 슬며시 훑어본다. 컵이 다른 것으로 보아 서로 다른 차를 마시고 각기 다른 취향의 차이 속에 서로에게 호감이 갈만한 것을 찾고 있다. 두 사람 밑에 붉은 색으로 칠해진 사각형의 화면은 소파의 등 같으면서도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이루는 그 시간은 이 둘 인생에서 거의 전부다.”(p.168)


이흥덕 <두 남자>

오후 시간대 사우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렸다는 이 회화는 서글픔을 동반한다. 직장에서 피로하고 무거운 몸을 끌고 나와 ‘땡땡이’를 즐기는데, 그들의 몸은 꼭 정육점의 살과도 같다는 박 평론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서글픈 이 시대 남성들의 초상이다.

“아마도 격무에 시달리고 온갖 스트레스로 초조하게 죽어가는 현대인들이 그나마 겨우 자신의 육체를 위안받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 이러한 오후의 사우나장인지도 모르겠다.”(p.173)


서은애 <늘어지게 기분 좋은 어느 여름밤>

지금의 현대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그린 작품이다. 박 평론가는 이 작품을 전통에 대한 패러디라기보다는 전통 회화가 추구하는 이념에 작가의 감정을 접목한 것으로 해석했다. 고전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각형의 튜브를 물가에 띄워 자유롭게 떠돌고 있는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휴가를 즐기고 있는 작가 자신이다.


고찬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보낸 직장인 사내가 집으로 귀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하철 손잡이를 힘겹게 잡고 있다. 와이셔츠 단추도 풀고 넥타이도 풀어 헤쳤다. 무척 힘든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전쟁 같은 일상을 겪어내고 이런 모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작가는 이런 모습에 <하루>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눈물겹게 하루를 보낸 흔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이 작품에서 나의 얼굴을 보고, 당신의 얼굴을 본다. 그것은 도시의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여주경 <무제>

운동장과 학교 건물이 덩그러니 보이고, 교복 입은 두 학생이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박 평론가는 아이들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아련한 감정을 뽑아낸다. 늦은 저녁의 교정,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혹은 우리의 아이들이 겪어야 할 지독하게 쓸쓸하고 어련한 풍경이다. 학교는 공허하고 운동장은 씁쓸하다.


허보리 <완전 피곤 오징어 바디>

만화가 허영만 선생의 딸 허보리 작가의 작품이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일상을 다뤘다. 분홍색 침대시트와 거대한 오징어 몸통이 대조를 이룬다. ‘오징어는 인간이 될 수 없어도 인간은 오징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진솔하게 표현된 작가의 일상이 재치 있게 묘사되었다. 동시에 이 그림은 매일매일 산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며 또한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p.275)


이승민 <새벽 4시 30분>

“24시간 운영하는 마트의 야간매장을 촬영했다. 재밌는 것은 작가가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었던 까닭에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붉은색 라인으로 문을 닫은 매장도 있지만, 한 커플은 그 새벽에 마트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다.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찍었다. 24시간 소비가 일상화된 풍경이다. 어떤 편의점은 ‘25’를 붙였는데, 24시간만으로 부족한가 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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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박영택 저 | 지식채널
KBS1의 〈명작 스캔들〉과〈TV미술관〉 등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인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하루가 힘들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는,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그림 힐링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하루』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현대미술을 수놓고 있는 작가들의 보석 같은 작품들 중,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의 24시간을 다룬 그림 50편을 선별하여 그 하나하나의 이미지에 대해 떠오르는 단상을 써 내려간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우리는 이런 보수를 기다려 왔다 - 『표창원, 보수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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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은 18대 대선의 열기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었다. 범야권 대 여당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상대 후보나 진영에 대한 각종 비난들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경선 과정이 과열된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십알단의 존재며 국정원 여직원 사건 등 여당의 부정선거 관련 의혹이 속속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한 경찰대 교수가 올린 트위터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해 경찰의 즉각 진입과 수사를 촉구하며 양쪽 진영으로부터 박수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예의 ‘종북’ ‘좌빨’이란 비난이 쏟아지자 블로그에 <보수주의자로서 고백하고, 요구하고, 경고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역설하더니 덜컥, 사표를 던졌다. 경찰대 교수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문제와 ‘표현의 자유,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란다. 보수로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밥그릇마저 집어던진 이 40대 남성은 대선 후에도 광주로 내려가 시민들을 위로하는가 하면 강남과 광화문 등지에서 프리허그를 하며 대한민국을 매혹시켰다. 바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이야기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표창원, 보수의 품격』(표창원, 구영식 지음, 비아북, 2013)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JTBC에서 <시사 돌직구>의 메인 MC와 대한민국 독립유공자협회 홍보 이사직을 맡는 등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 표 전 교수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진정한 보수를 찾습니다

면제의 대물림을 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보수는 의무를 지킨다. 의무를 넘어서 자신을 희생한다.
위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권력으로 치부를 가리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보수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공익을 위하는 것이 보수다.
입을 막고 종북과 좌빨을 외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보수는 비판에 당당하다. 자신의 길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이 보수다.
권력의 그늘에서 시민의 피를 빠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보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수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보수는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과거를 엄정히 평가하고 화해로써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보수다. (p8-9)
그는 보수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보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청중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보수의 정의, 그건 간단하죠. 여러분들이 차마 부끄러워서 손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거예요. 보수는, 있는 그대로 뭡니까? 그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 이념, 체제, 도덕, 윤리, 철학, 이런 것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에요.”

표 전 교수는 그렇다면 대한민국 보수는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다. 보수가 한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나 이념 등의 총체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의 ‘전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다. 그는 그 전통을 친일이나 독재가 아닌 ‘선비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선비정신의 본령.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었어요. 삼강오륜, 선비들의 상소를 통해서, 임금님에게조차 ‘임금님, 그것은 아니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대한민국의 전통은 무엇이었을까요. 친일, 황국신민이 되고자 했고, 나라를 팔아먹고, 그들에게 빌붙어서 돈 받고 작위 받고, 그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까? 나라가 짓밟히고 국권이 넘어갔는데 내가 가진 것들이 무슨 소용이야, 하면서 독립운동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사하셨던 우당 이회영 선생 같은 그런 분들이 대한민국의 자랑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어째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보수가 이토록 부끄러운 이름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그는 그 부끄러움의 이유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보수라는 이름을 내건 사람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부리는 행태와 ‘끼리끼리 문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유?불리에 따라 뭉치는 문화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표 전 교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왜 이들은 다수를 점하고 있을까? 그런데 왜 이들은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지배 세력을 형성하고 있을까? 그는 『표창원, 보수의 품격』으로 바로 이런 질문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종북’, ‘좌빨’이라는 프레임의 덫

‘진정한 보수라면, 친북 좌빨 주장은 집어치우십시오!’
‘영국의 당당한 보수당과 민주자유당처럼, 보수의 진정한 가치인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무한 보장하는 것이 당당하고 떳떳한 ‘진정한 보수’입니다.‘ (p14)
표 전 교수는 그 첫 번째 요인으로 ‘북한의 존재’를 꼽는다.

“북한의 존재는 대한민국 보수에게는 엄청나게 고마운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이 있기 때문에, 분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반칙과 협잡과 ’끼리끼리‘의 카르텔이 용납되고 묵인되고 방치되고 있다, 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딱 한 마디만 하면 됩니다. 매직 워드죠. ‘종북!’ (웃음) 상황 끝. ‘좌빨!’ 상황 끝.”

국정원 여직원 사건 이후 그에게도 역시 ‘종북’, ‘좌빨’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이라는 중대한 사안, 국정원 여직원이 과연 ‘감금’된 것인지 아니면 ‘잠금’을 한 것인지의 여부 등 공론화되어야 하는 많은 부분들이 ‘종북’과 ‘좌빨’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묻혀버린 것에 대해 그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표 전 교수는 미국의 합리적 보수의 아이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례를 짚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수주의자임에도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설령 민주당의 정책이라 할지라도 지지하고 박수를 보낼 줄 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냐는 거죠. 자기들이 잘못한 게 있다고 하면 ‘종북’, ‘좌빨’ ‘북한으로 가라’ 잡아먹으려고 해요. 그렇게 할 거면 보수라는 신성한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말라, 라는 게 제 요구입니다. 대한민국이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해요. 이제까지와는.”


박정희, 산업화의 역군과 독재자 사이에서

박정희와 광주는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이다. 내가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순간, 민주화세력 쪽에 있는 분들은 ‘그것만 빼면 다 너를 인정해주겠는데 그거 때문에 도대체 너를 못 믿겠어.’ 이렇게 나온다. 그 다음에 광주 민주화운동이라 하고 광주가 성지라 하면 ‘네가 전라도 놈이야? 너 결국 DJ 똘마니구나. 노빠구나.’ 이렇게 말한다. 좋다. 바로 그 발견이 더 기쁘다. 아, 이게 우리의 병이구나. 이게 우리의 환부구나. 그럼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반 이상은 해결된 거다. 일단 다른 것보다 이 두 문제를 가지고 계속 담론을 형성하자. 나는 총알받이 역할을 하겠다. (p213)
표 전 교수는 두 번째 요인으로 ‘박정희’라는 인물을 꼽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다카키 마사오’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앞으로도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 진정한 경쟁도 화합도 있을 수 없다.

그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진보와 보수 진영의 평가를 다시 한 번 되짚는다. 혼란에 빠진 나라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킨 산업화의 역군, 다른 한편으로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파에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고 유신체제 하에서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 표 전 교수는 이러한 양 진영 간의 이분법적 시선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정치가 번번이 ‘박정희’라는 프레임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우리가 이 양 극단의 시각으로 계속 대치하며 계속 나아갈 거냔 말이죠. 그럴 경우에 오년 후 선거에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합리적으로 현 정권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새로운 변혁이 필요하다고 하고 민주주의를 더 신장시키자고 해도 해결하지 않은 숙제, 화합을 이루지 못한 ‘박정희’란 이름이 거론되면 또다시 ‘종북좌빨’이냐 ‘수구꼴통’이냐로 나뉘겠죠. 숫자가 어떻게 돼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51.6% 선에서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진 않을 거라는 거죠. 이건 진보를 위해서도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후손을 위해서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는 거죠.”




구영식 기자와의 대담

강연 뒤에는 표창원 전 교수와 『표창원, 보수의 품격』공저자인 구영식 기자의 대담이 있었다. 두 사람은 15년 전 월간 <말>이라는 잡지의 인터뷰에서 처음 만나게 된 인연을 이야기했다.

_ 작년에 있었던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서 표 교수님이 했던 일은 진짜 보수주의자로 커밍아웃하는 거거든요. 알고 보면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꽤 있었죠. 김구 선생도 있을 수 있고, 또 장준하 선생도 있을 수도 있고. 이런 분들을 우리는 다들 진보라고 알고 있단 말이죠. 이런 커밍아웃이 앞으로 좀 필요하겠죠?

_ 네, 필요하기도 하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하는 것처럼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연락을 많이 해요. 이제부터 뭔가 시작하는구나, 라는 걸 느껴요. ‘사실은 나는 보수였는데, 보수라는 말 자체가 가진 의미, 수구, 기득권, 현 정권, 여당, 이런 것들이 싫어서 나는 진보야.’라고 했던 많은 분들이 지금은 ‘나도 이제 당당하게 보수 선언 할래.’ ,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_ 제가 표 교수님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표 교수님의 일관된 주장이었어요. 사실 표현의 자유라는 건 항상 진보가 선점해 오고 독점해 왔던 영역이죠. 표 교수님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보수의 가치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거예요.

_ 좀 화가 나는 게, 진보 쪽에 계신 분들이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해요. 보수는 어디서나 그 나라 그 사회의 전통이잖아요. 우리가 헌법에서 채택한 이념이 뭡니까? 자유민주주의거든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뭡니까? 그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부과하지 않고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겠냐는 거죠.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택권 자체가 없어요. 그럼 그게 자유민주주의입니까? 아니죠. 근대의 출발이고 보수의 핵심가치는 표현의 자유이고 언론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억압하고 그것을 짓밟으면서 보수라고 주장하는 자? 절대로 보수 아닙니다.

_ 이제는 박근혜 정부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_ 유쾌하게 살아야죠. 유쾌하고, 즐겁고, 헌법적 권리를 모두 향유하면서 신나게 살아야 합니다. 유쾌하게 사는 방법, 제가 책에서 제시를 했습니다. 첫째, 참여하라. 두 번째는,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죠. 세 번째, 인내심을 가져라. 그 동안의 대한민국의 역사, 우리가 한 번 봐요. 지금 이 상황,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나아졌어요. 진전이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통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까? 아니잖아요. 우리 한 명 한 명이 대화합시다. 이러한 노력이 5년 동안 지속된다면 당연히 5년 뒤에는 세상이 달라지겠죠.


독자 질문

민주당은 어떤 성향의 정당인가요.

_ 민주당에 성향이 있나요? 죄송합니다.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이념과 성향에 따라 모인 사람보다는 지역과 이해관계, 그리고 인물 중심, 이렇게 모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 정당에는 직접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이 대단히 적습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 어떤 당을 지지해’ 하는 사람은 많아요. 이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라도 정당이 색깔을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 보수가 이래야 한다, 라고 말씀하신 ‘보수의 품격’ 말고, 진보는 이랬으면 좋겠다, 라는 ‘진보의 품격’에는 어떤 게 있을까, 정말 여쭙고 싶습니다.

_ 대한민국의 진보는 노동자, 농민, 서민, 빈민, 소외된 분들, 약자들, 이분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분이 주인된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해야겠죠. 당원의 다수도 그렇게 구성해야 하고요. 사회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정당 활동도 열심히 하고, 이중에서 잘한 사람이 지역당의 책임도 맡고 중앙당으로 올라오고, 이런 정당구조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건방지게 말씀드렸습니다. (웃음)

십알단이나 수개표 거부, 국정원 개입 사건까지 18대 대선에는 부정선거라 부를 만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_ 부정선거 부분에 대해서 보수적인 견해와 진보적 견해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보수입니다. 반칙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국정원 직원의 신분이 확인되고 그곳 오피스텔에서 40시간 대치해서 나오지 않고, 그러면서 의혹이 증폭되는 순간에, 윤종훈 새누리당 전 SNS 단장이 운영하던 십알단 사무실이 밝혀진 그 순간에 정정당당한 보수라면 인정하고 후보 사퇴했어야 한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단 그 시기가 지났습니다. 지금은, 보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사퇴하는 게 답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과가 나왔고, 선거는 끝났습니다. 이제라도 의혹이 있는 부분을 엄정하게 수사하고 진실을 밝히겠다, 하는 의사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게 보수의 자신만만하고 정정당당한 태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정원과 십알단 사건은 현재 후보자와 그 운동본부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국정원 사건은 책임의 소재는 국정원장입니다. 그 이후에 국정원과 십알단과, 또 추가로 무엇인가가 전체적으로 엮여진, 그 배후에는, 예를 들어 후보가 직접 알고 있었던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현재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죠. 후보가 몰랐고, 후보의 선거운동 본부 측에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면 대통령의 책임은 아닙니다.

우리가 박근혜 정부 5년을 유쾌하게 사는 법은 패배감에서 빨리 벗어나는 거다. 긍정적으로 희망을 가지고 이겨나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우린 졌어.’ 하며 떠나가지 말자는 거다. 야구에서 9회말 투아웃 7대0으로 지는 상황에서 ‘에이씨.’ 하고 나간 분들은 일생 일대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그 엄청난 기적 같은 역전극을 놓치는 거다. 우리가 지금 절망한다면, 포기한다면, 바로 그 멋진 9회말 투아웃 8대7 역전극을 못 보는 거다. 그러니까 믿자. 정의라는 우리의 애인, 날 배신할 것 같아서 야속할 때도 있지만, 끝까지 믿어보자. 그러면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p260-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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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보수의 품격표창원,구영식 공저 | 비아북
저자는 이 땅에 품격 있는 보수, 진정한 보수가 서려면, ‘불법과 반칙이 결국 이긴다는 잘못된 신념, 힘센 자에게 줄 서고 충성을 바치면 옳지 않더라도 결국은 나에게 보상이 돌아온다는 불의한 관행과 인식이 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보수의 정신은 ‘사를 멀리하고 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과거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용서하고, 고칠 것들은 고치고, 내놓을 것은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품격 있는 보수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생각하고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고 깨어나서 합리적이고 평화적으로 세상을 조금씩 좋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랑한다는 말은 듣는 행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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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7일, 목동에 위치한 KT 체임버홀에서 『나의 치유는 너다』의 북 콘서트가 열렸다. 책의 부제처럼 ‘인생에, 사랑에, 관계에 아직은 서툰’ 우리들을 위해 마련된 삶의 수업 시간이었다. 김재진 시인의 작품과 그 안에 깃든 영혼을 사랑하는 많은 뮤지션들은 물론, 20여 년 동안 작가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치유의 어머니’ 정목스님도 함께했다.


‘실패와 좌절을 치유하는 북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날의 행사에서 김재진 시인은 말을 아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우리 삶의 여러 단면들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음악들이었다. 문학을 노래하는 밴드 ‘서율’과 힐링 뮤지션 ‘자닌토’, 바이올리니스트 ‘박은주’가 함께 치유를 노래했다. 『나의 치유는 너다』북 콘서트는 수많은 위로의 말들이 아니었다. 소리 없이 어깨를 다독이는 고요한 손길이었다. 힐링을 말하는 목소리가 넘쳐나는 지금, 어쩌면 진짜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중 ‘토닥토닥’
음악을 통해 문학을 ‘읽어 드린다’고 말하는 밴드 서율의 무대로 북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책의 노래’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들은 문학작품의 줄거리를 노랫말로 만들어 음악으로 들려주는 밴드다. 서율의 첫 번째 곡 ‘토닥토닥’은 동명의 제목을 가진 김재진 시인의 시 구절들이 가사가 된 노래다.


밴드 서율 뿐만 아니라 북 콘서트에 함께한 모든 뮤지션들은 김재진 시인과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온 이들이다. 작가와 그들 사이를 이어준 끈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21살의 나이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김재진 시인은 1981년부터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늘 음악의 곁에 머물렀다. 방송국을 떠난 뒤에도 ‘마음공부 전문방송 유나’를 개국해 사람들과 음악을 통한 소통을 이어갔다. 현재 그는 <가슴에 남는 음악>프로그램의 DJ로 활동하며 명상과 치유를 위한 콘서트를 기획?연출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시인이 된 것은 ‘노래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율 밴드는 BREAD의 「If」와 조동진의 「제비꽃」을 부르며 무대를 마쳤다. 「제비꽃」은 평소 김재진 시인이 좋아하는 노래다. 한 편의 시와 같은 노랫말을 가진 이 노래는 책 읽어주는 밴드 서율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그들의 뒤를 이어 김재진 시인이 무대에 올랐다.




사랑한다는 말은 듣는 행위가 아닐까요?

“「제비꽃」을 들으며 우리한테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면에서 듣는다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듣는 행위 속에는 오롯이 우리가 그 존재에 대해서 가지는 경외감, 외경심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은 바로 듣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무언가를 경청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나아가서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경청하는 행위가 바로 사랑한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봄비 소리를 경청하듯 여기에 나오시는 분들의 노래를, 그 노래 속에 깃들어 있는 따뜻함과 한 존재의 인생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경청하시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노래 안에는 그것을 부르는 이의 삶이 담겨있다. 그 조각들이 우리의 것과도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한 편의 노래에서 위로와 치유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김재진 시인이 『나의 치유는 너다』북 콘서트를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음악을 전하고자 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작가와 서로의 마음을 듣고 나누었던 또 한 명의 뮤지션이 무대에 올랐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은주다. 그녀는 ‘마닐라의 딸’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필리핀에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아울러 베트남과 중국 등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또 하나의 한류를 이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스타킹><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하며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바이올린 연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마음속에 깊이 울림을 줄 수 잔잔한 곡’을 연주해 달라는 작가의 부탁을 받은 그녀는 영화 <러브 어페어>와 <시네마 천국><타이타닉>의 주제곡을 차례로 연주했다.

공연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는 그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감성을 가진 뮤지션 자닌토였다. 그는 김재진 시인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음악과 영화,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후배이자 친구로서 북 콘서트를 찾았다. 자닌토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김재진 시인은 그를 소개하며 ‘음악의 깊이나 아름다움이 엔니오 모리꼬네 못지않은’ 뮤지션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닌토는 자신이 직접 작사ㆍ작곡한 「Noh Cah(in Travel)」와 「카치안(선운사에서)」 「La Caei Hoat(쓸쓸한 사랑)」을 부르며 화답했다. 『나의 치유는 너다』북 콘서트를 위해 한 달음에 달려와 준 음악가들과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라도 하듯이, 김재진 시인은 직접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주었다. 마이클 호페의 「prairie moon」에 이어 「The salley Gardens」 연주를 끝으로 작가는 ‘음악을 통한 소통과 치유의 무대’를 마무리 지었다.




생의 마지막에 나는 무슨 소리를 내며 타오를까

소라 껍데기를 주워 귀에 대어보면
바다 소리가 난다.
불길 속에 마른 솔방울을 넣으면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탄다.
타오르는 순간 사물은 제 살던 곳의 소리를 낸다.
헌옷 벗어 장작 위에 누울 때
나는 무슨 소리를 내며 타오를까? (p. 93)
김재진 시인이 모신 또 한 명의 귀한 손님, 정목스님이 무대에 올랐다. ‘생의 마지막에 나는 무슨 소리를 내며 타오를까’ 화두를 들고 독자들 앞에 선 것이었다. 정목스님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 고통과 그것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곧 자신에게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의 치유는 너다』를 접하는 순간 책 속에 있는 내용이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년 한해부터 치유라는 말, 무엇인가를 치료하고 다독거리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저는 요즘 ‘어떤 형식으로 다독거릴 수 있는가’를 참 많이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역시 내 손끝이 직접 다가가는 느낌, 그런 아날로그 방식이 훨씬 더 우리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만나 어쿠스틱하고 아날로그 방식에 젖어드는 모습이 결국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치유의 힘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목스님은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비난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그것 자체로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 모두가 나를 위해서 반드시 일어났어야만 하는 일이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축복할 때 치유는 시작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치유는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라는 정목스님의 말은, 자신 곁의 파랑새를 두고 그것을 찾아 먼 길을 떠나 헤매던 우리에게 일러주는 삶의 정답과도 같았다.

강렬한 기억이 잘 잊혀지지 않듯 오래된 상처는 잘 치유되지 않는다. 저마다 치유를 말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치유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심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것은 결코 이기적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차리라는 말이며, 내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인식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 누구로부터도 내버려진 존재가 아니며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나를 버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p. 186)
『나의 치유는 너다』는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세월과 고통, 그 안에서 품게 되는 사랑과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우리 존재에 대해 인생 수업을 듣기 위해 이 별을 찾아 온 사람들이라 정의한다. 그 수업은 아름다운 것들로만 채워지지도, 고통스러운 것들로만 채워지지도 않았다. 인생 수업을 듣는 동안 누구나 생채기를 입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끝에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말하고, 또 누군가는 괴로운 시간이었다 말한다.

그것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린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의 치유는 너다』는 ‘당신은 어떤 인생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속삭인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치유가 되어주어야 함을. 그것이 바로 즐거운 소풍과 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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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저 | 쌤앤파커스
총 40여 편의 글이 실린 이 책의 특징은, 한 꼭지 꼭지마다 짧은 시 구절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김재진 시인의 시이며, 간혹 다른 이의 시를 빌려와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좀 더 아름답고 강렬하게 표현 했다. 시를 사랑하고, 영혼의 성장에 몰두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 김재진의 특성이 잘 반영된 구성이다. 마음의 감옥에 갇혀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오롯이 완성하고 싶은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맛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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