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작가와의 만남
Viewing all 4111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4대강 사업이 파괴한 강에서 맺어진 사랑 - 김선우 『물의 연인들』

$
0
0

삶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받느냐의 문제

 

지난 11월 2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김선우 작가와 만남이 열렸다. 최근 발표한 신작 소설, 『물의 연인들』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작품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는 그녀가 장편소설로는 세 번째로 세상에 내놓는 이야기다.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김선우 작가는 『나는 춤이다』를 시작으로 『캔들 플라워』등 장편 소설을 꾸준히 써왔다.

 

02.jpg

 

『나는 춤이다』는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최초로 서구식 현대무용을 공연한 무용가다. 세계적인 무용가였지만 친일 논란과 해방 이후 월북한 사실 때문에 그녀의 공적이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소설에서 김선우는 친일, 월북과 같은 정치적인 사안보다는 ‘자유’라는 단어로 최승희를 조망하려 했다. 세계는 전쟁 중이었고 조선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다. 어두운 시대, 자유롭기 위해 선택한 것은 무용. 예술로 자유를 추구한 최승희의 삶을 소설로 그린 작품이 바로  『나는 춤이다』이다.

 

첫 작품이 20세기를 다뤘다면 두 번째 작품인 『캔들 플라워』는 21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김선우는 2008년 촛불 정국을 소설의 무대로 세웠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항의하며 광화문 광장에는 연일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을 들고 다양한 사람이 광장으로 모였다. 이 광경을 김선우는 꽃으로 표현했고, 『캔들 플라워』라는 제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녀는 소설에서 광우병 외에도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진다. 10대가 촛불 정국으로 나와야 했던 이유를 한국 교육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야기했다. 광우병이 생명을 탐욕으로 제압하려 한 데에서 비롯된 문명 차원의 문제라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녀의 작품에는 살고자 하는 생명과, 그 생명을 억누르려는 권력 간 투쟁이 드러나 있다.

 

 

김선우 작가가 쓴 문장 곳곳에는 생명이 스며들어 있다. 그녀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성장한 작가보다 더 자연과 맞닿은 글을 쓴다. 세 번째 장편, 『물의 연인들』은 이전에 발표했던 두 편의 장편소설보다 더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과 정부, 그에 맞서 강을 지키려는 사람 간 대결이 서사를 이루는 뼈대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이 소설이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르포 문학과 비슷하리라 짐작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소설은 김선우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로 쓰였으며, 이야기의 중심에는 갈등도 있지만 사랑이 넘친다. 작가는 사랑을 갈등보다 오히려 더 비중 있게 다뤘다. 

 

“이 소설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따라서 쓴 이야기다. 내가 내 옆사람을, 내가 사는 공동체를, 내가 사는 이 별을 어떻게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인 셈이다. 잘 사랑하고, 잘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 내는 과제다. 사랑, 하면 포용이나 이해와 보살핌, 돌봄, 연대감, 조화로운 공생이 떠오른다. 이런 게 사랑이 지향하는 바고, 이게 충족되면 인간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다. 사랑하고자 하는 게 우리 경향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방해하는 세상과 대결할 수밖에 없다. 이해와 소통, 보살핌과 반대되는 파괴와 소유욕, 정복욕, 불통, 이런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소설은 이것에 관한 이야기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아파서 쓰기 시작한 소설

 

소설에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교대로 등장한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유경과 그녀가 사랑했던 요나스. 요나스는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 스웨덴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방불명이 된 요나스, 그를 잃은 유경에게 유리병이 도착한다. 그 유리병에는 유경의 어머니가 감옥에서 출옥한 뒤 꼭 가고 싶어 했던 와이 강의 물이 담겨 있었다. 유경의 어머니는 남편을 살해한 죄로 수용된 상태. 모범수로, 곧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만 감옥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복잡한 심경으로 와이강을 찾은 유경. 그녀 앞에는 와이강을 배경으로 서로 사랑을 키워온 해울과 수린의 이야기가 기다린다.

 

수린에게는 신기한 능력이 있다. 와이강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자 수린은 앓기 시작한다. 현대 의학은 그녀의 병을 치료는커녕 진단하지도 못했다. 수린은 김선우 작가를 어느 정도 반영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도 4대강 사업 때문에 많이 아팠다고 한다. 『물의 연인들』을 쓴 이유가 고통 때문이었다.

 

“이 소설을 처음 썼을 때 정황을 말하자면, 2009년 겨울이었다. 4대강 공사 예산안이 통과됐다. 최소한 야당이 막아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안 되더라. 목숨 걸고 막았으면 막았을 것이다. 정치판이란, 개인의 순수한 바람과 항상 어긋나는 이상한 판이다. 2010년부터 4대강 공사를 시작했다. 어디에서 첫 삽을 떴다, 이런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봄이 되었다. 예쁜 새싹이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할 때, 시인은 아무 생각 없이 꽃 따라다닌다. 봄에 어디를 가나, 예쁜 꽃을 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막 울었다, 바보처럼. 저렇게 예쁜 것들이, 생명이 어떻게든 살아가 보려고 씨를 뿌리는데. 한편에서는 전국 강의 숨통을 끊어냈다. 수치로 정리할 순 없으나, 강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에 끔찍한 사건이다. 모순의 상황 속에서 어디를 가도 울다가 너무 힘이 들어 쓰기 시작했다.”

 

11.jpg

 

김선우 씨는 강이 파괴되는 순간을 보며 화가 났다고 말했다. 화가 나는 한편, 많이 아팠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쓴 글은 처음에는 성격이 모호했다고 한다. 그냥 쓴 글은 지나고 보니, 그 속에서 소설이 될 씨앗을 여러 개 발견했다. 원고를 쓰고, 초고를 수정하는 와중에 그녀는 집회에 나가고 인도에도 다녀왔다. 초고는 훨씬 적나라한 분노와 비통함, 한숨과 욕이 들어가 있었다. 책으로 나온 『물의 연인들』에는 초고에 있었던 내용 중 200~300매 정도 분량만 살아남았다. 저자 후기에도 밝혔듯 “처음에는 외부의 목소리를 따라갔으나, 내부의 목소리를 발견한”과정인 셈이다.

 

작품에 관한 김선우 작가의 이야기가 끝난 뒤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에 2시간 글쓰면 행복하다

질문

다른 소재를 놔두고 왜 4대강 썼나?

답변

너무 많이 울어서. 울다 지쳤다. 아팠다. 강 공사를 하는데 왜 작가가 아픈가? 내가 가진 기질의 문제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뒷산에서 놀이터 삼아 발가벗고 놀았다. 내게는 이것이 유토피아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이전에 놀이터가 산과 바닷가, 냇가였다. 나무가 숨을 쉰다는 느낌. 비가 온 다음 날 땅의 표면이 부풀면서 숨을 쉬고 있구나, 이런 느낌. 바닷물 속에서 파도가 우리 심장처럼 두근두근 뛰는 어떤 큰 생명체 같구나 하는 느낌. 강물에 흘러가는 물길이 내 몸속을 흐르는 어떤 액체의 느낌과 퍽 닮았구나. 나는 이런 느낌을 자연 속에서 놀며 체득한 사람이다. 내 눈앞에서 공사 현장이 보이지 않더라도 아프기 시작했다. 공사를 시작하는 화면을 보면 아팠다.

질문

글을 쓰면 고통이 치유되나?

답변

한국 사회 속에 있으면 제대로 쉬기 어렵다. 신문 한 면만 봐도 온갖 사건과 사고로 가득하다.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욕망의 층위가 존재한다. 욕망을 만드는 거대한 폭력, 이 속에 있으면 정신 못 차린다. 전국 어디를 가나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옛날이라고 아픈 사람이 없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유별나다. 동시다발적으로 고통 현장이 많다. 마음이 편치 않다. 맛있는 밥을 먹고 따뜻하게 잠을 자도, 누군가는 철탑 위에 있다. 지금도 강정마을은 전쟁 상황이다. 재벌의 공사, 엄청난 공사다. 재벌의 비호 아래 국가가 정책으로 실행했다. 궁극적으로 재벌이 돈 벌기 쉬운 방법이다. 경찰이 재벌 공사를 도와주기 위해 용역처럼 사람을 괴롭힌다. 강정도 그렇지만 작년 한진 중공업 사태를 보자. 해고자 전원 복직, 약속하긴 했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의 탐욕이 끝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금고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나누려고, 함께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다.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좀 편안해지고 싶다. 편안하게 예쁜 것, 좋은 것만 생각하고 살고 싶다.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적응했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무조건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책상 앞에 있을 때다. 하루 두어 시간이라도 글쓰는 자세로 책상 앞에 있지 않으면 불행해진 것 같다. 싸움판 와중에서도 하루 두어 시간 책상 앞에 앉을 시간이 확보된다면 매우 행복하더라.

질문

비극적인 사랑 말고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쓸 계획은 없나?

답변

혹시 『물의 연인들』을 읽었나? 다 읽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질 테다. 치열하고 열정적이지만, 그 속에는 평화로운 사랑이 있다. 여성 독자가 많이 울었고, 남성 독자 중 일부가 울었다는 얘길 듣는다. 책을 보다 우는 축복의 시간, 꼭 누리시길 바란다.

 

김선우 작가가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낭독이었다. 그녀가 낭독한 부분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으로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강은, 강물은 본래의 몸대로 살아야 하니까. 저 콘크리트 댐들, 벽들,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강은 자기 모습으로 돌아올 거예요. 지금 나는 힘이 없지만, 다시 태어나면 좀 더 힘센 사람으로 오고 싶어요. 지켜 볼 수 있게. (중략) 강물의 본래 모습은 흐르는 것이지. 막혀 있는 것들은 썩는다. (중략)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와이강이 오빠랑 내게 늘 들려주던 얘기인데요.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 거예요. (257쪽)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img_book_bot.jpg

물의 연인들김선우 저 | 민음사

여기, 강을 파괴하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한 물방울로부터 한 물방울에게로” 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물의 연인들』은 현대문학상, 천상병시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가 무려 3년 동안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강한 애착을 가지고 쓴 작품이다. 와이강 유역에서 태어나 자란 유경과 그녀의 어머니 한지숙, 당골네의 손녀딸 수린, 와이강에 버려진 후로 수린과 함께 오누이로 자라 온 해울, 와이강 근처에서 발견된 후 스웨덴에 입양되어 자라난 유경의 연인. 『물의 연인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와이강을 둘러싼 인연의 자장 안에 있다.




이번 겨울, 재즈의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 황덕호 음악평론가

$
0
0

“제가 오기 전에 여러분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가장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있는데요. 재즈에 호감은 있는데, 막상 들으면 어렵고 어떻게 무엇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많이 오셔서 기쁩니다.”

12월 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더 갤러리 1층에서 황덕호 저자를 만나기 위해 다양한 사람이모였다. 갑작스레 눈이 오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추운 저녁이었다. 그는 20년간 재즈에 빠져 지냈다. 저자는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 12장의 앨범을 고르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재즈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재즈 관련 글을 썼다. 라디오 재즈 방송의 DJ를 맡아 일하면서 황덕호는, ‘어떻게 하면 독특한 맛을 가진 멋진 재즈를 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으로 새롭게 더 많은 사람들과 재즈 이야기로 만나고 있다.


재즈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음악을 듣던 방식으로 들으려고 하기 때문


저자는 ‘저도 싸이를 좋아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싸이를 좋아하면서 재즈도 좋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재즈와 조금 더 가까워지려면 몇 가지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듣는 음악 대부분은 보컬 라인을 따르지만, 재즈는 보컬이 거의 없다. 재즈는 음 자체로 감각적으로 느껴야 하는 음악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연스럽게 재즈는 ‘어렵다’라는 선입견이 생긴다.

“사실 지금의 음악은 모두 역사적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재즈’에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재즈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재즈가 아닌 다른 음악을 듣던 방식으로 재즈를 들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이 냉면이고, 재즈는 초콜릿 케이크이라 합시다. 냉면에 대해 기대하는 어떤 맛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사람들은 케이크를 맛보면서 냉면의 맛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재즈가 가진 멋진 특성은 바로 '악기의 재구성'
같은 곡을 연주해도 모두 다르게 느껴지는 연주자만의 개성


재즈를 재즈만의 틀로 바라보기로 하였다고 치자. 하지만 여전히 1분만 지나면 예전처럼 지루해지고 딴생각에 훌쩍 빠진다. 그렇다면, 재즈는 어떤 틀로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악기 하나하나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재즈는 하나의 주제를 표현한다. 그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각각의 악기는 같은 주제를 다르게 연주한다. 여기에 귀 기울이는 게 포인트. 황덕호 저자는 가방에서 소중하게 골라온 재즈음반을 꺼내어 들려줬다. 그는 ‘악기와 편성’을 올바르게 이해했을 때 재즈에 제대로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의 제일 첫 번째 음반으로 소개된 아티스트 쳇 베이커(Chet baker)의 「Time after time」이 울러 펴지자, 청중은 감상에 젖는 시간을 가졌다

“쳇 베이커(chet baker)의 노래, 들어보시니 어떠세요? 그의 목소리도 매력적이지만, 중간 도입부에 나오는 트럼본 소리도 매력이에요. 연주자 개성이 듬뿍 담긴 음악, 바로 재즈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재즈를 감상하는 멋진 포인트
편안한 마음가짐과 시간여행을 하듯 살펴보는 라이너 노트



그는 책에 라이너 노트를 넣었다. 라이너 노트란 앨범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부터 그 음반을 듣는 포인트를 제시한 것이다. 지금 유일하게 남겨진 활자 정보로 앨범이 의도하는 바를 가장 핵심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음악과 아티스트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재즈를 접하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재즈의 독특한 맛을 이해하면 인간에 대한 다른 해석을 늘려갈 수 있어요.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재능이 없어서 덜 방황하지 않고 한 길만 올 수 있지 않았나”라고 겸손히 웃던 저자의 말 덕분인지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오는 12월 21일 신사동 재즈 까페 옐로우 자켓에서 9시 반부터 그의 출판을 기념하는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책에 소개한 음반 12장과 저자가 세심하게 따로 가려 뽑은 재즈 음반 7장을 모아 만든 시리즈도 1월 중에 음반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요즘, 필자는 쳇 베이커의 노래 「Almost blue」를 들으며 가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앞에 나오는 피아노 소리에도 똑같이 호기심을 느낀다. 배경음악처럼 다가오는 악기 소리는 서로의 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건넨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즈는 뮤지션을 위한 음악이다. 동시에, 일반 대중을 위한 음악이기도 하다. 재즈는 독특함 덕분에 100년이란 시간을 지나 이 곳 한국에서도 사랑 받았다. 많은 이들이 도전하게 하는 도도하고 순수한 아이, 그게 바로 필자가 보기 시작한 '재즈'라는 음악이다.

이번 겨울, 재즈와 조금 친해져 보는 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매력적인 일 중 하나다.



img_book_bot.jpg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황덕호 저 | 포노PHONO
저자는 음악에 대해 전혀 문외한 일수도 있는 우리에게 곤궁하고 힘든 시대, 혹은 시기를 살아가는 데 있어 소박하지만 진득한 취미를 재즈로 제안하고 있다. 쳇 베이커나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같은 연주자 부터 빌리 홀리데이 같은 보컬리스트까지 재즈에서 쓰여지는 다양한 악기의 음색과 장르의 특징, 재즈사에 걸쳐 두드러진 모습들을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는 명반들을 선정하여 수록했다. 음반 최초 발매 때 실린 해설문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엮어 읽는 맛을 더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별아 “제일 좋은 부모는 ‘만만한 부모’ 입니다”

$
0
0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난다. 아들만 덩그러니 내려놓는다. 자전거를 내려 자전거에 타라고 말한다. 아들을 독립시키기로 결정한 부모다. 네 인생, 네가 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네 인생에 끼어들게 하지 마. 이런 말, 건넨다. “We all love you. Now go out there and make a difference, your mother and I tried. And don't let anybody tell any different.”도피 중인 반전운동가 부모는 히피처럼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아들은 그런 부모를 어쩔 수 없이 따라야했다. 그러나 어느덧 10대 후반이 된 아들, 부모는 아들을 세상 속으로 방생한다.

나는 그 아들의 미래가 궁금했다. 그러나 불안하진 않았다. 그는 누구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니까. 지난 11월 28일, 김별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허공에의 질주>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19년 전, 10월의 마지막 날 떠났던 리버 피닉스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홀수여도 괜찮아!’ 최근 개봉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아이>도 겹쳐진다. <늑대아이>는 또 다른 홀수적 삶을 이야기한다. 늑대와 사람 사이에서 늑대로 살기를 선택한 아이, 엄마를 떠난다. ‘헬리콥터 부모’가 판을 치는 지금, <늑대아이>는 동물의 감수성이 본디 홀수임을 거듭 확인한다. 제 몫의 사냥을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것.

“‘홀로 있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자유로운 일인지를 알지 못한다. 혼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기쁨과 그것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삶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p.16~17)

부모를 극복하는 것, 홀수의 삶을 위해 필요하다


김별아 작가는 최근 『4천원 인생』을 읽었다. 기자들이 최저임금을 받는 공장, 식당 등에 ‘위장취업’을 하고 쓴 수기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전기밥통을 만드는 공장에서 납땜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장에 동갑내기가 있었다. 생일잔치 한다고 집에 놀러갔는데, 역시 동갑인 동네 점쟁이도 왔다. 8세에 무당이 됐고, 예쁘고 눈이 말간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나에게, ‘넌 여기 있을 애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 거다. 들키는 줄 알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부모가 이혼했고, 집안이 파탄 났다는 엉터리 이야기를 지었다(웃음). 뭘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손으로 하는 일을 하라고 하더라. 미용을 해보라고 하더라. 올해 작가 20주년을 맞았다. 머리를 예쁘게 해줘서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닌지 가끔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그런 기쁨을 줄 수 있는지 늘 고민이다.”

『삶은 홀수다』는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으고, 덧붙였다. 그는 제목을 달면서 자신을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는 외톨이였고, 자폐증적인 면도 있었다. 한 마디로, ‘어두운 아이’였다. 유일한 친구가 책이었고, 열일곱에 문학을 만나면서 새로운 계기가 만들어졌다. 문학을 알게 됐다는 건, 세상에 홀로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성격적으로 아버지를 많이 닮았었는데, 부딪히기도 엄청 부딪혔다.

“딸들은 아버지의 지지가 절대적인 것 같다. 딸이 자기 이름과 목소릴 갖고 사는 데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중요하다. 딸을 옹호하고 지지하는지, 상처를 주는 존재인지에 따라 차이가 드러난다. 부모와의 문제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홀수라는 건, 자기 자신으로 서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부모한테 고마운 부분이 있다. 어머니는 내게 감정의 쓰레기통과도 같았다. 학교에서는 나는 학교에선 모범생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어머니에겐 폭군으로 군림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허들과 같은 존재다. 너무 높으면 걸려 넘어지기 쉽다. 부모에게 효녀효자들 중에 실은 괴롭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다.”

그는 반항하는 아이들이 건강하다고 강조한다. 통과의례를 잘 거치기 때문이다. 마흔 넘어 회사에서 쫓겨날 지경인데도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황하는 사람 부지기수다. 그가 만난 칠십 넘은 독자 중에도 방황하는 분이 있었다고 전한다. 공통점? 착한 아이였다는 것! 그런 많은 경우, 부모는 강한 분들이거나 자식에게 죄책감을 주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를 했다. 아이들의 많은 문제는 부모에서 비롯된다.

“제일 좋은 부모는 ‘만만한 부모’다. 내 부모도 나를 꺾지 않았다. 아버지와 여러 번 싸움을 하고 박차고 나왔지만, 내 자리를 부모가 치우지 않았다. 나를 지지했던 거다. 건강한 홀수의 삶을 위해 부모를 극복해야 한다. 각자의 이야기나 상처가 다를 테니, 그건 평생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간은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 원하는 건 인정받는 것 하나다. 최초의 양육자가 그래서 중요하다. 한 사람이 믿고 지지해주면, 그 사람은 훼손되지 않는다. 그게 대부분 부모인데,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끊임없이 흔들린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옆에 사람이 있어도 외롭다. 친구 속에서, 군중 속에서, 연애하면서도 그렇다.”


글을 쓰는 두 가지 욕망

김별아 작가는 글을 쓰는 두 가지 욕망을 언급한다. 하나는 자백의 욕구. 많은 사람들, 말한다. 죽기 전 내 얘기를 책 한 권으로 써보고 싶다고. 내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 등을 고백하고 싶은 자백의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 다른 하나는 발언의 욕구이자 소통의 욕구이다. 그에겐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학생운동을 하면서 생겼다. 물론, 그땐 몰랐다. 역사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좌충우돌한 게 이런 식으로 흔적이 남았음을 느끼고 있다.




“독자들이 왜 역사소설, 즉 과거를 쓰냐고 묻는다. 1991년, 대학 4학년 때 총학생회 간부였다. 열사 추모 집회가 있었는데, 나는 못가고 총학생회실을 지키고 있었다. 저녁에 전화가 왔다. 학교병원에 시신이 들어가는데 받으라고 하더라.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였다. 그것으로 분신정국이 시작됐다. 강경대는 학원자주화 투쟁을 했는데, 백골단(사법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서 사망했다. 시신을 탈취 당할까봐 영안실을 지켰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연쇄적으로 11명이 죽었다. 분신정국이었다. 난리가 났다. 자고 일어나면 영정사진이 하나씩 들어오는데, 23~24살의 나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우리들끼리도 서로 죽을까봐 감시를 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왜 이런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랬다. 당시에는 서로의 영혼을 돌볼 틈이 없었다. 적은 너무 강했고, 상처를 어루만질 수가 없어서, 어루만지는 법을 몰라서, 서로 사고 칠까봐 감시만 했다. 그도 그랬다. 전날 봤던 사람이 투신을 하고 시신으로 돌아오는 나날 앞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뒤 ‘문학이냐, 운동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상태였던 그에게 결정적 계기가 다가왔다.

어느 날 새벽, 자신과 동갑이던 강경대 열사의 누나가 뭔가를 줍고 있는 모습을 봤다. 강경대 생전과 사후 사진이 함께 들어간 유인물을 바닥에서 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도 다시 흩어지지 않을까? 그러면 역사에 어떻게 남고,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느끼는 슬픔 등의 복합적인 감정은 어떻게 될까. 그걸 쓸 수 있는 건 문학이지 않을까.’ 그는 다시 문학으로 갔다. “나는 역사소설을 쓰면서 과거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도 지나면 역사이겠고, 내가 쓸 수 있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에게 “저항하고 반항하라”


과연 지금 젊음은 어느 자리에 있는 것일까. 그도 요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패기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꼰대 같은 얘긴데, 우리 때는 23~24살에 혁명을 할 거라고 여겼다. 지금은 그런 생각은 없고, 스펙을 쌓아 잘 살겠다는 모습을 주로 본다. 무기력증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 만든 서열주의에 길들여진 까닭이다. 심리학책이 한때 많이 팔렸다. 지금 30대 초반은 조기교육 1세대로, 사교육이 일상화됐었는데, 마음이 가장 약한 세대라고나 할까. 영혼이 허기지니까, 심리학책에 기댔던 거다. 반항해라. 부모와 어른에게 저항해라. 그들이 틀리고 내가 옳아서가 아니다. 허들을 넘을 시도조차 안 하면 세상과, 내 삶과 싸우기 힘들다.”

“젊은 친구들이 조로한 얼굴로 “꿈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라고 되물어올 때 여전히 철없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꿈은 망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p.105)
말이 좋아 기성세대지, 꼰대세대가 ‘멘토링’이랍시고 위로하는 것들, 청춘은 개무시 해야 한다. 시큼한 냄새나 풍기는 세대들의 수작에 넘어가선 안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백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말 따위 집어치우라고 외쳐야 한다. 아프니카 청춘이고 백번을 흔들리니 머리가 아파 죽겠다고, 그동안 잘 먹고 잘 싸고 다닌 꼰대들에게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세상이 이리 힘들게 된 것엔 청춘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의아한 것이다. 왜 청춘은 분노하지 않는가. 지금 청춘은 왜 이리 싸가지가 있는가. 돌직구를 던져야 한다.

김별아 작가는 작가 외에 다른 꿈을 안 꿨는데도 등단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른바 ‘코스’를 밟지 않았다. 앞선 세대들이 만든 길을 꼭 따라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먼저 냈다. 졸업 직전, 『신촌블루스』라는 단편 소설집을 내고, 글을 썼다. 권위나 절차를 거부하고 싶었다. 돌직구를 던졌다. 그러나 한 선배 문인이 별아 작가가 ‘독고다이’ 짓 하는 것이 안 돼 보였는지, 작품을 빼앗아 문학상에 제출했고, 그 작품은 수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리얼리즘은 불신에서 온다. 나는 아무 것, 아무 사람도 안 믿는다. 그래서 실망이라는 걸 하지 않는다. 기대를 안 해서. 문학은 시대와 불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끊임없이 불화해왔다. 10년을 무명작가로 살았는데, 굉장히 힘들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느 장르나 냉정하게 1%와 99%는 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선 발버둥을 쳐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데,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도 초판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연봉 이래봐야 200~300만 원이었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문학을 포기 않으려고 다른 걸 하면서. 직장이라고 딱 하루 아니, 반나절을 다녔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나갔는데, 점심시간 전에 알았다. 나는 남의 지시를 받을 게 아니라, 내 질서와 속도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왔다(웃음).”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여성지 프리랜서, 고스트라이터(대필작가)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렇게 10년을 버텼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작가들 중 뛰어난 작가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생활고 등으로 못 견딘 것이다. 루쉰이 그랬다. “반향이 없는 작품을 쓰는 게 얼마나 공허한가.”확신 없이 글 쓰는 것, 굉장히 힘이 든다. 그렇게 다 떨어져나갔다.

“나는 재주가 없어서 이게 아니면 할 것이 없어서 버텼다. ‘1만 시간의 법칙’이니 뭐니 하는데, 문학도 10년을 버티면 뭐가 되긴 한다. 10년을 계속 쓰니, 이 작가가 뭐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 하고, 10년이 지나면 더 이상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배수진을 치는 거지.”

이때 중요한 것은 욕망의 다이어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남들처럼 살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가 택한 방법이었다.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돈이 안 된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그는 늘 같은 답을 해준다. 포기하라! 다만 그걸 못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면 하라고 말해준다. 누군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말린다.

“안톤 체홉의 글에도 나온다. 아이가 나오면 글을 쓰게 하지 마라, 작가가 되면 안 된다(웃음). 남들 가지는 가방, 집, 차 등을 다 가지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돈이 되고 성공하는 경우는 있지만, 성공하기 위해 달려간다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게 달려가서 성공한다 해도 세상은 다른 식의 보상을 요구한다. 성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기준을 갖고 세상을 만날 것


김별아 작가는 문단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만의 리그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해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그렇게 못해서 그쪽 끈 놓았다. 남는 건 독자들뿐이었다. 그게 그의 자산이다. 변하는 유행, 작가도 그 물결을 탈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예전에 상을 휩쓴 작가도 퇴물이 되거나, 청탁이 안 들어오니 글도 안 쓰는 경우도 봤다. 그가 보기에, 작가는 과거형이 없다. 현역작가만 있을 뿐이다. 작가란 이름을 갖고 있어도, 더 이상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별아 작가는 그래서 이런 바람을 갖고 있다.

“독자들이 최소한 자기 세대의 작가를 같이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같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백만 부를 파는 한 명의 작가보다 만 부를 파는 백만 명의 작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다. 모두의 손해다. 한 작가가 하나의 세계거든. 그걸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은 독자밖에 없다. 외로웠던 시간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꿈꾸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잘 견뎠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성의 30대가 무척 중요하다는 말을 건넨다. 바깥에서 제시된 성공이 아닌 내가 지금 가진 것에서 내 꿈에 얼마나 근접하느냐의 문제. 꿈을 향한 촉수나 방향을 놓치지 않으면 갈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낸다. 하는 일 사이에 다른 길이 있음을 찾으라는 것. 홀수여도 괜찮아!

“홀수는 싱글로 잘 살자는 것이 아니다. 자기 기준으로 서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성인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가고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해진다. 유행의 심리는 남들이 가진 것을 갖고 싶은 것과 남들이 갖지 않은 것을 갖고 싶은 두 마음이 공존한다. 두 개의 욕망이 동시에 자극하는데, 그건 남의 욕망이다. 그때 힘이 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실용적인 게 아니고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힘을 만들어준다.”

김별아 작가, 요즘 하고 있는 현장인문학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탈성매매여성 자활센터에서 인문학 강의를 듣는데,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분포의 사람들이 있다. 탈성매매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니체와 스피노자 강의? 누군가는 그게 가능하냐고 쉽게 단정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단다. 까다로울 수도 있는 그것을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해를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브레히트 공연을 올리기도 한다.

“노숙인, 빈민 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빵? 아니다.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할 순 있어도 빵으로 그들을 일으킬 수는 없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자신이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인문학이다. 누군가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천 번을 흔들리면 토하지. 마음의 힘이, 홀수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자유롭게, 여러 사람과도 잘 살 수 있다. 혼자 놀면 재밌다.”

체로키족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고 했다. 다른 세상을 위해 청년들이 존재 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별아 작가, 신문을 통해 그 방법을 제시했다. “젊은 벗들이여, 그대들의 미래에 투표하라! 그것이 바로 과거의 망령과 현재의 굴레가 침범하지 못할 그대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리라.”그는 고립을 통해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필사적으로 세상 속의 나를 증명하자고 권한다.


별아 작가에게 묻고, 별아 작가 답하다


역사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건, 많이 다른가? 글쓰기를 잘하려면?

많이 다르다. 장르도 다르고. 소설이 좋은 게, (작가가) 숨을 수 있다. 내 얘길 쓰면서도, 시치미를 뗄 수가 있다. 역사소설은 다른 소설과도 다른데, 나는 사실을 중시해서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 에세이는 가장 솔직한 글일 수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생활인과 가장 가까운 장르다. 글쓰기 비법은 없다. 있으면 알려줘(웃음). 나도 커서가 깜빡거릴 때 막막하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생각이다.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쓴다. 책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게 생각을 정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기다.

순우리말 어휘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미실』이 내겐 첫 번째 역사소설이고 이른바 출세작인데, 그때 난 자유로웠다. 청탁도 없으니 혼자 기획하고 쓰고. 안 해본 일에 도전한 거다. 내가 풀숲을 헤쳐서 내 길을 만든 거지. 1500년 전의 이야기인데, 고대사 자료도 별로 없었다. 순우리말 표현을 많이 쓰려는 게, 독자들이 그 순간에 간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의태어, 의성어를 많이 쓰다 보니 감각적인 표현이 되기도 하는데, 우리말을 더 잘 쓰고 싶다. 싫어하는 독자도 있다. 모르는 단어 쓴다고. 나는 사전을 여러 개 띄워놓고 쓴다. 한 문장을 50번만 읽고, 50번 고친다. 요즘 공모전을 종종 심사하는데, 맞춤법이 비어 있다. 문장에 대한 자의식도 없이 1,000매를 어떻게 쓸까 싶다. 나는 한 문장을 내 리듬을 만들 때까지 쓴다. 사전을 많이 활용하면 좋다.




역사 속 여성을 계속 표현할 생각 있나? 그런 소재를 선택하는 이유는?

역사소설은 대부분 남성 작가들이 해서, 나름 블루오션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고, 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조선시대 여성 3부작을 생각하고 있다. 처음이 『채홍』의 봉빈이었고, 지금 마무리 중인 것은 순애보를 다룬다. 사랑 때문에 죽은 여자이야기다. 조선시대엔 사랑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유일하게 인정받은 남녀관계는 집안이 정혼해서 결혼한 것밖에 없었다. 나머진 다 간통이었다. 국법에 의해 처벌당했다. 그 시절, 기준으로 지금 우린 다 간통이지. 세종 때가 배경인데, 그때 실은 참형이 많았다. 그 와중에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여자이야기다. 다만, 연애세포가 다 죽어서 죽을 뻔 했다. 세 번째론 『미실』보다 더 야한소설을 생각 중이다. 여성이라고 하나의 모습이 아니고, 한 여성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다. 옛날에도 분명 나쁜 여자들이 있었을 텐데, 왜 착한 여자만 나오는지 궁금했다.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싶다.

홀수, 외롭지 않을까?

외로운 것이 나쁜 게 아니다. 심리학에선, 우울이 인류가 진화하면서 꼭 필요한 감정이었다고 한다. 스페인 속담에 ‘365일 태양이 비치는 날만 된다면 그것은 사막이 될 것이다’라는 게 있다. 정호승 시인의 詩(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시구가 있다. 그늘, 비 오는 날도 인생에 필요하다.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건, 위나 장이 나쁜 것과 같다. 나는 우울이 오면 운동화를 신고 나가서 햇빛을 맞는다. 여러 방법을 쓴다. 우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 나를 잘 알면 조절할 수 있다.

“삶은 어차피 홀수이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p.17)


img_book_bot.jpg

삶은 홀수다
김별아 저 | 한겨레출판
문학을 ‘인간학’에 비유했던 고리끼처럼, 소설가 김별아는 ‘소설의 풍미는 삶의 진창에 코를 박고 짓무른 상처에 뺨을 비빌 때 발현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는 체질상 더욱 예리하고 예민하게 삶을, 사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소설가 김별아는 언제 어디서고 사람과 삶을 본다. 선배와 밥을 먹으면서, 먹는 일은 본능을 넘어선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대충 사먹는 일에 익숙한 우리의 삶을 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바보라고 놀림 받던 내 아들이 전교 1등이 됐다

$
0
0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언제나 주변 엄마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어느 학원에서 혹은 어떤 과외 선생님을 두고 공부했을까, 엄마들은 궁금해 한다. 만약 그 아이가 단 한 번도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면, 아마도 엄마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이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간 주인공이 있다. 『엄마의 공부가 사교육을 이긴다』의 저자 김민숙과 그의 아들 심재웅 군이다. 그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교육과학부에서 주최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자녀 교육하기 수기 공모전’ 입상을 통해 알려지며, 각종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수상작의 내용과 함께, 저자가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교육 칼럼의 내용을 더해 완성되었다.



괜찮아, 넌 훌륭하게 될 거야

김민숙 씨에게 사교육은 선택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 재웅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 IMF가 찾아왔고 갑작스럽게 사업 실패를 맞게 되었다. 집안 곳곳에는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었고, 부잣집 사모님이던 저자는 생계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워 아이들의 교육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 때는 마음속으로 한 번 웃어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오늘 하루를 또 버틸까’ 하는 생각뿐이었죠. 하루는 딸아이 친구의 엄마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돈 버느라 바쁜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도 좀 돌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당시 저희 집안 사정을 몰랐기에 한 이야기였죠. 저는 이렇게 물었어요. 아이를 굶기지 않는 것과 교육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냐고 말이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을 살아야 했던 시절,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재웅이는 한글도 떼지 못한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웅이는 바보. 재웅이는 빵점짜리’라고 쓰인 쪽지가 현관문 틈 사이로 들어와 있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선생님 옆자리에 책상을 두고 혼자 공부해야 했고, 방과 후에는 고양이 굴을 찾아다니며 새끼 고양이들과 어울려 놀고는 했다. 그렇게 아이는 방치되어 있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재웅이 엄마와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이웃들은 2년여 동안이나 재웅이를 엄마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친구 엄마들이 나보고 엄마가 없는 애라고 놀지 말라고 그랬대.’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미어져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힘을 내자’ 희망의 증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품었던 그 희망이 그녀와 가족들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엄마의 희망은 곧 아이들에게로 옮아갔다. 아이들은 항상 부모를 본다고 생각했기에,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밝은 표정으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재웅이가 받아쓰기 10점을 받아오더라도 결코 꾸짖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가족들은 아이를 ‘심박사’라고 불렀다. ‘괜찮아, 지금은 놀아도 돼. 5학년, 6학년이 되면 1등도 할 수 있어. 넌 훌륭하게 될 거야’ 재웅이에게 엄마는 늘 칭찬을 아끼지 않고 응원을 보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아이가 5, 6학년이 될 때쯤엔 형편도 나아질 거라고, 그래서 마음껏 공부 뒷바라지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재웅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낙천적인 성격의 아이로 자라났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지금은 놀아도 된다’는 말을 듣던 아이는 정말로 노는 아이가 되었다. 학교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고 어울리는 친구들도 하나같이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었다. 초조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번 일만 잘 되면 돈을 벌 수 있어, 그 다음에 공부를 시켜야지’ 하는 마음으로 1년을 흘려보냈다.

5학년이 되어서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1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던 그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여전히 사교육은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저자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던 고객들 중에는 과외 선생님들도 여럿 있었는데, 열정을 갖고 가르치는 분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마지못해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재웅이는 당장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작한다고 해도 학습 내용을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아이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이 직접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내용이라면 어떻게 아이가 공부할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 아이들이 다 천재도 아닌데 어른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아이들이 푸는 건 아니겠죠. 그러니까 제가 공부해서 아이를 가르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과정이야 저도 배웠던 거니까 다시 복습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 길로 서점에 간 저자는 초등학교 5학년 문제집과 전과를 잔뜩 사왔다. 출퇴근길에도 중간에 이동할 때에도 언제나 가방 속에서 문제집과 전과를 꺼내 공부했다. 모든 과목을 10번 이상 반복 학습했다. 국어와 사회 과목의 경우 거듭 읽고 외우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수학은 달랐다. 도대체 무엇을 묻는 문제인지, 어떤 답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문제가 익숙해 질 때까지 반복해서 푸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에게 가르쳐줄 수 없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 ‘될 때까지’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TV 옆에 역사 연대표와 지도를 붙이세요

그러는 사이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고, 5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재웅이와의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대로 공부해 본 경험이 없었던 아이에게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엄마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함께 공부를 시작한 첫 날에는 교과서를 펼치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갈수록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국어 교과서를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에 집중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책을 덮고 교과서의 내용을 동화 들려주듯 이야기해 주었다. 수학 과목을 계산식으로 가르치려 하자 아이가 거부감을 보여, 문구점으로 슈퍼로 심부름을 보내서 자연스럽게 계산을 배우도록 했다. 도형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우유팩을 잘라 직접 모형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덕분에 도형은 지금까지도 재웅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다. 과학 역시 생활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례들을 통해 학습해 나갔다. 유리컵에 물을 담아 이슬을 관찰하게 하고 소금과 설탕, 물감 등을 이용해 용액에 대해 가르쳤다.

암기할 내용이 너무 많은 사회 과목의 경우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방법은 TV 옆에 역사 연대표와 우리나라 지도, 세계지도를 붙여 놓는 것이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역사드라마를 볼 때면, 재웅이는 TV 옆의 연대표에 정리되어 있는 인물들의 이름과 사건들을 확인하곤 했다. 드라마에서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자신이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고 점차 역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세계대회 중계방송을 보면서 세계지도에서 각 나라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거의 모든 과목의 공부가 생활 속에서 이루어졌다. 스스로 찾아보고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학습한 모든 내용을 아이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바보에서 전교1등으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5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 목표했던 반 5등을 차지한 것이다. 시험에 앞서 김민숙 씨는 아이로 하여금 도화지에 목표 등수를 적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매일 두 번씩 큰 소리로 목표를 읽으며 아이가 꿈을 꾸도록 도왔다. 지금도 재웅이는 자신의 목표를 써서 붙이는 것으로 시험 공부를 시작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는 것이 안겨주는 성취감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의 지원 사격도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칭찬 릴레이’였다. 아이의 노력과 그 결과에 대해 칭찬의 한마디를 해달라고 지인들에게 부탁했다. 칭찬과 격려의 힘은 아이에게 추진력이 되었다. 다음 시험에서는 반 3등을 이뤄내고 중학교 입학 때까지 우수한 성적을 이어갔다. 중학생이 된 후 전교 석차 상위권을 기록했던 아이는 마침내 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이 되었다.

지금 재웅이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한글을 읽고 쓸 줄도 몰라서 바보라고 놀림 받던 아이는 엄마와 함께하는 공부를 통해 성취감이 무엇인지 아는 우등생으로 성장했다. 『엄마의 공부가 사교육을 이긴다』는 그 시간들의 기록이다. 그 안에 담긴 김민숙 씨와 재웅이의 성공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와의 만남을 위해 강연장을 찾은 독자들 대부분은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었다. 김민숙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심재웅 군의 초등학교ㆍ중학교 시절의 경험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공부가 사교육을 이긴다』안에는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경험들은 물론, 엄마와의 공부를 밑바탕으로 자기주도 학습으로 발전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엄마가 해주어야 할 역할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춘기의 자녀를 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반 배치고사를 알차게 대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학부모 선배로서 저자가 들려주는 깨알 같은 팁들로 가득하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부에 있어서만은 친구가 아닌 트레이너의 역할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그 길을 함께 걷기를 꿈꾸는 부모들에게 『엄마의 공부가 사교육을 이긴다』를 추천한다. 저자와 같은 방향의 길을 걷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 숨어있는 희망과 열정,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img_book_bot.jpg

엄마의 공부가 사교육을 이긴다김민숙 저 | 예담friend
벼랑 끝에서 절망하고 좌절했던 순간을 뒤로하고 아이의 미래를 일으켜 세운 보통 엄마의 특별한 자녀교육 이야기, 『엄마의 공부가 사교육을 이긴다』가 출간되었다.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도 아이를 우등생으로 키운 김민숙 씨의 감동 실화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자녀 교육하기’ 교과부 수기 공모전 당선작을 기초로 다시 쓴 것이다. 수기 당선작에서 다하지 못했던 눈물과 땀이 서린 모든 이야기를 진솔하고 꾸밈없이 엮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달동네의 변신, 놀랍고 아름답다 -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0
0

지난 11월, 일본에서 열린 ‘2012년 아시아 도시경관상’ 시상식에서 감천문화마을은 감투를 썼다.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민관 공동으로 지역발전을 이룬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 감투는 허투루 받은 것이 아니다. 독특한 풍광과 문화 덕분. 감천문화마을은 달동네다. 산지 비탈면에 자리 잡고 있다. 토건업자들은 재개발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그림도 안 나오고, 계산이 서질 않아서다. 결국 주민 주도로 재생사업이 전개됐다.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는 이색적인 계단식 마을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고 미로 같은 골목길이 살아남았다. 고유의 풍광을 살린 채 예술이 틈입, 활력을 불어넣었다. 해외 곳곳에서 풍광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연간 7만 여명이 찾는 부산의 자랑이 되어 버린, 마을공동체의 좋은 예 중 하나다. 달동네의 변신, 놀랍고 아름답다.

평소 건축가 승효상은 부산바람을 쇠며 기력을 회복한다. 무엇보다 그는 ‘골목길 문화’ 예찬론자다. ‘아시아의 산토리니’라는 감천문화마을의 별칭처럼, 그는 산토리니 마을의 아름다움, 한국 달동네에도 있다고 설파한다. 주민 스스로 나누면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에 대한 무한애정. 그는 금호동의 달동네를 좋아했다고 토로한다. 승효상은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출간기념 강연회에서 건축과 여행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거주풍경(domestic landscape)

승효상 선생은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의 말부터 꺼낸다. “거주한다는 것은 개인과 세상의 평화로운 조화다.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 장소에 새겨진다.”하이데거의 말은 이성이 장악했던 시대, 놀라운 발언이었다. 인간이 이성 아닌 땅 위에 거주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거의 처음이자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전까지 인간은 땅 없이도 존재한다고 봤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땅에 비롯된 담론을 내세운 것이다. 승효상은 건축이 우리 삶을 바꾼다고 믿는 사람이다. 건축설계는 곧 ‘어떻게 사는가를 조직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가 꺼낸 것은 ‘독락당(獨樂堂)’. 성리학의 거두였던 회재 이언적의 집이다. 회재는 정쟁에 휘말려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났다. 헌데 고향인 경북 양동마을에 가지 않고, 첩이 사는 인근 안강에 가서 집을 지었다. ‘홀로 즐기는 집’, 즉 독락당으로 지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있을 요소는 다 있다. 헌데 집이 왠지 낯선 감이 있다. 담장도 낮고, 여느 건축보다 낮다. 사랑채도 여느 집과 달리 상당히 낮다. 반면 마당의 존재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독락당 곳곳의 마당이 다 그렇다. 마당은 반듯하며, 마당의 비움이 주인인지, 나무가 주인인지 모를 정도다.

“이 집의 건물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철저히 마당을 형성하기 위한 한낱 도구였으며, 각기 다른 마당은 각기 독립된 세계였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앞둔 회재는 그런 마당 어디에서도 은둔하며 ‘독락’하려 한 것이다.”(p.48)

“굉장히 놀라운 것이 있다. 이 집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 정자다. 정자가 벽채의 연장선상처럼 존재한다. 바깥 계곡과도 연결돼 있는데, 정자는 마당의 한 요소로 존재한다. 정자 밖으로 나오면 아름다운 정자가 나온다. 안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회재는 디테일에 관심이 없다. 이 집은 공간의 조직을 읽어야 회재가 설계한 집의 정신을 볼 수 있다. 이게 우리의 건축이다.”

승효상은 정반대의 건축도 언급한다.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이탈리아 비첸차 교외에 세운 빌라 로툰다. 독락당과 불과 38년 차이 나는 집으로 서양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서양건축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이 집, 언덕 정상에 있다. 높게 지어져 주변을 지배할 듯 보인다. 단일 중심적으로 빨려 들어갈 듯 설계됐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어깨가 움츠러들어 스스로를 집주인의 명령 처분을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로 자아 중심적이고 세계 중심적이다.

“이 집이 지어진지 450년이 지난 지금도, 서양건축은 여전하다. 자연은 적이고, 지배해야 할 대상처럼 다룬다. 이런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 집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 도시계획도를 보면 자연을 적으로 본다. 안에는 높은 성벽을 쌓는다. 외부는 방사형으로 만든 봉건영주가 산다. 모든 것이 봉건 영주의 영향권 안에 복속된 단일도시다. 이런 도시가 르네상스 유럽 곳곳에 이상도시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이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영향도 있었다. ‘토피아’는 땅이며, 유(EU)는 좋다는 뜻이다. 유토피아 그림이 도시계획도라는 이름으로, 유럽 곳곳에서 재현됐는데, 평지에만 건설될 수 있는 도시였다. 유럽의 계획도시는 죄다 평지에 있다. 산지에 있는 도시는 자연발생적이거나 군사적 목적이 있다. 그것이 유럽 도시의 전통이다. 이 땅에 건설되는 도시와 지리적 지형적 성향이 다름을 의미한다.”




모더니즘의 폐기: 다원적 민주주의의 필요성

승효상은 위계적으로 만들어진 모더니즘 건축의 이야기를 잇는다. 자연과 무관하게 고층 아파트와 인위적인 녹지공간을 만들고, 건축(도시)을 효율과 용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모더니즘의 시대, 건축이었다. 1956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11층 33개동으로 이뤄진 ‘프로이토 이고 아파트 단지’로 절정을 이뤘다. 이 단지, 당시 각종 건축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것, 오래가지 않았다. 익명성에 의한 범죄 등 각종 흉악범죄가 발생하고, 이 단지는 세인트루이스의 우범지역이 됐다. 세운지 17년, 1972년 시 정부는 단지를 폭파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마스터플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고, 모더니즘은 폐기됐다. 모더니즘의 종말이었다.

문제는 이 땅이다. 폐기된 모더니즘(근대건축)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서구가 폐기한 ‘마스터플랜’을 여전히 따른다. 불순한 음모가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100여 년 전 서울의 마포 모습만 봐도, 산과 물, 집이 조화를 이뤄 평화롭다. 그러나 지금 대학로 지도만 봐도, 조화는커녕 타협을 이루지 못한다. 승 선생, 이런 풍경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본다. 갈등의 폭발은 곧, 우리가 짠 공간구도 때문이라는 것.

“옛 르네상스 그림이나 투시도를 보면 세계를 독차지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라파엘로 그림을 봐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싫은 세계. 르네상스 시대의 시각이었다. 이것과 다른 시각으로 우리 선조가 그린 19세기 민화로, 8장의 책장을 그린 그림이 있다. 각 칸마다 자기의 소실점이 있고, 사물은 자기중심을 향한다. 엉망진창이다. 그림은 그린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법이다. 다원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을 품은 도시는 어딜까. 승효상은 모로코의 도시 페즈를 우선 든다. 이슬람의 도시인 이곳, 열채 정도의 집이 하나의 단위로 묶여 있다. 빵집 하나, 우물 하나를 공동시설로 하는 최소 단위로 묶인 이 도시, 열채만 있어도 하나의 도시가 된다. 승효상은 발터 베냐민의 말을 인용한다. “다원적 민주주의 도시는 부분이 전체와 똑같은 가치를 가질 때 이뤄지는 도시다.”즉, 도시 한 구석에 가도 전체를 알 수 있는 도시가 민주주의 도시다.


“여기는 주작대로, 중앙도로, 대로와 같은 위계와 계급, 봉건시대의 잔재가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 784년에 세워진 이 도시는 1,200년이 지났는데, 굉장히 아름답다. 이런 도시가 지속가능한 도시다. 1,000년은 더 지속될 수 있다. 이런 도시가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다.”

“어떤 도시의 어느 장소에 있을 때 그 모퉁이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전체를 알 수 있게 하는 곳이 좋은 도시라고 하였다. 무슨 소린가. 부분만으로 도시 전체를 알 수 있으려면 그 부분 자체가 도시의 모든 성격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도시의 모든 부분들이 다 독립적이어야 하고 서로 대등한 관계를 가진다는 말이다.”(p.209)

이런 곳을 보려면 모로코까지 가야 할까? 아니다. 승효상은 우리에게도 그런 곳이 있단다. 달동네! 주민 스스로 세운 달동네, 가파른 산비탈에 있어서 공간의 다이내믹이 더 크다. 가진 것이 적어서 나누면서 살 수밖에 없다. 달동네의 길, 통행뿐 아니라 빨래도 하고, 놀이터도 되며, 시장이 된다.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다. 금호동 달동네가 그런 곳이었고, 감천문화마을이 그렇다. 지중해 산토리니의 마을 풍경, 우리의 달동네와 다를 바 없는 공간구조다. 건축이라고 특별히 아름답지 않다. 이런 동네,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알려져 있다. 공동체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랫집의 지붕이 윗집의 테라스가 된다. 집들은 서로 벽을 공유하고 골목길은 모두의 공간이다. 모여 사는 삶의 아름다움. 그것에 반해 매년 수십만의 관광객이 온다.

“이 마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외관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모여 사는 방법과 그를 위한 공간의 구조적 풍경에 있었다. (중략) 모여서 나누면서 삶을 사는 풍경. 이를 위한 공간을 백색의 대리석 가루로 감싸고 코발트 빛 하늘을 바탕으로 빛나게 한 풍경이 지독한 아름다움을 준 것이었다. (중략)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므로 가지고 있는 게 작을 수밖에 없어서 많은 부분을 이웃과 공유하며 살아야 한다. 집 밖의 공간들은 단순히 통행만을 위한 길이 아니다.”(p.218)

“물론 금호동 달동네는 위생 등의 이유로 재개발이 돼야 했다. 그런데, 모여 살면서 그렇게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금 재개발은 건축이 아니라, 범죄다. 공동체에 가한 테러다.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상당히 뜨악했다. 서양건축문화사에서 윤리라는 말은 찾아볼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윤리는 나와 남의 관계다. ‘관계’는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였다. 집을 지을 때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그걸 잇기 위해 건축을 했다. 지금 우리는 지난 시대를 부정하며 미학을 쫓아서 황망해졌다. 서양은 그러나 한계를 깨달아서 윤리를 주장한다. 이 비엔날레에서 서양 건축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윤리적 건축은 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내가 좋아했던 금호동 달동네는 숨 막힐 듯한 아파트가 빽빽하게 산비탈을 헤집고 들어서서 도시 속의 암 같은 덩이로 나타났다. 이것은 건축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해진 심각한 테러 행위이며 범죄다. 분개할 수밖에 없다.”(p.222)

그것은 ‘불확정적 비움’이었다. 압축해서 말해, 건축가가 나서지 말고 거주자의 뜻에 맡기자는 것. 승효상은 우리 선조가 만든 아름다운 비움을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마당이라는 공간이 그랬다. 모든 것을 해도 괜찮고, 행위가 끝난 다음, 고요하게 비워져서 인간을 사유의 세계로 인도했다. 지극히 아름다운 공간.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마당은 고기를 굽는 공간이 됐다.

“마당은 대개는 비어있지만 언제든지 삶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어린이들이 놀든, 잔치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든 그 공간은 늘 관대하게 우리 공동체의 삶을 받아들였고 그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움이 되어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게 불확정적 비움이었고,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우리에게 전한 아름다움이었다.”(p.40)




비움과 죽음, 우리가 되찾아야 할 건축의 조건

우리에게 자랑스런 비움이 있다. 종묘 종전. 시라이 세이이치 일본 건축가가 동양의 ‘파르테논’으로 칭한 뒤, 세계에 알려졌다. 목조건축인데, 종묘의 진짜 아름다움은 ‘월대’라는 마당에 있다고 승 선생은 설명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 여전히 에너지가 들끓고 있다.

“도처에 물신주의의 망령이 꿈틀대는 이 서울 안에, 그래도 부패한 서울을 끊임없이 정화시키는 장소가 있으니 여기가 종묘이다. (중략) 종묘는 일그러진 서울의 중심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경건한 장소이며 우리의 전통적 공간개념인 ‘비움의 미학’을 극대화하고 있는 건축이다.”(p.23)

미국 샌디에이고 루이스 칸이 만든, 생물학연구소가 ‘소크 연구소’도 아름다운 비움의 공간이 있다. 빌딩을 설계하지 않고 빌딩을 두 개로 나눠 마당을 설계했다. 마당의 표정이 모든 것을 담는, 불확정적 비움의 표본이다. 승 선생은 무한한 잠재성을 느끼게 하는 걸작이라고 칭했다.

“건축은 일본 사람이 만든 단어다. 우리는 ‘造家’라는 단어를 버렸다. 나는 건축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키텍처는 으뜸이 되는 기술, 큰 학문을 뜻한다. 중국도 옛날에 영조(營造)로 썼다.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 건축은 대단한 사유 과정의 결과물이다. 처칠이 그랬다. 건축이 우리를 만들지만, 우리가 건축을 만든다(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왜 우리 대통령들은 말년에 비참할까. 나쁜 건축에서 5년을 살면 민주적인 사람도, 허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두환이 정통성을 강변하려고 조선왕조 건축양식을 빌어 청와대를 지었다. 내부는 더 허무하다. 사는 사람은 허무의 공간에서 스스로 허무해져서 말도, 행동도 센다. 끝내는 비참하게 나온다. 독재자 옆엔 유능한 건축가가 있었다.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알베르토 슈페어가 대표적이다. 히틀러는 원래 건축가가 되려고 했으나 떨어지고, 군대에 가서 독재자가 됐다. 히틀러가 건축가가 됐으면 세상은 달라졌겠지만, 권좌를 잡자마자 슈페어를 옆에 두고 건축의 힘을 빌려 자신을 신격화하는 프로젝트를 했다.”

“본래 우리의 건축은 건물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어떻게 배치하여 주위와 관계를 갖게 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의미였다. 어떤 의미에서 건축은 지형과 더불어 비로소 완성되는 영조(營造, 가꾸어 지어 내는 일)의 작업이었다.”(p.194)

승효상은 ‘기억의 의무’에 대해 빠트리지 않는다. 베를린의 ‘전쟁과 학정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 중앙기념관’에는 케테 콜비츠라는 예술가가 만든 피에타 상이 덩그러니 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기념탑, 이곳도 희한하다. 칼 맑스, 토마스 만 등 유대인 학자 책을 괴벨스 지시로 2만권을 불사른 야만의 현장. 광장의 바닥 1미터 사방의 사각을 덮은 유리 속에 빈 서가가 들어서 있다. 시인 하이네가 쓴 “책을 불태우는 자는 인간도 불태운다”는 가슴 저린 문구가 있다고 한다. 베를린은 사람을 사유하게 하는 시설이 많다. 그 이유로, 승 선생은 책을 통해 이런 말도 던진다. “베를린을 여럿이 여행하는 것, 그것은 야만이다.”같은 맥락에서 승효상은 묘지가 도시 안에 함께 있어야 삶이 경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도, 사회적 공동체도 아니다. 우리가 도시를 보는 시선은 ‘부동산 공동체’다. 땅값이 떨어진다며 묘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묘지가 없는 도시는 찾기 힘들다. 이탈리아 베니스를 가면 묘지 섬이 있는데, 아름답다. 스톡홀름의 우드랜드 묘지공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묘지다. 시구르트 레베렌츠라고 하는 건축가가 설계했는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증명한다. 인생을 얼마나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려준다.”

“집값의 하락만을 걱정하는 천박한 물신주의는 죽음의 형식을 우리 주변에서 내쫓아 우리의 도시에서 경건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볼 수 없게 되었음을 한탄하였다. 저 멀리 외진 곳으로 몰린 묘지들은 하나같이 기괴한 돌 장식으로 범벅이 되어, 그 천박함에 절망하였다.”(p.94)

그는 노무현 묘역을 설계했다. 관습적 묘역을 따르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을 주제로 평범한 마을의 길을 그렸다. 길도 있고, 물길도 있고, 마당도 만들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의 작은 마을 하르부르크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언급했다. 이 기념비, 1986년 요한 게르츠와 에스터 샬레브 게르츠라는 부부에 의해 세워졌다. 12미터의 이 탑이 범상치 않은 건, 매년 2미터씩 꺼지도록 설계됐다. 건축가가 의도한 바는 지나갈 때마다 나치즘, 파시스트에 당한 기억을 낙서로 남겨달라는 것. 탑의 표면은 1993년 11월 10일 땅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져도 모든 건축과 도시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고, 그것만 진실하다. 그걸 생각하면, 건축과 도시가 어떤 거주풍경을 만들어야 하는지 자명하다.”

“모든 도시와 건축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세운 자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중력의 힘에 의해 반드시 건축과 도시는 무너지고 만다. (중략) 영원한 것은 우리가 같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기억만이 진실한 것이다.”(p.275)


우리나라는 어쩌다 건축과 안 친한 나라가 됐을까?

정부 잘못이다. 국민은 잘못이 없다. 우리나라 건축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건축 빈도가 가장 많은 한국인데도, 한국 건축은 세계 건축의 변방이다. 한국 땅에 와서 일하는 외국 건축가가 많은데, 자기가 지은 한국의 건축물을 꺼내지 않는다. 정부가 건축에 대해 무지하고 오해하는 부분이 그대로 나타난 게 정부 조직이다. 한국은 건설이 드라이브를 하지, 건축이 드라이브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건축이 문화부에 속해 있다. 건설부에서 건축을 떼어내 문화부에 이관해서 경쟁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관에서 발주할 땐 거의 턴키시스템이다. 건축가와 시공사가 짜고 들어오라는 건데, 검사와 변호사가 한 팀이 되라는 불륜과도 같다. 그런 불륜의 대가가 서울시 신청사다. 그런 결과가 우리나라 건축을 지금과 같이 만들었다고 본다.

“거의 모든 행정의 결과는 건축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그래서 건축에 대한 정부의 의식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그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국가에서 발주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턴키’라는 이름으로 건축가와 시공자를 짝짓기 하여 뽑게 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다. 검사와 변호사의 관계처럼 서로 감시하는 직능인 이 둘더러 한 팀이 되라는 것은 불륜을 노골적으로 저지르라는 말이어서 이를 맹비난했지만 그 먹이사슬은 너무도 완강하다.”(p.64)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도 영감을 얻어오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 노하우를 들려 달라.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제일 좋다. 둘은 싸우고, 셋은 한 명이 왕따가 된다. 넷이 가면 편이 갈리고, 다섯이면 식탁에 앉기 불편하며 숙박도 난감하니, 여섯이 가장 좋다. 토론이 가능하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 이상은 단체훈련이다. 혼자 가면 자유스럽고, 객관화할 수 있어서 좋다.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 된다. ‘스테이 아웃, 스테이 얼론’이라는 말이 있다. 밖에 서기를 즐기고 혼자 있기를 즐기라는 말이다. 건축가, 여행을 잘한다. 도면을 잘 봐서 그렇다. 도면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인데, 이 말은 자기를 객관화시킨다는 것이다. 건축가는 도면상에서 미리 여행을 한다. 실제로 가서 맞는지 아닌지, 판타지를 깨기 위해 여행을 한다. 여행은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서 가라.

아파트에 삶의 진실이 없다는 말을 했다. 아파트에 살면 다 이상해지는 건가? 마음대로 집을 택할 순 없으니, 서울에 정을 붙일 수 있는 요령이 있을까?

어느 도시에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나는 서울이라고 답한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도시다. 세계에서 1천만 이상의 인구가 있는 곳이 스무 개인데, 유일하게 산이 있다. 나쁘게 가꿔왔다 해도 서울은 산과 물이 있어서 회복이 가능한 도시다. 산을 깎거나 청계천과 같은 인공하천을 만드는 짓만 않으면 돌아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불안한 조짐이 있다. 평지에 집을 짓는 나쁜 예가 아파트인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해서 도시를 만든다. 그 전에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토론해야 하는데, 모든 터의 무늬를 지우고 백지처럼 만드는 것이 아파트다. 터에 있는 무늬를 지웠으니, 터무니가 없는 것이 아파트다. 아파트 사는 사람, 터무니없이 산다. 터에 새겨진 무늬, 자연과 선조가 새긴 무늬들이 지금도 기억처럼 남아 있으니,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무늬를 만드는 게 건축이요, 도시다. 그게 터무니 있는 도시요, 건축이다. 터무니 있는 집을 지으면 터무니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존재가 땅과 무관한 삶을 사는 한 공고해질 수 없다. 그건 유목민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시적으로 거주할 수가 없다.

건축가들도 사회적인 차원에서 뭔가 해야 하지 않나?

정부 잘못이라고 답변 해놓고 풀리지 않았었는데, 정부 잘못만은 아니다. 건축가의 잘못이다. 모든 건축물은 건축가들만 잘하면 터무니없는 아파트가 지어지지도 않고, 그런 건물도 지어지지 않는다.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복무하는 직능이 아니다. 건축이 단순히 건축주의 소유물이 될 수도 없다. 그 건축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용권을 얻을 뿐이지, 소유권을 얻는 것이 아니다. 건축가는 시민과 사회에 복무하는 직능이다. 건축이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는 공공성이다. 공공적 가치가 건축가의 윤리다. 건축가들이 공공재라는 것을 인식하면 우리의 모든 건축이 제대로 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도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img_book_bot.jpg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승효상 저 | 컬처그라퍼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철학으로 유명한 우리시대 대표 건축가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승효상이 여행길에서 만난 건축과 그것이 이루는 삶의 풍경들을 기록한 인문 에세이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간 여러 지면에 연재했던 글들과 이전의 기록들을 묶어서 새롭게 정리한 내용으로, 지금까지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설파해 온 승효상의 건축철학이 집약되어 있는 동시에 문필가로도 이름 높은 저자의 문학적 향취를 만날 수 있다. 간결하고 담담히 써내려 간 문장 안에 담긴 사유의 묵직함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결혼기념일, 이지애 아나운서가 남편 김정근에게 선물한 책 『퐁당』

$
0
0

이지애 아나운서가 생애 첫 책, 『퐁당 : 이지애 감성 에세이』을 펴냈다. TV와 라디오가 아닌 책 속에서, 시청자 혹은 청취자가 아닌 독자들과 만난 그녀는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안에는 지난 시간의 꿈과 사랑이 있다. 그로인해 설레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오늘의 이야기가 있다.

『퐁당』은 이지애 아나운서를 꼭 닮았다. 단정한 문장으로 전하는 섬세한 감정에서 그녀 특유의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연상된다. 자칫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 보내기 쉬운 작은 감정들까지도 그녀는 살뜰하게 보듬는다. 그리고 한 올 한 올 친절하게 풀어 놓는다. 언제나 일목요연하게 이야기를 전해 주던 모습 그대로다. 특별할 것 없이 잔잔한 ‘이지애의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각자의 사건과 감정들을 마주했다. 그것은 공감이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꿈을 꾸고 좌절하고 방황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흉터만이 남게 되는,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법한 감정들의 이야기. 그렇기에 많은 독자들이 『퐁당』안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




퐁당 빠지는 경험을 할 때 가장 행복했어요

“제목을 왜 『퐁당』으로 지었는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세요. 우리가 무릎 혹은 발목까지만 차 있는 물을 걸을 때는 굉장히 걷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물에 퐁당 빠져서 아예 몸을 맡겼을 때는 헤엄을 칠 수 있더라는 거죠. 그리고 퐁당 빠지는 경험은 20대 때 할 수 있었던 경험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사랑도 일도, 일단 좋으면 목숨을 걸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실패한 경험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렇게 애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애 썼던 일들이 상처가 되어 버리니까요. 몸을 맡기기 보다는 발만 담가보고 ‘아, 차가워’ 하고 금방 나와 버려요. 스스로 그렇게 변하는 것 같아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일에, 꿈에, 사람에, 사랑에, 퐁당 빠지는 경험을 할 때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의 일상에도 퐁당 빠질만한 어떤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존재는 가장 먼저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자기한테 퐁당 빠져서 나를 스스로 믿고, 나를 좀 더 사랑해 주는 거죠.”

그래서 『퐁당』이었다. 퐁당퐁당 두려움 없이 빠져드는 순간이 그녀에게는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이지애 아나운서는 방송에서는 할 수 없었던 ‘진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퐁당』을 썼다고 했다. 진짜 이지애의 이야기는 퐁당 빠졌던 순간들, 퐁당 빠지고 싶은 순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지난 날 주저 없이 빠져들었던 퐁당의 기억은 이지애 아나운서에게 소중한 추억이자 오늘을 있게 한 밑거름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꿈꾸는 퐁당은 오늘의 이지애를 다잡고 전진하게 만드는 힘이다. 『퐁당』의 이야기들이 이지애에게 중요한 이유다. 자신이 소진되고 소모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퐁당』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세상에 다리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퐁당』의 첫 장은 꿈과 방황에 대한 이야기다. 독자들과의 만남에서도 이지애 아나운서는 꿈을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뭐니, 스스로에게 묻던 날들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자신의 대답에 확신할 수 없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애먼 길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심지어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2년 반 동안이나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청년백수’ 신세였다. 아나운서는 어렸을 적 꾸었던 수많은 꿈들 중 하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래희망 란에 적는 꿈의 개수는 줄어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단 하나의 꿈이 아나운서였다.

“세상에 다리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저희 언니가 아동심리치료사인데요, 언니가 아이들을 돌보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저는 몰랐던 것들이었죠. 이렇게 살아가는 삶도 있다는 걸 알려줄 통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매력적인 사람이 매력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면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싶었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가는 부분들이 너무 많잖아요. 저는 그 관심을 갖게 해 주고 싶었어요.”

선의의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만을 얻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젊은이가 가진 열정의 온도와 순도만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이지애 아나운서가 품었던 꿈이 착하거나 건강하거나, 그런 것은 세상의 평가기준이 아니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백수의 삶을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0년 동안 소속된 신분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연인이 된다는 것은, 자유가 아닌 불안으로 다가오는 일이다. 이지애 아나운서 역시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어떠한 다른 이름도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기대하며 열어 보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고철덩어리 뿐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화려한 모습의 자신을 꿈꾸었지만, 현실 속의 자신은 고철덩어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이었다. 상대는 단순히 인사를 건넨 것일 텐데 대체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한참을 우물쭈물 댔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은 늘 내 안의 여유를 앗아갔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시간들이었음에도 당시에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렇게 쓰디쓰기만 했다. 불안의 근원은 역시 ‘불확실성’ 모든 것이 자신 없었다. (p. 20)




더 이상 우울해하지 말자

아마도 많은 청년들이 이지애 아나운서가 경험한 불안과 좌절, 우울의 정서에 공감할 것이다. 그때의 그녀와 같이 어둡고 축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지애 아나운서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더 이상 우울해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끝없이 침전하는 시간들 속에서 더 이상 우울해하지 말자, 그녀는 생각했고 ‘요즘 뭐하니?’ 질문 받았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시작하자 마음먹었다. 작은 일이지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규칙적인 생활로 다시 돌아갔다. 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하지 않고 스스로 할 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소식을 묻는 이들에게 대답할 이야기가 생기니 마음도 다시 밝아졌다.

‘작가와의 만남’에 함께한 이지애의 남편 김정근 아나운서 역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하던 시간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아나운서 시험을 보기 위해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첫 직장이었던 은행을 떠난 뒤 자리 잡았던 두 번째 직장이었다. 길지 않은 경력 기간 동안 세 번의 이직,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불안은 커져갔다. 나에게 남은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걱정됐지만 마지막 남은 기회라 하더라도 멋지게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김정근) : “꿈을 좇다가 절망에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죠. 눈을 떴는데 갈 데도 없고 나를 소개할 멘트도 없을 때요. 그때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뭔가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이든지 시작해서 하다 보면 도움을 주는 분들이 생기고, 응원을 해주는 분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 힘을 받아서 조금 더 꿈에 가깝게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남과 이별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만남이 생기는 것

두 아나운서와 함께 독자가 퐁당 빠져든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남편 김정근 아나운서는 『퐁당』안에 담긴 이지애 아나운서의 지나간 사랑 이야기를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처음 그 이야기들을 읽었을 때는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다고 하니 조금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자신들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살았던 때도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김정근) : “만남과 이별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정한 만남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지애 아나운서가 자기 이야기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것을 보면서, 참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어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는지,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건강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퐁당』을 읽으면서 이지애 아나운서가 참 가슴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결혼기념일에 자신의 지나간 사랑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한 아내, 이지애 아나운서는 어떤 생각일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그때의 미숙했던 점을 김정근 아나운서 앞에서도 보였겠죠. 그 사람한테 실수했던 것을 똑같이 김정근 아나운서에게도 실수했을 거고요. 그런 경험들이 있어서 내 안에서 녹아나기도 하고 치유도 되고 ‘이제부터 잘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되기도 하는 거죠. 그런 과정들이 쌓였을 때 성숙한 인격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지난날의 자기 모습까지도 끌어안아야 한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다. 『퐁당』에 담긴 이지애 아나운서의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언뜻언뜻 우리 각자의 모습이 비친다.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 친구와 가족들의 모습도 있다. 바라봄은 이해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화해와 사랑으로 이어진다. 온전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지나간 사랑과 화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퐁당』은 마주봄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때의 나를, 나의 연인을, 우리들의 감정을 마주보게 해준다.



img_book_bot.jpg

퐁당이지애 저 | 해냄
‘톱밴드의 여신’ 아나운서 이지애는 자신의 20대를 꿈을 위해 퐁당, 사랑을 위해 퐁당, 그리고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 어딘가에 퐁당 빠져 허우적대던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책 『퐁당』은 바로 스무 살 꿈꾸던 시절부터 서른을 살고 있는 오늘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시간들에 대한 저자의 ‘성장 일기’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 사람 사이에서 스스로 삼켜야 했던 상처들, 거친 세상의 벽 앞에 때로는 좌절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공유하며 자신과 똑같이 그 시간의 성장통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자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시인, 참 행복한 직업이다. 고맙다” - 정우영 『시는 벅차다』

$
0
0

『시는 벅차다』는 포엠 에세이다. 건강이 악화됐던 시인 정우영, 詩에서 위안과 위무를 받아 완쾌됐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들과 이를 함께 나누고자 싶은 마음결을 따라 간 흔적이다. 따라서 이날 행사는 정우영 시인의 완쾌를 축하함과 동시에 ‘시 읽는 겨울밤’을 위해 마련됐다. 많은 시인들이 찾았고, 그 시인의 입을 통해 詩와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의 詩, 우리의 음악, 겨울밤은 그것으로 충만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시간. 그러니까, 詩가 있어서 다행이다.

김응교 시인의 사회로, 정우영 시인의 책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이은규, 손병걸 시인이 등장한다. 이은규 시인의 「애콩」(『다정한 호칭』중에서)이 흘러나온다.



어느 마을에선 완두콩을 애콩이라 부른다

덜 여문 것들에게선 왜 날비린내가 나는지
푸른 날비린내가 나는 이름, 애콩
생의 우기를 건너다 눅눅해져 애를 태우는 것들
(중략…)
최초의 몸이면서 집인 꼬투리
덜 여문 날들을 다독이느라 푸른 물이 들었을 손
그 손이 인기척도 없이 방문을 닫는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나는 닫힌다, 한 철
이은규 시인이 말한다. “나에게 특별한 詩다. 이 책에 담긴 것을 보고 뭉클했다. 정우영 시인이 이런 자리가 있다고 전화 주셨을 때 오고 싶었다. 이유는, 정우영 시인 몸이 많이 아팠는데, 정말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詩는 약이라고 했는데, 절반쯤 나은 것 같다.(웃음)”

손병걸 시인에게 마이크가 넘어간다. 손 시인은 시력이 나쁘다. 시각장애 1급이다. 전혀 빛을 감지할 수가 없다.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중에서)의 낭송이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고 살아왔다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두 눈동자를 굴렸다

눈동자는 쪼그라들어 가고
부딪히고 넘어질 때마다
두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는데

짓무른 손가락 끝에서
뜬금없이 열리는 눈동자

그즈음 나는
확인하지 않아도 믿는
여유를 배웠다

스치기만 하여도 환해지는
열 개의 눈동자를 떴다
정우영 시인, 손 시인을 시집을 통해 만난 드문 경우다. 두 사람, 서로에게 서슴없이 돌직구를 날리는데, 그 속엔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 이어, 손 시인의 연주와 노래가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 말속에 갇혀 있는 것만이 아님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詩와 노래가 어우러진 어느 따듯한 겨울밤의 풍경이다. 뭉클하다. 「여러분」이 울려퍼진다.

연주가 끝나고, 사회는 맨 뒤페이지를 읽는다. 현기영 소설가의 글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인간의 고향이 자연이라는 것을 감동적인 언어로 일깨워 준다. 이 시들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벅찬 감동은 왜곡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의 힘에 의한 것이다.”현기영 소설가, 등장과 함께 말을 잇는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목소리가 잠겼다. 오늘 아침에 못가겠다고 전화했더니, 약속을 했으니 무조건 오라고 해서 결국 왔다. 손병걸 시인의 시 잘 들었다. 실명했을 때 우리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을 거다. 그것을 치유한 것은 詩였다. 詩의 아름다움. 거기에서 치유를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약 외의 것으로 치유되는 것이 힐링이 아닐까. 정우영 시인이 암에 걸렸을 때 봤었는데, 너무 창백했다. 어떻게 될 건가 했더니, 암 치료를 받고 詩에서 치료법을 발견했다고 하더라고. 예전에는 좋은 詩를 써서 문학사에 남기겠다는 욕심으로 썼겠지? 그런데 앓고 나서는 경쟁보다 동시대 다른 시인과 그들의 詩를 읽고 즐겨야겠다고 바뀐 것 같다. 지금 얼굴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詩의 효과다. 오늘 이렇게 시낭송을 접하니, 감동적이다. 이것으로 스트레스 받으면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치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곳에서 이런 것을 많이 지원해야 한다. 이런 이벤트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

정우영 시인의 딸 정벼리가 축하공연을 가진다. 음악을 계속 해온 딸이 축하공연을 준비했다. 래퍼와 함께 부른 노래에 이어, 아버지를 향한 애정을 담은 곡처럼 느껴지는 「LOVE」(냇 킹 콜)를 부른다.


정우영 시인과 또 특별한 인연을 가진 문인수 시인의 등장이다. 문 시인, 그 인연을 말한다.

“지금은 40~50대 시인 데뷔가 일반화돼 있지만, 내가 마흔에 데뷔했을 때는 신문에 날 일이었다. 데뷔하고 보니 문단에 친구가 없더라. 홀연히 친구가 나타났는데, 박찬 시인이다. 데뷔도 비슷하고 동년배인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간이 안 좋아서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대신 이 친구가 나에게 사람 하나를 보내줬다. 젊은 친구였는데, 형 같은 분위기도 있더라. 정우영 시인이다. 정 시인도 건강이 나빠서 약간 염려가 되지만, 걱정하진 않을 거다. 먼저 간 박찬 시인이 초록의 애교머리, 즉 브리지를 했었다. 그걸 삼손 머리카락이라고 불렀다. 또 카키색 머플러를 하고 다녔다. 박찬 시인에게 바치는 詩가 다섯 편정도, 산문이 칠십 편정도 된다.”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준 박찬 시인을 위해, 문 시인이 추모시를 읊었다.
「흰 머플러! - 시인 박찬 여기 마음을 놓다」



그는 끝내 그가 정한 대로 따스하게 실천해 놓았다.

화장한 몸. 그 뼈를 빻아 한 끼 더운밥에 비벼놓았다.

정읍의 선영 볕바른 데다 정성껏 뿌려놓는 일.

어라, 그의 겨드랑이가 벌서 겨울나기 중인 땅속 개미 몇 마리의 촉수에 건들리는 것인지,

내게도 간지럽게 통하는 것 같다. 들짐승, 날짐승.
(중략…)


머플러!

그의 것은 카키색이지만 사실은 요러코롬 희디희다.





다음으로 백무산, 김혜자 시인이 정우영 시인과 무대에 함께 섰다.

제일 오래된 만남이지?
(정우영)오래 됐다. 백무산 시인은 해방문학을 같이 만들던 동지다.

백무산 시인도 할 얘기 있을 것 같은데.
(백무산)정우영 시인과 오래됐다. 어려운 시대, 어려운 시기를 거쳤고, 아직까지 연락이 끊어진 적 없이 지속되고 있다. 원래 나는 이런 자리에 안 나오는 체질이다. 낭송하는 자리에 두어 번 나온 적은 있지만, 작가는 무대 뒤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대는 배우가 나오는 곳이지. 서양 속담에 ‘작가와 주방장은 얼굴이 안 보이는데 있는 게 낫다’는 것이 있다. 그런데, 정우영 시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더라. 나름 사람 사귀는 것이 까다로운 편인데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관계가 내겐 흔치 않다. 정 시인이 최근 몸이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슬픔은 여기서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

김해자 시인도 정 시인에게 할 얘기가 있다면?
(김해자)많이 고맙고 머리가 좋으면서도 심장이 따뜻하기가 힘든데, 정 시인을 보면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쓴다. 후배나 어려운 사람도 잘 챙겨준다. 여기 오신 분들도 같은 마음으로 오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백무산 시인의 낭송이다.
「슬픈 인사」(『그 모든 가장자리』중에서)를 읊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사
잘 살아요-

여기서 따로 가면서
당신은 내일을 살 수 없고
내일은 나 혼자 가면서
아무도 뒤에서 지켜보는 이 없는 거리를 혼자 가야 하는
가서는 돌아올 길을 잃어버리는
뒤가 텅 비어버리는 그 인사
잘 살아요-
(중략)


푸른 나무가 공중에 던져지는
아, 자유라는 이 공포!

이어 김해자 시인의 「승천」(『축제』중에서)도 잇따른다.



한 집 건너 지하공장
미싱 소리 드르륵대던 곳
사철 시꺼먼 하늘만 내려앉던 청천동
(중략)


방문턱에 걸린 두 발
부엌 바닥에 늘어뜨린 긴 머리칼
아궁이에 타다 만 연탄
잠긴 문 바라보다 멈춘
반쯤 열린 눈
밖에 하얀 눈

두 분에 얽힌 추억도 듣고 싶다.
(정우영)백무산 시인, 정말 모시기 힘든데, 어울려 주니 참 기쁘다. 한강에서 함께 천진하게 놀던 때도 있었고, 신혼 단칸방에 불쑥 와서 묵어가기도 했다. 불도 안 들어오던 엄혹한 시절을 함께 보낸 기억이 있다. 김해자 시인은, 존경하는 친구다. 모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갖고 있는 목포 여자다. 목포 여자로서 노래 한 자락 하라고 하면, 집에 가기 힘들 정도로 부른다. 목포 여자의 목포 노래를 청한다. (청중 박수)

김해자 시인의 노래와 치유음악가이자 생태음악가 봄눈별(봄눈이 흩날리는 밤의 홀로 빛나는 별)의 음악이 겨울밤을 따스하게 감싼다. 정우영 시인의 마지막 멘트가 흘러나온다.


“고맙다. 지루하지 않았지? 신나지도 않았지? 시라고 하는 게, 신나지는 않는다. 지루하지도 않다. 여기 모신 시인들, 내 시평 에세이에 나와 주신 시인들이 이 자리의 주인공이다. 나는 좋은 詩, 귀한 詩, 그 詩를 통해 받은 느낌을 독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모자란 내 글을 동원한 것이다. 좋은 詩들이 없었다면 시평 에세이를 어찌 할 수 있었겠나. 지나간 시간이 지금까지 나와의 오래된 만남이었다면, 오늘은 내일을 위한 새로운 만남의 시간이었다. 궂은 날씨에게 기꺼이 찾아준 여러분, 고맙다. 아내에게도 참 고맙다. 내가 지금 뭔가 극복한 것처럼 얼굴이 해사해진 건 아내 덕분이다. 얼굴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웃음) 얼마 전 나한테 찾아왔던 삿댄 기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책도 내고 이런 시간도 갖게 된 것이고. 詩를 쓴다는 것, 참 행복하다. 시인, 참 행복한 직업이다. 고맙다. 이걸로 마치겠다.”



img_book_bot.jpg

시는 벅차다정우영 저 | 우리학교
시인 정우영이 우리와 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시인들의 도타운 마음을 귀 담아 마음 담아 차근차근 펼쳐 내었다. 암 투병 중인 시인은 시의 온기에 몸과 마음이 감싸이는 경험을 통해 죽음과 소멸에의 공포를 쫓았음을, 꽃그늘 속 피어오르는 설렘처럼 시의 자연 에너지와 다사로운 시심이 시인에게로 와서 넘치는 힘이 되었음을 가만히 고백한다. ‘나를 넘어 너에게로 가서 너와 함께 나를 되세우는’ 마음이라면 어떤 절망도 견뎌낼 수 있다는 시인의 헤아림, 시에서 받은 뜨거운 위안과 위무를 읽는 이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결이 독자를 한껏 고양시킨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잔인한 고문 중에 애인과는 뮤지컬 수다

$
0
0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2011년 12월 30일 별세한 김근태 선생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12월 2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1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했고, 이튿날 29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가진 1주기 추도식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았다. 지난 총선과 대선, 고인의 유훈을 받들지 못해 미안함을 표함과 동시에, 그의 명령이 2012년으로 끝나지 않기에 계속 그것을 지키겠다는 다짐이 오갔다. 김근태의 몸은 떠났지만, 김근태의 영혼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 전인 12월 17일, 서울 마포구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도 스크린을 통해 김근태 선생이 살아났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출간기념 <남영동 1985>영화관람 GV(저자 김삼웅, 배우 박원상)초대 시간이었다. 영화 속, ‘김종태’라는 이름의 민주주의는 ‘남영동’으로 대변되는 국가폭력(고문)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혔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마의 얼굴을 한 ‘악한’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이다. 국가폭력의 하수인들,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직장 일에 열심이고, 집안을 생각하는 아버지였으며, 국가를 걱정하는 애국자였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그들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었다. 영화를 만나는 내내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고문의 장면이 아니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행하는 말과 행동이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작가 프리모 레비(『이것이 인간인가』)의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인간 괴물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아서 그리 위험하지 않다. 실제로 위험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다.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기계적으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뒷날 김근태는 자신을 체포해온 이 자들에 대해 “무슨 열정에 불타오르는 모습도 아니고 눈빛에도 오직 회색빛의 냉담함,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더군”이라고 회상했다. 그만큼 이들은 외견상 평범한 사람들이었다.”(p.110)

국내의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 이경영(이두한 역-이근안), 문성근(윤사장), 명계남(박전무), 김의성(강과장), 이천희(김계장), 서동수(백계장), 김중기(이계장)가 분했던 안기부 공무원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 중계 소식에 일희일비하고, 집에서는 자상한 가장이며, 애인이 변심할까 노심초사하는 그들이다. 그러면서 직장상사의 명령에 따라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다.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 특히나 이근안은 최근 펴낸 책을 통해 시대가 달려져서 그렇지, 고문하는 것, 애국 행위라고 강변하지 않았던가.

“고문, 그것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과학적이고, 많은 경험을 통해서 정리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문의 시점, 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말 사장급 이상의 회의에서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결정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분위기로 전달되었습니다.”(p.124)

영화는 무섭고 아팠으며 슬펐다. 극중 김종태가 당하는 고문이 객석에도 그대로 엄습했다. 시대가 아팠고, 사람이 아팠으며, 세상이 아팠다. 그것은 통각(痛覺)으로 인한 통증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그럼에도 더 아픈 건, 타인의 고통에 귀 막고 눈 감고 무덤덤한 사회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악마 같은 이들의 온갖 악행, 그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도 방관하는 다수의 사람들 때문이다.” 나도 방관자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악마를 탓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성은 누구나 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이자 성찰이라는 점을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남영동 1985>는 알려주고 있다. 그것을 잊을 때 우리는 다시 고문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할프단 라스무센의 詩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을 지금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고문 가해자도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몸도 아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라이플의 총신도
벽에 그리운 그림자도
땅거미 지는 저녁도 아니다
희미하게 빛나는
고통의 별들이 무수히 달려들 때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세상 사람들의
눈먼 냉담함이다.

영화 관람 후 GV가 진행됐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의 김삼웅 저자와 <남영동 1985>의 박원상 배우가 등장했으며, 사회는 출판평론가 장동석이 맡았다.


영화는 실화와 얼마나 가까운가?

김삼웅(저자, 이하 웅)영화의 70%가량은 실화다. 영화의 극적인 장면을 위해 픽션을 가미했는데, 픽션도 누군가가 당했던 사례다. 30년 전, 김근태를 비롯해 민주화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이 이렇게 당했고, 70~80년 전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당했다. 나도 저 정도까지일지는 상상을 못했었는데, 김근태 등 수많은 분들이 저렇게 당했다. 그런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신문과 방송을 도배질하는 동안 김근태는 남영동 인간도살장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절망적인 고문에 시달리고 있었다.”(p.103)

그러나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등에 폭탄을 터트렸던 분을 친일파 경찰들이 무릎을 꿇게 했듯, 70~80년 전이나 20~30년 전이나 비슷한 상황들이 일어났다. 해방 후에는 무임승차한 친일세력이 주역이 됐고, 87년 6월 항쟁이후에는 반독재 투쟁했던 사람들이 희생되거나 몰락한 대신 유신이나 5공 치하 민주주의 유린 세력이 또 다시 득세했다. 한반도, 한, 반도, 한이 많은 반도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오늘 <남영동 1985>를 보면서 김근태 등 민주화 운동가들이 겪은 극심한 고통을 배우 박원상 씨가 정말 리얼하게 연기했다. 그걸 어떻게 견뎠을까, 감동이었다. 김근태 선생이 고문당한 것을 그냥 지나간 역사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젊은 세대들이 알아야 한다. 과거는 흘러간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불의에 저항하고 압제와 싸웠다. 청년들을 조직하고 동지들과 연대하면서 바빌론의 철옹성에 불을 질렀다. 그는 용기 있었고 담력 또한 남달랐다. 무인(武人)의 기질을 갖춰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p.25)


영화 <남영동 1985>

영화 보는 내내 진땀이 나더라. 박원상 씨는 연기하면서 정말 고생했을 것 같다.

박원상(배우, 이하 상)여러분들이 함께 해줘서 고맙다. 김종태 역할을 맡아서 열심히 버텼다. 이번 영화는 이전에 작업했던 영화와 다른 경험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관객 입장에선,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영화라고 정리하고 있다. 받아들이고 있고. ‘역사는 진보한다’라고 대개 얘기한다. 그런데 올바른 기억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방향을 잃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을 곱씹어야 하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많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 말고도 많을 것이다.

모든 상업 영화가 불편하고 힘든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순 없지만 상업영화라 해도 가끔은 쓴 약 같은 영화가 필요하다. (이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이 인생 선배로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영화는 많이 내렸는데, 거북이의 경주가 시작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토끼를 이겨야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이 기억을 공유하고 각자의 느낌을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런 영화가 되길 희망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웅)영화는 김근태 선생이 치열하게 투쟁하다가 십 수 일 동안 남영동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고문당한 것을 다루는데, 실제로는 (고문이) 더 참혹했다. 김 선생은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하고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도 굴하지 않고 싸웠다. 또 1980년 광주학살 후 제도권, 청년, 야당이 침묵할 때 공개적으로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조직해서 전두환 세력과 대결했다. 87년 6월 항쟁은 민청련 등 청년이 포문을 연 것이다.

그 당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잔인한 고문과 같은 것들은 영화로나 접하지, 신문 등에 보도도 안 됐다. 놀라운 것은 고문자들이 고문을 하면서 휘파람을 불고 그랬다. 나치 때도 그랬다. 나치 고문자들이 고문하면서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부르고 애인이나 부인에게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게 더 잔인하다. 그런 비인간적 고문을 하면서 그런 행동을 했다니. 그런 체제,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 박정희 체제, 전두환 체제, 그리고 이명박 체제 등이 그랬다. 민간인을 사찰하고. 김근태 선생도 이명박 체제에서 사찰을 당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이 모든 것이 과거완료형이 아니고 현재형이고 미래형이다.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이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을 고문하고 집단학살하면서 고전음악을 듣거나, 일요일에는 오페라 구경을 가자고 가족과 약속했듯이, 한국의 고문기술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라디오에서 왈츠를 듣거나, 군대 간 아들 걱정, 박봉에 대한 불평,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 문제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평가받는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6백만 명의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악의 평범성’은 히틀러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한국에서도 벌어진 현상이었다.”(pp.111~112)

어제(12월16일) 일본 선거가 끝났다. 만주군관학교 등 만주국을 주름잡은 관료(주. 기시 노부스케)이자 A급 전범의 외손자, 아베 자민당 총재가 총리가 됐다. 만주국과 관련된 어떤 사람(주. 박정희)은 혈서를 써서 일본 군대를 갔고, 장준하 등 누군가는 싸우다가 의문사를 당하거나, 억울한 사람이 간첩, 빨갱이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 그런 것을 우리 후배나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평전을 쓰면서 김근태 선생을 많이 지켜봤다. 그동안 평전만 15~16명을 썼다. 실은 어떤 분도 염두에 뒀었는데, 1991년 신문(조선일보)에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최근에는 인간 이전의 말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자기 삶과 지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확인했다. 구경하고 영화 한 편 보기는 쉽다. 그런데 막상 당한다고 생각해보라. 단순히 관람한 사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려야 한다. 김근태는 연대를 통해 2012년을 점령하자고 했다. 이것은 피맺힌 절규였다.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가치는 개처럼 끌려 다니고 핥을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을 위해 끝까지 싸운 것이다. 김근태 선생이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버리지 않은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



제가 알기로도 김삼웅 선생은 김근태 평전의 연재가 끝나고 끙끙 앓으셨다. 박원상 씨도 영화 찍는 내내 고생하셨는데, 책을 보고 어땠는지 궁금하다.

(상)평전을 받았는데, 솔직히 아직 다는 못 읽었다. (웃음) 그래도 책을 책상 바로 앞에 놓고 있다. 2012년 <남영동 1985>를 통해 만난 김근태 선생,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굵은 지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가물가물해 질 때마다 책상 앞에 둔 이 평전을 읽으면서 자신을 잡아가도록 하겠다. 고맙다.

10여일 후면 김근태 선생의 1주기다. 독자들이나 영화를 볼 관객, 아직 김근태 선생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어떤 말씀을 전해주고 싶은가.

(웅)우리는 흔히 독립운동가 하면, ‘별종’인 것으로 생각한다. 풍찬노숙하면서 가정도 버리고, 20~30년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 그런데 막상 그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않고 관심이 없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분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주주의운동을 한 본인은 사명감이랄까, 그것으로 견디는데,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독립운동이나 민주주의를 짓밟아 버리는 세력들이 지금도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걸핏하면 좌경, 용공으로 내몰고 얼마나 많은 양심적 지식인, 노동자, 종교인들을 희생시켰나. 그런 세상을 반복시키지 않기 위해 김근태의 삶을 돌아보고 개인적으로 분노해봐야 방안의 퉁소다. 가족, 동료, 친구 등과 연대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그런 분들의 삶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그런 분들 노력에 무임승차한 사람이다. 50~60대를 설득하고 청년들에게는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김근태 정신을,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지키면서 대한민국을 으뜸가는 문화국가로 만들어가는 것이 김근태의 꿈 아니겠는가.


“혁명가들 중에는 낭만주의자들이 많은 편이다.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속된 이해와 이문을 따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낭만주의자들은 물질적 셈법보다 하늘의 별을 헤고, 호수의 포말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혁명을 꿈꾸게 된다. 반독재민주화운동가 중에는 낭만주의자들이 적지 않았다. 김근태의 심중에도 낭만성이 켜켜이 쌓였다. 학창시절 그는 문학 서적을 끼고 살았다.”(p.107)

(상)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올해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를 통해 연기할 수 있었던, 그래서 선물을 많이 받은 한 해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img_book_bot.jpg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
김삼웅 저 | 현암사
김근태 사후에 출간되는 첫 평전인『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은 일생을 ‘민주화의 길’에 바친 김근태의 삶을 조명한다. 철저한 민주화운동가이자 그 변화세력의 선봉장이었던 김근태가 1994년 새민주당의 부총재로 ‘야당 입당’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까지의 과정과 배경 등을 꼼꼼히 다룬다. 김근태 사후에 출간되는 첫 평전으로, 김근태가 관통해야 했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되살리면서, 그 시대의 한가운데서 ‘따뜻한 투사’ 김근태가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맞섰는지 잘 보여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기름 값 비싸 죽겠지? 그럼 폭스바겐 자동차를 사용해”

$
0
0


카피는 [언어의 비지니스(Business)]이다.

광고 카피의 기본은 마케팅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Sales communication에 The right message에 있다. 광고의 목표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경제원칙의 달성이다. 광고는 R.O.I (Return On Investment), 즉 광고하는 투자의 효과가 나와야 그것이 The right message였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인은 바람직한 메시지(the right message)를 만들어야 한다. 바람직한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를 타겟으로 삼을 것인지(to the right person), 어느 장소와 시간을 기준으로 할 것이지(at the right tome & the place)를 염두에 두는 게 좋다. 우리는 TV와 라디오 외에도 다양한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한 프랑스 광고인은 이를 두고 우리가 사는 곳은 산소, 질소, 광고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해외토픽에서는 심지어 임신한 여자가 자기의 배를 광고매체로서 팔았던 사례가 있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게 광고인 세상이다.




카피는 [양궁이나 사격]을 닮았다.

광고인이 하는 일은 양궁선수가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둘은 목표를 한순간도 잊거나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다. 목표를 똑똑히 보고 추구하고 있으면 아이디어는 제 발로 손을 들고 나오기 마련. 윤준호 씨는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예전에 저는 ‘청소년 탈선행동 방관말고 선도하자’라는 표어와 ‘물은 수돗물이 제일 좋습니다.’라는 표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과연 이것이 The right message인가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이런 표어는 돈을 버리는 하나마나한 광고입니다. 즉, 상대방이 공감을 할 수가 없다면 그 광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일례로 화장실에서 ‘깨끗한 화장실은 문화인의 자랑’ 은 공허한 문자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정조준, 일보전진’은 상대방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카피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카피가 물건을 팔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하면 단지 아름다운 문장에 불과할 뿐 반제품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강도는 총, 칼, 주먹으로 강제로 지갑을 열게 하지만 광고인은 언어로써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스스로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




카피의 답은 [마음]에 있다.

마음心은 사람의 얼굴을 닮는다. ‘얼굴’은 생각을 의미하는 ‘얼’ 과 고어인 꼴에서 유래한 ‘골’이 결합한 ‘마음의 생김새’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心자를 자세히 보면 희노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가진 얼굴이 보인다. 이러한 측면은 예전에 원효스님의 해골물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골물 사건을 겪은 뒤에 원효스님은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어 법은 당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다며 국내에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이처럼 동화된 마음은 소비로 이어진다. 해외유명 시계브랜드인 ‘Tag Huer’의 광고 문구 중에 ‘Success, It's a mind game’ 이라는 문구가 있다. 카피도 마찬가지로 mind game이다. 인디언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날, 인디언 아버지는 아들에게 “얘야,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착한 늑대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나쁜 늑대란다.”라는 가르침을 줬다. 그때 아들이 질문을 한다. “아버지, 그럼 어느 쪽이 이기나요?” 그 질문에 “네가 먹이를 많이 주는 쪽이 이긴단다.” 라고 아버지가 답했다.

모든 선택의 스위치는 마음에 있다. 만일 어떤 헤드라인이 당신의 눈길을 멈추게 했다면 그것은 ‘이기심’, ‘호기심’, ‘지름길을 찾는 욕심’, ‘뉴스를 찾는 마음’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문장이나 모델이 광고의 요소일 수는 있겠으나 이런 니즈가 광고 앞에 독자를 잡아둘 수 있는 것이다. ‘감기는 어떤 약 한 알’, ‘당신은 한 달이면 일본어를 마스터할 수 있다.’, ‘당신은 세상의 체어맨’이라는 문구가 귀에 꽂히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피는 [뉴스(News)] 이다.

뉴스는 본능(本能)이다. 우리들은 “별 일없지?”라는 말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것을 영어로 하면 “What's news?”가 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뉴스로부터의 소외를 참을 수 없어 한다. 예일대학의 심리학자들이 조사 발표한 영어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단어를 살펴보면 본능적 욕구를 담은 단어들로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는 사람의 어떤 본능을 자극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소비자에게 뉴스가 될 수 있다면 강력한 카피가 될 수 있다. 카피는 ‘쓴다’는 개념보다 ‘말한다’는 의미인 고백(告白)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인 1888년 덕산 세창양행에서의 헤드라인에는 ‘고백’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만약 이 단어를 계속 사용했다면 광고라는 단어는 고백이라는 로맨틱한 단어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그 내용 자체인 News인 것이다. 아무도 포장지만으로 물건을 사진 않는다. 윤준호 씨는 “우리는 광고로써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Heart-jack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카피는 [헤드라인(Headlind)]이다.

카피라이터는 ‘어쩜, 내 맘을 이렇게 잘 알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여 소비자의 마음을 뺏어야 한다. 카피라이터는 헤드라인을 쓰는 사람이다. 나 자신도 읽지 않는 광고를 타인이 읽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카피라이터가 헤드라인을 쓰는 사람이라면 소비자는 바디카피를 쓰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례선생님 앞에 섰을 때 산새소리가 들려왔습니다.’라는 카피를 보면 소비자는 그 예식장의 분위기나 시설은 알아서 상상한다.

또 다른 일례로 ‘인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승객들은 모두 부처님의 얼굴을 닮아 있었습니다.’라는 카피를 보면 소비자는 그 여행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알찼고 즐거웠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광고는 이렇게 소비자에게 임팩트(IMPACT)를 주어서 광고에 무관심한 대중들이 세일즈 메시지를 순간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만한 질을 가져야 한다.




카피는 [연필의 일]이 아니다.

윤준호 씨는 글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사진작가에게 콤플렉스를 느낀다고 말을 하곤 한다. 카피의 이상은 ‘Make a statement without saying a word!’ 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피라이터가 비주얼 이미지의 기능을 사용하면 너절한 진술로부터 가벼워질 것이고 사진작가의 펜은 행복해질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비주얼메시지와 버벌메시지의 행복한 결합은 폭스바겐의 광고에서도 드러난다. 이 그림 하나만으로 소비자는 ‘기름 값 비싸 죽겠지? 그럼 폭스바겐 자동차를 사용해’ 라는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다른 예가 류시하 시인의 ‘한 줄도 너무 길다.’이다. 왜냐하면 카피는 언어의 경제원칙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한자의 형상성을 높게 평가한다. 형상성은 100개의 이미지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의 생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광고는 비주얼의 언어적 기능을 잘 사용한다. 이 광고는 화장실 심볼 사진을 변형하여 ‘축, 개통!’이라는 카피를 사용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 카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카피는 [선(禪)]의 태도로 해야 한다.

선禪이라는 한자는 볼 시(示)와 홑 단(單)이 결합한 단어로 심플하게 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폭스바겐의 캠페인 중에서 폭스바겐 광고를 만드는 법에 대한 글귀에서도 깨달을 수 있다. 심플하게 보라(Keep It Simple, Stupid!)는 가르침을 통해 보면 모든 것이 카피가 될 수 있다. 심플하게 보되 항상 의문을 품고 대상을 바라봐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 마케팅의 답을 낼 수 있다. 물음표를 자세히 보시면 때로는 낚시 바늘로도, 때로는 옷걸이로도 보인다. 이처럼 어떤 것을 거느냐에 따라서 광고의 카피가 달라진다.

카피에 대한 태도의 설명을 마지막으로 강연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카피라이터이자 서울예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윤준호 씨는 이번 학기에 서울예대의 학생들의 과제였던 광고카피를 보여주면서 이 시간을 마무리 지었다. 이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이 자리를 통해서 윤준호씨를 통해 카피의 초심을 배웠다. 이렇게 다져진 초심은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거시기한 카피를 쓸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img_book_bot.jpg

카피는 거시기다
윤준호 저 | 난다
오리콤을 시작으로 거손, 동방기획, 코래드, LGAD, O&M 등 많은 광고 회사를 거치며 '뉴욕광고제' '한국방송광고대상'등 국내외 유수의 광고상을 휩쓴 카피라이터 윤준호. 혹은 『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 윤제림. 파급력에 있어 가장 빠르다 싶을 속도전을 자랑으로 아는 광고와 가장 느리다 싶은 굼뜸을 자존심으로 여기는 시, 이 두 장르를 암수한몸처럼 운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가 바로 바로 윤준호이자 윤제림이다. 그가 이렇게 두 얼굴로 살아온 삼십 년 노하우를 고스란히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요즘 가장 힘 센 신은, 지름신” - 전우용 『오늘 역사가 말하다』

$
0
0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이렇게 맺음하고 있다.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또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왔다갔다 분주했다. 그러나 누가 돼지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별하기란 이미 불가능했다.” 동물농장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나폴레옹(돼지)이 다른 농장주(인간)과 결탁해 도박을 하고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이 소설은 러시아혁명과 공포정치를 부활시킨 스탈린 독재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다. 동물에 빗대 스탈린 독재를 비판한 소설로 혁명 이후 권력이 어떻게 변질돼서 인민을 억압하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 인간은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지만, 혁명을 배반하고 인간다움을 저버린 독재자를 돼지에 빗댐으로써 소설은 몰입도를 강화한다.

역사학자 전우용,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와 성찰, 이것이 결여될 경우 돼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즉, 역사학과 인문학을 하는 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임을 강조한다. 『동물농장』에서 조지 오웰이 독재와 공포정치를 행하는 주체를 돼지로 삼은 것도 어쩌면 그런 맥락일는지도 모른다.

사람다움을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과연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기억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닐까. 역사는 한 번 가르쳐 준 것을 잊어버리는 자에게 매우 가혹하다는데, 우리는 지금 가혹함을 예약한 것은 아닐까. 노인의 기억력 감퇴가 젊은이를 다시 수렁에 빠트린 어떤 현실이 떠오른다. ‘인간다움을 고민하는 삶’에 대한 역사학자 전우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은 언제 동물과 이별했을까?

전우용 교수에 의하면, 전 세계 시조신화는 비슷한 구조다. 한국의 단군신화를 보자. 단군의 할아버지는 환인이다. 즉, 제석(帝釋), 하늘의 신이다. 하늘의 신의 아들인 천자 환웅이 아래 사람들을 보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동물과 똑같은 존재였던 인간은 특별한 존재로 바뀐다. 그러자, 인간과 같은 맥락에 있던 동물들이 질투를 한다.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 인간의 몸을 얻은 곰이 아이도 낳고 싶다고 해서 환웅과 결합해서 낳은 아이가 단군이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사람의 조상은 사람이 아니다. 상상 속의 존재, 신이 개입한다. 신이 개입함으로써 사람은 다른 존재 혹은 동물과 구별됐다. 근대 문명의 탄생기, 공통적으로 이와 같은 신화가 나타났다.

고대 지중해 세계, 인간은 하늘에 속하지도 않고 지상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였다. 고대인들은 따라서 세상에 친지인(우주, 자연, 인간) 세 개가 아닌 신, 인간, 괴물, 동물 등이 있다고 봤다.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적 존재인 ‘반인반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즉, 영웅이었다. 헤라클레스 등과 같은 영웅이 괴물을 무찔러서 인간을 구해주는 신화가 등장하는 이유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은 모두 신과 인간의 혼혈입니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도 신과 인간의 혼혈이며, 우리 민족의 시조로 추앙받는 단군도 천신의 아들과 곰 사이의 혼혈입니다. 영웅은 ‘신에 가까운 인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입니다.”(p.35)

이어서 등장한 세계는 신, 메시아, 인간, 동물로 나눠졌다. 중세로 넘어오는 이 시기, 중요한 것은 인간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가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성경에도 악마는 나오지만 괴물은 나오지 않는다. 논어, 맹자를 봐도 용과 같은 이야기는 없다. 동물과 인간의 이별이다.

“기독교 세계에서 신은 단 하나다. 단 하나의 영웅이다. 사람은 동물과 이별했다. 신은 인간을 타락에서 구하는 존재로 나온다. 그렇다면 타락은 뭔가. 인간이 동물화 되는 것을 타락으로 봤다. 동물적 습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람다움이라고 봤다. 사람다움의 표상은 사제다. 신의 뜻을 따르고 다른 인간을 구제해줄 수 있는, 타락에서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사제였다. 동양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여기도 괴물이 사라졌다. 십이지신은 그림으로 남고 서사에서 사라졌다. 신, 천자, 인간, 동물로 나눠졌는데, 다만 천자는 부활하지 못한다. 기독교의 메시아는 부활하지만, 중국 유교의 천자는 영원히 살지 못하나 신의 율법과 사람의 도리를 따진다.”


인간,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동물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다

인간은 다시 변화를 겪는다. 전우용 교수는 1492~1543년 사이에 인간 의식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전한다. 그전부터, 즉 13세기 몽골의 유럽원정(침공), 페스트의 유럽전파, 유럽에서 진행된 마녀학살 등이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겠다. 그러다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이 땅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어,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운동에 관하여』라는 책이 나왔다. 괴테가 말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1592년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인체 해부에 대하여』라는 책을 냈다.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것은 신의 몸을 해부하는 것과 같았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사람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 이 책을 통해 동물계로부터 수십만 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왔으나, 인간과 동물이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인식이 바뀌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린다. 200~300년 동안 인간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인간관이 튀어나온다. 찰스 다윈과 칼 마르크스에 의해, 인간은 ‘진보된 동물’임을 확인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 교수는 정리한다.

-찰스 다윈

ㆍ인간도 동물이다.
ㆍ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
ㆍ진화의 동력은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 즉 경쟁이다.
ㆍ동물 진화의 원리와 사회 진화의 원리는 같다.

-마르크스

ㆍ종교는 인간 본성의 환상적 실현
ㆍ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ㆍ사회주의적 인간형 = 수도사적 인간형
ㆍ지상천국론의 계보
ㆍ당=교회 / 해방=구원 / 혁명=최후의 심판 / 부르주아=사탄

“마르크스의 인간형이 왜 수도사적 인간형인지 궁금할 수도 있을 거다. 박노자 교수가 한국에 와서 그 경험을 쓴 적이 있었다.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가 공산당 청년당 활동을 하기 싫고 지겨워서였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교회청년부 집회에 갔더니, 그게 공산당 청년당 활동과 같았다는 거다. 한국 기독교만의 특징이다. 수사적 인간. 금욕,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당이 교회고, 해방이 천국의 실현이고, 다 이어진다. 구조가 똑같이 연결된 틀이었다.”


인간의 무모함, 그리고 악의 평범성

마르크스와 다윈의 생각이 당대에 힘을 계속 얻었다. 그런 와중에 인간에 대한 회의를 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쟁이다. 경쟁의 가장 노골적이고 비열한 형태. 전쟁을 통해 인간이 상상했던 악마의 모습이 인간으로 나타났다.

“전쟁은 인간 자체의 문명을 파괴시켰다. 생각해 보라. 전쟁(터)에서의 인간은 어떻게 사나? 짐승같이 산다. 체면도 염치도 다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짐승이 됨을 경험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마찬가지다. 자기보다 약하다고, 해롭다고 믿는 집단을 인간으로 취급 않는다. 그래서 절멸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프랑스 생마르탱데스토레오의 1차 대전 기념문을 봐라. ‘1,200만 명 이상의 사망자, 인간들의 곤경 위에 쌓아올려진 치욕적인 재산들, 처형장에 선 죄 없는 사람들, 훈장을 받은 죄인들. (중략) 전쟁과 그 주역들에게 저주 있으라.’ 인간이 상상했던 어떤 악마도 인간만큼 잔인하지 않았다.”

[ 서울은 깊다 ]
[ 현대인의 탄생 ]
[ 한국 회사의 탄생 ]
결국 인간은 ‘인간이 뭐냐’는 질문에 재봉착했다. 진보한 결과가 고작 인간을 악마로 만든 것. 악마가 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에 휴머니즘이 나타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다움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 ‘어떻게 해야 공멸을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가 1차 휴머니즘이라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2차 휴머니즘 운동이 펼쳐진 것이다. 정의, 인도와 같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법칙이라고 그전에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살지 말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약자의 배려 등이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와 함께 인간은 경제성장을 진화의 징표로 뒀었다. 그러나 대공황을 겪고 달라졌다. 대부분 주식들이 휴지조각이 되고, 재산이 줄어들 수 있음을 알았다. 이에 20세기 중후반까지, 인간은 새로운 고민을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덜 신 같으면서 동물적 욕망을 긍정하는, 그러면서 동물과 얼마나 거리를 둬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이때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다른 고민도 있었다. 새로운 신들이다. 그래서 신상을 만들고 동상을 만들었다.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사람을 신으로 바꾸는 행위다. 신격화의 표현이다. 지금 우리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있다고 믿는 게 있다. 재산이다. 재산은 잘 가꾸면 영원불멸할 거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돈은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 십 년 사이 한국인, 전 세계인은 이 신을 믿는다. 뭐라고 기도하는지 진심을 보면 ‘돈 벌게 해 주세요’다. 옛날 최고의 신들도 돈신의 하위로 전락했다. 하느님, 부처님에게 돈 벌게 해달라고 빌지만, 실은 물신을 부르는 거다. 요즘 가장 힘 센, 신중의 신은, 모든 사람이 기꺼이 고개 숙이게 하는 건 지름신이다. 욕망과 물질, 재산이 과거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수도는 언제나 그 시대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닮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어떤 신을 닮았을까요? ‘지름신’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요?”(p.145)


새로운 신의 등장에 종속된 인간

어쨌든 20세기 들어 영원불멸하며 전지전능한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세계는 물질과 기계에 포위되기 시작했다. 한국만 봐도 알 수 있다. 1910년에서 100년 사이, 인구는 4배 늘었다. 반면, 1910년 3대에 불과했던 자동차는, 지금은 2천만 대에 육박한다. 물신(物神), 유일신만 존재한다. 이처럼 생명체보다 비생명체가 확연히 늘면서 기계와 인간의 유사성을 유추하는 사고도 나왔다. 인간도 기계라는 환상으로 젖어들었다. <은하철도999>가 대표적이다. 주인공 철이가 기계의 몸을 얻고자 하는 것, 영생불사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영생불사가 인간을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다. 전 교수, 인간관이 굉장히 동요하면서 인간이라는 좌표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진 어떤 추세를 든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어 마음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칼을 대서 얼굴을 바꾼다. 예수와 석가모니는 자기 몸을 괴롭혀가면서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 고행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해 고행을 한다. 헬스클럽은 고행의 장소다. 내면보다 신체에 집중하고, 인간은 물화된 존재가 되고 있다. 또 사람을 규정하는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다. 예전엔 이름 석 자가 사람을 규정하는 정체성이었다. 거기서도 성은 조상으로 물려받고, 중간은 돌림자, 자기 것은 한 글자였다. 요즘은 성도 부모 성을 같이 쓰는 등 이름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몫이 커졌다. 재산이 인간의 평가기준으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인간이 점점 더 물질화되고 기계화되고 마음을 돌보지 않는 몸 중심이 되고 있다.”

인간이 믿어온 신이 변하고 있다. 신은 실은, 인간본성에 대한 정의를 표상했다. 인간이 이렇게 돼야한다는 믿음의 산물이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이것이 벽화로 드러났다. 그때는 인간이 동물보다 못함을 인정했다. 신석기 시대, 사람을 닮은 신이 등장했다. 종족 번성을 빌었다. 청동기 시대, 동물과 인간을 합체했다. 스핑크스가 대표적이다. 동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철기시대에 들어서, 동물에서 벗어난 인간 자체의 모습을 신으로 상상했다. 인간이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신을 생각했고, 그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겼다.

“인류가 일정 기간이나마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게 된 것은 신석기시대 농경이 시작된 이후의 일입니다. 그들은 밭을 일구고 집을 지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신석기시대 집터나 농경지 터가 발견되곤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땅에 남긴 무늬를 ‘터무니’라고 합니다. 인류 문명은 터에 무늬를 새기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터무니없다’는 말은 근거 없다, 허황하다 등의 뜻입니다.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기에 이런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p.275)

그렇다면, 지금의 새로운 신은? “기계다. 장기가 고장 나면 장기를 만들고, 체세포를 복제한다. 인간은 그렇게 영생불사를 꿈꾼다. 이게 좋은 것이냐. 결론을 내리자는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점을 찍고 있는가. 돈, 기계, 등으로 만들어진 다차원적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휩쓸려가면서 1차 대전 즈음의 인간형으로 갈 수 있다. 요즘 사람을 반동이라며 학살을 연상케 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오늘 한 탤런트가 안철수 전 후보와 관련해서 할복을 말해서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돼 가는지 모르겠다.”

“역사는 한 번 가르쳐 준 것을 잊어버리는 자에게 매우 가혹합니다.”(p.313)




트위터를 보면, 1, 2, 3과 같이 나눠서 하더라. 대개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요즘 좀 바빠져서 하루에 1시간 정도만 트위터를 본다. 트위터에 글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는데, 140자에 맞춰야 하다 보니 하나를 올리는데 5~10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은 깊다』의 경우, 오랫동안 축적된 것을 쓴 것 같은데,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쓰는지? 후속편을 쓸 계획도 있나?

『서울은 깊다』를 구상할 때부터 그걸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현대까지 쓸 생각이었는데, 내용이 길어져서 그리 못했다. 뒤쪽은 바로 쓰려고 했는데, 산다는 게 그렇잖나(웃음). 그래서 손놓고 있다가 작년에 돌베게(출판사)에서 독촉하더라. 한겨레21에도 연재하고 있다. 2주에 15~20편씩 썼으니 300매 정도 됐다. 1년 정도 그랬으니 몇 년 더 있어야겠네. 자료는 많이 구해 놨다. 내가 하는 일이, 험하게 말하면 지저분하다. 공공기관 등에서 유물 감정을 할 때 평가단으로 참가도 하는데, 그런 것을 통해 사료를 모은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해온 사업이 한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자료를 정보화했다.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후손들에게 득이 될 만한 사업을 했다. 그런 것들이 학자들에게 도움이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을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정말 공이 있는 건가?

누구나 공과가 있다. 공과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잘한 것이 있겠지. 사람은 죽을 때 평가가 된다. 아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안 하고 물러났다면, 쿠데타도 묻혔을 것이다. 공이 아무리 많아도, 그가 남긴 유산인 독재, 유신, 사법살인은 어떤 공을 세워도 그 부분을 덮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말 공이 있는가. 제3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사회의 중요한 재원인 지식, 정보, 기계 등을 군대가 독식하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불가피하게 군사독재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나, 그것이 군사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급한 정치인에게 역사의식 없는 국민은 다루기 쉽습니다. 국민의 역사의식을 제 편한 대로 바꾸려 드는 정치인은 스스로 저급한 정치인임을 폭로하는 셈입니다. 그런 정치인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역사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는 성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속지 않고 살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p.77)

역사학 하겠다고 하니, 집에서 먹고사는 문제 등으로 고민한다. 역사학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거라고 보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역사학과에 가겠다니까,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선생에게 맞았다. 역사학, 인문학을 하는 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다. 그건 돼지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까를 보면, 지금이 그런 시기다. 인간이 인간다움에 대한 회의, 스스로 참담함을 느낀 건,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력이 얼마나 짧으냐면, 인간이 반성하고 그게 얼마나 가느냐면, 한 세대밖에 못 간다. 지금은 인문학이 문제가 아니고, 인문학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인간다움을 고민하는 삶이 안 된다면 사회가 망한다. 자각이나 각성은 시작됐다.

“언젠가 트친 한 분이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Carr의 정의를 뒤집을 수 있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6)



img_book_bot.jpg

오늘 역사가 말하다
전우용 저 | 투비북스(TOBEBOOKS)
우리 일상과 사회의 관심거리가 되는 소재와 주제를 다룬 역사이야기 300편이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메신저이자 우편배달부를 자처하며 ‘바로 지금’화제가 되는 것들의 과거를 탐색하여 그 내용을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준다. 과거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세밀하며 흥미롭고, 역사의 메시지는 통렬하다. 주제는 총 300가지로, 인물, 정치, 사회경제, 문화, 학문과 민족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무심코 쓰는 생활 어휘부터 첨예한 독도 문제까지 일상과 세태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아내와의 약속, 명예훼손 때문에 영화는 만들지 못했지만…” - 우석훈

$
0
0

다양한 저서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의 최근 활동은 조금 예상을 뛰어넘는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그의 새로운 책 『모피아』이다. 이제까지 많은 저서를 발표했던 그이기에 ‘우석훈이 새 책을 쓴 게 무슨 대수인지 모르겠다’던 사람들도, 장르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돌연 호기심을 갖는다. 경제학자로서 그의 모습 뒤에는 영화 기획자로서의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 특히 우석훈의 강연을 들어 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인지 알게 된다. 대중들의 남다른 호기심은 그런 이유들에게 비롯된다. ‘우석훈이 어떻게’라는 의아함 대신 그의 소설이 담은 내용이 궁금한 것이다.

제목 ‘모피아’는 재정경제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재경부 출신 관료들이 산하 기관을 장악해 마피아와 같은 세력을 구축하고 경제계를 장악하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이렇듯 경제학자인 그가 경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는 것은 독자들의 기대감을 높이는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소설의 간략한 내용은 이러하다. ‘경제 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고 새롭게 들어선 ‘시민의 정부’가 속칭 ‘모피아’들이 기획한 ‘경제쿠데타’로 국권을 찬탈 당할 위기에 놓인다는 것. 작가는 한국은행 팀장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주인공 오지환과 모피아 간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집중력 있게 풀어냈다. 대선이 끝난 지금,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지도자 그룹은 아마도 그의 소설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소설이 2014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상당 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우리 사회가 거쳤던 어떤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 역시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했다고 고백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제하자면 우석훈의 이번 책 『모피아』는 어쨌든(?) 픽션이다.


증오의 힘으로 썼다

얼마 전 겨울비가 오는 신촌의 한 카페에서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과 함께하는 저자의 강연회가 있었다. 우석훈 교수는 여전했다. 편안한 운동화에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캐주얼한 복장으로 등장한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최근의 근황을 설명했다. 이윽고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책을 쓴 동기부터 털어놓는다. 그런데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은 지난 2011년 9월~10월경이었어요.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과거 론스타에 와환은행을 팔아넘긴 이들이 누구인지 알았거든요. 하지만 녹음을 할 수도 없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죠. 학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하여간 일단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는 2011년부터 한국 사회와 사람들을 “증오 위에 살아온 삶”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는 반공이라는 증오 위에 세워졌다고도 했다. 1986년 대학을 들어가 운동권을 접한 그 역시도 당시 많은 대학생들처럼 대통령을 증오했으며 군사정권과 싸우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군사정권이 이어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정권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죠. 하지만 하다보니까 이 역시 증오더라고요. 바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증오였던 거죠. 우리나 저쪽이나 증오하며 산거에요. 애정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말 뿐이었지 우린 증오만 갖고 살았어요. 그렇게 해서 만든 세상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이렇듯 증오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된 그이지만, “이 책만큼은 증오의 힘으로 썼다”며 쓴 웃음을 지어 보인다. 과거 외환은행이 올스타에 팔리는 과정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과정은 대중들이 모르는, 몇몇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진실을 의미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히기는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생각한 첫 장르는 영화였다. 처음 생각한 제목은 ‘모피아’가 아닌 ‘론스타4’ 였다. 이유인 즉, 론스타에는 1, 2, 3, 4가 있는데 외환은행 매각 당시 상대가 론스타4였기 때문이다. 그는 “론스타4의 주인이 외국인 자본형태를 띈 한국인일 것”이란 의혹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증거를 다 잡을 수가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외환은행 이야기는 뒤로 빼고 올해 2월 시나리오 형태로 시작하게 됐어요. 예산은 15억 원 정도로 최소화하고 한정된 세트와 광화문 여의도 사이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로 했죠. 하지만 시나리오 트리트먼트까지 만들어 놓고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어요. 이야기가 복잡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연출을 맡기기 쉽지 않았어요. 결국 영화로 찍으려면 제가 연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제 아내와 약속한 것이 연출은 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결국 4월부터 방향을 바꿨죠.”

명예훼손의 문제도 걸림돌이 됐다. 사실을 직시해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애매한 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면 성립되는 것이 명예훼손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재판에 걸려 끝까지 가서 이긴다고 해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스크린에 걸 수가 없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소설이 됐다.

“책은 괜찮았죠. 또 배경을 미래로 설정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문제는 어떻게 쓰느냐인데, 사실 제가 문민정부 시절 강사를 할 때 소설 습작을 많이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한번도 13페이지를 넘어가 본 적이 없었어요. 앞의 서너 페이지는 정말 재미있게 썼지만 열 페이지가 넘어가면 이야기를 모으지 못했죠. 이번처럼 완성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작업 에피소드

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소설의 작업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법정물로 잡았던 틀은 과감히 버려야 했다. 시나리오 과정에서 인기 없었던 인물들은 모두 제외시키기도 했다. 한번은 스릴러로 가는 것도 고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소설을 이끌어 간 것은 주인공들의 사랑과 모피아와의 대결이 됐다.


“사실 좀비나 흡혈귀가 나오는 스릴러는 제가 한국 최고라고 자부하거든요.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멜로가 약해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그다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개인적인 입장에 따라 버전을 달리하며 죽였던 등장인물을 되살리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주인공의 딸인 오현주였다. 최초 버전은 그의 취향대로 스릴러적인 스토리를 가미해 딸이 죽게 되는 스토리. 그러나 최종 버전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그의 신상에 작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아기를 갖게 됐거든요. 지금 1백일이 좀 지났어요. 원래는 딸이 죽어야 되는 건데 못 죽이겠더라고요. 그런데 그 부분을 빼고 나니까 딸은 괜히 들어간 게 되더라고요. 어쨌든 그게 9월까지 작업이었어요.”

첫 장면의 배경이자 치열한 환율 전쟁의 한 축이 된 케이맨 제도의 아이디어는 그의 아내에게서 나왔다. 도입부분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 “돈 이야기는 무조건 케이맨 제도”라며 조언을 해 준 것. 케이맨 제도는 휴양지이지만 한편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세회피처이기도 하다.

“한국의 100대 기업도 케이맨 제도에 뭔가를 만들어 놓고 있다고 해요. 찾아보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본사도 거기더라고요. 빌게이츠의 별장도 있다고 하고요. 아무튼 케이맨 제도는 인구 5~6만 명 정도의 조그만 영국령 도시지만, 걸어 다니다 보면 유명인을 만날 수 있기도 하는 특수한 곳이에요.”

우여곡절을 거쳐 원고를 완성하고 지인들에게 평가를 부탁했다는 그.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평가가 완연히 달라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고. 결론적으로 남자들의 의견은 무조건 배제(?) 하는 선택을 했다.

“남자들이 저한테 주로 한 이야기는 두 가지였어요. 우선 경제 이야기를 더 많이 넣어달라는 것이었죠. 그 말을 듣고 경제 이야기는 더 빼버렸어요(웃음). 또 하나는 주인공을 고독한 갈등과 결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강한 라인으로 잡으라는 것이었어요. 또 빼버리고, 수동적이고 피동적이면서 여성이 없으면 힘을 못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죠. 반면 여자들이 이야기했던 것은 멜로라인에서 경쟁력을 볼 수가 없다는 거였어요. 저는 경제 이야기를 하면서 연애이야기를 곁들이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독자들은 어려운 경제 이야기에 관해서는 가차 없다더군요. 그래서 연애 이야기를 다시 많이 삽입했죠.”

소설을 끌어가는 주된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주인공과 무기녀 김수진 사이에 멜로라인.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첫 버전의 원고에서 여성 독자들의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수진이 왜 주인공 오지환을 좋아하게 됐냐는 질문이었는데, 저는 사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냥 좋아지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여자들은 딱 잘라서 ‘그런 것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보름을 고민해서 ‘평범함’이란 매력을 찾아냈어요. 잘나가는 여성이 자신을 추켜세우는 주변과 달리 평범함에 매력을 느낀 것이라고 했더니 그제야 이해를 하더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마지막 버전인 소설 『모피아』로 탄생한 것이다. 모피아를 모티브로 해 경제 공무원들의 세계를 풀어내겠다는 그의 처음 결심과는 달리 드라마가 강한 소설인 된 것.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은 그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자산으로 남게 됐다.

“사람들의 관계를 만드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웃음). 제가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도 아니고, 잘 몰랐거든요. 하지만 몰랐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연애 이야기는 많이 해본 사람이 더 못해요. 먼저 꼬임을 받아온 장동건 같은 사람은 연애편지를 쓸까 말까하는 애틋함을 모른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늘 애틋했으니까요(웃음).”


우리는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후, 누구 한 명 잘못했다고 나섰던 사람이 있고, 누구 한 명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997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후, 감옥에 간 사람은 물론이고, 사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사태 때, 실업으로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붕괴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착하디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나 자신들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 대신,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늘도 힘겨운 삶을 버텨낸다.”
-우석훈의 소설 『모피아』
그는 소설을 통해 경제가 발전하면서도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한국의 이상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국민은 가난해지지만 기업은 이득을 본다는 것.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고 해외에서 관광객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지금 같은 상황은 절대 좋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우리나라 경제는 5% 성장했거든요. 그게 제가 봤을 때 한국이 할 수 있었던 피크 치라고 봐요. 그때 환율이 900원대였어요. 노무현 정부는 900원 대의 원화를 이명박 정부에 넘겨줬거든요. 그랬더니 금방 1200원으로 만들어 놓더군요. 기름 값이 세다고 하잖아요. 환율이 900원대였으면 다른 아무런 조치가 없어도 지금 기름 값은 4분의 1 정도 저렴했을 거예요. 국민들 기름 값 오른 것을 기업들에게 준거죠. 국민들은 앉아서 빼앗긴 거고요. 한국에서 처음 대학생들이 해외여행을 갈 때가 1990년대였어요. 배낭여행이라는 게 생겨나며 일단 유럽 3개국 돌아주고, 졸업 전에 중남미 한번 도는 것이 유행이었죠. 1990년대 대학생들은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 우리나라는 훨씬 잘살게 됐잖아요. 하지만 지금 대학생은 해외여행을 못가요. 경제가 힘들다고 하는데, 사실 돈이 부담이 된 거거든요. 그건 개인이 가난해진거 보다 우리 원화가 가난해진 거예요. 반면 그 동안에 일본 중국 사람들이 많이 관광을 왔죠. 우리가 가야 좋은 거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는 걸 현 정부에서는 관광입국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강한 나라가 되면 돈이 풍부해서 자기네 국민들이 외국으로 놀러가거든요.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1990년대보다 가난해진 거예요.”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가 그 배후로 지목하는 것이 바로 모피아들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군사정권을 거쳐 문민정부, 여야가 바뀌는 정권교체가 연이어 이어졌음에도 오직 모피아들만은 굳건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는 유학생활을 했던 프랑스를 예로 들며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는 파리 10대학과 1대학의 싸움이라고 해요. 파리 1대학이 보수 쪽이라면 10대학은 사회당 계열이에요. 10대학을 선택한 사람들은 은행가고 싶은 사람이 선택을 해요. 국책은행이죠. 그런데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1대학 출신들로 모두 교체가 되요. 제가 말하는 경제 권력이라는 것도 정치권력처럼 바뀌는 거였어요. 하지만 한국에 오니까 정권이 바뀌어도 경제 권력은 계속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그러나 대중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내막을 그는 앞으로도 소설의 힘을 빌러 써볼 작정이라고 한다. 교육마피아와 토건족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다. 비록 더디긴 해도, 우리사회는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이들의 힘으로 성숙해져 왔다. 그의 첫 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문득 우석훈이란 사람이 발하는 빛의 강렬함이 느껴졌다. 등불이 밝히는 곳에는 온기와 희망이 깃들게 마련이다.



img_book_bot.jpg

모피아
우석훈 저 | 김영사
이 소설은 2014년을 배경으로, ‘경제 민주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롭게 정권을 창출한 ‘시민의 정부’가, 속칭 ‘모피아’라 불리는 재정경제부 출신 인사들이 기획한 ‘경제쿠데타’로 인해 국권을 찬탈당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는 한국은행 팀장에서 청와대 경제특보로 자리를 옮긴 주인공과 모피아 간의 치열한 두뇌싸움,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놓고 벌이는 한판 승부를 통해 물리적인 힘의 대결이 아닌, 전 세계 네트워크 망을 총동원한 ‘미래의 전쟁’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만약 한옥에 살았어도 자살했을까 - 한옥 연구가 이상현

$
0
0

한옥 연구가 이상현 씨가 진행한 한옥 강의가 아트앤스터디 인문 숲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출간 기념으로 개최한 행사로, 시공아트가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했다. 책의 저자인 이상현 씨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갔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회사를 나왔지만, 지금은 한옥을 연구하는 한옥 연구가로 활동 중이다. 한옥 개론서인 『즐거운 한옥 읽기 즐거운 한옥 짓기』를 2007년에 출간했고, 어린이를 위한 한옥 책 『우리 한옥 고고씽』을 쓰기도 했다.

 

 

전작이 개론서 성격이었다면, 2012년에 낸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은 실전 편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전국 각지의 한옥을 돌아보고 각 건축의 구조와 역사 등을 개인의 감상과 함께 책에 기록했다.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는 병산서원, 제주 지방색이 잘 드러난 성읍민속마을, 근대와 전통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성공회강화성당 등 총 25곳을 다루었다.

 

병산.jpg

병산서원(ⓒ병산서원 홈페이지 http://www.byeongsan.net/)

 

왜 인문학이 유행인가?

 

이날 강연의 제목은 ‘한옥으로 인문학 읽기’였다. 이상현 씨는 인문학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요즘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왜 그럴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본의 위기, 다른 하나는 학문의 위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인문학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는 두 가지 상반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소비에트를 비롯한 동유럽의 몰락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보여줬다. 그렇지만 일부 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경제침체에 허덕인다. 유럽은 만성적인 저성장과 고실업 문제에 시달린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다. 미국은 고질적인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며 급기야 2011년 신용평가 기관인 S&P로부터 신용 강등이라는 수모를 받았다.

 

자본이 어려운 시기, 현대 학문에는 답이 없다. 비록 예전보다 세밀화되고 전문화된 분과 학문 체계가 많은 지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사람들에게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빈부 양극화는 심해지고, 세계 곳곳에 발생한 내란과 민족 갈등, 종교 갈등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러한 문제에 현대 학문이 무능하기 때문에 인문학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다. 현대 학문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관찰한다면, 인문학은 숲을 보는 학문이다.

 

017.jpg

 

위기에 빠진 집

 

인문학을 향한 관심이 서서히 생겨나는 와중에 한옥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현대 학문이 알려주지 않는 지혜를 인문학에서 구하려는 것처럼, 현대 주거 형태로 잃어버린 가치를 한옥에서 찾는 것이다. 이상현 씨는 현대 주거 공간도 자본이나 학문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우리가 사는 집이 기능화되고 있다. 집이 편해야 하는데, 집에서 오히려 우리는 불편하다. 요즘 부는 힐링 열풍도 따지고 보면, 집의 위기와 관련 있다고 봐야 한다.

 

사회에 따라 주거 문화가 다르겠지만, 한국의 그것은 독특하다. 주거 형태 중 가장 높은 비율이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도시 빈민을 위한 공공 주택의 성격으로 도입한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다른 주거 형태보다 가격도 비싸다. 아파트를 향한 한국 사회의 사랑이 신기해 프랑스의 한 인류학자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국가, 건설기업, 중산층이 뜻을 모았기에 아파트 공화국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는 단기간에 도시의 주거난을 해결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건설기업은 돈을 벌려고 했으며, 한국의 중산층은 아파트로 자신의 부를 키우려 했다. 이들이 모두 만족하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고급 주택이어야 했다. 아파트는 다른 주거 형태를 압도했다. 아파트 거래로 돈을 번 사람이 늘어났다. 부동산 시장이 성장하던 시기, 아파트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이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지금, 아파트를 향한 한국사회의 애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묻기 시작한 사람이 늘어난다. 집의 본질은 사는 공간이지 사고파는 재화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장점이 많지만, 아파트는 개성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자연과 단절되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다. 이 두 가지 점만 본다면, 아파트는 살기 좋은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옥은 어떨까.

 

한옥,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한옥은 개성이 넘치는 주거 형태다. 이는 한옥 만드는 과정을 알면 이해가 간다. 한옥을 직접 짓기도 하는 이상현 씨는 한옥 건축법을 ‘대충’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현대 건축은 세밀하게 만들어진 건축 도면을 따라 이에 맞게 만들어진다. 한옥은 그렇지 않다. 한옥을 만드는 작업 대부분이 목수의 체험에 의존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론이 없는 주먹구구식 건축법이지만, 덕분에 목수의 개성이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게다가 목수의 경험에 의지하는 한옥 건축 방식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대학에서 이론만 공부하고 현장에 투입된 사람보다는 수십 년 동안 실제로 집을 만든 목수가 더 좋은 집을 만들 확률이 높다.

 

서양의 고전 건축이 자연과 단절된 공간이라 한다면, 한옥은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이다. 터를 잡는 데에서부터 지붕선을 올릴 때에도 주변 경관을 고려했다. 집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도 가공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용할 때가 많다. 대들보나, 기단을 쌓는 데 쓰는 돌이 그렇다. 마당이라는 존재는 자연과 조화를 고려한 상징이다. 우리 선조는 마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원칙적으로 한옥은 공간마다 마당이 있어야 한다. 안채에는 안마당, 행랑채에는 행랑마당, 문간에는 문간마당, 이런 식이다.

 

014.jpg

지붕선과 자연이 어울린 풍경을 설명하는 저자

 

한옥에서 마당은 건축물 밖에 위치한다. 이는 특이한 양식이다. 추운 지방인데 밖에 마당을 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건물 밖에 벽과 같은 구조물이 아니라 마당을 둔다는 의미는 외풍과 마주한다는 뜻이다. 난방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마당을 밖에 두기가 어렵다. 잘 알다시피, 한옥은 온돌로 난방 문제를 풀었다.

 

“근대 이전에 난방 문제를 푼 것은 세계 전체를 봐도, 한옥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서양은? 서양은 가축과 함께 잤다. 과거 프랑스 왕실의 기록을 보면, 날씨가 추워서 개를 여섯 마리 끌어안고 잤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특이한 상황이 아니다. 추위를 피하고자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서양에서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우리는 구들이라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이러한 장점이 있지만, 한옥은 그동안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불편하다는 인식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아름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현 씨는 고전 미학을 한옥에 부당하게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고전 미학 이론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에서는 비례, 완결성, 밝음을 아름다움의 3요소로 규정했다. 이에 근거하여 혹자는 한옥에는 비례미도, 완결성도, 밝음도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한옥을 판단하면 생기는 문제가 두 가지라고 봤다. 첫째, 서구의 잣대로만 보지 말고 다르게 본다면 한옥에도 나름의 비례미와 완결성, 밝음이 존재한다. 둘째, 서양이 버린 고전 미학을 한옥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칸트 이후 미학에서는 아름다움이 대상 자체에 있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아름다움은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칸트 이후 미학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라는 말 대신, '미적 체험'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이상현 씨는 “우리가 한옥에서 미적 체험을 느낄 수 있는지는, 우리가 한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렸다.”라며, 열린 마음으로 한옥을 대하도록 주문했다.

 

026.jpg

 

한옥 중심의 사회에서 살았다면 자살이 이렇게 많았을까

 

최근 전직 야구선수인 조성민 씨가 목숨을 끊으며 자살이 화두가 되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한국사회에는 너무 많다. 한 개인이 자살을 결심할 때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이상현 씨는 ‘집’, 즉 거주공간을 꼽았다. 현대인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성스러움이 없다. 예전에는 집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보았다. 가택 곳곳에는 성주신을 비롯하여 측신, 철융신 등이 존재했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집을 더는 경배하지 않다 보니, 집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다.

 

물론 자살하는 이유를 주거 공간의 변화로만 볼 수는 없다. 경제 구조와 공동체 형태가 변하면서 자살이 늘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이 자연과 동떨어지고 획일화된 건축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의 주거 공간이라면 자살률을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사람은 목숨을 끊으려면, 뒷산에 갔다. 뒷산에 가는 도중에 자연을 만나며 생각을 바꾼다. 주변에 널린 생명력을 보면서 죽음이 아니라 삶을 택했다. 이런 과정이 아니라도, 한옥에는 앞서 다뤘듯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자연이 공존한다. 꽃 향기와 풀 내음이 사계절마다 바뀌는 한옥에서 자살을 생각하기란 아파트에서 자살을 결심하기보다 어렵다.

 

한국사회는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며 근대화 이전에 있었던 문화를 많이 잃어버렸다. 한옥도 그 중 하나이다. 한옥을 만드는 장인이 많이 사라지면서, 예전에 지어진 한옥을 복원하거나 보수하는 작업이 어렵다고 한다. 선조가 살았던 공간이라는 박물학적 호기심 외에도, 획일화되고 성스러움이 사라진 현대 거주 공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한옥을 향한 관심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img_book_bot.jpg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이상현 저 | 시공아트

한옥 연구가로 활동하고,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한옥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옥 목수일까지 익혔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 민족문화나 동양철학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친근하고 아름다운 글이 되도록 노력했다. 책에는 저자가 2년간 소중한 인연을 맺은 24곳의 전통 건축이 모두 들어있다. 24곳 중 17곳은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으로서의 한옥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한옥의 색다른 디자인에 놀라고, 독특한 분위기에 어깨를 들썩이게 될 것이다.



“빵 만드는 방법,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요”

$
0
0

스무 명 이상의 독자가 눈 내리는 날씨를 뚫고 모였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도쿄팡야’의 파티시에(patissie) 후지와라 야스마와 고바야스 스스무의 ‘일본 빵 홈베이킹 클래스’를 수강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빵이 일상으로 깊이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외식 문화보다 더욱 발달한 일본 가정 요리 문화의 영향일 것이다. <카모메 식당>, <남극의 셰프> 등 일본 영화나 소설에 유독 먹는 장면이 자세히,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도, <심야 식당> <초밥왕> 등 만화에서 다룬 음식에 대한 유난한 관심도, 어린 시절 식탁에서 누리던 맛에 대한 기억이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p.9)




일본 빵 만들다: 멜론빵

고바야시 스스무 파티시에와 함께 ‘멜론빵’(p.98)을 먼저 만든다. 멜론빵은 일본에서 대중적인 빵으로, 도쿄팡야의 인기 메뉴이기도 하다.

“크림빵과 카레빵은 일본에서 처음 개발한 빵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낯선 멜론빵은 단팥빵과 함께 일본인들이 단연 ‘추억의 빵’으로 꼽는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빵이다.”(p.6)

오븐은 210도로 예열한 상태에서 ‘빵 반죽’ 만들기에 우선 들어갔다. 제대로 된 빵을 위해서는 반죽을 반드시 잘 해야 한다.

[빵 반죽 재료]

물 58g, 생이스트 4g, 달걀 10g, 강력분 100g, 설탕 12g, 소금 1.7g, 버터 10g

1. 볼에 물, 생이스트를 넣어 불린 후 달걀을 넣는다.

“반죽의 발효를 돕는 식재료로, 생이스트와 드라이이스트 두 종류가 있다. 생이스트는 빵의 발효를 활발하게 돕고 이스트의 맛이 진하게 남는 것이 특징이다. 미지근한 물에 풀어 사용하며 유통 기한이 3~7일 정도로 짧다. 반면 드라이이스트는 유통 기한이 1년 정도로 길며, 인스턴트 드라이이스트는 물에 풀지 않고 바로 밀가루와 섞어 사용할 수 있다.”(p.27)

2. 볼에 강력분, 설탕, 소금을 넣어 고루 섞은 후, 1을 부어 매끄러운 상태가 될 때까지 반죽한다.

이때, 반죽이 마냥 쉽지 않다. 힘들다. 물을 조금씩 발라주면서 반죽을 한다. 반짝반짝 윤이 날 때까지 반죽을 계속 하는데, 동글동글한 형태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 모두들 힘이 꽤나 드는 표정이다. 손에 열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반죽이 쉽지 않다. 밀가루에 열이 전달되면서 반죽을 방해한다. 고바야시 파티시에의 손길이 거쳐 가면서, 편차는 있지만, 동그란 빵 반죽이 만들어진다. 탱탱하다. 느낌이 다르다.

3. 2의 표면에 버터를 발라가며 치댄 후, 약 1시간 상온에서 발효한다.

물로 어느 정도 동그란 형태의 반죽이 나온 뒤 버터를 발라준다. 노란색 버터가 입혀지면서 반죽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버터의 노란색이 요리본능을 좀 더 자극한다. <누들로드>의 이욱정 PD가 르 코르동 블뢰 런던 요리학교 생활을 그린 『쿡쿡』에서 말한 프랑스 요리의 진수인 버터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버터는 ‘먹을 때’만 쾌감이 있는 게 아니라 ‘넣을 때’도 쾌감이 있다. 노란색의 먹음직스러운 색감, 미끈거리는 덩어리의 감촉, 그것을 손으로 집어 프라이팬에 던져 넣을 때의 짜릿함!”(『쿡쿡』, p.78)

4. 3의 반죽을 4등분한 후 작은 공 모양으로 만들어 랩을 씌운 후 약 30분 휴지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공이 완성됐다. 이것을 다시 4등분 하여 작은 공을 만든다. 고바야시 파티시에는 독자들이 만든 공의 크기가 다른 것을 골라내며 섬세하게 다듬어 준다. 파티시에의 손길이 닿으면 뭔가 달라진다.

이어 멜론 쿠키 반죽을 만든다.

[멜론 쿠키 반죽 재료]

버터 21g, 설탕 64g, 달걀 25g, 박력분 90g, 시판 멜론즙

1. 버터를 중탱해 녹인 후 설탕을 넣어 고루 섞는다.
2. 1에 달걀, 멜론즙을 넣어 고루 섞는다.
3. 2에 박력분을 넣어 고루 섞은 후 약 1시간 냉장 보관한다.

멜론즙에 대한 팁. 도쿄팡야는 방산시장에서 멜론향이 나는 ‘멜론에센스’를 쓴다. 당연히 멜론을 즙을 내서 사용해도 된다. 다만 멜론즙은 멜론에센스보다 물기가 많다. 여기에 말차를 더해 말차멜론빵도 만들 수 있다. 고바야시 파티시에가 볼에 손을 넣고 반죽하는 장면을 보면, 예술 같다. 장인의 솜씨가 그러하듯이.

빵 반죽이 발효되고 쿠키 반죽을 냉장 보관해 식힌 뒤, 본격적인 멜론빵 만들기가 이뤄진다. 빵 반죽과 쿠키 반죽을 꺼내놓는다.

1. 멜론 쿠키 반죽을 동그랗게 빚은 후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편다.
2. 빵 반죽 위에 1의 멜론 쿠키반죽을 감싸듯이 올린다.
3. 2의 표면에 분무기로 물을 살짝 뿌리고 설탕에 찍어 설탕 옷을 입힌다. 이때 너무 퍼지지 않도록 하고 높이가 약간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
4. 3에 칼집을 3~4개 낸 후 오븐 팬에 올린다.
5. 뜨겁게 데운 오픈 팬을 4의 오븐 팬 아래 겹쳐 약 40~50분 발효한다.
6. 5를 오븐에서 약 11분 구워 완성한다.

“가족에게 마음을 담은 빵을 직접 구워주고 또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건 참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다. 소박한 재료로 만든 담백한 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본 빵은 우리와 비슷한 식재료를 사용해 유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빵부터, 낯선 재료로 흥미를 더하는 빵까지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만드는 방법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p.9)




일본 빵 만들다 : 프루츠 롤케이크

이 과정, 향학열이 뜨겁다. 독자들은 파티시에의 몸짓과 손짓, 말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부엌(키친)에 대한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말이 떠오른다. “부엌은 음식의 흐름, 물의 흐름, 불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있는 온갖 흐름의 공간이며 계약 관계, 욕망 관계, 권력 관계가 교차하는 관계의 공간이다.” 일본 빵 쿠킹 클래스는 여기에 각각 하나의 흐름과 관계가 더해진다. 신경의 흐름을 덧붙이고, (일시적이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추가된다.

후지와라 야스마 파티시에는 ‘프루츠 롤케이크’(p.148)를 진행한다. 일본에서는 롤케이크 전문점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일본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이 이 디저트 빵, 롤케이크다.

[시트 재료]

달걀 330g, 설탕 100g, 꿀 9g, 우유 28g, 버터 9g, 쌀가루 110g

“밀가루와 쌀가루의 차이는 쌀가루가 좀 더 가벼운 느낌이다. 도쿄팡야에서는 밀가루 알러지 등 밀가루를 먹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옥수수, 쌀가루, 코코아 등을 쓴다.”

준비과정은 다음과 같다. 오븐은 180도로 예열한다.
1. 볼에 달걀, 설탕, 꿀을 넣어 데우듯이 중탕한다. 믹서에 넣고 돌릴 때, 세게 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계란이 42도가 될 때까지 한다. 계란은 42도가 되면 액체처럼 된다. 물처럼 될 때까지 해주면 쉽게 섞을 수 있다. 끓지 않도록 주의한다. 계란말이가 돼선 안 된다.
2. 볼에 우유, 버터를 넣어 중탕한다. 버터도 녹여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믹서를 돌릴 때 좋지 않다. 믹서로 돌리면서 반죽이 약간 끈끈하다 싶을 때는 좀 더 천천히 돌린다. 작은 거품이 있는 것이 좋다. 되도록 거품이 안 죽도록 부드럽게 섞어주는 것이 요령이다.
3. 쌀가루는 체에 내린다. 세 번에 나눠서 조금씩 내리면서 2와 섞어준다.
4. 딸기는 2~4등분 하고 키위는 껍질을 깐 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이어서 ‘시트’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1. 준비과정의 1과 2를 섞에 빠르게 휘핑한다.
2. 1의 휘퍼 자국이 남을 정도로 단단해지면 천천히 휘핑해 반죽을 안정화 시킨다.
3. 2에 쌀가루를 조금씩 넣어가며 고루 섞는다.
4. 오븐 팬에 유산지를 깔고 3의 반죽을 부어 고루 편다.
5. 4를 오븐에서 약 11분 구운 후 충분히 식힌다. 익은 반죽을 롤케이크 시트로 사용한다.

[롤케이크 필링 재료]

생크림 200g, 설탕 20g, 딸기 6개, 키위 1개, 귤(통조림) 8개, 복숭아(통조림) 1/2개

롤케이크 시트가 충분히 식은 뒤, 롤케이크 완성을 위해 필요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볼에 생크림, 설탕을 넣어 빠르게 휘핑해 단단한 형태의 생크림을 만든다. 80% 가량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생크림을 뒤집었을 때 금방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오버 믹싱 하는 것은 좋지 않다.
2. 1을 시트에 고루 펴 바른다.
3. 2에 일정한 간격으로 같은 종류의 과일을 배열한다.
4. 3을 김밥 말 듯 돌돌 말아 올린다.

후지와라 파티시에가 돌돌 말아 올리는 시범을 보인다. 독자들이 ‘우와~’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그러나 시범은 시범일 뿐. 자신의 앞에 놓인 롤케이크 시트를 돌돌 마는 것은 현실이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겁을 먹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 이 한 가지. ‘망한 것은 없다. 다를 뿐이다.’ 거침없이 내 앞의 시트를 말았다. 뚱뚱하다. 그런 나는 해냈다. 뿌듯하다. 헌데, 생크림에 들어가는 설탕을 보면서 나는 새삼, 이 백색의 것에 눈길을 돌렸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유혹이었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 것은 해롭다고 블랙만 고집하면서 설탕 한 움큼이 들어간 달콤한 케이크는 꼭 곁들인다. 그 불균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기름지고 달콤한 불량함이 외롭고 불안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니 어쩌란 말인가.” (『쿡쿡』, p.251)

5. 4를 약 2~3시간 냉장 보관한다.

“롤케이크를 돌돌 말아 왜 2~3시간씩이나 냉장고에 넣어 두냐고요? 처음에는 과일과 크림, 시트의 맛이 모두 제각각이지만, 시간이 흘러 생크림의 수분이 시트에 적당히 배어들면 시트와 생크림 그리고 과일 맛이 어우러져 훨씬 맛있기 때문이지요. 모양도 훨씬 예뻐집니다.”(p.154)

04.jpg

Q&A

빵이 식고 구워지는 동안, 두 파티시에와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주어졌다.

만들기 좋아하는 빵은 무엇인가?

(후지와라)바게트를 좋아한다. 다만 예쁘게 만들기가 어렵다.
(고바야시)나도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좋아한다. 제빵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크루아상인데, 어렵더라. 딱딱한 빵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다른 식재료 없이 밀가루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바게트와 반죽이 중요한 크루아상을 가장 좋아해요.”(p.22)

분점을 낼 생각은 없나?

좋은 질문이다. 2013년 2월 판교에 분점을 낸다. (강북에는 낼 생각이 없나?) 음, 강북엔 삼청동, 이화여대가 좋다(웃음).

판매가 잘 되는 빵은 무엇인가?

카레빵, 도쿄링고, 말차멜론빵, 단팥빵이다. 한국 사람들은 단팥빵을 좋아하더라.

어떤 이유로 베이킹을 하게 됐나?

(후지와라)뉴욕에 있었다. 뉴욕에 맛있는 빵집이 없어서 거기에 빵집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엔 밥 문화가 없다. 고작 있는 게, 맥도날드다.

베이킹 클래스를 할 생각 있나?

기회가 있으면. 오늘 한 클래스가 우리에겐 처음이다.

왜 한국에 오게 됐나?

(후지와라)친구 소개로 2007년에 왔다. 한국에 오니 일본 빵집이 없어서 하면 되겠다 싶었다. 요즘은 일본 빵집 몇 개가 생겼더라. (웃음)

“도쿄의 유명 빵집인 ‘안젤리카’에서 일하던 제가 한국으로 건너온 것은 2007년이었어요. 한국에 있던 일본인 친구의 지인이 카페를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일본 빵을 구워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거든요. 우연처럼 인연이 닿아 한국으로 왔고, 그로부터 1년 후에는 저만의 빵집을 내고 싶단 생각으로 틈틈이 시장 조사를 했습니다.”(p.17)

그리고 마침내, 빵이 나왔다. 향을 맡았다. 갓 구운 빵이 내 몸을 감싼다. 파티시에 후지와라가 롤케이크를 자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김밥처럼 양 사이드를 잘라준다. 후지와라 파티시에가 자른 면을 보여주니, 감탄이 쏟아진다. 역시, 감탄할 줄 아니까, 인간이다. 물론 남자는 그것을 잘못하니까, 인간이 덜 된 것이고.

쓰고이~, 파티시에의 탄생이다. 커피 만드는 일만큼 빵 만드는 일도 재밌음을 확인했다. 친구들과 가족에게 내가 처음 만든 빵을 선물했다. 처음 만든 빵, 칭찬을 받았다. 그건 빵 맛보다 내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리라.

“빵 굽는 일은 단순히 자신의 실력을 기술적으로 뽐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지요.”(p.201)

“빵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이 제빵사로서 가장 부듯한 순간이 아닌가 합니다.”(p.23)



img_book_bot.jpg

도쿄팡야후지와라 야스마,고바야시 스스무 공저 | 중앙m&b
논현동과 신사동 가로수길의 인기 빵집 '도쿄팡야'의 시크릿 레시피가 담긴 책이다. 도쿄팡야는 2008년 가을 처음 문을 연 이래로 한국에 일본 빵 붐을 일게 만든 주역이다. 두 도쿄팡야의 주인이자 제빵사인 야스마와 스스무는 각자 푸짐하고 든든한 빵과, 섬세하게 맛을 낸 빵을 만들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들이 말하는 서로 다른 일본 빵의 매력도 이 책에 담겨있다. 또, 매장용 레시피가 홈베이킹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빵을 만드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독자들이 따라하기 쉽게 구성되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현유 “스펙으로 스스로를 한정시키지 말라”

$
0
0

평범한 인문학도가 삼성전자를 거쳐 구글 본사의 상무가 되기까지, 김현유의 성공 스토리는 최근 출간된 책 『꿈을 설계하는 힘』을 통해 익히 알려졌다. 취업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순수학문을 기피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김현유는 역사학 전공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교포도 조기유학생도 아닌 그가 미국의 구글 본사 입사에 성공하고 상무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한국에서 마친 토종 한국인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김현유 상무의 오늘을 또 하나의 ‘성공 신화’라 부른다.

<희망콘서트>를 통해 작가는 그 신화의 설계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글로벌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꿈은 신화의 출발점이자 설계도의 밑그림이었다. 꿈을 좇는 과정에서 얻은 크고 작은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는 성공을 이루는 초석이 되고 기둥이 되었다. 그 재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쌓아올린 그만의 비법이 설계도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이제 그 설계도를 여러분 앞에 펼쳐 보인다.




스펙으로 스스로를 한정시키지 마라

『꿈을 설계하는 힘』을 통해, 그리고 ‘희망콘서트’를 통해 김현유 상무는 먼저 그 길을 간 사람으로서 팁을 전해주고자 했다. 어떤 점들이 중요했고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신만의 멋진 길을 만들어 나가기를,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다른 기준 속에서도 더 높게 올라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 다른 위치에 가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차이들과 행동들이 이런 결과를 만드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취업은 ‘시장’이라는 말보다 ‘전쟁’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활용하는 무기의 이름은 스펙이다. 본래 기계나 시스템의 성능을 의미하는 말이었던 스펙(specification)이 사람을 대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했다. 작가 역시 스펙으로 사람들을 설명하고 규정짓는 지금의 상황을 당혹스러워 했다. 하지만 스펙 없이 취업을 이야기하기란 어려워진 지 오래다. 사회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 취업인 만큼 스펙은 사회적 성공의 기본 요건이 되었다. 김현유 상무의 성공 스토리를 듣고 그의 스펙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자신이 가진 스펙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결국 스펙으로 스스로를 한정시켜 버리는 것이거든요. 이미 스스로 자신을 한정하고 들어가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저의 꿈은 글로벌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어요. 역사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건 사실이었어요. 그런데 역사학이라는 나의 스펙으로 나를 한정짓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것을 활용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글로벌한 비즈니스를 하려면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니까 다양한 나라의 역사를 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역사학과 꿈 사이에 나만의 논리를 만들었던 거죠.”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논리를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을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말이 되고 안 되고는 그 다음 문제다. 자신이 어떤 스펙을 갖추었는가와 관계없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자신의 꿈과 연결시킬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고민 끝에 자신만의 논리를 만들어 냈다면 스펙 때문에 스스로 주눅 드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그렇게 자신 있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희망콘서트’를 통해 전하고 싶은 자신의 첫 번째 깨달음은 ‘가진 것을 100% 활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싶고 나의 꿈을 이루고 싶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을 알아서는 안 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알아야 해요.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채워나가기 위해서 오늘 당장 뭘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꿈을 설계하는 일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라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그것을 채워나갈 방법에 대한 고민 끝에 김현유는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대학생이었고, 그때만 해도 학부생을 인턴으로 채용하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학부생 인턴 제도가 보편화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한국 내 외국 기업의 문을 두드리기로 한다. 암참(AMCHAM,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약칭)의 주소록을 구입해 관심 기업들을 선택, 그곳의 외국인 임원들에게 편지를 써 팩스를 발송했다.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도전에 응답이 돌아왔고, 그렇게 생애 첫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그러하듯이 사소하고 하찮은 일부터 주어졌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회를 마주하게 됐다. IT와의 첫 만남이었다. 인턴으로서 직원들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전산과 직원들과 친분을 쌓게 됐고,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IT와 인터넷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턴 경험이 안겨준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인문학도인 그가 좀처럼 접할 일이 없었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턴을 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요. 저는 인턴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어떤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회 경험을 해보지 않고 학교에만 있었다면 하고 싶은 일을 굉장히 막연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내가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걸 의미해요. 이것 역시 저는 사회 경험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은 본인이 찾아야 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마치 잘 맞는 옷처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 커리어와 관련해서 ‘내가 뭘 하고 싶은가’ 막막하게 느껴질 때는 이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세요.”

인턴 경험을 통해 김현유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IT 분야와 발로 뛰며 사람을 만나는 일,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 동시에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금 자신의 단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는 ‘언젠가는 큰물에서 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단계별 장기 계획을 세웠다. 대학생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졸업 후 취업을 하는 것이었지만, 몇 년 후에는 MBA 유학을 가겠다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를 위해서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했고, 대학교 4학년 때부터 MBA 입학에 필요한 GMAT 시험을 준비했다.




자신만의 A게임을 보여줘야 한다

마침내 꿈은 이루어졌다. 삼성전자에 입사해 해외영업부에서 이스라엘 담당 사원으로 3~4년을 근무한 후 MBA 입학에 성공한 것이다.

“MBA 재학 시절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요,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은 언어를 모르거나 문화를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이야기할 줄 모르거나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다닌 UC버클리가 있는 실리콘 밸리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 트위터와 같은 모든 IT 회사들이 탄생한 곳입니다. 새로운 생각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들을 밟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을 빠른 시일 내에 바꿀 수 있는 회사들이 생겨났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세계 각국의 우수한 인재들과 큰물에서 마음껏 경쟁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김현유는 글로벌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한 팁을 전했다. 한국에서와 달리 겸손이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의견과 함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고 거침없이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때로는 자신이 낸 성과에 대해 스스로 PR하는 것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운 그였다. 그 가르침은 구글에서 일하는 지금도 매일 같이 느끼는 일이라고 했다.

커리어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전문가를 원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테마와 스토리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커리어를 향상시키고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잡았을 때 흔들리지 않아요. 미국에서 ‘Bring your A game’ 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A 게임이라는 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게임이라는 말이에요. 커리어에 있어서도 자신의 A 게임을 보여줘야 하는 순간들이 항상 찾아와요. 적당히 해도 될 때가 있는 반면에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를 보여줘야 할 때가 찾아오죠. 중요한 인터뷰나 중요한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될 수도 있고, 중요한 발표나 회의일 수도 있어요. 저에게는 구글과의 인터뷰가 A 게임을 보여주어야 하는 순간이었죠. A 게임은 준비된 사람들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된 사람들이 A 게임을 보여줘서 이긴다고 생각해요.”

김현유는 ‘커리어는 정글짐과도 같은 것이다’라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커리어라는 것이 항상 위를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옆 방향이나 아래쪽을 향해 진행되기도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항상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현재의 부족한 면들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위한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가장 큰 깨달음을 준 책 『아이콘』

강연이 끝난 후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작가와 같이 <희망콘서트>를 찾아 온 또 한 명의 성공한 기업인, 표철민 위자드웍스 대표도 함께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성공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회사 생활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저의 성공의 기준은 높은 자리에 빨리 올라가는 거예요.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어쩔 수 없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저라는 사람의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높은 자리로 올라가느냐, 하는 것이겠죠. 개인적으로는 저의 대외적인 명성도 중요한 성공의 기준이고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게 만든 원인 혹은 욕구는 무엇인가요. 일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하나는 돈이에요. 전 돈이 좋고, 비싼 것도 좋아요. 그것을 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해요. 돈을 많이 벌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는 성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저는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해요. 그 때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언젠가 나이 들어서 그런 것들이 없어지면 너무 슬퍼질 것 같아요. 어느 순간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들이 없어지면 너무나 슬퍼질 것 같아요.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계획했던 일들을 실행했을 때의 기분이 좋고, 그런 것이 저에게 많은 에너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현재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일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사람으로 경영진이 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에요. 극소수죠. 우리가 알 만한 큰 회사에서 경영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요. 그래서 제가 꾸는 큰 꿈은 그 위치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꿈을 설계하는 힘』도 제가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너무나 즐거운 과정이었어요. 저는 그런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평생 그런 일이 제 인생에서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 같아요.

여가 시간에는 어떤 취미 생활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무엇을 하면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절대로 일만 해서는 안 돼요. 인생은 일만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저의 경우에는 쉬는 사이에 골프도 치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요. 그런 것이 취미 생활이에요. 그리고 운동도 하고 딸아이와 놀아야 하고, 여러 가지 할 일들이 많죠.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이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해요.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 캘린더에 써 넣으셔야 해요. 그것에 따라서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효율적이고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만의 계획표라 할지라도 구체적인 일정을 적어놓고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대학에서 배운 역사학과 인문학의 내용 중에 실제로 커리어에 적용되었던 경우가 있었나요.

어떤 일이든 결국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에요. 인문학은 사람에 관한 것이잖아요.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역사를 알게 되고 그것이 글로벌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되는지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역사라는 것이 결국 사람들이 해 온 일들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을 만나서 전략적 제휴를 맺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것이 여러 가지 계약과 제품, 회사 이익의 영향으로 결정되지만 결국 결정을 하는 것은 모여 앉은 사람과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역사와 인문학을 공부했던 것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에 대해 많이 가르쳐 준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책은 무엇인가요.

스티브잡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아이콘』입니다. 지금은 잡스의 정식 전기가 나왔는데 『아이콘』은 다른 사람이 쓴 책이에요. 저는 이 책을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MBA에 갈 때 읽었어요. 실리콘밸리라는, 나에게는 꿈의 지역이자 미지의 세계인 곳에 도전을 하러 갈 때였죠. 『아이콘』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사람이 겪었던 일을 담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읽으면서 정말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어요. 그 때의 상황과 내용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된 것 같습니다.



img_book_bot.jpg

꿈을 설계하는 힘김현유 저 | 위즈덤하우스
『꿈을 설계하는 힘』은 평범한 대한민국 인문학 전공 대학생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 구글의 핵심인재로 커리어 점프를 한 저자 김현유(미키 김)가 들려주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가 삼성전자를 거쳐 세계 최고의 IT 기업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어떻게 꿈의 길을 개척해왔는지와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재들의 ‘꿈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하면서 그들의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는지, 이 두 가지 핵심 스토리를 담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낯선 것을 가장 안전하게 만나는 방법 - 김영하가 읽은 몇 권의 책들

$
0
0

돌이켜보면, 필자가 강연에 참석한 계기는 ‘소설가가 다른 소설을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가질까’라는 호기심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라면 말이다. 최근, 그는 문학동네의 세계 문화 전집 시리즈 중 하나인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촌철살인의 대가였다. 김영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핵심을 찔렀다. ‘책을 언제부터, 왜 읽기 시작했을까?’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질문에서 이야기는 출발했다.

예전에 최재천 선생님과 동물 행동학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크게 다른 점을 들자면, 바로 ‘강의 행동’이라고 해요. 책 읽기 역시 마찬가지이죠. 원래, 독서는 문자를 아는 소수가 접하여 다수에게 소리 내서 책을 읽어주는 강의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즉 독서는 그 전까지는 ‘듣는 것’이었어요. 독서란 이렇게 힘든 것이지요. 인간은 동물과 달리 딱딱한 의자에 앉아 ‘쾌감을 지연하는 행동’을 일부러 한다는 점, 신기하지 않나요?”

그는 인간만이 유일무이하게 쾌감을 지연시키면서까지 ‘문명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시작과 끝을 이겨내야 하는 독서 역시 대표적인 문명적인 행동이다. 최근에 김영하는 독서라는 사회적인 행동이 점점 변화하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책은 조용히 읽는 것이다’라는 사회 합의가 생겼습니다. 조용히 읽는 다는 것은 은밀하지만, 쉽게 사라져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조용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참 많잖아요.”

그렇다면 그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두 가지 매력을 꼽았다.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안전한 만남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바로 그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을 책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도 되돌아봤다. 종합해보면, 그가 말하는 좋은 책이란, 독자에게 가장 안전한 거리에서 낯선 인물을 만나게 해주며, 삶 속에서 지금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것을 가장 안전하게 만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일상에서 부유하고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엄친아 같은 개츠비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고 낯선 인물이죠. 우리는 삶 속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기쁘고 슬픈 상황을 맞이하게 되거든요.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따르죠. 하지만 책을 통해서는 낯설고 어려운 것을 접하더라도 그런 허무와 환멸을 겪지 않도록 해줍니다.”

“두 번째로, 한 권의 책은 시작이 있고 끝이 존재합니다. 즉 이야기는 언젠가는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독자는 탄생과 죽음을 계속 경험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독서는 ‘작은 죽음’을 경험하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이런 작은 죽음을 경험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도 이들처럼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지금의 삶이 중요하고 풍요롭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지요.

어떻게 보면 책을 쓰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즐거움을 가질 수도 있어요. 작가는 어떤 플롯과 장치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 인물을 제시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죠. 여기서 작가들이 쓰는 ‘우회’는 책 읽기가 주는 즐거움인데요. 단 두 줄로도 정리할 이야기를 몇 권씩 풀어내는 ‘우회’는 다른 장르와 달리 납득이 목적이 아니라 쾌락을 지연시키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장치죠.

분명한 것은, 한 번 소설을 통해 등장한 인물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돈키호테가 나타난 이후로 많은 소설들에서는 돈키호테 같이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반영이 되고요. 우리는 실제로 어떤 인물을 만날 때, 돈키호테형 인물이든 마담 보바리 같은 인물이든, 이들을 만나도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김영하는 마지막으로 이용기 선생의 『수목장』에 있는 문장을 언급했다.

“『수목장』에 보면, 책이 인간이고 인간이 책이에요. 한 인간이 죽으면 책이 된다는 내용이 나오죠. 저 역시 우리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해요. 나이 드신 분들을 가끔 만나면, 결국 목표를 위해 달성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렇지만 나름 꽤 괜찮은 인생이였어’라고 끝 맺는 이야기를 들어요. 대부분 우리의 인생은 추구의 플롯을 가지겠지만, 뻔하지 않은 책이 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뻔하지 않은 책이 되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 읽기’는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가장 첫 페이지에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도 한 권의 식상한 책이 되지 않으려면, 항상 유리한 입장만큼 불리한 입장에서도 서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과는 다른 입장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전수되는 그 비결은 ‘은밀한 책 읽기’에 있다.




안전하게 새로운 인간형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고전 소설

[ 위대한 개츠비 ]
[ 돈키호테 ]
[ 마담 보바리 ]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톰 행크스는 안성기와 송강호를 합쳐놓은 느낌” - 배두나

$
0
0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일찌감치 소문난 잔치였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감독과 <향수>의 톰 티크베어 감독이 공동 연출한 작품이라는 사실에 영화 팬들의 기대는 한껏 높아졌다. 톰 행크스와 휴 그랜트, 할리 베리와 수잔 서랜든 같은 대 배우들이 함께한다는 소식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한국 배우 배두나를 비롯, 중국의 저우쉰과 할리우드의 짐 스터지스, 벤 위쇼 등 이른바 젊은 피들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의 관객들은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이야기는 옛말일 뿐이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배우 배두나와 만난 관객들은 하나같이 감동과 감사의 말을 전했다. 작품의 첫 현장 반응을 마주한다는 사실에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상영관을 찾았을 배우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만나지 못한 예비 관객들을 위해 그 날의 이야기들을 전한다. 배우 배두나가 직접 이야기하는 작품의 메시지와 탄생 과정, 현장의 에피소드까지 깨알 같은 팁들이 가득하다.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의 범위가 넓은 배우, 배두나

세계적인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에 한국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은 한국 관객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경우, 워쇼스키 감독이 배두나가 출연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직접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사실은 더욱 그러하다. 이를 두고 윤성호 감독은 ‘독보적인 케이스’라고 평했다. 대형 매니지먼트를 통하지 않고, 장기간의 치밀한 할리우드 진출 계획도 없이 감독의 선택을 받은 이례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윤성호 : 이전에 출연했던 일본 영화의 경우도 배두나 씨가 꾸준히 출연해 온 국내 작품들의 이력과 연기력, 이미지를 보고 캐스팅을 했던 거죠. 또 그런 영화들을 보고 감독들이 알음알음 캐스팅을 하고 있고요.

이다혜 : 배두나 씨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을 만나 얘기해보면 칭찬을 정말 많이 해요. 일단 한국 영화들에서 보는 이미지가 너무 좋고, 단순히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된 게 아니라 뭐든 시킬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의 범위가 넓다는 가능성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 것 같아요.

이다혜 기자는 배우로서 배두나가 가지고 있는 차별화된 강점을 캐릭터에서 찾았다. 탁구 선수와 양궁 선수, 인형 등 긴 시간 많은 노력을 요하는 캐릭터들을 연기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두나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의외로 평범한 소녀 역할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없는 인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작업일 테지만, 배두나에게는 달랐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배두나 : 그동안 배워서 해야 하는 역할들을 많이 했죠. 덕분에 이제는 무엇을 배워서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요. 어려운 것을 거치면 거칠수록 내가 더 마음적으로 강해지고 하기 편해진다는 것을 아니까요. 이제는 정말 무서운 게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 그것도 했는데 이것도 할 수 있어, 배우가 연기하는 데 몸 사릴 게 어딨어’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캐릭터가 있는 역할들이 오히려 편해요.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징에 기대어 갈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진짜 어려운 건 아무 특징도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거예요. 특정한 상황이 없는 가운데 관객들을 설득하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어려워요.




톰 행크스, 선배 안성기와 송강호를 합쳐놓은 느낌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는 복제인간 ‘클론’을 연기했다. ‘손미-451’이라는 이 이름부터 생소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오히려 그녀는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배두나가 바라보는 손미는 ‘텅 비어있는 외로움을 타고난 아이’였다. 하지만 그 공허함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강인함을 지켜가며 표현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인간이 아닌 역할이라고 하지만 복제 인간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혼자 생각하고 느끼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손미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한 여자 아이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 자신의 동료를 보고 느끼는 연민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손미를 말하고자 했다.

원작 소설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그녀가 맡은 손미의 이야기가 보다 큰 비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지만, 영화 속에서는 축약된 형태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제약이 따랐다. 촬영에 앞서 소설을 통해 손미와 만났던 배두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배두나 : 영화에서 손미가 파파송(손미-451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레스토랑)의 캡슐 침대에서 나와서 샤워하는 비참한 모습이 있는데, 저는 그 장면이 진짜 좋았어요. 꼭 필요한 신이라고 생각했고요. 당연히 영화는 소설에서의 방대한 손미 이야기를 다 담을 수가 없죠. 잠깐씩 축약해서 표현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파파송의 마치 수용소 같은 클론들의 방, 그리고 장혜주 가슴에 머리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듣는 장면들은 굉장히 잘 표현된 것 같아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유일한 한국 배우로서 쟁쟁한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배두나. 그녀에게 함께 작업한 배우들에 대한 질문이 빠질 리 없었다. 대 배우들과 출연했다는 사실 자체로 가문의 영광이라는 그녀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양한 역할과 영어 대사를 소화해 내느라, 촬영 중에는 자신이 할리우드의 베스트 배우들과 촬영하고 있음을 만끽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이렇게 좋은 배우들과 이렇게 많은 현장에서 촬영하는 일이 또다시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배우들과의 호흡이 만족스러웠다.

배두나 : 톰 행크스를 보면서 안성기, 송강호 선배님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가 현장을 이끄는 리더십을 보일 때는 송강호 선배님이 떠올랐고, 다 포용하고 안아줄 때는 안성기 선배님이 떠올랐어요. 정말 현장에서 꼭 필요한 리더십을 가진 분이셨어요. 아시겠지만 휴 그랜트는 정말 장난기가 많은 분이에요. 개구쟁이 같아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악역을 많이 맡았는데 그 악역조차 즐기시더라고요. 짐 스터지스나 벤 위쇼는 또래 친구들이에요. 그래서 많이 친해졌어요. 할리 베리나 수잔 서랜든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대 선배님이셔서 그만큼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항상 저에게 칭찬해 주고 사랑해 주셨어요.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요.

그녀는 특히 클론을 연기한 저우쉰에 대해 꼭 한 번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중국 대륙을 열광하게 만든 여배우로 엄청난 연기력의 소유라라는 것은 알았지만, 함께 촬영하며 가장 깜짝 놀란 배우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로부터 정말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배두나 : 예전에 윤여정 선배님과 함께 연기할 때, 연기로 상대방을 몰입시킨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런데 저우쉰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상대방이 자동으로 연기를 하게끔 만들어 주는 배우에요. 그런 배우와 함께 촬영해서 너무 좋았어요.

또 다른 상대배우인 짐 스터지스와의 인연은 더욱 특별했다. 그녀와 짐 스터지스는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함께 투표소를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두나 : 호기심이 많은 친구고, 한국을 굉장히 알고 싶어 했어요. 한국에 오기 전부터 자신이 한국인을 연기했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짐 스터지스나 제임스 다시가 손미의 이야기에서 연기했던 역할이 완벽한 한국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미래의 ‘네오 서울’에 살고 있는 네오 서울의 시민으로 봐야 하겠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았어요. 짐 스터지스가 한국을 찾았을 때는 제가 며칠 동안 투어 가이드를 했는데, 한국에 대해 모두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마치 제가 영화 속의 장혜주가 되고 그 친구가 손미가 된 것 같았어요.




백지상태로 촬영현장에 가는 것이 노하우

배우 배두나와 영화감독 윤성호, 씨네21 이다혜 기자가 들려주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이야기가 끝난 후, 본격적인 관객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손미와 장혜주의 이야기를 보면서 두 사람이 사랑하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소름이 돋았어요. 우리나라 배우가 할리우드에 가서 사람을 소름 돋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멋졌습니다.

배두나 : 이 영화를 찍을 때 한국 관객들, 한국 배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외국에 나가서 일할 때는 ‘한국 사람들은 다 이렇게 재능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웃음). 그래서 한국 관객 분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시면 사르르 녹아요(웃음).

‘네오 서울’의 모습에서는 배경과 의상에서 한국적인 부분보다 중국, 일본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한국 배우로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배두나 : 인터넷을 통해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왜색에 대한 이야기도 읽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내한하셨을 때도 그렇고, 현장에서도 물어봤었어요. 제가 대신 변명을 하자면, 네오 서울이라는 배경 자체가 아시아 복합체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아시아의 복합체를 표현하기 위해서 중국이나 일본 문화를 가져다가 썼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네오 서울이라는 곳이 유토피아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잖아요. 미래의 발전한 서울, 한국이라고 기대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미 아시아의 많은 부분이 물에 잠긴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라기보다 새로운 도시,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신세계의 느낌이에요. 감독님께서도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전부 한국적인 것으로 통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섭섭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봤을 때는 감독님에게는 왜색이나, 그런 생각이나 의도가 전혀 없으셨던 것 같아요.

영화 <공기인형>에서는 인형을 연기하셨고, 이번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클론을 연기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아닌 역할을 할 때는 어떻게 시작하시나요.

배두나 : 저는 백지상태로 가요. 감독님한테 많이 여쭤 봐요. 이제 연기 14년차 정도 되는데도 아직도 계속 물어봐요. 물론 제가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고, 이 캐릭터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저에게는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분석하고 공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배두나로서의 저의 모습을 많이 지우려고 하죠. 저를 비운다는 이야기인데 굉장히 어려워요. 이번에 손미 역할을 할 때는 제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어요. 외롭게 나를 방치하는 것, 그것만이 살 길이었어요. 거기에서부터 손미의 마음이 시작되니까요.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장면들은 실제로는 허공에서 연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감정으로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장면을 볼 때는 어떤 느낌인가요.

배두나 : 완성된 장면을 보면 신기해요. 저는 거의 다 그린 스크린에서 찍었거든요. 어떤 장면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린 월드에서 촬영했어요. 그린 스크린 연기를 처음 했는데, 연기하기가 훨씬 어려워요. 배우의 상상력이 많이 요구되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는 장면을 촬영해야 했던 적도 있어요. 그 때는 눈을 감고 내가 봐야 할 모습들을 떠올려 봐요.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린월드에 그 잔상이 남아 있어요. 영화로 만들어진 장면을 보니까 조명이나 카메라 기술 같은 기술력이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개봉 소식을 듣고, 워쇼스키 감독의 작품세계를 익히 아는 관객들은 기대와 동시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단 한 번 감상하는 것으로는 감독이 감추어 놓은 심오한 메시지들을 간파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전작들과는 달리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이 배우 배두나와 윤상호 감독, 이다혜 기자의 한결같은 평이다. 현장의 관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부담 없이 극장을 찾으셔도 좋을 것 같다.

윤성호 : 난해해 보일 수도 있는 영화지만, 미리 방어적으로 보지 않고 한 꺼풀 벗겨보면 굉장히 천진한 메시지의 영화에요. 모든 에피소드마다 그 시대의 약자가 한 명씩 나오잖아요. 그 시대에는 탄압하고 억압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분위기였던, 그런 소수자들을 인류의 역사로 한 번 꿰어놓은 거죠. 구슬을 한 번 꿰는 그 역할을 손미가 했던 것 같아요. 영화 끝에 나오는 분장쇼가 영화를 전체적으로 꿰는, 구슬을 보배로 만드는 줄기더라고요.

배두나 : 많은 분들이 ‘워쇼스키니까 분명히 철학적으로 엄청나게 무거운 주제의식이 깔려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와서 보신다면 이 영화가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경우는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요. 윤상호 감독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정말 천진난만하게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직까지도 이 영화가 단순하고, 관객에게 친절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다혜 : 철학적인 얘기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이야기를 따라가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한 큐에 꿰이는 이야기에요. 원작 소설이 그렇기도 하고요, 최선을 다해서 그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면서 무척 다르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건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시선과 글을 통해서 표현하는 사람 사이의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신 다음에 소설을 읽으시면 영화가 다 보여주지 못한 손미의 이야기들,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들이 어떻게 엮여 가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고, 책을 읽고 난 후에 한 번 더 영화를 보고 싶어지실 것 같아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러시아 공사관에 비밀 통로가 있었다고? 영화 속 설정, 허구다!

$
0
0
“‘장소’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공간인 그 장소들은 찾는 이로 하여금 문화적 정체성을 느끼고 의식적인 애착을 갖게 한다. 우리가 수용한 근대의 원형이 있는 그 장소들에서 다채로운 나는 근대의 스펙트럼을 보았고 숱한 역사 인물들을 만났다.”(p.5)

“탈근대에 접어든 오늘날, 내가 새삼스레 근대의 현장들을 찾아 나선 까닭은 그곳에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p.5)




배재학당, 최초의 근대교육 기관

“덕수궁 돌담길은 꿈의 산책로다. 바람 불어 좋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우산 속에서 보는 풍경이 더 운치 있다. 봄가을 해맑은 휴일이라면 연인들이나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다. 궁궐과 유서 깊은 건물들이 개화기 격동의 역사를 속삭인다.”(p.182)

정동에서 처음 찾은 곳, 배재학당이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웠으며 최초의 근대교육이 시작된 곳이다. 신교육의 태동이 이뤄졌던 이곳을 처음 들른 것은 이유가 있다.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였다. 책에서도 처음을 장식한다. 야트막한 작은 교실에 들어선다. 오랜 역사가 그대로 묻어난다. 옛 선조들이 공부했던 시절을 상상한다. 많은 위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 시인 김소월, 소설가 나도향(1902~1926) 등 셀 수 없는 역사적 위인들이 이 배재학당에서 배웠다. 음악, 체육 분야에서도 선구자들이 쏟아져 나왔다.”(p.15)

김종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장(배재대 건축학과)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 방은 김소월, 나도향도 공부했던 방이다. 김소월 시인을 연구하는 하버드대 매켄 교수가 그것을 확인하곤 되게 감격해 했다. 지금 이 자리가 여러분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이 박물관을 만들 때 배재학당을 잘 몰랐는데 개관 전시를 준비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여기서 논어ㆍ맹자가 아닌 물리, 화학 등을 영어로 가르쳤더라. 토론을 기반으로 모든 수업을 진행했다. 100년도 더 전에!”

“김소월 연구의 권위자 하버드대학교 데이비드 매켄(1946~) 교수는 두 차례나 박물관에 찾아와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감격에 젖었다고 한다. 문화는 발신자와 수신자 상호간의 교섭에서 자연스럽게 모방하고 재창조되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p.19)

김소월(김정식) 시인(1902.8.6.(음력)~1934.12.24). 아련하다. 지난해 탄생 110주년을 맞은 김소월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시인이다. 2000년대 초, 시(詩)전문 계간지에서 시인과 평론가 백 명에게 지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열 명을 선정해달라는 설문을 냈었다. 그 설문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 첫 번째 시인이 김소월이다. 박물관 2층에는 김소월의 시집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무엇보다 『진달래꽃』(1925) 초판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근대 출판물로서는 처음 문화재로 등록된 책이다. 세상에 단 네 권(한성 초판본 3점과 중앙 총판본 1점)밖에 남아 있지 않은 희귀본이기도 하단다.


배재학당은 당시 외세에 휘둘렸던 민족의 정기나 근대를 만들려는 힘이 축적된 공간이기도 했다. 김 관장에 의하면, 독립과 민주정권을 지향한 흐름이 배재학당에 있었다. 독립운동을 위한 것뿐 아니라 당대의 모든 것이 응집된 어떤 기운 혹은 동력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자생적 근대의 힘도 일본에 의해 억눌려야 했던 아픈 역사도 있다. 전인교육과 각각의 과목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배치됐으나 일본은 그것마저도 눌렀다. 교육 받은 한국인을 두려워한 탓이다.

그리고 배재학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이 소개됐다. ‘신분과 연령을 초월한 교육’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하인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라는 아펜젤러의 교육 방침도 소개됐다. 실용기술을 바탕으로 한 자립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 배재학당의 자랑이었다.

“120여 년 전에 이미 영어로 진행된 수업은 생리학, 화학, 음악, 미술, 체육, 연극 등에 걸쳐 다채로웠다. 특히 야구와 럭비를 비롯한 구기 종목에서 배재는 한국 체육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학생들도 국제적이었다. 조선인과 미국인, 일본인이 함께 배웠던 것이다.”(p.15)

아울러 배재학당의 이름과 현판은 고종이 하사한 것이었다. 고종은 학교 이름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의미로 배재학당으로 지었고, 당대의 명필 정학교(丁學喬)에게 간판을 쓰게 하고 이를 직접 하사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백건우가 쳤다는 아펜젤러 피아노가 놓여 있다. 1911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피아노. 100년이 훌쩍 넘은 골동품이다. 김 관장이 또 하나 자랑한 것은 최초의 한글 연혁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후 5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것을 아펜젤러가 한글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배재의 학생이었던 주시경 등을 통해 이를 확산하고 한글을 본격 보급한 것이다. 흥미로운 역사다. 미국 선교사에 의해 한글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얘기. 더불어 20~70대의 다양한 작가들이 한글을 주제로 작품을 하나씩 내걸고 있었다.

“2층 전시실에는 피아니스트 한동일(1941~), 백건우(1946~)가 쳤다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 1864년 독일 블뤼트너 사가 제작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다. 아펜젤러의 일기와 그의 가족들이 남긴 소품들도 정갈하게 전시돼 있다.”(pp.19~20)

배재학당을 나오면서 저자는 정동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정동은 근대를 이해하는 창문이자 아이콘이다. 공부하면 할수록 공부할 것이 많고, 정동을 모르면 근대사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근대사를 껴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정동을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정동은 대한민국 전야(前夜)의 풍경과 기억을 더듬어볼 수 있는 역사의 아이콘이다. 1883년 개항한 제물포와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 있는 한강변 양화진을 우리 몸의 인후부라고 한다면 정동은 심장부다.”(p.12)




신여성 교육의 산실, 이화학당

정동길이 이전과 달리 보인다면,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알면 보이고 새로워진다. 역시 아펜젤러가 세운 정동 제일교회를 지나 이화학당을 향했다. 정동 제일교회는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세운 뒤(8월 3일), 10월에 만든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다. 당시 베델예배당(Bethel Chapel)으로 불렸고, 10월 9일 첫 예배를 보았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가운데서 정동 제일교회는 개화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옆에 붙은 현재의 이화여고는 이화학당이 모태였다. 한국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였다. 1886년 5월, 학생 1명을 상대로 학교를 시작했다. 배재학당과 마찬가지로 역시 선교사인 메리 F. 스크랜턴(Mary F. Scranton)이 학교를 세웠다. 한국 여성들을 ‘더 나은 한국인으로 양성하는 것’이 스크랜튼의 교육이념이었다.

김종록 작가는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도 곁들였다. 하란사라는 유부녀가 근대 교육을 무척 받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녀가 유부녀라는 점이었다. 당시 이화학당은 유부녀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세 번을 거절당한 하란사,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룰루 프라이 교장 앞에서 이른바 ‘이벤트’를 펼쳤다. 어느 날 밤, 등불을 켜고 이화학당으로 갔다. 프라이 교장 앞에서 그녀는 등불을 껐다. 왜 등불을 끄냐고 묻는 프라이 교장 앞에서 하란사는 말했다. “내 삶이 이렇게 어둡습니다. 제발, 밝은 학문의 빛을 열어주세요.” 프라이 교장, 감동 먹었다. 하란사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이화학당의 규칙을 무너뜨렸다. 기혼자의 입학이 허용됐다.

“‘유부녀 하란사의 호소에는 배우지 못한 조선 여인의 한이 짙게 배어 있었다. 프라이는 그만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고 만다. 이런 여인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학교의 존재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프라이는 입학을 허가한다. 1896년 이화학당에서 벌어졌던 드라마다.”(p.31)

이화학당에는 유관순 열사의 흔적들이 있다. 그 중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이 있다. 이에 대해 김종록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수많은 여성이 이화여고를 나왔는데, 왜 굳이 한 명인 유관순만 들어 저렇게 빨래하던 우물이라고 했는지. 너무 지나친 건 좋지 않다.”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동문들이 이 우물물을 마시고 빨래를 하거나 그 뜰을 거닐었을 텐데 굳이 이 우물까지 유관순 열사와 결부시켜야만 했을까. 유관순 기념관과 동상이 세워졌으니 이제는 이 표지판과 유관순 우물이라는 명칭은 떼어도 좋을 듯하다. 무엇이건 넘치면 도리어 의미가 퇴색되기 쉽다.”(pp.32~33)

저자는 또한 근대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 “이곳에는 개화기 당시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많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을 안 산다. 죽어도 안 산다. (웃음) 다른 스토리, 다른 삶을 이야기하고 알 수 있잖나. 역사교육을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옛날에는 부끄럽다고 숨기고 싶어했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하면 세계가 주목한다.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잊지 않아야 한다. 근대사를 공부해라!”

최근 만났던 전우용 역사학자의 근작 『오늘 역사가 말하다』의 이야기와도 통한다. “저급한 정치인에게 역사의식 없는 국민은 다루기 쉽습니다. 국민의 역사의식을 제 편한 대로 바꾸려 드는 정치인은 스스로 저급한 정치인임을 폭로하는 셈입니다. 그런 정치인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역사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는 성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속지 않고 살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오늘 역사가 말하다』, p.77)




흔적만 덩그러니 남은 러시아 공사관

“옛 러시아공사관은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이었는데, 6ㆍ25 때 파괴되고 지금은 건물 일부였던 3층짜리 전망대만 우두커니 남았다. 정동에서 제일 높은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러시아공사관은 사대문 안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부지였다. 지금처럼 높은 건물이 없던 구한말 당시에는 경복궁과 경운궁은 물론 주변의 여러 나라 공사관 동정을 이곳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p.182)

정동길을 따라 정동 근린공원을 지나 러시아공사관의 흔적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고종이 1896년 아관파천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3층 높이의 아관, 즉 러시아(아라사) 공사관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망루만 남았다. 저자는 그 역사를 되짚어볼 것을 권한다.

“왕이 왜 도성을 버리고 숨어 들어왔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최고 통수권자가 사령탑을 포기하고, 왜 러시아 땅으로 왔을까. 나라를 포기한 거 아니냐? 그걸 이해해 주려고 하는 건 화가 난다. 물론 1895년 아내인 명성왕후가 암살당하고 자신도 죽을 위협에 처하니 그래야만 했던 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백성을 버리는 건 문제가 있다.”

우리는 백성(국민)을 버렸던 수많은 통치자들을 알고 있다. 멀리 조선의 선조가 그랬고, 가까이는 이승만이 그랬다. 제대로 된 리더와 통치자를 가지지 못한 우리의 비극이다. 저자는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아관파천을 주도한 이들 중의 하나가 이완용이다. 그는 미국 2대 공사를 지낸 친미파였다. 그러다가 친러파가 돼서 아관파천을 주도하고, 일본 힘이 세어지자 친일파가 됐다. 그 인물이 살아남는 방법 중의 하나였던 거다(웃음).”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잇는다. 고종의 커피 독살 사건을 다룬 영화 <가비>. 영화에선 러시아 공사관에 비밀통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종록 저자, 취재에 나선 결과, 비밀통로는 없다!

“불과 100년 밖에 안 됐는데, 아무리 영화라지만 그런 ‘뻥’을 치는 건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고종이 아관파천 했던 1년 동안 러시아는 민족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 왜 리더가 중요하고 좋은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다음 행선지는 중명전이다. 사적 제124호인 중명전은 비운의 장소다.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져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고 고종 집무실이자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됐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체결됐다. 일제 강점기, 덕수궁이 축소되고 1915년 외국인에게 임대돼 1960년대까지 경성구락부(Seoul Union)로 사용됐다. 이후 문화재청이 매입, 2007년 2월에 덕수궁에 추가로 편입되었고, 보수ㆍ복원을 통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도 리더의 중요성과 좋은 정치인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맥을 잇는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망했다. 그러나 아관파천을 주도한 바 있고, 러시아 초대공사로 나가있던 이범진은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1911년 1월 1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자결했다. “내 나라는 망했고, 내가 모시는 황제는 고종”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나라가 망한 뒤, 모든 걸 팔고 남은 자금은 러시아에 있는 동포들에게 주고 장례비만 남겼다고 한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자결했다.

“대한제국, 나라가 망했는데 책임지거나 자결한 사람이 이범진을 제외하고 1명도 없었다. 국치를 당했을 때, 자결한 사람이 민영환, 황매천 등 몇 명 되지도 않는다. 위기 때마다 관료들은 다 도망가고 책임도 안 진다. 쇼핑할 때는 가장 좋은 걸 사지만, 투표는 덜 나쁜 놈을 찍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렇다. 이 방이 1905년 을사늑약의 현장이다.”

이어 독자들과 역사를 둘러싼 이야기도 오갔다.


역사시간을 토론으로 하기가 어렵다. 어떤 토론을 할 수 있을까.

공부하려면 철저히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원전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내 세대는 인터넷이 없어서 책을 많이 사고 읽었다. 얼마 전 사서를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더라. 마오저뚱이 사서였다. 책을 엄청 읽었다. 노자가 도서관장이었다. 박제가도 사서였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다르다. 책을 통해 고급 정보를 얻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이 좀 더 강화돼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희망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부하는 시민, 발견하는 시민, 시민정신이 필요하다. 역사 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완용 조카(이병도)가 쓴 국사가 왜곡돼 있다고 생각한다. 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 역사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맞다. 식민사관이 아직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역사를 공부 않으니 그런 거다. 역사를 많이 읽으면 자기 안목이 생긴다. 내가 왜 근대사를 기록하려고 했을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적자, 생존. (웃음) 잘 적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img_book_bot.jpg

근대를 산책하다
김종록 저 | 다산초당
『근대를 산책하다』 는 근대의 현장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끄러운 근대사를 감추거나 외면하고 우리 식으로 자위하거나 미화해왔다.”하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우리의 근대를 되돌아보고 우리 식의 미래를 설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러한 의문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2년여 동안 사료를 모으고 틈틈이 근대 현장을 답사한 결과, 『근대를 산책하다』의 원고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대한민국에 ‘스칸디맘’이 몰려온다 - 『트렌드 코리아 2013』

$
0
0
최근 10여 년간 세계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되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단위로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빛과 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앞날을 예측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새것이 순식간에 구닥다리가 되고, 오늘 배운 지식이 내일이면 쓸모없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글로벌 경제라는 이름으로 각국의 경제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시대에 이어지고 있는 위기 상황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미 몇 차례 직격탄을 경험을 한 우리나라이기에 그 불안감은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문명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꽃을 피웠지만 그 꽃 아래에는 불확실성이란 이름의 그늘이 드리워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시대와 맞물려 새로운 트렌드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감이 교차하는 지금, 2013년을 주도할 트렌드는 과연 무엇일까. 힘겨워 하는 이 시대의 청춘을 위로해 온 ‘란도샘’,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를 주축으로 4명의 공저자가 『트렌드 코리아 2013』을 통해 제시한 키워드는 다름 아닌 코브라 트위스트(COBRA TWIST)이다.




트렌드란 무엇인가

『트렌드 코리아 2013』출간에 즈음해 서울 신촌의 토즈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에 등장한 이는 공저자 중 한명인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이준영 교수였다. 김난도 교수와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났고, 이미 지난 2010년 『트렌드 코리아 2010-TIGEROMICS』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네 차례 집필에 참여해 왔다. 트렌드를 분석하는 학자로서 해마다 이어진 집필 이 조금은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익숙하기 보다는 매해 쓸 때마다 고민이 많이 됩니다. 트렌드라는 것이 계속해서 변화하기도 하고,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거든요. 그만큼 해석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글로벌 회사에서 ‘테스트 마켓’으로 삼을 정도로 다른 어떤 나라보다 트렌드와 유행에 민감하거든요. 그만큼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역동적이라는 거죠. 그래서 더욱 다른 어떤 나라보다 트렌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트렌드 민감도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IT강국이라는 점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 트렌드의 지향성이 증대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측면이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원시적 커뮤니케이션은 일대일의 형태로 시작되어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일대 다수의 구조로 진화했다. 1990년대 들어 인터넷이 등장하며 정보의 확산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게 됐다. 게다가 SNS와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감성적이고 변화무쌍하다

과거 한때 사회적으로 된장녀가 지탄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명품 백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고, 소비 중심의 생활 패턴이 일상화 된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등장한 신상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두 대상은 같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된장녀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은 2008년 첫 방영 된 <우리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 덕분이죠. 신상녀로 등장한 서인영에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소비가치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과거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죄악시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특별한 일이 아니죠. 역시 소비가치적인 측면에서 트렌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트렌드의 대표적인 특징을 ‘비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인물의 패션이나 스타일을 따라하는 현상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이나 행태가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패션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블레임룩이라고 하죠. 신창원이 입어 유행했던 독특한 패턴의 티셔츠와 린다 김의 에스카다 선글라스, 신정아의 알렉산더 맥퀸 디자인 셔츠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이리스>란 드라마에서 총격 씬 때 나시를 입은 이병헌이 총을 맞아 선혈이 낭자했던 장면을 보고 ‘멋있다’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때는 옥션에 ‘이병헌 피나시’가 제품으로 등장해 완판됐던 적이 있습니다. 피가 번진 것같이 붉은 프린팅을 한 나시였죠.”




유형에 따라 구분된다

트렌드는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일정 범위의 소비자가 동조한 것을 지칭한다. 개개인의 열망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큰 조류로서 동조성을 띄며 어떠한 대상에 대한 소비가치가 드러나는 순간 트렌드가 된다는 것이다.

“동조성은 트렌드를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하게 꼽는 심리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동조성이 3~5년 정도 지속이 되는 것을 트렌드라고 할 수 있죠. 10년을 지속하게 되면 메가트렌드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것이 웰빙, 에코 트렌드 등이죠. 그 다음에는 패드(FAD?For A Day)가 있습니다. 1년 이내로 굉장히 짧게 끝나는 것이죠. 트렌드가 오랫동안 축척되어 쌓이다보면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거고요. 대략 한세대인 30년 정도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는 동조성을 띄면서 하향식으로 확산된다.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적하이론이다. 디자인을 창조하는 디자이너, 트렌드 크리에이터에서 시작되어 처음 그들의 옷을 입는 연예인 등의 트렌드 셰터(Trend Setters)를 거쳐 메인스트림인 대중에게 퍼져나가기까지의 과정이다.

“이를 펭귄효과라고도 해요. 펭귄무리가 위험이 도사리는 바다에 못 뛰어들고 있다가 한 마리가 뛰어들기 시작하면 뒤를 이어 뛰어드는 현상을 의미하죠. 유행이 하나 둘 확산되다가 임계치에 다다르면 어느 순간 트렌드가 됩니다.”

2013년 트렌드는 코브라 트위스트 트렌드 분석은 탐색과 분석, 의미추출, 그룹화의 과정을 거친다. 사회 심리적 원인이나 소비가치에 대한 변화에 초점을 두고 타당성을 검토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를 비롯한 이준영 교수 등의 팀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2013년 트렌드를 코브라 트위스트(COBRA TWIST)로 설명했다. 2013년을 설명하게 될 10가지의 키워드는 바로 이러하다.





City of hysterie-날 선 사람들의 도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대. 거리개념 상 우리나라는 가까이 있는 것에 익숙해 있었지만 최근 그런 특징이 변하고 있다. 가까운 것을 불편해 하고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는 것.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는 사람들. 불안과 불신,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삼불시대가 도래하며 온라인 네트워크 상에서도 편협적인 자기 확신의 성향을 드러낸다. 경기침체에 의한 괴담확산과 리얼리즘 선호도 같은 현상이다.

OTL… Nonsense!-난센스의 시대

이성보다 감성으로 만들어 낸 난센스에 열광하고 있다. 언어유희의 허무개그와 기발한 상상의 역발상에 기반을 둔 개그가 유행한다. <개그콘서트>‘멘붕 스쿨’의 갸루상이 대표적.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사회를 지배하며 개그맨들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이는 불황 속에 웃음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풀이할 수 있다.

Bravo, Scandimom-‘스칸디맘’이 몰려온다

과거 엄격하고 체계적인 자녀교육법을 추구하는 타이거맘이 대세였다면 이제 정반대의 스칸디맘의 시대가 오고 있다. 유럽스타일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스칸디맘은 정서적인 교감을 중시한다. 과거 N세대가 엄마가 되면서 아이와 자신의 행복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다.

Redefined ownership-소유냐 향유냐

물질주의에 근거한 소유보다는 무소유와 공유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렌탈리즘과 쉐어리즘, 도네이즘이 바로 그것. 소유하지 않지만 빌려서 사용하고 공유하며 불필요한 물건은 기증해서 타인에 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한다. 자동차, 집을 비롯해 다양한 물건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Alone with lounging-나 홀로 라운징

자기만의 공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혼자만의 휴식을 추구하지만, 이는 단절과는 다른 의미다. 카톡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외부와 연결성은 유지한 채 자기만의 휴식공간을 향유하는 방식이다. 사회적으로 1인 가구, 1인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따로 또 같이’의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홀로 있음을 즐기면서도 교류의 끈을 놓지 않는 현상이다.

Taste your life out-미각의 제국

최근 등장하는 미각 트렌드는 친근함이다. 창의적이면서도 따라 하기 쉽고 맛이 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열망은 소소한 럭셔리로 설명할 수 있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소소한 사치로서 음식을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 요리하는 남자 현상도 이와 같은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Whenever U want-시즌의 상실

일관되게 여름 시즌에 몰렸던 휴가가 연말 혹은 자신이 원하는 시점으로 분산되고 있다. 계절적인 변화에 따라 시즌이 분명했던 우리나라지만 기후변화에 따라 그마저도 약화되고 있다. 물리적인 시즌의 상실은 이는 휴가나 여가 등 생활에서도 시즌의 상실을 유도하고 있다.

It’s detox time-디톡스가 필요한 시간

꽤 이전부터 거론 된 트렌드. 몸과 환경의 독소를 제거하는 것이 물리적인 디톡스라면 지금의 디톡스는 더 광의의 개념으로 확산되고 있다. 바로 정신적인 멘탈 디톡스가 그것이다. 카페인, 에너지 음료, 쇼핑, 도박, 디지털 등 모든 요소에서 중독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디톡스는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현재는 물리적 멘탈적인 현상을 넘어 사회문화적인 정화운동으로 확산되는 논의가 진행될 정도.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자신의 비하인드 스토리, 어려웠던 과거사를 고백하는 것도 디톡스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Surviving burn-out society-소진사회

모든 것을 하얗게 불사르는 탈진의 사회가 되고 있다. 팍팍한 경제 상황 속에서 끝장을 보는 문화를 의미한다. 공부든 노는 것이든 끝을 볼 때까지 탈진시키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소진하는 경향이다. 중독을 넘어 방전의 상태를 즐기는 현상, 콘서트와 공연 등에서도 모든 것을 불사르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행복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이고 강렬한 쾌감 속에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과 은은한 행복감을 오래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Trouble is welcomed-적절한 불편

소비자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최고의 만족은 아니라는 개념. 연애에서도 모든 것을 다해주는 상대는 매력이 없다. 일종의 나쁜 남자 선호의 심리와 비슷하다. 명품 신제품이 발매를 앞두고 웨이팅 리스트를 통해 기다림이란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더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모자람이 필요하다는 것. DIY 처럼 적절한 불편함을 통해 재미와 즐거움을 더하는 것도 같은 트렌드.


img_book_bot.jpg

트렌드 코리아 2013
김난도 등저 | 미래의창
김난도 교수의 본업은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이며 소비트렌드 분석가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CTC, Consumer Trend Center)는 2007년부터 매년 그 해의 간지(干支)에 해당하는 동물을 주제로 시장을 주도할 10대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해 왔다. 2013년은 계사년(癸巳年)이다. 천간 계(癸)는 검은 색을 의미하고, 지지 사(巳)는 뱀을 의미한다. 따라서 계사년은 흑사(黑蛇), 즉 검은뱀의 해다. 2013년의 트렌드 키워드로는 흑사띠에 맞춰 ‘코브라 트위스트(Cobra Twist)’를 선정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클림트의 ‘키스’ 남자가 흡혈귀? 결국 일본에서 확인

$
0
0
클래식한 명작을 캐주얼한 시각으로 거침없이 해부했던, KBS <명작 스캔들>이 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도도한 명작의 발칙하고 은밀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KBS 명작 스캔들』. 이 책은 명작을 우러러 보기보다는 눈높이를 맞춰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발칙한 상상력과 은밀한 호기심을 품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유다. ‘어려운 것을 쉽게, 무거운 것을 가볍게’로 요약되는 <명작 스캔들>의 모토는 책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기획의 단초는 의외로 단순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향유의 민주화’였다. 나를 비롯해 클래식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독점하면서, 그것을 일종의 권력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만의 리그’를 깨고 싶었다. 명작이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살아오면서 만든 것이며, 그것을 즐기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p. 12 기획자의 말 中, 민승식 KBS 프로듀서)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는 시대에 대한 저항이다

최원정 아나운서 : 저도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많이 진행해 봤는데 참 어렵습니다. 본의 아니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주눅이 들고, 진행하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분야인데요. 그걸 한 번 깨보자는 생각으로 탄생시킨 프로그램이 <명작 스캔들>입니다. 우리가 경외심을 갖는 건 좋지만 왜 주눅 들어서 제대로 마음을 열고 작품을 감상하지 못하나, 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조영남 선생님과 김정운 교수님을 처음 섭외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KBS 명작 스캔들』에는 방송에 담지 못했던 은밀하고 발칙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부족함을 느끼셨던 분들은 이 책을 더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북 콘서트의 사회를 맡은 최원정 아나운서는 <명작 스캔들>이 자신에게 가져온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행을 하며 조금씩, 틀 안에서만 바라보던 작품들을 다각도에서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도 접근할 수 있구나, 우리가 작품 위에서 굽어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신선한 깨달음이 있었다.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색채로 바라볼 수 있는 눈, 그것이 <명작 스캔들>이 그녀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최원정 아나운서가 ‘<명작 스캔들>의 대모’라고 소개한 첫 번째 연사는 한지원 작가였다. 프로그램의 아이템 발굴은 물론 언제나 중심에서 모든 구성과 스토리를 엮어주는 그녀는, 최초 기획 단계부터 함께한 <명작 스캔들>의 역사이자 산증인이다. 책 『KBS 명작 스캔들』안의 이야기 역시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한지원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줄 스캔들은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감에 가득 찬, 관능적인 눈빛과 포즈의 여인을 그린 이 누드화를 통해 한지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뜻밖에도 ‘시대의 저항’이었다.

한지원 작가 : ‘마하’는 매력적인 여자라는 뜻의 스페인 말이고요.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리고 종교재판에 회부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전 역사에서 그림 때문에 종교 재판에 회부된 유일한 화가입니다. 이 그림이 종교 재판에 회부된 이유는 당시 스페인이 굉장히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이 사람은 왜 누드화를 그렸을까, 이게 저에게는 가장 큰 궁금증이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옷을 입혔는데 화가들은 왜 옷을 벗겼을까, 궁금했던 것이죠.

물론 고야 이전에도 누드화를 그린 작가들은 존재했다.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을, 벨라스케스는 <거울 속의 비너스>를 그렸다. 하지만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간의 누드를 그린 것은 고야가 최초였다. 그의 파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옷을 벗은 마하’가 충격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체모 때문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책 속에 김정운 박사의 친절한 설명이 숨어있다.

서양 문화의 역사는 ‘털의 역사’였다. 털을 어떻게 숨기느냐가 문화의 중요한 화두였다. 털이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었던 셈이다. (중략) 마네의 <올랭피아>도 손으로 체모를 가렸다. 그런데 이 남자, 고야는 과감하게 체모를 그려 넣었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파격과 도발성을 가늠할 수 있다. (p. 42)

금기에 대한 도전은 기존 체제에 대한 불순응을 의미한다. 한지원 작가 역시 이 점에 주목했다. 당시 고야가 스페인에 유입된 계몽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선진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왕정을 위해서 일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가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옷을 벗은 마하>와 같이 적나라한 누드를 그린 것은 그 시대에 대한 고야 나름의 저항이었다는 것이 한지원 작가의 생각이다. 저항을 통해 고야가 외치고자 했던 메시지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영향으로 이후의 인상파 화가들은 궁정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아의 표현과 시대의 저항을 거치며 회화는 발전하게 된 것이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폴 매카트니의 솔로곡이 될 뻔했다

『KBS 명작 스캔들』에는 다양한 장르의 명작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림과 음악, 건축, 사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대와 영역을 아우른다. 한지원 작가에 이어 두 번째 스캔들을 들고 나타난 이는 음악평론가 이헌석이었다. 그는 바흐에서 비틀즈까지, 클래식과 팝을 넘나들며 풍성한 음악으로 독자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2011년 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명작 스캔들>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모든 스캔들에 대해 정리하면서, 특히 그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 하나를 바로잡고자 했다. 맨델스존과 <마태수난곡>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헌석 음악평론가 :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을 보면 맨델스존의 하인이 푸줏간에서 고기를 받아왔는데, 그 때 고기를 쌌던 종이가 ‘마태수난곡’ 악보였다고 하죠. 그것을 맨델스존이 보고 분석해서 재현한 게 ‘마태수난곡’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무근입니다. ‘마태수난곡’을 들어보신 분은 익히 아시겠지만 78곡이 있습니다. 개정판에 68곡정도 있는데, 악보가 두꺼운 책만큼 있어야 해요. 고기를 쌀 정도의 양이 아니고요. 맨델스존이 ‘마태수난곡’ 악보를 입수한 경로는 큰 외할머니를 통해서예요. 15살 때 생일선물로 <마태수난곡> 악보 4번을 받게 됩니다. 이런 위대한 작품이 있으니까 평생 간직하고 나중에 연륜이 쌓이고 위대한 작곡가가 되면 이 작품도 다뤄봐라, 하고 줬는데 맨델스존이 17살 때 재현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예요.

이후 맨델스존은 3년의 연구 끝에 ‘마태수난곡’을 연주하게 된다. 그의 나이 스무 살, 작품이 사장된 지 100년이 되던 해였다. 바흐가 단 한 번 교회에서 연주한 후 별 반응 없어 사장되어 버린 작품이 100년이 지나 부활한 것이었다. 이헌석 평론가는 ‘마태수난곡’에 대해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면 결국은 듣게 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로부터 또 다시 한 세기가 훌쩍 지나, 이헌석 평론가가 ‘20세기의 베토벤 같은 존재들’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전설적인 음악가가 등장한다. 비틀즈다. 그들의 대표적인 곡 <예스터데이>는 밴드 해체 후 싱글로 발매되었다는 특이한 역사를 간직한 덕분에 <명작 스캔들>에 소개된 바 있다.

이헌석 음악평론가 : 1965년도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했는데 왜 느닷없이 해체 후 싱글로 발매되었다고 했을까요. 이건 영국에서 그랬다는 이야기고요. 미국에서는 싱글로 발매됐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가지고 ‘예스터데이’를 만들었습니다. 이 곡을 녹음을 할 때 비틀즈 멤버들은, 곡을 썼던 폴 매카트니를 빼놓고는 스튜디오에 아예 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틀즈 이름으로 낼 것이냐, 폴 매카트니의 솔로 곡으로 낼 것이냐를 가지고 회의를 했대요. 멤버들은 폴의 솔로로 하자고 했는데,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즈가 있는 한 솔로로는 어떤 곡도 낼 수가 없다고 해서 비틀즈의 이름으로 나왔던 곡이 되겠습니다.

이헌석 평론가는 ‘비틀즈 음악에는 20세기 대중음악의 모든 장점이 녹아 있다’고 평가했다. 락앤롤은 물론 블루스와 재즈, 인도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요소가 잘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선한 음악적 감각을 뛰어넘을 만한 음악을 아직까지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음악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헌석 평론가는 음악 역시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행복해진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강연을 마쳤다.


김홍도의 ‘서당’은 성경의 삽화를 옮겨온 것

한지원 작가와 이헌석 음악평론가가 들려준 스캔들이 명작의 감추어진 이야기였다면, 송영석 PD의 스캔들은 <명작 스캔들>에 대한 것이었다. 송영석 PD는 ‘방송보다 재미있는 취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제작 과정에서의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다.


송영석 PD : 방송으로 보이는 것은 일부분이고요, 그 뒤에 숨겨진 얘기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방송에서는 차마 못했고,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클림트의 ‘키스’는 흡혈귀의 습격이다!’라는 제목의 스캔들을 방송하기 위해 오스트리아까지 현지 취재를 갔던 그는, 끝내 흡혈귀라는 단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혹시 그림 속의 남자가 흡혈귀가 아닙니까?’라는 그의 질문에 미술관 관계자는 물론 오스트리아 시민들조차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뭔가 잘못 알고 취재 온 것 아니냐는 의아한 시선들뿐이었다.

송영석 PD : 해답은 일본에 있었어요. 일본에 겐시로라는, 조그만 책을 쓴 아저씨가 있는데 이 아저씨가 책 안에 ‘클림트의 키스 속의 저 남자는 뱀파이어가 아닐까’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게 있어요. 그걸 발견하고 일본에 있는 특파원을 보내서 ‘그 아저씨에게 ‘뱀파이어’라는 말을 들어라. 내가 오스트리아까지 다녀왔는데 그 말을 못 들었다. 당신이 그 취재를 못하면 이건 방송이 안 된다’ 했더니 그 분이 사명감을 가지고 가서 그 말씀을 듣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방송을 만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오스트리아 현지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그 말을 어떻게 일본에서 듣게 된 걸까. 송영석 PD는 그것이 아마도 객관적인 시각의 차이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국보처럼 생각하는 그림에 대해 이상하게 해석한다면 반감을 가질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국민이 아닌 일본인이라면 아무래도 한 발 떨어져 있는 사람이고, 서양이 아닌 동양의 사람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잘 보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다. 유럽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문화적 분위기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서당>의 훈장은 성경 속 메시아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던 스캔들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소재였다. 김홍도의 <서당>이 서양 회화의 구도를 옮겨온 것이고 성경에 나오는 삽화에서 그림을 따왔다는 가설에서 출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풍속화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중에는 성서 속 삽화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바탕으로 세운 가설이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김홍도의 독자적이고 천재적인 그림 세계를 부정하고 흠집 내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송영석 PD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문화란 어딘가에서 시작되어 어디론가 흐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흐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밀레의 작품을 많은 부분 모사했고, 서양의 화가들은 미술관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으로부터 그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사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러한 이유로 그들의 작품이 평가절하 되는 일도 없다. 천재적 화가라면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일필휘지로 작품을 탄생시키는 법이라는 믿음에 대해, 송영석 PD는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송영석 PD : 우리가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서 미술관을 가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그런 곳에 가는 이유는 그 작품들을 보면서 뭔가 느끼는 게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신성스럽게 감동 받을 수도 있지만, 가볍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될 때 <명작스캔들>은 굉장히 좋은 영향을 미친 방송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KBS 명작 스캔들』북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는 테너 이엘이었다. 그는 <명작 스캔들> 방송에 패널로 출연했던 인연으로, 소프라노 권미현과 함께 북 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유쾌한 스캔들로 가득했던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돌아서는 독자들의 발걸음은 아쉬움으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아쉬움을 알기라도 하듯이, 콘서트를 마무리하며 최원정 아나운서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명작 스캔들 시즌 2>가 준비 중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다가오는 3월 즈음 방송이 시작될 것이라고 하니 『KBS 명작 스캔들』을 곁에 두고 뜨거운 재회를 준비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할 듯하다. 오래 전 명작과의 새로운 만남, 그 즐거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img_book_bot.jpg

KBS 명작 스캔들한지원 글/민승식 기획/김정운,조영남 진행/이강훈 일러스트 | 페이퍼스토리
책장을 넘기는 순간, KBS 문화예술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명작 스캔들〉에서도 고르고 고른 명작들만 모았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 엉뚱하고 발랄하면서도 유쾌한 시선들은 명작은 '갖고 노는'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전문가의 쉽고 재미있는 해설을 통해서 우리 안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일깨우고 더욱 더 즐거운 클래식의 세계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가인과 수지 중에 누가 더 예쁘냐고요? 이런 질문 말고요.

$
0
0
지난해 관객 410만 명을 동원한 영화 <건축학개론>. 첫사랑의 기억과 아련함을 끄집어낸 덕분에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누군가에겐, 특히 어떤 남자들에겐 ‘첫사랑개론’과도 같았던 영화였다. 1990년대의 감성을 길어 올렸다는 점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은 불을 부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건축 혹은 공간이었다. 기억을 품은 공간이 불러오는 감성이 관객들의 심성을 건드렸다. 정릉의 골목, 한옥, 계단, 서연의 집 등 공간은 사람과 사랑을 싣고 있었다. 건축가 출신의 감독(이용주)와 그의 건축가 친구(구승회 ㈜크래프트 대표)가 스태프들과 함께 만들어낸 공간이자 작품이었다.




우리도 납득이와 승민이처럼 편의점 앞에서 늘 만났다

각각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이용주, 이하 주) : 지금 다른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피폐한 상태다.

(구승회, 이하 회) : 영화를 찍느라고 만든 서연의 집은 세트였고, 항간에는 태풍 때문에 무너졌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태풍 때문이 아니다. 미디어가 과장했다. 세트여서 스스로 무너졌고. 원래도 영화가 끝나고 이 집을 헐고 카페로 가자는 얘기가 있었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갤러리카페가 2월 말~3월 초 오픈 예정이다. 영화 속 모습과 약간 다른데, 제주도에 가면 볼 수 있다. 영화가 대박 나서 나도 바빠졌을 거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책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있었고, 한가하게 지내고 있다.

두 분, 대학동기로 알고 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회) : 20년 좀 넘었다. 이 감독이 나보다 1살 많다.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 대학 다닐 때는 그걸 몰랐고, 말을 깠다(웃음). 서로 아옹다옹하면서 오래 지내는 거 보니 친하긴 친하다. 영화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고 책까지 대박나면 더 고마운 친구가 될 거고(웃음).

(주) : 건축 일을 하다가 구 소장이 미국에 유학가고 나는 영화로 갔다. 이후 구 소장이 돌아왔고, 내가 입봉을 준비하면서 금치산자 수준으로 살 때, 모든 술과 밥을 제공하고, 거둬 먹여줬다. 고마운 친구다. 언젠가는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늘 나를 응원해준 친구였고. 다만 영화 찍을 때 구 소장이 시나리오에 간섭을 해서 트러블이 심했다(웃음).

책 서문을 보니, 이용주 감독이 첫 사랑도 아닌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한다. 찾아간 이유가 무엇이었나?

(주) : 2003년부터 <건축학개론>시나리오를 쓸 때, 구 소장은 외국인 설계사무소에 있었다, 이걸로 감독이 되겠다고 하자, 구 소장은 믿지 않았다. ‘영화 속 집을 지을 때 네가 할래?’라고 했더니, 그때 구 소장의 태도는 ‘네가 영화감독이 되면 해줄게’였다. 영화의 실현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세트를 짓는다는 게 농담처럼 들렸나보더라. 빈정상해서 다른 건축가에게 맡기려고도 했다. 구 소장이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오픈하고 월급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때, 그때는 (구 소장이) 유연한 자세여서 만나줬다.

(회) : 배고파서 했다(웃음). 배고픈 건축가를 도와준다는 이 감독의 선의가 있었고, 나도 도와주겠다는, 둘 다 도와주겠다는 입장이었다. 영화에 나온 집에 대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어려운 건축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선의는 선의인데, 달지 않은 사탕? 친구가 주니까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 재미있는 만큼 힘들 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 감독이 영화가 잘 되면 작업도 많이 들어올 거라고 했는데, 나는 믿지 않았다. 네이버에 내 이름을 치면 이제는 이름이 나온다. 예전에는 BMW 판매왕인 동명이인만 나왔는데, 이젠 누굴 만나도 내가 누구라는 걸 인식시킬 수 있어서 고맙다. 이제 남은 숙제는 영화 속 집을 만든 건축가 구승회를 지우는 거다. 10년 동안 이걸 우려먹을 순 없으니, 앞으로 그게 과제다.

앞선 영화였던 <불신지옥>과 달리 멜로영화를 고른 이유가 있었나?

(주) : 원래는 반대다. <건축학개론>을 준비하다가 진행이 잘 안 돼서 <불신지옥>을 먼저 찍었다. 멜로영화를 준비하다가 하도 안 되니까, 감독은 돼야겠고 전략적으로 공포영화로 입봉했다. 캐스팅이 너무 어려웠다. 공포영화가 캐스팅 저항을 별로 안 받는다. A급 배우가 아니라도 제작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론 늦게 나왔지만, 먼저 추진한 것은 <건축학개론>이 먼저다.


첫사랑은 어떠했나? 수지와 닮았나?

(회) : 초등학교 2학년 때 옆 반이었다. 운동회에서 매스게임을 하는데, 한 여자애가 있기에 쳐다보기만 했다. 다른 애들은 다 움직이는데 나만 안 움직이니, 선생님이 때리고 그랬다(웃음). 여자애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애만 바라보고 서 있던 기억만 난다.

(주) : 나는 구 소장의 첫사랑을 잘 알고 있다. 대학 때 그 여자가 내게 소개팅도 해 주고 그랬다. 재작년 결혼을 했는데, 구 소장은 안 가고 나만 갔다.

수지만큼이나 눈에 띄는 캐릭터가 납득이였다. 주옥같은 대사는 감독의 경험담인가?

(주) : 난 정상적인 사람이다(웃음). 납득이 말투가 내 말투에 섞여있다고 하더라. 자연스럽게 들어간 캐릭터다.

스무 살, 각자 어느 캐릭터에 가까웠나? 서로에게 상담해주던 친구였나?

(주) : 둘이서 신촌 술집에서 이문세 ‘옛사랑’을 들으면서 폭음하고. 서로에게 승민이면서 납득이였던 것 같다. 구 소장이 과거 얘기를 꺼리는 이유가 있다. 구 소장이 압도적으로 많이 놀아서. 구 소장은 연애를 열심히 하려고 하던 학생이었다. 뚜렷했다.

(회) : 이 감독이 아주 디테일하게 기억력이 좋다. 그 힘이 영화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만 친구로서는 폭로전이 나오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내가 밀린다.

납득이와 승민이가 계단에서 상담을 하고 부둥켜안는다. 두 분도 힘든 그런 시절이 있었나?

(회) : 같은 동네에 살아서 편의점 앞에서 늘 만났다. 절대 부둥켜안지는 않았고(웃음). 이 감독이 좋아했던 연대 앞 술집에선 늘 술을 마셨고. 이 감독과 만난 공간하면 떠오르는 곳들이다.

캐스팅이 힘들었던 역할이 있다면?

(주) : 쉬운 캐스팅은 없었다. 캐스팅은 정말 힘들다. 배우들이 생각 이상으로 스케줄이 많고, 서로 하고 싶어도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두 편을 찍으면서 캐스팅을 할 수 있었던 건, 작은 기적 같다고 생각한다. 거절을 굉장히 많이 당했고, 10년 동안 거절당한 배우가 50명도 넘는다. 다 기억하고 있다(웃음).

한가인과 수지, 누가 더 이상형에 가깝나?

(주) : 내 첫사랑이 훨씬 더 예뻤다. 사귀었던 사람보다 그들을 이상형이라고 할 순 없지.

한가인과 수지, 누가 더 예쁜가?

(주) : (한숨 쉬며) 아~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영화 작업을 하는 건, 나에겐 이성을 보는 게 아니다. 같이 일하는 스태프라서, 이 사람이 예쁜지 아닌지 감상할 시간이 없다. 배우와 연애하는 감독도 있던데, 나는 배우와 일 얘기하기도 급급한 긴장관계랄까. 알게 모르게, 배우와 감독은 생산적인 긴장관계가 있다.




건축이 내게는 첫 사랑이었다

서연의 집이 영화에서 중요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있었다면?

(주) : 서연의 집에서 무엇을 허물고 남기며 새로 짓느냐가 중요했다. 집에 있는 기억들, 키를 잰 낙서나, 아버지가 만들었던 세면대에 있는 서연의 발자국, 그런 것이 멜로의 테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돋보이게 할까 고민했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더라. 이견도 있고.

(회) : 시나리오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방법이 다르면 되지 않느냐 했는데, 이 감독은 머릿속에 바라는 그림이 명확히 있었다. 내가 의견을 내면 시나리오를 왜 건드리느냐고 버럭 화내고. 영화 다 찍을 무렵엔 알았다. 이 감독이 얘기했던 것 자체가 영화였고, 그런 이야기 거리를 받아들이고 흡수했어야 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어지간하면 건축주와 싸우지 않는데, 이 감독과 자존심 싸움 같은 것도 있었다.

“감독의 머릿속엔 얼추 공유되었다고 생각했던 집의 모습이 존재했고, 건축가는 여전히 여러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영화에 나오는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길 바랐고, 감독에게 이 집은 결국 영화의 배경으로서 제대로 기능해야 했다.”(p.16)

(주) : 다른 건축주는 따라주는데, 왜 나는? (웃음) 구 소장은 나를 건축주로 보고 제안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시나리오가 있었던 거지. 영화 현장을 모르는데, 스태프가 된 거지. 스태프가 시나리오를 바꿀 순 없지 않나. 그래서 내가 ‘왜 의뢰했지’하며 후회했던 순간도 있었다.

(회) :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건축가 역할을 하자고 생각했었다. 넌 영화하니, 난 건축하거든, 이런 생각도 했었다. 영화라며 알아서 기는 건 아니라고 봤다. 건물을 짓는 것처럼 스텝을 밟아나가자는 합의도 있었고, 세트로 지어졌지만, 실제 건물로서 작용하는 걸 생각해서 디자인했었다. 어쨌든 해달라는 건 다 해줬다.

소연의 집을 건축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회) : 감독 의견도 있었고, 덧붙여서 넣고 싶었던 것은 걸터앉는 턱 하나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모르겠는데, 창문을 열고 앉는 행위에 대해 미련이 있었다. 그런 장소를 조금 다르게, 의자나 창턱보다 조금 더 디자인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서연이 승민의 CD를 듣는 턱, 일부러 그런 턱을 만들어봤다. 주변에서 딱 한 분이 영화에서 앉을 수 있는 그 턱이 마음에 들었다고 얘기해줘서 기뻤다.

“창은 열리고 닫히며 안과 밖을 나누고 연결한다. 그런 창턱에 앉아 밖을 보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곳에 앉을 수 있는 배려를 해주는 순간 경계는 모호해지며 밖도 안도 아닌, 어떤 곳에 있는 조금 다른 경험이 가능해지리라는 것이었다.”(p.145)

이 감독은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었나?

(주) : 한 맺힌 게, (구 소장이) 왜 내 시나리오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였다. 시나리오 상에서 2층에 잔디가 있었는데, 구 소장이 빼라고 했다. 그걸 지켜내느라 굉장히 힘들었다(웃음).

서연의 집이 제주도에서 명소가 됐다. 영화와 다르게 건축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변화하나?

(회) : 영화 세트는 대지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다. 즉, 도로를 점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영화를 위해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지을 땐 원래 법대로 맞출 수밖에 없다. 2층이 커지고, 실제보다 통통해졌다고 해야 하나. 비례감이 바뀌었고, 옥상 잔디는 살릴 것 같은데, 잔디 아닌 다른 것이 올라갈 것 같다. 폴딩도어 등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는 그대로 갈 것 같다.

집짓기와 주인공 감정선을 연결한 소재로 주목을 받았다. 구상한 계기가 있다면?

(주) : 당시로선 자연스러웠다. 건축을 하다가 영화를 했는데, 건축을 소재로 한 영화를 잘 할 자신도 있고, 특화되는 의미도 있고. 시나리오 처음 쓸 때 20대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하나가, 건축이 내겐 첫사랑이었다. 영화인으로서 첫사랑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설계사무소 다닐 때 집을 못 지어봤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집을 지으면서 건축과 연을 끊어야겠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었다.

정릉집, 아파트 옥상, 한옥빈집 등 일상의 공간이 나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주) : 모두 내겐 의미가 있는 공간인데, 이 영화를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다. 건축학과에 가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 승민처럼 나도 한 집에 오래 살았다. 물론 아파트였지만. 집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건축학과에 갔을 정도니까.

(회) : 글을 쓰게 된 경위는 처음 글을 쓰고자 한 게 아니었다. 이 감독에게 전화가 와서, 자기는 시나리오를 너무 오래 썼고, 글 쓰는 건 별로라면서 내게 쓰라고 하더라. 넙죽 받았다. 그때까지도 무슨 이야길 쓸지 몰랐다. 이 감독이 하고자 한 공간이야기가 영화에 많이 나왔고 이를 생각하다보니 해석이 아니라 내가 할 이야기가 연상이 되더라. 영화에 나온 공간들을 들여다보게 된 거다. 어떤 이야길 끌어낼 수 있을지 생각했고, 그게 글로 나왔다. 영화 전체가 내게 소스를 주고 이슈나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줬다. 나도 처음엔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였지만 다시 보면서 건축, 도시 등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갔다. 내게도 의미가 있었다.




‘전람회의 노래 선곡’ 인기 예상하지 못했다

‘기억의 습작’,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알았나?

(주) : 예상 못했다. 영화 작업이 그렇다. 영화 만드는 사람은 늘 좌불안석이다. ‘기억의 습작’의 완성도와 기억 때문에 영화가 반사이익을 누린 거 같다. 잘 맞겠다 싶어서 선택했는데, 반응이 뜨거워서 선곡을 잘 한 것 같다. 2003년도에 시나리오를 쓸 때는 1992년이 배경이었는데, 제작이 미뤄지면서 배경이 1994년을 넘기면서 전람회 노래가 들어갔다.

건축가에서 영화감독이 되면서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주) : 건축가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했다면, 영화감독은 있는 공간에 대한 기억, 감수성을 이용한다. 건축할 때보다 영화하면서 낯선 곳을 더 돌아보게 되더라. 설계사무소에서 도면만 만들다가 영화를 하면서 실재 장소에 가서 영화의 질감에 맞는 정서를 끄집어내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영화를 하면서 지금 다시 건축을 하면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다른 분야에서의 창작활동이 이런 식으로 자극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글을 쓸 때 자주 가는 공간이 있나?

(회) :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다가 글을 써야 하니까 죽을 것 같더라. 정말 힘들었다. 또 하는 일이 있으니, 술집에 가서 글을 썼다. 담배를 못 끊었는데, 글 쓰는 스트레스를 받으니 담배도 펴야 하고, 담배를 핑계로 술집에 가서 글을 썼다.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나름 즐겼다. 너무 시끄럽거나 조용하지 않은 곳에서 글을 썼는데,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잘못된 이야기를 쓰면 탄로 나지 않겠나. 그래서 많은 것을 들여다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공부를 시작하게 해 준 좋은 기회였다.

(주) : 나는 집에서만 쓴다. 다른 곳에선 못 쓴다. 외부에선 못 쓰고 집의 책상에서만 쓴다.

“글을 쓰는 과정은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소에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며 공간과 도시와 건축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툭툭 떠올리고 이내 잊어버리곤 했었다. 글을 쓰다 보니 관심을 가졌던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윤곽을 드러냈고, 새로 발견하듯 그것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p.11)

요즘 나만의 공간, 내 집 짓기 등이 트렌드다. 집 지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회) : 많은 분이 찾아오진 않았고, 그런 트렌드는 느껴진다. 주변 건축가들도 주택 일을 많이 하고, 관심도 많은데, 그 이유가 첫 번째는 아파트가 더 이상 값이 오르지 않는다. 값이 오를 땐 저걸 사놔야 달라지는데, 그런 시대가 지난다는 느낌이다. 삶의 모습을 담는데 아파트 말고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아파트 구입이 서울에선 불가능한 시대가 되고 있다 보니 다른 생각이 시작되고 집에 대한 현실적 욕구가 생기며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가치의 추구가 따라온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겨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부분은 건축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 듣고 싶은 부분이다.

좋아하는 건축가나 눈여겨볼만한 건축이나 공간이 있다면?

(회) : 우리 세대는 윗세대를 부정하려는 게 있었다. 그러다 나이를 먹고 보니, 저만큼 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한 두 건축가를 얘기하기보다, 어렸을 때 환기미술관에 갔는데 굉장히 좋았다. 건축을 몰라도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공간 중의 하나였다. 환기미술관의 조그만 마당에 한국의 기와를 모티브로 한 담장이 있었다. 좋았다. 그런 좋은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많다. 유명함의 여부가 아니라 내가 좋다고 느낀 공간이 최고의 건축물일 수 있다. 그런 열린 시각으로 보면 좋지 않을까.

내 인생의 책이나 영화는 무엇인가?

(회) : 내 인생까지는 아니고, 나는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은 아닌데, 여러 번 샀던 책이 있다.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사기도 했었는데, 커트 보네거트의 단편인데 『Welcome to the Monkey House』이다. 얼마 전에도 샀다. 젊은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같다.

(주) : 이런 질문에 저항한다. 내 인생의 책이나 영화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다른 사람의 것을 빌어서 나를 표현하는데 저항이 있다. 구 소장이 이번에 책을 냈는데, 학교 다닐 때도 구 소장이 글을 잘 썼다. 이번에도 잘 썼더라. 뿌듯하고, 이게 4천만 부가 팔리면 구 소장이 꽤 많은 돈을 번다. 그것까진 아니라도 5쇄까지 찍었으면 좋겠다. (웃음)



img_book_bot.jpg

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구승회 저 | 북하우스
2012년 다시 보고 싶은 영화 1위로 선정된 「건축학개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해온 공간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서연의 집’을 직접 건축하며 공간에 담긴 이야기의 힘을 경험한 「건축학개론」 공간 디렉터 구승회 소장은 건축의 의미를 삶 속에 스며든 일상적이며 따듯한 모습이길 바랐고, 영화 속에서 사람과 기억을 어루만지는 공간의 따스함은 『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으로 다시 살아났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4111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script src="https://jsc.adskeeper.com/r/s/rssing.com.1596347.js" async>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