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의 에바 부인은 ‘해탈의 존재’
지난 22일, 헤르만 헤세가 한국의 독자들과 만났다. 예스24와 민음사가 함께하는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의 주인공으로 초대된 것. 그의 곁에는 최근 『헤세로 가는 길』을 집필한 정여울 작가가 있었다. 독일의 칼프에서 스위스의 몬타뇰라까지, 헤세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그녀가 자신의 여정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헤세에게 물었다. ‘헤세 씨,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정여울 작가는 『헤세로 가는 길』이 기억하고 있는 헤세의 시간들을 되짚었다. 그가 태어난 작은 마을 칼프로 가는 길목, 작품의 영감을 얻었던 이탈리아의 아시시 지역, 생가와 친필 편지… 『헤세로 가는 길』위를 거닐며 독자들도 한층 헤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여울 작가가 들려주는 깨달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헤세의 깨달음으로 가는 첫 번째 키워드로, 융이 이야기한 ‘아니마’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마는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이에요. 남성이 꿈꾸는 이상형인데, 연애의 대상으로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이상향으로써의 여성상이에요. 이 아니마는 문학작품에서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데, 이브처럼 유혹적인 팜므파탈로 등장하기도 해요. 『황양의 이리』에서 마리아나 헤르미네 같은 인물이 그런 역할을 하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리즈베트와 『수레바퀴 아래서』의 엠마 같은 경우도 새로운 세계로 유혹하는 이브로서의 아니마를 상징하고요. 여성에게는 반대로 아니무스라고 하는데요. 상대적으로 아니무스는 지배와 권력에 관계된 욕망이라면, 아니마의 핵심은 공감이에요.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통합과 연대를 의미하죠. 아니마라는 것은 헤세와 융 모두에게 핵심적인 주제인 것 같아요.”
『데미안』의 에바 부인 역시 싱클레어를 세상 너머로 인도하는 아니마다. 동시에 그녀는 “깨달음의 궁극적인 해탈의 경지를 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데미안』『나르치스와 골드문트』『황야의 이리』 등 헤세의 소설에서는 대부분 아니마로서의 여성상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정여울 작가는 “헤세의 작품에는 항상 깨달음의 매개체로써의 여성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많은 독자 분들이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을 연인으로서 좋아한 건지 궁금해 하시는데요. 싱클레어의 감정은 그걸 뛰어넘는 거죠. 에바 부인은 이 세계 너머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싱클레어가 깨달음의 경계를 뛰어넘기를 바란 것 같아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어머니를 계속 강조하잖아요. 영원한 어머니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거든요. 이것도 생물학적인 어머니를 뜻하는 게 아니죠. 그걸 넘어서는 모든 존재의 근원을 의미하는 거예요. 궁극적으로 다가가야 할 해탈의 차원으로써의 근원이죠. 대부분 헤세의 소설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과 깨달음을 주는 철학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함께 등장해요. 때로는 한 인물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할 때가 있는데 『황야의 이리』의 헤르미네 같은 인물이 그렇죠.”
나 자신이 되는 길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헤세의 작품에서 깨달음을 발견하는 두 번째 열쇠는 ‘로고스와 에로스의 대립’이다. 특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두 주인공은 상반된 두 가치가 대극의 통합을 이루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르치스는 깨달음의 표상이죠. 항상 골드문트에게 도움을 주는 구원자 같은 존재예요. 그런데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 관계가 역전돼요. 그게 바로 이 소설의 묘미인데요. 로고스가 계속 우위에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에로스를 상징하는 골드문트가 자신도 모르게 나르치스에게 깨달음을 주는 거예요. 골드문트의 임종을 지키면서 나르치스가 이렇게 이야기하죠. ‘내가 만약 사랑이란 걸 안다면 그건 바로 너 때문일 거야’라고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서로의 결핍이거든요. 나르치스는 감성적인 부분이 부족하고 골드문트는 철학적인 부분이나 절제가 부족한 사람이죠. 골드문트가 없었다면 나르치스는 평생 에로스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걸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거예요. 항상 자신은 골드문트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골드문트가 자신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는 걸, 골드문트가 없었다면 자신은 사랑의 가치를 전혀 몰랐을 거라는 걸 깨닫는 거죠. 그 순간이 굉장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 같아요. 이런 걸 융 심리학에서는 ‘대극의 통합’이라고 하잖아요. 가장 반대되는 것이 서로 통한다는 거죠.”
실제로 헤세는 융의 연구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융의 제자로부터 정신 분석을 받았고, 융의 조언으로 우울증 치료를 위해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헤세가 융의 관점을 전적으로 수용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두 사람의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융에게서 시작된 개념들이 헤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여울 작가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녀에게 그림자는 외면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화해의 대상이었다. 바로 그 화해에서 깨달음은 시작된다.
“융은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의식의 친구로 만들어야 된다고 봤어요. 헤세도 융을 알기 전에는 그림자를 억압하고 있었거든요. 마치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요. 싱클레어는 크로머가 자기 안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만드니까 자꾸만 피하잖아요. 끊임없이 내 안의 어둠을 억압하고 회피하려고 하죠. 물론 이러한 방어기제는 일차적인 충동이에요. 하지만 융은 그걸 뛰어넘어서 그림자와 소통해야 진정한 의미의 개성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어요. 개성화는 정신적인 완성이에요. 『데미안』에 그런 구절이 있죠.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로 나다워지고 싶었는데, 그 길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라는 구절이요. 그게 바로 개성화예요. 진정한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것이죠.”
융은 이야기했다. 개성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그러나 자신의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자를 끌어안기란 쉽지 않다. 융이 말했듯 그림자와 소통하려면, 그 결과 궁극적으로 함께 춤을 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헤세 역시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융은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해야 된다고 말했어요. 그래야만 궁극적인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그림자와 소통하고 마침내 그림자와 춤을 출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림자를 이해해야 하잖아요. 헤세의 작품도 끊임없이 그림자를 탐구하거든요. 『황야의 이리』에서는 전쟁의 폭력을 탐구했고 『싯다르타』『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끊임없이 자기 안의 어둠과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줬어요. 그림자를 깨닫는 것 자체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보는 거예요. 사실 그림자라는 것은 욕망의 대가거든요. 그림자는 욕망이라는 빛이 드리우는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욕망 자체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개성화는 나의 어두운 그림자를 깨달음으로써 나 자신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거죠. 그게 깨달음의 궁극적인 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저/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헤르만 헤세’는 첫 경험의 이름이다. 인생의 첫 사랑과 방황과 슬픔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이름이다. 헤세의 ‘데미안’은 지금도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는 삶의 멘토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마음의 서재』『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의 베스트셀러로 독자들과 문학을 통한 마음여행을 함께해온 작가 정여울이 헤르만 헤세를 다시 찾아가는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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